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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라 상당히 번잡했다. 민유리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자리가 나서 앉으며 이야기 했다.
“백반 1인분이요”
“네~ 어? 또 오셨네요..?”
민유리가 나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스토커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변명을 해두었다.
“아, 오늘은 그냥 밥만 먹으러 온 겁니다, 여기 맛있는 건 사실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오해를 하다뇨? 괜찮아요. 자주 오셔도 되요, 여기 정말 맛있죠?”
다행히 그녀는 전혀 귀찮은 기색 없이 대답했다.
민유리
나이 : 23세
남자친구 : 없음
직업 : 아르바이트
공략난이도 : D
사는곳 : 서울시 OO구 OO동 OO번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지방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중.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남친을 사귄 경험이 없다. 그것보다는 이루려는 꿈이 너무나 강대해서 아예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략을 위해서는 그 꿈으로부터 접근해야한다.
호감도 : 50
호감도를 확인하니 변함없었다. 역시 어제도 잘못측정된 건 아니었다. 왜 호감도는 올라가는데 거절을 당한건지 이상해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내기 전에는 괜한 접근을 해서 오히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얌전히 밥을 먹었다. 어차피 너무 바쁜 시간이라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계속 사람이 밀려들어와서 먹자마자 계산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스카우터 정보에 나와 있는 그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였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혹시 민유리일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들떠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비통지표시]
하지만 나타난 번호는 민유리는커녕 지금은 결단코 받고 싶지 않은 번호였다. 민유리 집으로 조사하러 가야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와 아저씨”
“뭐? 나 지금 할 일이 있는..”
“뚜뚜뚜..”
여느 때와 같은 일방적 통보 후에 전화가 끊어졌다. 헬기에서부터 말도 섞지 않으면서 뚱해있더니 하루 지나고 연락이라니 대체 뭔 짓을 하려는지 미심쩍었다. 민유리의 집은 이 여자를 상대해주고 나서 조사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서 정류장으로 터덜터덜 이동했다. 가보니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항상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한 것 같았다. 정류장에서 2분 거리에 있었으니 당연하긴 했다.
주위를 살피면서 벤치에 앉아 서예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분, 20분을 향해가더니 1시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7시를 넘고 있었다. 화가 나서 전화를 하려는데 언젠가 탄 적 있는 중형세단이 정류장으로 오는 게 보였다. 화를 내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정류장 앞에 멈추더니 뒷좌석 문이 열렸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걸로 봐서 타라는 뜻 같았다.
뒷좌석으로 들어가니 서예리가 있었다. 다리를 꼬고 참 건방지게도 앉아 있었다.
“야, 네가 부르더니 늦게 오기 있어? 내가 늦으면 별 소리를 다하면서?”
도저히 못 참겠어서 한마디 했으나 그녀는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러더니 차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어디 가는 건데?”
“밥 먹으러”
이 질문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서예리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밥을 먹는다니? 나 방금 먹었는데? 듣던 중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뭐? 진작 말해야지. 나 밥 먹었...”
그렇게 말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지뢰를 밟는 말은 뭐하러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었다고 한다고 그녀가 아, 드셨어요? 하면서 내려줄 사람이 아니잖은가.
“뭐라고 아저씨?”
아예 시선도 안주더니, 처음으로 눈을 맞추면서 반문했다.
“아니? 아무 말도 아니었어.”
바로 얼버무리자 그녀는 관심이 없는 듯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왜 저래? 저기압인가? 다시 침묵을 유지해서 할 수 없이 나도 가만히 있었다. 차는 곧 유명한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문이 열렸다. 그녀는 우아하게 차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더니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나오고 뭐해?”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자 호텔직원들이 나와서 그녀를 안내하고 있었다. 매우 정중한 모습이었다. 직원이 아닌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간부? 사장? 아무튼 안내받은 곳은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비밀공간으로 되어있는 방이었고 테이블 크기는 10명은 앉을 수 있어 보였다. VIP실인 듯 했다. 당연히 나와 서예리 둘뿐이었다. 공간에 비해 좀 썰렁했다. 여긴 뭐 밥을 먹는 데라기 보단 회의를 하는 곳 같은 인상이었다.
“아저씨 앉아”
“야 둘이 앉기에는 너무 넓지 않아?”
“응? 나, 항상 회의할 때 오는 곳 인데 불만인거야?”
“그 말은 둘이서 먹는데 여길 쓴 적은 없다는 거지?”
“응”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리 여기가 익숙해도 그렇지 그건 아니잖아. 지금 앉아 있는 거리만도 몇 미터는 되겠네. 나는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그 손을 잡고 VIP룸에서 나왔다. 밖의 홀에도 자리는 많이 비어있었다. 그래 2인용 테이블이 말이다.
“아저씨, 이거 놔. 뭐하는 거야 지금?”
의외로 서예리가 질질 끌려왔다. VIP룸 주위에 대기하던 경호원들은 무슨 사태인가 싶어서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을 놓고 눈앞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촛불이 중앙에 켜져 있는 게 우아해 보였다.
“여기서 먹자.”
서예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딱히 별 다른 말없이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는 빼줘야 되는 거 아냐? 아저씨 너무 매너 없어, 손목도 아프고”
뭐지? 나 지금 누구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는 거지? 너무 얌전하잖아? 아프다고 죽인다고 날뛰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미안, 그래도 둘이서 먹는다는 건, 이런 테이블을 말하는 거지, 아까 거긴 대체 뭐야,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
내말에 그녀는 손목을 주무르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는지 오늘 처음으로 웃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건 데이트 하는 거 같지 않아? 아저씨랑 내가 데이트? 푸하하하하”
“아. 그래? 싫으면 다시 거기로 돌아가고”
“여기로 됐어.”
그렇게 뚱해서 말도 제대로 안하더니,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데려 온 거야? 이거 사주는 거지?”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마지막 만찬일수 있으니 많이 먹도록 해.”
은근슬쩍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마지막 만찬이라니? 대체 왜? 고민하고 있는데 금방 식사가 나왔다. 코스요리인 듯 했다. 솔직히 배불렀지만 안 먹을 수도 없었다. 뭔지도 모르겠지만 나올 때 마다 그냥 들이켰다. 그러자 그걸 보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건 그렇고, 나 너무 지루해... 그날 헬기에서 내려서부터 그 후부터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지루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나는 배가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먹다보니 너무 맛있어서 빠른 속도로 흡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먹으라고 재촉했다. 아깝잖아. 그러자 서예리는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먹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아저씨를 좀 데리고 놀면 지루함이 나아질까 해서 불러봤어. 이거 먹고, 여기 호텔에서 우리 섹스 할까?”
나는 그 말에 먹던 음식을 그만 뿜어버렸다. 각도를 조절해서 다행히 그녀에게 튀지는 않았지만 바닥으로는 음식이 잔뜩 튀어버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심이야?”
“응? 진심이니까 여기 호텔로 온 거 아냐? 싸구려 모텔에서 처녀를 빼앗겨도 괜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갑자기 마음이 변했어.”
나는 뭔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거 같았다. 살짝 그녀의 눈을 살폈으나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섹스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여자에 한해서는 나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건 미친 짓이다. 세이브를 하고 한번 시도를 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러다가 저격이라도 당하면 답도 없다. 즉사는 노답이다.
나는 이 호텔에 더 있다가는 함정에 걸려서 먹혀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랑이의 아가리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이 여자 페이스여서는 곤란하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고 싶었어? 발정 난 아저씨네. 밥도 먹다 말고 일어나고 그래? 마지막으로 먹여주는 건데 그렇게 급할 것 없..”
나는 그렇게 말하는 서예리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힘을 줘서 일으켜 다시 끌고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랑 달리 그녀가 거부반응을 보였다. 팔을 뿌리치고는 내 멱살을 잡았다.
“뭐하는 거야 지금? 아저씨 드디어 미친 거야? 나, 이렇게 무례한 거 못 참아..”
“지루하다며?”
“뭐?”
“이상한 함정 파지 말고 따라 와봐. 지루할 땐 노는 게 최고잖아? 아까 그 차 불러서, 다시 우릴 번화가에 대려다 달라고 해”
서예리는 내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한찬 뭔가 고민하다가 나를 한번 올려보더니 생각을 굳힌 듯 경호원을 향해 손짓을 했다. 차를 준비시키라는 행동 같아서 나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나와 보니 차가 이미 대기해 있어서 그녀를 먼저 태우고, 차에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번화가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고 정류장 앞에서 내렸다. 내려서 그녀는 나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아저씨가 내뱉은 말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
“알았으니 따라 와봐”
나는 다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이끌었다. 다만 아까처럼 힘을 주어 이끄는 게 아닌 어디까지나 부드럽게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요즘 너무 서예리 한테 대담하게 행동하는 거 같기도 했다. 내성이 생겨버린 듯 이상하게 막나가게 되는 모습이었다. 뭐 어차피 어떻게 해도 당할 꺼라면 당당하게 나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었다. 옛날처럼 쭈뼛거리기는 싫었다.
아무튼 나는 번화가에 있는 노래방으로 그녀를 대리고 들어갔다. 보나마나 이런데 와본 적도 없을 거다. 그녀는 신기한 듯 노래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경호원들이 뭔가 급히 움직이는 듯 보였으나 무시했다.
“너무 밀폐된 공간 아니야?, 여기서 섹스하려고? 아까 호텔이 더 낫지 않아?”
“웃기지마. 섹스타령 좀 그만해. 너, 솔직히 섹스를 진짜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
“뭐 일단 노래 부른다.”
나는 그녀 말을 무시하고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물론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었기에 자신은 없었지만 그냥 내질렀다. 소리 지르듯 노래를 부르니 그녀가 나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그러더니 마구 웃기 시작했다.
“그걸 노래라고 부른 거야? 꺄하하하하하. 웃겨어.....정말 못 부른다. 푸후훗”
“너 평소에 가수들의 생라이브만 듣지? 그러니까 귀가 너무 높아 진거야, 보통이라고 보통 이게”
“뭐, 그건 그럴 수도. 더 불러봐, 나, 들어봐 줄게, 근데 너무 웃기네?”
그녀는 정말로 웃긴지 계속 깔깔대면서 배꼽을 잡기 시작했다. 뭔가 짜증이 나서 나는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야, 나만 부르는 거 이상하잖아. 너도 부르시지. 그렇게 비웃는 주제에 얼마나 잘 부르나 보겠어.”
“뭐? 나, 아는 노래 없어. 파티 같은데 가면 그야 가수들이 노래하는 거 듣기는 하지만, 불러본 적 따위 없으니까”
“그럴 리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는 있을 거 아냐? 소리질러봐, 뭐가 그리 지루하고 공허한지 모르겠지만, 지르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내말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거 같더니 약간 쑥스럽게 말했다.
“그럼, 동요도 있어? 유치원 때 불렀던 기억이 있네. 그 이후로는 음악수업 그냥 다 무시했지만..”
동요? 동요오오오오? 기껏 아는 노래가 동요냐? 뭐라 말할 수가 없는 비웃음이 몰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는 비웃어 주겠다는 생각에 책자에 있는 동요를 보다가, 놀려줄 생각으로 말했다.
“곰 세 마리 어때. 이거 알아?”
“응? 유치원 때 불러본 거 같아”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불러 보시지. 나는 곰 세 마리를 선곡해서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조금 머뭇머뭇 거리더니 음악이 나오자 두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는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재롱잔치의 포즈였다.
“고,..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
입만 열면 죽음을 열창하는 여자가 저런 동요를 부르니 갭이 커서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웃기에는 너무 귀여웠다. 본인에게 말하면 죽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너무 진지하게 동요를 2절까지 모두 불러버렸다. 그러다가 갭 차이에 발생하는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실실 쪼개는 걸 봤는지 냅다 마이크를 던져버렸다.
“지..지금 비웃는 거 아니지? 아저씨. 노래부르다 말고 죽어볼래?”
“아, 아냐. 목소리가 좋은데, 왜 그래. 한곡 더 어때?”
“됐어, 아저씨나 불러.”
그녀는 부르고 나니 쪽팔렸는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노래를 강제로 시켰고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복수하듯이 엄청나게 깔깔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절대로 일부러 웃는 거였다 저거.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웃음이 아니다.
나도 기분이 더러워져서 노래방은 그만 포기하고 나가자고 이야기 했다. 재미있다며 노래를 더 하라고 하는 서예리를 설득해서 간신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너무 불렀더니 목이 다 아팠다.
지쳐서 노래방 앞 난간에 기대앉았다. 그녀는 나오면서 경호원과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다 갑자기 노래방 앞에 있는 인형 뽑기 기계가 눈에 들어왔는지 그걸 보더니 나에게 질문했다.
“아저씨 저건 뭐야?”
“그건 인형 뽑기지 보면 알잖아?”
“뭐? 그게 뭔데?”
“으이고 이리 와봐”
나는 인형 뽑기 앞에 가서 동전을 넣고는 직접 보여주었다. 이런 게임에는 절대적으로 강한 나다. 유일한 장점이기도 했다. 바로 인형을 뽑아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인형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기계 팔이 인형을 들어 올리는 거에만 흥미를 보였다.
“나, 해볼래. 어떻게 잡는 거야? 사람도 이렇게 뽑아서 버릴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치?”
어이없는 말을 하면서 나를 재촉해서, 나는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열심히 기계를 조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할 수 있을 리가 없어서 연달아 실패했고, 계속 내 동전만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어려워? 짜증나”
결국 하나도 못 뽑더니 기계를 차면서 거기에 걸터앉았다. 그러고서는 나를 올려 보았다. 달빛에 비친 눈동자가 뭔가 매혹적이었다.
“아저씨. 나름 재밌었어. 이게 논다는 거야? 하긴 억지로 고등학교에 나갈 때, 노래방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 하면서 꺅꺅 대던 애들이 있던 것도 같네.”
“그래?”
다행히 기분은 좋아보였다. 아까 내가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협박하더니 다행히 그건 잘 넘어가는 것 같았다. 기계위에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살짝 웃더니 나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까치발을 살짝 들고 내 귀에다 엄청난 사실을 속삭였다.
“아저씨, 하나 고백하자면.. 사실 아까 호텔에서 나랑 섹스를 하러 갔으면.. 나 하고나서 아저씨를 죽일 생각이었어. 내 처녀를 가져갔으니 그 정도는 해야 되잖아? 평소에는 저격수까지는 없어 사실.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관계부처에 기부금을 뿌리고 배치할 뿐, 서울한복판에서 그렇게 막나갈 수는 없잖아? 주위에는 그냥 경호원들뿐이야. 전에 정류장에서의 저격수들은 아저씨가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만약 들킨 거면 겁 좀 주려고 그때도 돈 좀 뿌리고 배치했던 거고, 그리고 두 번째로 오늘 그 호텔에 배치를 해 놨다?”
“여...역시 함정이었네. 너...진짜...그것도 진지하게 죽이려고 했다고? 대체 왜?”
역시나 아까 그건 함정이었다. 몇 번 씩이나 함정을 피는 거지 이 여자는. 도무지 심경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이럴 때 보면 너무나 무서웠다.
“그건...”
“이유가 없지 보나마나 또? 재미를 위해? 지루하지 않으려고?”
내가 좀 억울해서 반항을 하자, 그녀는 머뭇거리던 말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나, 헬기에서 내려서 집에 돌아오고부터, 갑자기 너무 지루해 지는 거야. 그리고 아저씨 생각이 자꾸 나서, 더더욱 지루해졌어. 뭔가 이상하잖아? 아저씨를 생각하면 할수록 지루해 지다니. 평소랑 다른 지루함에 참을 수가 없었어. 이게 다 아저씨 때문 인거 같은 거야. 그래서 결심했어. 섹스를 해버리면 다를 거라고. 아저씨도 욕망의 덩어리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저씨를 죽여 버리고 이 이상한 기분에서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요즘 내가 아저씨를 많이 봐줬으니, 아저씨도 기고만장해져서, 섹스를 하자면 넙죽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이상한 기분에서 탈출 하자고 죽이려고 했다고? 이상한 기분이 뭔데 대체. 자세히 설명도 못하는 기분 때문에 죽을 뻔 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느낀 그대로를.
“전부터 생각했는데 사람 목숨을 너무 종잇장처럼 여기는 거 아냐? 차라리 평소와 다른 지루함에 대해서 상담을 하고 해결을 할 생각을 해야지, 죽이면 다 끝나?”
“그치만, 결국 못 죽였는걸? 그렇게 화내지마. 하지만 이상해. 지금은 또 어제처럼 그런 지루함은 없어. 여기서 내가 말하는 지루함은 평소의 내가 말하는 지루함하고 좀 달라. 나도 잘 설명은 못하겠어. 뭐가 다른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저격수는 철수 시켰어. 그러니까 죽을 위험이 없는데, 다시 섹스 할래? 뭣하면 아까 노래방도 좋은데”
“너...”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야 그럼 대신 아저씨를 박제 해다 집에 가져다 놓을까? 그래놓고 괴롭히면 덜 지루할 것 같은데”
“진짜 그만 좀....에휴”
나는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진심을 다해서 한 말이었다.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대사를 듣고 있자니 정말로 박제를 하려고 들것 같았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면 저렇게까지 삐뚤어진 성격이 되는지 궁금했다.
“방금 그런 명령조는 마음에 안 들지만, 뭐 좋아. 아저씨, 헬기에서도 말했듯이 내 말만 거스르지 않으면, 이런 소리 이제 안할게. 오늘도 재밌었고”
다행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래서 다시 그녀의 눈을 보면서 확인해 보았다.
“그래? 그럼 이제 이상한 함정 안파는 거겠지?”
“음, 뭐 일단은 그렇다고 해둘게”
“잠깐만 너 아까 마지막 만찬 어쩌고 한 거..설마...”
“어머? 들켰네. 그래도 죽이기 전에 배불리 먹여주려고 했지. 나, 착하지?”
그러면서 혓바닥을 비쭉이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머리가 아파왔다. 어째서 이런 여자와 관련이 되 버린 거란 말입니까. 이 망할 게임 시스템의 신이시여. 저주를 퍼부으면서 있는데 우리 앞으로 아는 여자가 한명 지나갔다. 바로 민유리였다. 그러고 보니 노래방 옆 건물이 백반집이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일 끝나셨어요?”
“네, 아 일행분이 있으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예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조금 표정이 이상했다. 갑자기 핸드백을 떨어뜨리더니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내말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는 핸드백을 주워들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럼 가볼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 길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나를 보는 게 아니고 서예리를 쳐다보는 듯 했다.
“저 여잔 또 뭐래?”
“응? 자주 가는 음식점 아르바이트? 손님과 직원 관계랄까?”
나는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민유리의 눈빛이 이상했다. 놀라는것도 그렇고 왠지 서예리를 아는 것 같은 눈치여서 본인에게 물어봤다.
“너야말로 혹시 저 여자 알아?”
“처음 보는데? 그보다 아저씨 나 갈래”
“엉? 간다고?”
이게 왠 희소식이냐. 언제까지 잡혀있으려나 생각했는데 알아서 빠져주려는 모양이었다.
“사실 어제도 처리할 일이 많았는데 마음이 안 내켜서 아무것도 안했어. 일이 쌓여있는 거 할아버지가 알면 또 난리 날 테니, 나, 한가한 여자 아니니까? 후후, 그럼 이만 빠이빠이”
서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앞에서 걸어 나갔다. 손을 흔들면서 마중 나오는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었다. 에휴, 저 여자 때문에 결국 민유리 집도 조사를 못하고 엉망진창이었다. 내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지. 지금 쳐들어갈까? 로드랑 수면스프레이를 써?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또 서예리인가 싶어서 확인하니 전화가 아닌 문자가 와있었다.
[저, 민유리 인데요. 아까는 죄송했어요. 적어 주신 번호로 연락하는데 맞게 들어갈지 모르겠네요. 실은 할 말이 생겨서 그런데, 내일 아침에 어제 이야기 했던 커피숍에서 볼 수 있을까요?]
========== 작품 후기 ==========
저 마지막 장면을 위해 먼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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