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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리가 일하는 번화가로 넘어오니 시간은 10시정도를 향하고 있었다. 목적대로 백반집 앞으로 가니, 영업은 끝난 것 같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면 나올 것 같아서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유리야 수고했다”
마침 그녀가 가게에 인사를 하고 나오는 중이었다. 나는 우연을 가장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일단 세이브를 했다.
“어 안녕하세요?”
“예?,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갑작스런 인사에 나를 못 알아 본 듯 했으나 금방 인사를 받아준 걸로 봐서는 뒤늦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나는 작업을 한 번 걸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거의 헌팅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다양한 여자들을 상대했더니 내성이 생겼는지 의외로 뻔뻔하게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실패할 때를 위해서 세이브까지 해뒀으니 완벽하다.
“저기, 아까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데요, 죄송한데 괜찮으시면 간단한 반찬 레시피좀 얻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혼자 살게 돼서 곤란한 점이 많네요.”
자신 있게 말했으나 내뱉고 나서 생각하니 너무 오그라들고 뻔뻔해 보였다. 꼬시는 대사가 고작 이거라니. 흑흑.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역시나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렇지, 그녀가 주방이모도 아니고, 서빙한테 레시피 타령이 웬 말인가. 멘트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녀가 착해서 거절을 못하는 광경을 기도했다.
“네? 그게, 갑자기 그러시면, 제가 주방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요..”
역시나 거절의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로드를 해버릴까 하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멘트를 하나 더 날려보았다.
“제가 커피 살 테니까, 요 앞에 사람 많은 커피전문점 아시죠? 그런데서 이상한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안 될까요?”
내가 손을 모으며 부탁하자 그녀는 잠시 미간을 좁히면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다행히 긍정적이었다.
“으음..알겠어요, 그럼 제가 아는 반찬 몇 가지 알려드릴게요,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역시나 쉽게 거절을 못하고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겨달라는 것도 아니고 반찬 레시피를 알려달라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듯 했다. 정말 착하다니까. 혹시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까봐, 앞장서서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로 가서 대충 주문을 하고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예전의 매력치 였다면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조차 아마 절대로 불가능 했을 텐데, 매력치를 높인 게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메모지랑 펜을 꺼내더니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마도 부탁한 레시피 인것 같았다.
“요리는 어느 정도 하시는데요?”
“배운 건 확실하게 하는데, 못하는 편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가짓수가 적어서 문제일 뿐이에요.”
“그래요? 그 말대로 라면 여기 적힌 것들은 쉽게 만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녀는 작성이 끝났는지 나에게 메모지를 넘겨주었다. 받아보니 예쁜 글씨로 몇 가지 반찬의 레시피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그걸 읽고 있는데 커피가 나왔다는 벨이 울려서,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받아왔다. 그녀에게 하나를 넘겨주고, 바로 커피를 들이켰다. 긴장해서 그런지 목이 말라왔다.
“거기서 알바 하신지는 오래 되셨어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왜요?”
“아, 아니에요”
그냥 할 말 없어서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어색해져서 머리를 짜내다가 그냥 가장 기본적인 이름을 화제로 올렸다.
“저는 김영준입니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민유리요...그런데 혹시, 이거 작업거시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 잔을 쏟을 뻔했다. 한 번에 간파 당하다니 역시 나는 초보였다.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아 그게..실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죄송합니다.”
그래서 그냥 화끈하게 인정해버렸다. 이미 망했는데 뭐 더 망할 것도 없었다. 내말에 그녀는 너무 솔직히 인정하니 오히려 놀란 듯 토끼눈을 하더니 말했다.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가끔가다 연락처 물어보거나 작업거시는 분들은 있는데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커피숍으로 유인당한 건 처음이네요..”
딱히 불쾌한 말투는 아니었다. 그냥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혹시 지금 드린 레시피도 사실 필요 없는 거예요?”
그녀가 정곡을 찔렀으나, 정성들여 써준 메모지를 필요 없게 만들 수는 없어서 변명을 시작했다.
“아뇨!! 혼자 사는 것도 사실이고, 반찬이 필요한 것도 사실 이예요, 이건 고맙게 쓸 생각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거, 언니에게 배운 반찬들이에요. 틀림없이 맛있으니까.. 헛되게 남에게 적어준거였으면 좀 분했을 것 같아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뭣하면 레시피대로 만들어서 인증샷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생각나는 데로 흥분해서 말한 건데 말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묻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멘트는 좀 좋지 않나 싶어서 그녀를 보니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먹힌걸까 싶어서 대답을 기다렸다.
“호호, 그러실 껀 없어요. 그런 식으로 연락처를 물어보시다니, 작업을 많이 해보셨나 봐요?”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정말로요”
예전에 누나랑 처음 만날 때 비슷하게 뭐 좀 먹고 가자고 꼬셔본 적은 있지만 그때랑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후후. 참신 하신 거 같아서 웬만하면 연락처 정도는 알려드리고 싶지만..”
뭐지? 성공한 거 아닌가? 왜 말꼬리를 흐리나 하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남자를 만나거나 할 상황이 아니랍니다. 정말로 죄송해요. 저에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과는 실패였다. 꼭해야 하는 일이 뭐 길래, 하긴 공략정보도 꿈이 어쩌고 하긴 했었다. 다시 로드해서 차인 이미지를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호감도를 한번 살펴보았다. 확 깎여버렸겠지?
민유리
나이 : 23세
남자친구 : 없음
직업 : 아르바이트
공략난이도 : D
사는곳 : 서울시 OO구 OO동 OO번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지방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중.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남친을 사귄 경험이 없다. 그것보다는 이루려는 꿈이 너무나 강대해서 아예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략을 위해서는 그 꿈으로부터 접근해야한다.
호감도 : 50
하지만 어이없게도 호감도는 20이나 올라가 있었다. 낮에 확인했을 때는 분명히 30이었다. 거절당했는데도 호감도가 올라가다니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 말은 정말로 연락처를 줄 마음도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였다. 그 꼭 해야 하는 꿈이라는 거만 아니면 말이다. 의외로 나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보였다. 하긴 불쾌한 표정은 전혀 안보였다. 여자들의 불쾌함을 감지하는 건 고딩때부터 주특기였다.
결국 답은 꿈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내일 집을 뒤져보면 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로드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졌다. 굳이 호감도가 올라갔는데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역시 여자마음은 알 수 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든거라고 생각하면서 대뜸 질문했다.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혹시 메모지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펜도 좀..”
“네? 네, 잠시만요”
그녀는 내가 쉽게 물러나자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핸드백에 도로 집어넣었던 메모지와 펜을 나에게 꺼내주었다. 그걸 받아서 나는 이름과 내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못 가르쳐 주실 이유가 있으신 거 같으니 더 안 묻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번호는 받아주세요. 버리셔도 상관없는데, 이 자리에서 버리지는 마시고요.”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얼떨결에 받은 민유리는 곤란한 듯 했으나, 그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핸드백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알겠어요. 가지고만 있을게요. 하지만 연락할 일은 없을 테니 기다리거나 하시면 완 되요?”
“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는 산뜻하게 말하면서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켰다. 그녀도 커피를 다 마셨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은 감사했고, 죄송해요.”
그렇게 작별을 고하며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호감도는 올랐는데 거절당했다.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답은 그녀의 꿈이라는 거에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커피숍에서 나와서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내일 그녀가 알바 갔을 때 여러 가지로 조사해 보면 알 일이었다. 조금 방황하다가 집에 오니 새벽3시였다. 사부님이라는 사람에게 불려간 누나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뭔가 의뢰를 받은 모양이었다.
할 일이 없어져서 그냥 다시 잠이나 자기로 했다. 낮에 잔 걸로는 부족했는지 은근히 졸려왔다. 그래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껴안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오후6시였다. 몇 시간을 잔건지 모르겠다. 마취약에 당해서 빈사상태로 묶여 있던 게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간 모양이었다. 일단 세이브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을 열어보았으나 연락이 와있는 건 없었다. 누나도 여전히 바쁜 모양이고, 번호를 준 민유리는 당연히 기대도 안했다. 기지개를 편 후에 민유리의 집을 조사하러 가자고 마음먹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또 배가 고팠다. 너무 오래 잤으니 공복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집으로 가기 전에 한 번 더 백반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반응을 볼까? 거절했는데도 또 왔다는 귀찮은 내색을 하면 곤란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반응을 보자는 생각으로 그녀가 일하는 가게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아, 이상한 사람이 덧글마다 시비를 걸어서 처음으로 불량이웃이란걸 등록했네요. 몇개 삭제도 하고 신고도 했습니다. . 설정이 맘에 안들면 안보면 그만이지 왜 굳이 읽으면서 븅신븅신 거릴까요... 왠만한 악플은 상관없습니다..근데 모든편마다 다 시비는 완전 일부러 잖아요? 차마 못참겠더라고요..그래서 멘탈이 나가서 6시에 올리려고 했던걸 이제야 올라가네요. ㅠㅠ 지금부터 더 써서 12시쯤에 올릴수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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