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현실은 H게임-38화 (38/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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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아, 미안”

그 말에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일어났다. 서예리는 바닥에 누워서 가만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더니 비켜줬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일으켜 달라는 건가? 행동의 의미는 일으켜 달라는 게 분명했지만, 이 여자라면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저리 꺼지 라던가?

“일으켜줘”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녀 몰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민 손을 잡고 힘을 주어 일으켜 세워주었다. 일어난 그녀는 옷을 탁탁 털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저씨, 주제도 모르고 내 몸을 안다니, 그 대가를 어떻게 치룰 셈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또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대더니, 아래로 조금씩 움직였다. 목으로 가져간 손가락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다가 셔츠 위까지 이동해서 배꼽가지 손가락을 그어 내렸다. 뭔가 간지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배꼽에 도착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그 손가락을 다시 자기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더니 볼을 부풀리며 입을 앙다무는 뭔가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취해 있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서 그녀에게 반문했다.

“뭐?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거야?”

“고작 한 번?”

“한 번이라니?”

“나, 아저씨를 죽이려다가 살려준 거 한 열 번도 넘는 거 같은데? 수치가 비교가 되지 않는 달까?”

“아...그러세요?”

말을 말아야지. 고맙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정말로 그녀다운 계산법이었다. 옆에는 갈비뼈가 나간 듯 제대로 몸을 못 가누는 경호원이 무전을 통해서 지원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곧 다수의 경호원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대가는 어떻게 치루 게 해줄까?”

하지만 서예리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없다는 투였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서는 질문을 해왔다. 집요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울컥해 버렸다. 죽는 모습은 보기 싫어서 구해줬더니 약간 너무한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분풀이를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몸을 다시 껴안아버렸다. 밀치지 못하게 등을 부서질 듯 강하게 감싸않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한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밀어서 내 가슴팍에 묻어버렸다.

그러자 수많은 경호원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나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쏴봐야 몸이 완전히 밀착되어있는 서예리에게도 총알이 관통할게 뻔해서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뭐 방아쇠를 당긴다고 해도 무형검을 해지하지 않았기에 내가 죽을 일은 없었다. 무형검은 엄연히 게임 아이템이다. 오른손에 쥐어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결국에는 자동으로 방어 작용이 발동하는 아이템이다. 딱히 휘두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아까상황에서는 무형검의 방어기능을 이용해서 그녀를 구하기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내가 뛰어가는 것보다 먼저 그녀의 몸으로 총알이 관통할 위험이 있어서 머릿속에 그리기만 하면 되는 [무형의 검날]을 사용했을 뿐.

내 품에 강제로 안겨버린 서예리는 상황이 황당했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는 게 느껴졌다. 설마 운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살짝 그녀의 얼굴을 밀어붙이고 있던 손을 풀어서 고개를 자유롭게 해주자 그 순간 엄청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저씨이? 정말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이네. 무릎이라도 꿇고 봐달라며 애원할 줄 알았더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대가를 치루라며? 널 구해준 대가를 포옹으로 받으려고, 아까는 안았다고 할 수 도 없는 자세였어.”

그녀의 표정을 보기위해 감싸 쥔 팔을 등에서 허리로 이동해서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그녀는 허리를 두른 내 팔을 쳐다보다가, 주위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그때야 눈에 들어왔는지 말했다.

“됐으니까 총 내려”

“어차피, 총도 못 쏴. 나한테 쏘면 너도 맞는 걸? 그리고, 덮치기도 애매할 테니, 왜냐하면 나와 너는 너무 가깝거든. 내가 무슨 짓을 하면 큰일 난다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우위를 잡은 기분으로 조금 협박해 보았지만, 그녀는 웃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좋아,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지금 아저씨 손이 내 엉덩이에 닿으려고 하는데, 이 죄는 너무 큰데?”

“협상이야 협상, 아까 전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조건이야. 당연히 지금 널 안은 것도 포함해서”

“싫다고하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나, 그렇게 불리한 협상에 응해본 기억이 없는데”

“죽일수는..없지. 아까 널 구한거 보면 몰라? 죽일 마음이 있었으면 그때 그냥 뒀겠지”

내 말에 그녀는 다시 보조개를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은지 살짝 콧소리까지 내었다.

“그래? 후후후. 날 죽이겠다는 시시한 조건을 입에 올렸으면 아저씬 내 머릿속에서 그대로 아웃이었는데 역시나 잘 피해 다니네? 그걸 봐서 조건은 들어줄게, 그래서 뭘 가지고 협상하려고?”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네 입술을 빼앗겠어. 첫 키스 아직 이지? 여자들은 첫 경험보다 오히려 첫 키스를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던데, 이런데서 첫 키스라니, 후회할걸?”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녀보다 우위에 서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걸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 와중에 그녀같이 대단한 여자가 입술을 빼앗겨 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건 것이다.

“키스? 내가 고작 그딴 거에 흔들린다고 생각해?”

“그래? 그럼, 해버린다? 후회하지 마?”

나는 얼굴을 그녀의 입술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러자 그녀는 내 얼굴을 피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뭔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주위의 경호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역시 이런데서 입술을 빼앗기고 싶은 여자는 없다는 내 예상이 맞았는지 갑자기 약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그녀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비켜줘..”

“뭐? 그러니까..협상을..”

하지만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그대로 고개를 숙이더니 이번에는 나에게는 뚜렷하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까, 비켜줘.. 아저씨 말 들어줄게”

“정말?“

나는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상태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풀어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녀는 풀려나자 나에게 조금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리더니 아직도 총을 겨누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구경났어? 그 총 좀 치우지 못하겠어? 그리고 아직도 교주놈을 못 끌고 온 거야? 나, 화나려고 하는데?”

엉뚱한데다 화를 풀더니,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이런데서 키스 같은 거 할 기분이 전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가 준거야. 그깟 입술에 입술이 닿는 행위 따위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과연 그럴까? 절대로 용서 같은 거는 없는 여자가 불합리한 협상을 받아준 것만 봐도 그깟 키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그녀를 이겼다는 기분에 더 이상 깊게 따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뭐든 도를 넘으면 안 된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이겼다. 저 여자를!! 이겨먹었어. 기뻐서 밖으로 나가서 소리치고 다니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순간이지만 굴복한 게 분한 것 같았지만, 의외로 뒤끝은 없었다. 약속은 지키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때 드디어 교단의 제압이 완료되었는지, 간부들이 줄줄이 이끌려오기 시작했다. 제일 뒤에는 여전히 잠들어서 양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오는 교주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밧줄에 묶어 논 상태 그대로였다. 내발에 얻어맞은 얼굴이 부어올라 있었다.

“아가씨, 교주를 끌고 왔습니다.”

서예리는 슬쩍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관심이 없어져 버린 듯 치워버리라는 손짓을 했다.

“나, 지금 기분 별로야. 그 더러운 면상들 보고 싶지도 않아. 경찰에 넘기든, 죽여 버리든 알아서 처리해. 다만 이 교단은 완전히 부셔버려. 건물도 매입해서 철거해버리고, 이 세상에서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마. 신자들도 정신병원에 집어넣든, 구속시키든, 한명도 빠짐없이 정리하도록 해”

그러더니 몸을 휙 돌려서 입구를 나가버렸다. 30분 안에 끌고 오라고 날뛸 때는 언제고 갑자기 전혀 흥이 식어버린 태도를 보이자 경호원들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제압부대로 꾸며진, 교주와 간부들을 붙잡고 서있는 경호원들과는 달리, 아까 전 나에게 총을 겨누던 직속 경호원들은 그녀를 따라서 우르르 입구로 빠져나갔다.

아무튼 교단은 뭐, 이제 붕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눈에 잘못 든 이상 끝이었다. 재건 따위는 생각 할 수도 없게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다.

나도 돌아갈 생각으로 밖으로 나오자, 주차장 앞에 만들어 놓은 운동장 비슷한 시설에 헬기가 내려와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서예리를 따라가서 외쳤다.

“나도 대려가 줘야지!!, 여기가 대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좀 뻔뻔하게 물어보자, 그녀는 걷다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키스를 하려고 얼굴을 드리밀자, 고개를 돌려버렸던 그 순간부터 웃음을 잃었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에 갑자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싫~어”

“그러지 말고? 아니면 여기가 어딘지나 알려두던지”

“벌이야 아저씨. 혼자서 걸어오던지? 알아서 잘해봐”

그러면서 다시 몸을 돌려서 헬기로 걸어갔다. 아까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자비가 전혀 없었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주차장에 있는 차라도 훔칠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질주해 들어왔다.

“끼이이이이익”

그리고는 내 앞쪽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타이어자국을 남기면서 멈춰 섰다. 그 차에서 문을 박차고 나온 인물은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누나?”

나는 차를 향해서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누나는 나처럼 습격을 받은 건 아닌지 아니면 습격을 물리쳤는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동생아, 괜찮아?”

“응, 여긴 어떻게 왔어?”

누나는 내가 차까지 뛰어오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누나의 이런 행동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 문양을 조사하는 중에, 본거지를 알아내고 쳐들어가려고 너한테 연락을 했는데 안 받아서,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달려왔지. 그때 대화가 도청 당했으면, 나나 너한테 접촉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대체 왜 전화는 안 받은 거야?”

그 말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있었다. 받을 상황이 아닌 때에만 핸드폰이 울렸나보다.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러게, 뭐 좋게 끝났으니 됐어. 여기 놈들은 이미 소탕 됐어 누나”

“뭐? 설마 너 혼자서?”

누나는 내말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헬기가 눈에 들어왔느지 물었다.

“저건 아가씨 아냐?”

“응, 서예리가 여길 정리 했어”

“아가씨가? 어째서?”

누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뭐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면서 자세히 말해줄게. 서울까지 데려다 줄 수 있지?”

“응? 으응, 아! 자..자 잠깐만”

누나는 그러더니 재빠르게 차문을 열고는 백미러에 걸려있는 뭔가를 재빠르게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게 뭔지 이쪽에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됐어!, 이제 타도 돼. 돌아가자 동생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금 행동은 질문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없던 일로 하면서 차에 타라고 말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묻지 말라면 묻지 말아야지 어쩌겠어.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서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헬기로 간 줄 알았던 그녀가 우리 앞에 서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그녀의 의도를 알기위해 표정을 살폈으나, 웃는 얼굴도, 화난얼굴도 아닌 무표정이었다.

“아..아가씨. 안녕하세요?”

누나가 차에 들어가려다 말고 나와서 서예리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받아주지도 않고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그 차에 타려는 거야?”

“응? 그런데? 누구께서 대려다 주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서 돌아가려니 막막했는데 잘됐지. ”

“안 돼”

“뭐?”

갑자기 돌아와서 하는 말이 왠 거부권 행사야? 이번에는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해 주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따라와 헬기로 대려다 줄게.”

그러면서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서 헬기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걸 보고 있다가 누나에게 말했다.

“저 여자는 또 왜 저럴까?”

하지만 누나의 눈초리는 좀 무서웠다. 90도로 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뒤돌아서 걸어가는 서예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동생아, 헬기로 가봐. 아가씨를 거슬러 봤자 좋을 건 없으니.. 대신 서울에 도착하면 우리집 으로 와.”

“응? 아..알았어..누나. 그럼, 일단 가볼게”

그녀 말대로, 한번 서예리를 굴복시켰다고 그녀를 계속 이겨먹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야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하지만 혼자 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다시 차에 타라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 아무튼 터덜터덜 헬기로 달려갔다. 그나저나 헬기라니, 정말 부르조아의 상징이었다. 저번에 그녀의 정체를 안게 된 날 도로위로 내려오는 모습을 잠깐 보긴 했지만, 막상 타본다고 생각하니 들뜨는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소형헬기가 아닌, 소방헬기 같은 큰 종류였다.

내가 헬기로 올라서는 걸 본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안으로 들어가자 좌석이 몇 개 있었는데, 그녀는 제일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방해한다고 할까봐 비어있는 앞의 의자로 향하는데 경호원이 그 행동을 저지했다. 손으로 그녀가 앉아있는 뒷좌석을 가리켰다. 헬기주인 맘이니, 어쩔 수 없이 서예리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볼 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졌고 곧 헬기가 날아올랐다.

밖으로 보는 풍경이 멋있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서예리가 항상 이렇게 세상을 내려다본다고 생각하니, 그 성격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아저씨”

한참동안 말이 없더니 침묵을 깨고 그녀가 나를 불렀다.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몸을 돌려서 대답했다.

“응? 왜?”

“해결사 언니하고, 언제 다시 만난거야? 나, 그날 분명히 둘을 때어놨을 텐데?”

아, 역시 그건 일부러 그런 거였냐? 이..뇽이, 그날 폰 번호를 물어볼 시간을 주지 않았기에 스카우터의 정보저장 기능이 없었다면 찾는데 애먹었을 거라는 게 떠올랐다.

“뭐, 어쩌다 보니, 동업자끼리는 만나게 된다는 걸까? 후후후”

나는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하면서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뭔가 재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매우 당황스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저씨? 나, 갑자기 하늘에서 낙하산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사람을 구경하고 싶어졌어”

“뭐.......어어어어어!?”

내가 놀라서 소리 지르는데, 갑자기 헬기의 문이 열려버렸다. 엄청난 바람이 들어왔다. 경호원 두명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양팔을 잡더니 문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팔을 잡혀버려서 아아이템을 불러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돌아본 그녀의 표정은 왠지 냉담했다.

“살려줘?”

떨어지다가 로드를 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을 삼키고 있는데 그녀는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대답해, 살려줬으면 좋겠어?”

“당연한 거 아냐?!”

내말에 그녀가 손짓을 하자 앞좌석에 있던 경호원이 걸어 나와서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그리고 날 붙잡고 있던 경호원은 다시 나를 뒷좌석에 앉히고는 풀어주었다.

“아저씨, 한번만 봐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동차에 탔던 그날처럼 내 위에 올라타 마주보고 앉더니 내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한 번 뿐이야. 아까건 재미없었어. 날 거스르지 마. 그리고 키스 같은 거, 정말로 내가 그딴 거에 연연한다고 생각한 거 아니지?”

그러더니 그녀는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포개버렸다.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녀는 그대로 입술을 때어내었다. 혀조차 감기지 않는 가벼운 키스였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입술을 때고는 내 입에 다시 검지를 가져다 댔다.

“봤지? 키스 같은 거 나한텐 아무 의미도 없어”

그런 거 치곤 좀 얼굴이 빨개진 거 같아 보였다. 착각인가? 석양이지고 있는 건가? 굳이 그게 석양 때문인지, 정말로 빨개 진 거지는 불문에 붙였다. 다시 하늘에다 사람을 던지려고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반격을 하려면 땅을 밟고난 후 하자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헬기는 어느새 수많은 빌딩들이 밀집된 우리의 수도, 서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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