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현실은 H게임-31화 (31/104)

-------------- 31/104 --------------

“누나?”

“동생아?”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지연이 누나였다.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나타 난거지?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녀는 검을 거두더니 말했다.

“여기에 왜 네가 있어?”

“나는 의뢰 때문에..”

반쯤은 진실이었다. 조사의뢰를 받기는 받았으니까 말이다.

“너도??”

누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피더니 화장실에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

“저기 시체는 니가 죽인거야?”

“아...아니야!! 내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땐 이미 죽어있었어”

내가 강하게 부정하자 누나는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쓰담쓰담 했다.

“그래그래. 설마 우리 동생을 의심하겠어? 그냥 물어 본거야”

아니 뭐 솔직히 이 상황이면 의심해도 될 만한 거 아닌가? 그건 또 너무 맹목적으로 믿는 것 같은데. 대책 없는 누나였다.

“그건 그렇고, 누나,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전에 말했었지?”

전에 말했던 게 어떤 거지? 나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누나는 분명 나에게 사건을 쫓는 걸 도와 달라고 했었다.

“그..아저씨 살인사건 인가 뭔가?”

“응 맞아. 그걸 쫓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 너는?”

“저기서 죽어버린 여자가 내 의뢰인이야.”

“그래?”

누나는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장실로 들어가서 시체를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프로니까, 내가 보는 것 보다야 낫겠지. 처음에는 너무 깔끔하게 죽어있어서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건 외상이 없다는 말일뿐 죽이는 방법이야 다양했다. 꼭 목을 조르거나 칼로 쑤시거나, 총을 쏴서 죽이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입을 열어보고, 눈을 만져보고, 마치 검시관처럼 시체를 살피는 걸 계속 보고 있자니 너무 지겨워졌다. 그래서 원룸이나 더 살펴볼 생각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전에 침입했을 때의 풍경을 되새겨 보고 있자니 탁자 뒤에 있는 가방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다가가서 안을 보자 액세서리들이 몽땅 없어져 있었다. 반지며, 장신구며, 아예 싹 다 가져가 버린 듯 했다. 없어진 건 문양을 그려놓은 그림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갑은 또 그대로 였다. 열어보니, 현금도 그대로인걸로 봐서 단순 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화장실 앞으로 가서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혹시 그녀 손에 반지 없어?”

“반지? 그런 거 없는데 동생아”

“혹시 모르니까, 옷 좀 뒤져 봐줄래?”

“옷을? 알았어.”

누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녀가 입고 있는 츄리닝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분명히 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에게 준 반지와 같은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말이다. 범인들은 액세서리들괴 함께 그녀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까지 가져간 모양이었다. 무슨 목적일까?

그때였다. 갑자기 생뚱맞게 세상이 회색빛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선택.1 로드한다.]

[선택.2 여기서 나간다.]

[선택.3 유지연과 섹스 한다.]

그리고 세 가지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여기서 대체 왜 선택지가 나오는지는 전혀 이해가 안 갔다. 공략대상이 죽었는데 히든미션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건가? 하긴 레벨업과 히든미션은 별개이긴 했다. 서예리가 풋 잡을 해줬을 때는 공략미션도 아니었고 히든미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레벨업이 되버렸다. 그 말은 반대로 섹스를 못하더라도 히든미션은 단독으로 존재해서 클리어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너무 복잡해보여서 별로 깨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선택지는 선택해야 했다. 1번이 의미심장해 보였다. 로드를 하면 죽은 여자를 살릴 방법이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로드를 한다는 선택지가 나오는 건 이상했다.

2번은 너무 뜬금없었다. 갑자기 여기서 왜 나간단 말인가?

그럼 3번은? 시체를 조사하고 있는 누나와 갑자기 여기서 섹스를 한다고? 지난번에는 물론 시체 옆에서 섹스를 하긴 했었다. 섹스노가다를 위해서 2번이나 말이다. 3번째는 정력부족으로 실패 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조사를 하다 말고 섹스라니, 아무리 누나라도 받아줄 거 같지가 않았다.

저번에는 모든 비밀을 밝혀냈다는 성취감에 섹스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2번과 3번은 오답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1번이 나를 유혹했다. 로드를 하면 뭔가 다른 현실이 나타나는 걸까? 로드를 한다는 선택지가 나오는 건 그 이유밖에 없어보였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는 선택.1을 터치했다.

그러자 자동으로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시야가 밝혀졌을 때는 침대 위였다. 세이브 시점으로 돌아왔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무 소리도 녹음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시도했었다.

나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로드를 한다는 선택지가 나온 건 빨리 맨션으로 그녀를 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되었다. 거리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를 닦달해서 요금을 더 얹어주고 총알같이 맨션 앞으로 도착했다. 바로 복도를 뛰어가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은 잠겨있었다.

[만능키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창을 터치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었다. 화장실로 가보니 이수연은 이미 죽어 있었다. 엄청난 허탈감이 몰려왔다. 결국 로드는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혹시라도 로드전과 달라진 게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탁자위의 그림과, 반지, 액세서리들이 똑같이 없어져 있었다. 역시나 원래 예상대로 세이브시점에는 이미 그녀는 죽어있었다. 선택지에 당한건가? 로드 때문에 괜히 남은시간만 까먹게 되었다. 쉽게 말해 함정이라는 거지.

마음은 쓰렸지만 일단 상황이나 정리해보기로 했다.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왜 그녀는 아무소리조차 못 내고 죽은 거냐는 거였다. 나처럼 만능키를 가지지 않은 이상 몰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고, 문을 강제로 열든, 방문자를 가장해서 문을 열게 만들든, 뭔가 그녀와 범인과의 접점이 발생해서 목소리가 발생해야 정상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현관문을 살펴보다가 뭔가 깨달았다. 원룸인 이집은 도어록이 아니었다. 즉, 저절로 문이 잠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분명 나는 이어폰을 설치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 만능키를 따고 들어왔다가 바로 도망쳤다. 그 말은 문은 잠기지 않고 열려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집에 돌아오면서 문을 잠갔던 그녀는 당연히 문단속에 다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고, 범인은 문을 강제로 열 필요 없이 손쉽게 침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후에 불시에 기습해서 비명도 못 지르게 입을 막고, 바로 살해해 버렸다면? 순식간에 비명도 못 지르게 사람을 기절시키는 방법은 존재한다. 클로로포름이다. 손수건에 묻혀서 입에 대기만 해도 정신을 잃게 만드는 마취약이다. 흔하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단골소재였다.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면 그녀가 아무소리도 못 내고 죽은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문을 열어둬서 죽었다는 거다. 죄책감이 조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그녀를 죽이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문이 잠겨있어도 어떻게든 침입이야 했겠지만,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이 망할 놈의 범인들. 히든미션일 가능성이 높은 이놈들을 그냥 다 날려 버리고 싶은 투지가 생겼다. 살인에 가담하게 만들다니 열 받는다.

그리고 내가 왔을 때 문이 잠겨있던 건, 방을 뒤져서 열쇠를 찾아내 잠그고 도망쳤기 때문이겠지. 문이 잠겨 있어야 조금이라도 시체의 발견이 늦어질 테니 말이다. 조금씩 상황이 분석이 되어가는 찰나에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리리리”

핸드폰을 확인하니 비통지번호였다. 맨션에 오는 순서는 바뀌었지만, 서예리의 전화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효과가 없는 건 당연했다. 인상을 쓰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당장 나와”

“뭐? 그게 무슨...”

“나, 두 번 말하기 싫어”

로드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걸 무시하면 큰 화가 닥친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만나고 다시 맨션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돌아와서 이곳으로 오게 될 누나를 만나면 아마도 똑같은 선택지가 뜰 것이다. 1번 선택지의 로드는 아무의미가 없었으니, 다른 선택지를 선택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아까는 발을 빼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범인 놈들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철저하게 상대해 주겠어. 히든미션아 기다려라.

나는 다시 맨션을 뛰어나와서 택시에 올라탔다. 그런데 세이브시점에 이미 죽어있었다면 범인은 대체 언제 침입한 거지? 갑자기 뭔가 소름끼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의 가랑이에 물건을 비비고 있을 때 밖에서 문을 건드리는 인기척이 났었다. 나는 당연히 유부녀 때처럼 강제력이 발생해서 경찰이 출동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하하”

나는 뜬금없이 웃기 시작했다. 택시기사가 그런 나를 백미러 뒤로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웃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을 건드린 건 경찰이 아니고, 그녀를 죽인 범인이었던 것이다.

로드를 하지 않고 버텼으면 범인을 벌써 잡고 히든미션을 클리어 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역공을 당해서 나도 위험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녀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수면스프레이의 행위제한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범인이 들어왔으면 어차피 싸는 건 무리였다. 결국 경찰대신 범인이 강제력을 대신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유사성행위는 불가능 하다는 거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전화가 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자 서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5분 줄게”

당연히 아까와 똑같았다. 하지만, 이미 택시를 잡아탄 지금은, 정류장 까지는 5분까지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3분후, 택시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 순간만큼은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버리고 의기양양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자 서예리가 그전과 같이 벤치에 앉아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대사는 달랐다.

“아저씨, 아슬아슬했어. 목숨은 건졌네?”

========== 작품 후기 ==========

이따 12:00 땡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고백하자면, 한편을 둘로 쪼갰습니다.

12시에 올릴려고요 음하하하핫

레벨.5 문양의 비밀[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