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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셔도 본편에 지장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본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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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오늘은 같이 밥 먹어요”
5살짜리 여자아이가 한복을 차려입은 노인에게 말했다. 백발의 머리와 날카로운 안광. 60이 넘는 나이에도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그런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때를 쓰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예리야, 아직도 그렇게 때를 쓰는 게냐? 너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우리집안을 짊어져야 할 녀석이...언제까지고 그렇게 철없이 굴 생각이냐?”
노인은 아이의 조그만 손을 떨쳐버리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비서와 함께 정원을 떠났다. 매몰차게 거절당한 그녀는 멍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보모에게 말했다.
“그..그럼, 아줌마가 나랑 같이 밥먹어주면..”
“저 같은 게 어떻게 감히 아가씨와...,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빨리 점심을 드셔야 합니다. 오후부터 바로 수업이 있어요, 이러다 또 주인님께 불호령을 들으..”
“아..알았어.”
아이는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안으로 걸어갔다. 쓸데없이 큰 이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건 너무나도 지루했다. 바쁜 할아버지는 도통 상대해 주지 않는다. 보모나, 경호원, 그리고 집사들은 모두 자신을 어려워 할 뿐 대화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뭘 말해도 똑같은 대답. 그들은 그녀에게 전봇대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다시 할아버지에게 가서 똑같은 말을 했다가, 하루 동안 방에 갇혀서 벽만 보면서 반성하라는 벌이 내려졌다. 화를 내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그녀는 그날 이후로 절대로 할아버지에게 애정을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어두운 방안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결국 혼자 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13년의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닐 필요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할아버지는 세상의 보는 눈을 신경 썼다, 가문을 짊어질 애가 대학도 안 나와서는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에 들어는 왔지만 딱히 학교에서 배울 건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나이가 더 들어버린 할아버지 대신 정재계의 일을 처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억지로 학교에 다니게 한 주제에, 일은 또 엄청나게 떠맡겼다. 자신의 냉정한 수완을 본 할아버지가 만족하면 웃었던 그 날 이후로 말이다. 그녀는 그 생각을 하자 짜증이 치솟았다.
자신은 그저 당신이 이룬 걸 어떻게든 세상에 남기고 싶은 아집에 찬 도구 일 뿐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잡쳐버렸다. 물론 유일한 피붙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걸 넘겨주긴 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이라는, 어떤 이들은 너무나도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을 말이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는 건 10살 정도 때 깨달았다. 자기를 어려워하는 어른들을 골려주는 건 재미있었다. 물론 금방 지루해 졌지만.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 갔을때부터 자산을 움직였고, 원하는 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명석함과, 돈의 흐름을 읽는 타고난 끼는 오히려 집안의 자산을 불려버렸다. 선거 때가 되면 오히려 할아버지보다 자기에게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지지를 부탁했다. 그들은 약점을 철저하게 잡혀서 길들여지고 조련되어진 말 잘 듣는 정치가이자, 투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더 옭아맨다는 걸 알면서도 눈앞의 권력을 놓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에게 키워진 정치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수많은 대기업의 숨겨진 대주주이자, 이 나라 정계의 수많은 약점을 움켜잡은 거물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부터 구축한 용병부대는, 60~70년대의 조폭경제를 장악했고, 뒷세계마저 움켜쥐고 있었다. 권력으로 이룩한 비합법적인 이 폭력은, 그대로 지금 자신의 경호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기반은 조금씩 그녀의 것이 되고 있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이미 그녀에게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 고등학생에서도 그녀는 아가씨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따라 잡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앞 자석에 있는 남학생의 등을 샤프로 꾹꾹 눌렀다.
“왜...왜 그러세요..?”
동급생임에도 그녀는 존댓말로 불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언제나 듣는 말투라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속삭이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대사는 매우 섬뜩했다.
“나. 지루해, 너, 창문에서 뛰어내려보면 안 돼? 그럼 재밌을 것 같아”
“네..네??”
남학생은 그녀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지난주 그녀에게 거역했던 옆 반의 학생이 아직까지 학교에 못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그렇지만, 여긴 4층인데..”
“그래서 싫어?”
남학생은 결국 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싫다고 하지도 못해서 울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그녀가 무서웠는데 이런 식으로 사형선고를 내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울어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 결정해, 뛰어내릴 거야 말 거야.”
“최...최소한 주...죽지 않는 걸 시..시키시면...안 될까요..흑흑..”
그녀는 남자가 질질 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왠지 더 이야기 하는 것도 재미없어졌다.
“너 내일부터 전학 가. 내 눈에 한번만 더 띄면, 나 널 죽여 버릴지도 몰라.”
“히...익...”
남학생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도, 재벌2세였다. 부모님께 절대로 비위를 상하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고 또 받았는데 이런 식으로 찍힐 줄은 몰랐다. 앞날이 깜깜해졌다. 그녀는 그런 그를 뒤로하고 책상에서 일어섰다. 점심시간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추종자들, 동급생인 유력 집안의 여자들이 우르르 그녀를 뒤따랐다. 이 학교는 물론 재벌가에서 많이 다니기는 하지만, 평범한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반반정도의 비율을 가진 사립학교다. 공부를 잘하면 들어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추종자들은 물론, 갑부 집 딸들이었다.
“아..아가씨, 저놈이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당장 본때를..”
“시끄러워. 니들도 재미없어.”
그녀는 따라오지 말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교정으로가 앉았다. 그러자 사이좋게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다. 뭐 항상 있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친구란 게 생길 수 없다는 건 이미 초등학교 때 깨달았다. 초등학교 때는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집안이 망해서, 그 아이가 자기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던 그날 그녀는 다시는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그녀에게 감히 친구를 하자며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지루해..”
고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같이 밥 먹을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예 요즘은 굶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식사를 챙겨준다며 학교시설을 지들 맘대로 이용하질 않나, 너무 짜증나게 굴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가졌는데 왜 밥 한 끼 같이 먹을 사람 하나 없는 걸까?
앉아있는 것도 심심해져서 교정뒤쪽으로 이동해 보았다. 그쪽은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의 구역이었다. 이런 명문고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들은 모여서, 요즘 한참 괴롭히기 시작한 남학생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다가가자, 주춤해서 물러났다.
“그거 맛있어? 나 피워볼래”
갑자기 그들이 꼬나문 담배 맛이 궁금해졌다.
“네..? 다..담배를요?”
괴롭히던 남학생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가 주머니에 급하게 담배를 꺼내서 그녀에게 넘겼다. 그녀는 그걸 입에 물면서 말했다.
“불 줘”
“네..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그녀는 담배를 들이마셨다가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코..콜록...콜록...”
뭐 이딴 게 다 있어. 짜증이 나서 그대로 불이 붙은 담배를 그들이 괴롭히던 아이의 팔에 지져서 꺼버렸다.
“아아악...”
당연히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너무 지루한 반응. 뻔 한 비명. 지겨울 뿐이었다. 꺼버린 담배를 던져버렸다. 그 모습을 다른 학생들은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리 괴롭히던 놈이지만, 적어도 사람을 재떨이 취급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대접은 해줬다고 생각했다.
“저기, 있지.”
“네..네?”
그런 그녀에게 더욱 공포를 느끼던 학생들은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나 강간해줄래?”
“네...네에에?”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나오자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뒷걸음질 쳤다.
“그래, 니들이 그렇지 뭐. 예상한 반응. 재미없는 놈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학교 건물로 돌아왔다. 남학생들은 얼이 빠져서 그걸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학교아래를 내려 보았다. 아직도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은 학교 안은 여기저기 친구들끼리 모여서 떠드는 학생들로 시끄러웠다.
이 학교안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래 마치 왕처럼. 그러나 왜 이렇게 모든 게 무미건조하고 지루한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때 마음먹었다. 대학을 가더라도, 나가지 않겠다고. 대리 출석시키고, 대리졸업장을 따면 된다. 이렇게 지루한 곳은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싶었다.
물론 고등학교도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변함없는 지루함 속에 그녀는 졸업을 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낮의 세계에 흥미를 잃었다. 친해 보이는 사람들 꼴을 보기 싫었다. 재미없다. 차라리 밤거리가 편한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밤거리는 왠지 자신과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이나, 사장들, 회장들과 수많은 비리들을 꾸며내고 나면 마음이 아무 이유 없이 짜증나서 밤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옷을 골라 입는 것도 귀찮고 꾸미는 것도 귀찮았다. 잘보일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꾀죄죄한 머리와, 막 입는 후드티. 밤거리의 유니폼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런 복장으로 홀로 걷는 게 일과였다. 물론 주위에는 경호원들이 곳곳에 숨어있었지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예 그들을 전봇대 취급해 왔기 때문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날은 특이하게도 중년의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가출한 여자라고 여긴 것이었다.
“아저씨랑 한 번 할까? 돈이 필요한 거 같은데, 섭섭지 않게 줄 테니까~ 어때”
아무렇지도 않게 매춘을 권유했다.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그 남자를 따라서 모텔로 들어왔다.
“샤워할래?”
“아니”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추잡한 육체가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불끈 솟은 물건이 살짝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자의 물건을 보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딱히 관심도 없었으나, 왠지 재미있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여자를 사서, 물건을 세우서 흔들어대고, 욕망의 덩어리 같은 그 모습이 왠지 할아버지와 닮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욕망 그 자체 같은 사람이니까.
옷을 다 벗었는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에 처음이 아니라고 생각한 중년의 남자는 다짜고짜 다가와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왠지 이대로 처녀를 빼앗기는 것도 재밌어 보였다.
“후후후후”
조금 즐거워 졌다. 이런 남자에게 처녀를 뺏겼다는 사실을 알면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갔다. 그건 너무나 재밌는 얼굴이었다. 남자가 그녀의 후드티를 벗겨내자 브래지어에 쌓인 가슴이 나타났다. 하지만 남자는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너..그거...”
“응?”
남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니, 팔뚝에 있는 화상자국이었다. 그걸 본 남자의 물건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이건, 그녀가 어릴 때, 팔을 한 번 지져보면 할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할까 싶어서 스스로 자해한 상처였다. 징그럽게 일그러진 피부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일부러 흉터를 지우지 않았다.
“이..년이.. 이런 징그러운 걸 보고, 누가 섹스를 해? 에이 기분만 더러워졌네.”
그러면서 남자는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황당해졌다. 고작 흉터 때문에 욕망이 사그러드는거야? 정말 사람이란 제멋대로인 생물이다. 차라리 이 남자가 자신을 취했으면, 그래서 몸과 몸이 부딪쳐 살아있다는 실감을 안겨주었으면 그냥 보내줬을 지도 몰랐다. 이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란 생물이 가진 욕망의 더러움을 깨닫기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투덜거리면서 옷을 입는 남자의 이마에 가져가 대고,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당신, 가정은 있어?”
“뭐? 당연한 거 아냐?”
“그래?...후후후.”
그녀는 그렇게 싱긋 웃으면서 모텔방을 나와 버렸다. 물론 그 남자는 살아서 모텔방을 나올 수 없었다. 총모양은 일종의 신호다. 총 모양을 하면 준비를 하라는 것. 그리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건, 방아쇠를 당기라는 암묵적 표시다.
이 신호를 사용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살인을 즐기지는 않는다. 다만 정말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면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루해..”
이제는 입버릇이 되어버린 대사를 내뱉으며 그녀는 모텔에서 나왔다. 그 후로 그녀는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밤거리에 나가 자신과 자려는 사람을 찾았다. 어떨 때는 직접 권하기 까지 했다. 그럴수록 뭔가 덜 떨어지는 여자를 연기했다. 자신을 불쌍하게 취급하는 그 모습이 조금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흉터를 좀 더 만들었다. 물론 어릴 때처럼 자해가 아닌, 그린 흉터일 뿐이었지만.
남자들이 흉터를 볼 때마다 나오는 반응이 재밌었다. 언제나 세가지중의 하나의 반응을 하는 남자들에게 짜증을 해소하면 조금은 지루함이 사라졌다. 물론 그러고 나면, 그 이후는 엄청난 공허함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밀려오면 그녀는 버릇처럼 이 짓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소속됐다고 할 수도 있는 정치가가, 한 여자를 대려 왔다.
“의원님, 그 여자는 누구에요?”
큰 평수의 응접실에 앉아서, 손님을 맞이한 그녀는 처음 보는 여자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최근 뒤를 봐주는 여자인데..이 여자가 재밌는 약을 만들어서, 난교파티라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허락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난교파티?”
최근 남자의 욕망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진 그녀였기에 약간 흥미 있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걸 눈치 챈 여자가 무릎을 꿇은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아가씨.. 전..이지혜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소개를 드리자면..”
“그건 별로 재미없어, 약에 대해서나 말해봐”
여자가 자기를 소개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바로 말을 막아서 버렸다. 여자는 허둥지둥 하면서 주제를 바꿔야 했다.
“그..그게 이 약은, 남자들이 이성을 잃고 욕망만을 탐하게 만듭니다. 난교파티라는 명목 하에 기부금도 모을 수 있고, 그들의 약점도 쥘 수 있고요...한 번 약에 빠져들면 계속해서 찾을 수밖에 없거든요”
“정말? 흐음..나, 그거 먹어봐도 돼?”
“아..아가씨?”
정치가가 놀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가는 난리가 날것이다. 정치가는 그녀가 가끔가다 보이는 엉뚱한 호기심에는 정말로 적응이 되지가 앉았다. 서둘러서 옆의 여자에게 눈치를 주었다. 여자는 땀을 흘리면서 급하게 말했다.
“그..그게, 여자한테는 통하지 않습니다. 남성호르몬이 일정비율을 넘어가야 반응을 하게 되어서..”
“나, 이성을 잃는 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고 싶었는데, 재미없네.”
“그..그게..”
하지만 남자가 이성을 잃는 모습도 흥미가 생겼다. 한 번쯤은 봐두고 싶었다. 흉터만 봐도 욕망을 잃어버리는 남자들이 이성을 잃고 밤새 여자를 탐하는 세계를.
“뭐 좋아. 마음대로 해. ”
“네..네...가..감사합니다.”
여자는 감히 그녀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손짓을 했다. 이만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여자가 나가자, 그녀는 십년감수했다는 듯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정치가에게 말했다.
“의원님, 저 여자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네?”
정치가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그녀의 말을 되물었다. 하지만 금방 입을 다물었다.
“나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하..하지만..”
“그냥, 별로 좋은 냄새가 안나요. 나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맞는 거 알잖아요. 저 여자는 별로에요, 아마 다른 쪽의 정치가에게도 손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지, 다리를 벌리고 있는 건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교파티는 흥미 있었지만, 아까 그 여자는 재미가 전혀 없었다. 판에 박힌 반응, 판에 박힌 야심. 너무 뻔히 보였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치가를 뒤로하고 응접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몇 달 후 어느 날, 그녀는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말다툼을 벌였다. 솔직히 대든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욱하고 말았다. 물론 할아버지가 나를 아끼긴 했다. 그래 물질적으로는 말이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애정을 준적은 없었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나에게 애정이란 걸 보여준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자 불쾌한 감정이 샘솟아서 거리로 나와 버렸다. 지루하기 이전에 너무나 화가 났다. 도저히 누군가에게 이걸 풀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 이나 했던 것처럼 남자를 끌어내어 시험하고, 죽여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최근에는 이 짓도 왠지 허무해져서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끌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차를 달려서 이름도 모르는 거리에 멈추게 했다. 그리고 거리로 나왔다. 왠지 일일이 돌아다니기도 귀찮아서 근처에 보이는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은 항상 사람을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기다리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자들에게 눈길을 보내는 남자들이 태반이었다. 항상 그렇듯 오늘도 그런 남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턱을 괴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와 같이 지루했다.
========== 작품 후기 ==========
이게 끝입니다. 이 뒷부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잖아요 ㅎ
본편에서 서예리의 행동들을 너무 뜬금없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이해를 돕고자 작성해 봤습니다.이거 보고 본편에 서예리 나온 부분 보시면
느낌이 다르실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다음은 본편~!! 외전은 이걸로 끝인데,
혹시라도 만남부분도 원하는 분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써드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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