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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보는 A라는 난이도에 경악하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절하면 이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었다. 무언가 이벤트의 발생 찬스일 수도 있다. 함정과 이벤트 둘 중에 뭐가 정답일까? 둘 다 아니라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선택지가 발생하기 딱 좋은 상황 같은데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게임 특성상 뭔가 분기점이라면 선택지가 발생하는 게 맞지 않나? 예를 들어 선택.1 따라가서 섹스를 한다. 선택.2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건 뭘 의미하는 거냐고!!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안전하게 살자는 취지와는 맞지 않지만 무시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있어보였다.
먼저 접근하는 여자.
심지어 섹스를 제의하는 여자.
그럼에도 여자의 랭크는 무려 A
나오지 않는 선택지.
나열하고 보니 더욱더 이상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용하게 여자에게 대답했다.
“어, 얼만데..?”
최악의 대답이었다. 말을 좀 골랐어야 했다. 긴장이 되서 그냥 튀어 나와 버렸다. 수많은 쿨 한 대답을 뒤로하고 이런 대사는 너무 치졸해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내 말에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그저 슬며시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두 개면 얼마를 의미하는 걸까? 또 내적갈등에 빠져버렸다. 이런 경험이 전혀 없으니 시세를 알 수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식적으로 2만원은 아닐 것 같았다.
“20만원?”
내 소심한 대답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싼 건지 비싼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지불 못 할 돈은 아니었다. 아이템에 비하면 너무 싼 거지.
“그래 가자 그럼”
“감사합니다.”
내가 승낙하자 그녀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몸을 팔려고 하면서 왜 이렇게 착해 보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머뭇머뭇 거리더니 안도의 한숨은 또 뭐고? 의문은 의문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다가 정신착란이 올 것 같아서 그냥 생각을 관둬 버렸다.
“자주 가는 모텔이 있으니 따라 오실래요?”
“으, 응”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세이브 포인트는 차유린의 집 앞이었다. 딱히 다시 세이브를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눈앞에 여자와 아예 만나기전으로 로드하는 게 나아보여서 오히려 지금은 세이브를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로드하기로 마음먹고 한참 뒤따라 걸었더니 어느덧 모텔 촌에 도착해 있었다. 유흥가가 집중된 장소로 주변에 나이트와 술집이 천지였다. 여자는 망설임 없이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모텔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자 그녀는 프론트 옆에 멈춰 섰다.
“계산 하셔야 되요. 자는 요금하고는 별도라서...”
내가 들어오자 뭔가 미안한 얼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숙박명부를 대충 기입하고 돈을 내었다. 주는 열쇠를 받아서 그녀 앞으로 돌아갔더니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열쇠 주실래요?”
당연한 듯이 요구했기에 나는 얼떨결에 열쇠를 넘겼다. 여자는 그걸 받아들고 층수를 확인하더니 계단을 올라갔다. 당연히 나는 따라갔다. 방에 들어오자 침대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화장실에는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섹스를 목적으로 하는 이런 모텔은 처음 와 보는 것이라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여자가 말을 걸었다.
“뭐하세요?”
“아, 아니..”
나는 꼴사납게 말을 더듬으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서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침대에 걸터앉더니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옆으로 오라는 소리 같았기에 나는 그 말에 따라 그녀 옆에 걸터앉았다. 나도 나지만 그녀도 표정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런 얼굴로 영업하면 손님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럼 할까요?”
정류장에서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화장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전혀 꾸미지도 않아서 오히려 매춘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얼굴도 계속 안 좋아 보였고. 뭔가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이벤트?
하지만 내 마음속의 고민을 모르는 그녀는 다짜고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으니 바로 브래지어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딴생각만 하느라 몸매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걸 깨닫고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가슴은 컸다. 후드티를 벗을 때 출렁거리는 걸 확인했다. 출렁거릴 정도면 우선 C컵은 먹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쓸데없이 인터넷에서 익힌 잡 지식을 활용해서 몸매를 확인하다가 나는 그녀의 팔에 화상자국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내 시선을 알아챈 그녀가 급하게 그 화상자국을 가리려고 하였다. 몸을 돌리다가 등을 내보였는데 등에는 자잘한 흉터가 상당히 많았다. 뭔가에 맞아서 생긴 상처로 인한 흉터로 보였다. 등까지 보인 걸 알아챈 그녀는 갑자기 몸을 감싸면서 말했다.
“봐..봤어요?”
뭘? 흉터를? 보이기 싫으면 불을 끄고 옷을 벗던가. 맹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혐오스러운가요?”
“응?”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여자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더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녀는 미간을 좁히면서 입을 열었다.
“반값에 해드릴게요. 이런 흉터가 있어서 싫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서비스는 잘해요. 다, 단골도 많으니까요.”
자주 당하는 일인지 갑자기 할인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혐오스럽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내 대답은 노였다. 사실 나도 그녀정도는 아니지만 흉터는 있다. 학창시절에서 맞아서 생긴 거지. 아픈 기억이 떠오르려고 했기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여자는 그게 거절의 표시라고 여겼는지 주섬주섬 벗었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 그게, 혐오스럽지 않은데?”
옷을 입던 그녀는 내 대답이 매우 뜻밖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네..?”
“화상이나 흉터자국 같은 게 혐오스럽지 않다고. 고작 다친 상처잖아? 왜 혐오스러운 건데?”
“그게, 지금까지 다른 아저씨들은 모두 그랬는걸요?”
내 대답에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는 대답했다. 그러다가 다시 옷을 벗으려고 동작을 취했다. 내 말이 결국에는 하자는 이야기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흉터랑은 아무런 관계없이 처음부터 섹스를 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뭔가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을까 따라와 본 것뿐이었다. 무려 랭크A였다. 이렇게 손쉽게 섹스를 했다가 무슨 후환이 들이닥칠지 무서웠다. 그리고 여전히 섹스의 갈림길에서 나올법한 선택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점이 너무 수상했다. 제대로 함정의 냄새였다. 그러니 안 한다.
“됐어..옷은 안 벗어도 돼”
“네?”
그녀는 내가 손목을 잡으면서 행동을 막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서요? 마음이 또 바뀐 건가요?”
“그게 아니고, 그래 일단 이거”
나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던 소지금 중에 5만원지폐 4장을 꺼내서 그녀의 손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설명했다.
“섹스를 할 마음은 없어. 아 오해하지 마, 흉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니까. 오히려 몸매는 좋다고 생각해. 가슴도 크고..”
“아저씨...혹시 불능이에요?”
그녀는 살짝 눈썹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그 표정이 좀 귀여웠다. 하지만 질문내용은 어이가 없었으므로 오해를 풀기 위해 바로 대답을 해줬다.
“아니, 성기능은 멀쩡한데? 오히려 너무 성욕이 많아서 문제지”
“그럼 왜 돈만 주는 거죠?”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돈을 나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몸 파는 여자라고 동정하는 거면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
분명히 흉터를 보였다고 반값에 해주겠다고 하면서 돈이 필요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였다. 그런데 동정하는 거면 받지 않겠다니. 자존심이 강한 걸까?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신기한 여자였다. 새삼 몇 백의 돈에 살인도 서슴지 않던 그 유부녀가 오버랩 되었다.
“그런 거 아냐. 아, 그러면 이런 건 어때?”
“어떤....거요?”
뭐 곤란한 부탁을 하려나 보다 하고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런 예상을 깨주기 위해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지금부터 나가서 밥이나 같이 먹어줘. 누군가랑 같이 밥 먹은 지가 오래 돼서 사람의 정이 어떤 건지 모르겠어.”
자존심이든 뭐든, 돈이 필요하면서도 정당하지 않은 돈을 받지 않으려는 모습에 그럼 구실을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하고는 제안했다. 물론 몇 년간 누구와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마냥 구실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대화도 더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다짜고짜 방에서 나와 1층으로 향했다. 입구 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여자가 곧바로 내려왔다.
“대답도 안 듣고 막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돈 받은 거랑 다름없으니까, 돈값은 해줘야지. 식당으로 갑시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모텔에서 나오자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뒤를 따라왔다. 아까랑은 반대의 상황이었다. 모텔로 향하는 그녀를 내가 뒤따랐던 상황과 말이다. 유흥가라서 식당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난감했다. 여자랑 단둘이 밥을 먹어본 역사가 없었다. 어떤 곳에 가야할지는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뭐..먹고 싶은 거 있어?”
“네?? 음..그럼 저기 설렁탕이라도 먹어요.”
그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설렁탕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여자를 사겨본 저기 없는 나라도 데이트 하는데 설렁탕은 좀 아니라고 느껴졌다. 머릿속은 레스토랑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이 떠오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딱히 다른 곳을 고를만한 지식도 없었고 딱히 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소박한 그녀의 제안에 그냥 따르기로 결정했다. 앞장서 걸어서 식당에 들어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정말 안돌려줘도 되요? 밥같이 먹어주고 20만원을 받다니,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거지, 돈 이야기 좀 그만 하면 안 될까?”
내말에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졌다는 듯이 더 이상 내가 넘긴 돈을 꺼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했다.
“아저씨 같은 사람 처음이에요. 내 흉터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고, 거기에 섹스도 안하고 돈까지 주더니, 밥을 같이 먹어달라니. 이상해요”
“아니 그러니까, 나 아저씨 아니라니까? 고작 25살이라고?”
내가 설렁탕 2개를 주문하면서 말하자 그녀는 놀랍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네에? 25살이요?? 에에에엣?”
“왜 또?”
“그치만, 30대로 보이는데..”
막말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물을 따르던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사방에 물을 튀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차 싶은 얼굴로 말을 정정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그녀에 대한 내 호감도가 있다면 지금으로 ?1000점이다. 이년아.
“아, 농담이에요. 그래도 저랑 5살 차이나 나니까 아저씨 맞네요 뭐...”
끝까지 그녀는 오빠라든지 또는 오빠라든지 아니면 오빠라고 부를 생각은 없는지 아저씨를 밀어붙였다. 나는 그냥 포기해버리고는 딱히 할 말도 생각 안 나서 이름을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아는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름이 뭐야?”
“이름요?”
알려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역시 여자란 이름하나도 알아내기 힘든 생물인가. 새삼 스카우터의 능력을 찬양하면서 나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서예리”
“아, 그래? 나는 김영준인데..”
“안 물어봤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건 죄송합니다..”
이름을 말해 줘서 조금은 쪼그라드는 마음이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다시금 확인사살을 해주는 그녀에게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내 표정이 너무 티가 났는지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정정을 해주었다.
“후후, 이번에는 진짜로 농담이에요.”
그러고 있으려니 시킨 음식이 도착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말았다. 그녀는 나보다 빠른 속도로 탕과 밥을 합체시키고 깍두기 까지 썰어서 이미 흡입을 시작했다. 배가 고팠나?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걸 눈치 챘는지 그녀는 겨우 먹던 숟가락을 입에서 때고 말했다.
“안 드세요...?”
“아니, 먹어야지”
내가 그러면서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다시 또 빠르게 음식을 흡입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금세 한 그릇을 먹어치운 그녀는 종업원을 부르더니 말했다. 나는 그 기세에 설마 한 그릇 더 시키려는 줄 알았으나 예상은 반만 적중했다.
“저기... 1인분 포장 되나요?”
“네, 저희는 포장도 해드려요, 1인분이면 될까요?”
“네에, 얼마죠?”
“포장도 가격은 똑 같아요”
“그럼 해주세요.”
난데없이 포장을 주문 한 것이다.
“부족하면 여기서 더 시키지, 뭐 하러 포장을 해?”
“아니에요. 줄 사람이 있어서요. 그리고 제가 먹은 건 제가 낼 테니까, 물론 포장도요.”
“으응? 그건 아니지. 돈은 됐어. 데리고 온 내가 내야지. 돈 이야기 하지 말자니까”
“그, 그래도..”
그녀는 뭔가 아니라는 듯했으나 강경한 내 기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어색해지고 말았기에 주문한 포장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까?”
“네? 네. 잘 먹었습니다..”
그녀가 또 끼어들기 전에 나는 재빠르게 3인분의 설렁탕 24000원을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다. 설렁탕이 포장된 봉투를 손에 든 그녀가 나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의 표시인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여기서 그만 헤어지자. 혹시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안녕”
내가 손을 흔들며 마지막은 쿨 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걷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글거리는 대사여서 후회했지만. 그녀는 그런 나에게 다시 고개를 꾸벅이더니 말했다.
“정말 그냥 가시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해드릴 수...”
나는 대답대신 내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서 쉿 이라는 표현을 해주었다.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결국 입을 닫고 말았다. 그러곤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한 나를 그녀는 한참동안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조금은 멋있어 보였으려나? 헛된 기대감을 안고 얼마정도 걸으니 그녀의 모습도 음식점도 보이지 않았다.
계산해 보니 모텔비 포함 294000원을 소비했다. 신기하게도 딱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자가 그렇게 밥을 허겁지겁 먹는 건 처음 봤다. 여자랑 밥 먹는 건 처음이었지만 TV나 다른 주위여자들을 봐도 그녀 같은 모습으로 먹지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먹어주니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결국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벤트도 아니었고 함정도 아니었다. 랭크A와 뭔가 접점을 만들지도 못했다. 아무런 기약 없이 쿨 하게 헤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는 별다른 일 없이 집에 도착했다. 밤이 되어버린 세계. 로드라도 하면 금방 낮으로 바뀌어 버리니 밤이라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계속 아까일이 떠올랐다. 이상한 여자였지.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공략도 불가능 한 여자를 떠올려 봐야 시간낭비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는 차유린에 대해 얻어낸 정보를 정리했다.
고교생숫자 3명 모두 남자.
뭔가를 주고받음.... 뭘 주고받았나?
혹시 공략에 관한 포인트?
받은 건 현금뭉치. 상당한 액수. 무슨 거래?
발견된 일기장. 학창시절 괴롭힘.
겁먹고 있는 얼굴이 찍힌 사진.
지갑에서 발견된 수많은 명함...그중에 파티가입 안내 명함.
적고 보니 별건 없었다. 공략정보에도 나왔듯이 난교파티부터 접근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지갑을 꺼내서 명함들을 보았다.
OO건설
대표이사 박철강
OO전자
전무 이전자
OO엔터테인
대표 김태인
다른 명함들은 말 그대로 명함들이었다. 고객인가? 허허. 결국 나에게 중요한 명함은 하나인 것 같았다.
즐거운 우리 파티
가입문의 01011112222
바로 이거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다. 번호를 눌러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더니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상으로 와서 처음으로 터진 전화통화였다. 역시 원래 알던 지인과는 연락이 안 되지만 게임 안에서 알게 된 번호로는 통화가 가능했다.
“여보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혹시 차유린 본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명함을 받게 되서 전화 드렸는데, 파티 가입문의 좀 드리려고요”
“실례지만 누구의 추천을 받으셨죠?, 저희 파티는 추천 없이는 가입이 어렵습니다.”
헐. 복잡하구만. 신고를 피하기 위해서인가?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침대에 뿌려놓은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아, 김태인님께 명함을 받았습니다.”
들킬 땐 들키더라도 일단 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명함의 아무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1분정도 후에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담당자 이지혜라고 해요. 파티면접을 보러 나오시겠어요? 받은 명함도 꼭 갖고 나오세요.”
여자는 나올 장소를 알려주더니 전화를 끊었다. 이지혜라. 차유린은 아니었다. 난교파티라는 모임은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공략에 한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침대에 누웠다. 오전까지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상태창을 한번 켜보았다.
김영준
나이: 25세
직업: 백수
레벨: 2
체력: 55
정력: 60
매력: 12
크기: 10
지속력 : 5
지력: 70
소지금: 95,270,307원
성공횟수: 1
경험치 : 75/204
소지금이 확 줄어있었다. 아무래도 고가의 아이템을 많이 구입했으니 당연했다. 만능키에 600만원을 날리기도 했고. 소지금 빼고는 당연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기에 나는 창을 치우고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 난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피곤했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레벨.2 진실과 거짓[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