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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 밤을 새고 자면 항상 개운하지를 못하다.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서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시야에는 여전히 새끼손톱보다 조그마한 윈도우폴더 같은 창이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자고나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설정 같은 건 없나보다. 냉장고를 열어 대충 배를 채웠다.
[남은시간 : 8722시간 ]
[지난시간 : 37시간 ]
[남은 시간 내 완전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당신의 원래 몸은 사망합니다. ]
남은시간을 확인해보니 대략 8시간정도 잔 것 같다. 시계를 보는 건 어느 순간부터 관둬 버렸다. 어차피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개념이 희미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 세상은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사라진 세상이다. 시간이나 날짜를 따지는 건 무의미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피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벗은 옷을 빨래바구니에 던지곤 집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사람이 많은 거리로 나가볼 요량이었다. 이 게임에 끌려온 후 제일 멀리 간 곳은 고작 5분 거리의 편의점이었다. 마을버스에 올라서 근방에서 제일 가까운 번화가로 이동했다. 세상은 원래의 현실과 완전히 마찬가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필 퇴근시간이랑 겹쳤는지 버스가 갈수록 혼잡해졌다. 사람들을 헤치고 간신히 목적지에 내렸다.
광장의 대형전광판에는 아이돌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스카우터를 한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실물이 아닌 영상에도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소지아이템]
[Lv.1 스카우터]
[Lv.2 스카우터]
[만능키]
[만능키]
[수면스프레이]
[카메라]
[변신약]
[망원경]
그런데 소지아이템창이 너무 복잡했다. 저번에 식칼 들고 난리치던 여자를 상대할 때처럼 갑자기 아이템을 사용해야 할 때 이렇게 복잡하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단축키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이상은 필요 없는 건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600만원이나 주고 산 만능키를 폐기했다. 어차피 사용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이미 강화를 마친 만능키가 있다. 그리고 Lv.1 스카우터도 폐기했다.
[소지아이템]
[Lv.2 스카우터]
[만능키]
[수면스프레이]
[카메라]
[변신약]
[망원경]
두 개가 없어졌을 뿐인데 나름 간소해졌다. 지금이야 아직 한눈에 들어오지만 나중에 가면 점점 아이템이 늘어 날 텐데 정말 단축키 같은 건 없는 걸까? 레벨업을 하다 보면 뭔가 특전이 있겠지? 나는 혼자 자문자답 하면서 Lv.2스카우터를 사용했다. 그리고 전광판의 아이돌을 보았다.
이혜나
나이 : 21세
남자친구 : 없음
직업 : 아이돌가수
공략난이도 : B
사는곳 : 현레벨로는 불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현레벨로는 불가
호감도 : 0
영상으로도 스카우터는 작동했다. 호감도야 일면식도 없으니 당연히 0이겠지. 어차피 공략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치는 바람에 몸의 균형을 잠시 잃었다. 부딪친 사람은 상당히 예쁜 여자였다. 나에게 고개를 숙여서 사과하는 얼굴이 여신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다시 스카우터를 사용했다.
박예정
나이 : 24세
남자친구 : 없음
직업 : 대학생
공략난이도 : B
사는곳 : 현레벨로는 불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현레벨로는 불가
호감도 : -100
공략은 불가였다. 그런데 자기가 먼저 부딪쳐놓고 호감도 ?100은 뭐냔 말이야. 매력12라는 수치가 그렇듯 얼굴이 문제지. 젠장. 나는 너무 고추크기에만 능력을 올린 것을 살짝 후회했다.
그나저나 물론 예쁘긴 하지만 아름다움을 따지자면 당연히 전광판에 나오는 아이돌이 훨씬 나은데 공략난이도는 똑같았다. 뭐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니 미적기준만으로 공략난이도가 매겨지지 않는 다는 건 이미 그 살인마 유부녀를 보고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래도 기준을 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싶다고 외친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라서 무의미한 고민을 관두고 역 쪽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공략대상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공략정보가 나오는 여자를 찾기 위해 다짜고짜 모든 여자에게 스카우트를 사용해야할지 고민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그만 라이터를 땅에 떨어뜨려 버렸다. 방금 역에서 나온 여자의 몸매가 상당히 예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은 상당히 청순한 스타일이었다. 청순가련한 외모라고 하면 될까. 가슴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B컵에서 C컵 정도일 것 같았는데 요즘 나오는 브래지어의 성능을 생각하면 아마도 B컵이겠지. 대신에 골반라인이 정말로 죽여줬다. 다른 곳이 몸매가 좋아도 골반이 밋밋하면 정말로 볼품없어 보이는데 이 여자는 항아리 같은 곡선이 아름답게 허벅지로 이어져있었다. 엉덩이도 상당히 커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뒤따랐다. 쫙 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도드라져서 눈을 때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세로줄로 된 주황색 계열의 몸에 딱 붙는 니트티가 몸매를 더욱 강조시켜서 자동으로 흥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급하게 아이템창을 불러내어 스카우터를 사용했다. 제발 공략 가능한 난이도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차유린
나이 : 23세
남자친구 : 다수
직업 : 특정직업 없음.
공략난이도 : F
사는곳 : 현 레벨로는 불가
전화번호 : 현 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현재 문어다리 연애 중. 정식으로 사귀는 남자만 4명이고 관리하는 남자까지 합하면 10명이 넘어간다. 특정 직업이 없는데도 돈이 많아서 사치를 즐긴다. 30평이 넘는 아파트에 혼자 거주하는 중이다. 직접 주최하는 난교파티가 있다. 그쪽에서 부터 접근해보는 것이 공략 포인트.
호감도 : 0
나는 쾌재를 불렀다. 몸매가 너무 맘에 들었는데 운 좋게도 공략 가능한 난이도였다. 근데 문어다리라니, 한 술 더 떠서 난교파티까지. 얼굴 생긴 건 정말 청순했는데 그 얼굴로 이런 설정이라니 너무했다. 얼굴이랑 어울리지 않게 몸이 너무 섹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공략정보도 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난교파티에서 부터 접근해야 하는 거지?
뭐 어디에서부터 접근하는 건 둘째 치고 저번에도 그랬지만 공략정보만으로는 아무것도 진행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일단 집을 알아내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었다. 약간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뭔가를 떨어뜨렸는지 몸을 굽히기 시작했다. 떨어뜨린 걸 주우려는 몸동작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보면 엉덩이만 볼록하게 보이고 굽히는 그 순간 니트가 위로 올라가서 새하얀 살결과 골반라인이 드러났다. 거기에 더해서 청바지위로 팬티로 보이는 끈이 살짝 보였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그녀는 금방 다시 몸을 일으켜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눈 호강을 했더니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동정을 때버렸는데도 이렇게 사소한 걸로 흥분하다니 못 말리는 성욕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계속 따라가려는데 그녀가 또 멈춰 섰다. 나는 놀라서 재빠르게 옆 건물로 들어가는 척 몸을 피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서있었는데 시계를 쳐다보는 것이 누굴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남자라도 만나서 지금부터 데이트라도 하게 되면 낭패였다. 데이트까지 따라다니자니 그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건물에 몸을 숨기고 그녀를 계속 살피고 있는데 껄렁해 보이는 고교생들의 무리가 다가왔다. 모두 남자였다.
그녀는 고교생들과 이야기를 시작 하더니 곧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서 넘겼다. 고교생들도 그녀에게 뭔가 주더니 서둘러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약간 거리가 있어서 뭘 주고받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단 이 상황을 노트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고교생숫자 3명 모두 남자.
뭔가를 주고받음.... 뭘 주고받았나?
혹시 공략에 관한 포인트?
일단 이걸로는 알 수 있는 사실은 없었지만 까먹을 수도 있으니 무조건 닥치는 대로 기록했다. 고교생들의 얼굴도 유심히 봐뒀다. 그렇게 공략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자니 고교생들이 떠나갔고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숨어있던 건물에서 나와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앞으로 밀집된 아파트단지가 나타났다. 그중 한 건물로 그녀는 들어가 버렸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척 할 생각으로 뛰어서 그녀를 쫓았지만 이미 그녀는 아파트 현관을 지나버렸다.
현관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출입이 가능했다. 전에 공략한 유부녀가 살던 허름한 아파트와는 달랐다. 그녀는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놓치면 낭패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만능키를 소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템창을 빠르게 열어서 소지아이템으로 들어갔다.
[만능키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익숙한 창이 나왔고 내가 마구 터치를 하자 곧 현관의 자동문이 시원스럽게 개방되었다. 나는 그 후 재빠르게 세이브창을 불러내서 세이브를 한 후에 태연하게 그녀 옆으로 가서 멈췄다.
“안녕하세요.”
같은 아파트 주민인척 인사를 건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척 행동했다. 흔히 있는 일인지 그녀는 별로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고개를 까딱이면서 인사를 대신했다. 곧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앞장서서 들어갔다. 그녀가 5층을 누르자 나는 6층을 눌렀다. 금방 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문 사이로 그녀의 몇 호에 들어가는지 기억했다.
현관에서 그녀에게 얼굴을 보이기전에 세이브를 한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예 온 김에 집까지 들어가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보를 모은 후 로드를 하면 그녀에게 나는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시 집에 돌아가서 집이 비길 기다렸다 잠입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나는 6층에서 계단을 이용해서 5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그녀가 들어간 집 앞에 서서 만능키를 불러냈다. 레벨2에서 7번밖에 쓸 수 없는 만능키의 횟수를 벌써 2번이나 사용하는 게 좀 아까웠지만 나는 강행했다.
도어록이 아무소리도 없이 열려버렸고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막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다가 나를 보고는 비명을 지르려고 하였으나 내 손이 빨랐다. 한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후에 재빠르게 다른 손으로 수면스프레이를 불러냈다.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쓸데없는 확인 문구를 저주하면서 마구 터치하자 곧바로 그녀는 축 늘어져 버렸다. 나는 그녀를 질질 끌어서 거실에 눕혔다. 쓰러진 모습도 너무 섹시했다. 전의 유부녀도 섹시하긴 했지만 역시 이여자의 골반에는 따라 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탱탱하기까지 하다. 쫙 붙은 청바지를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걸 간신히 참았다.
저 청바지를 찢으려면 가위라도 써야하는데 괜히 몸에 상처라도 내버리면 바로 경찰이 들이닥칠 것 같았다. 그리고 벗겨내기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과감히 바지를 포기하고 대신에 나는 니트를 벗겨내었다. 아담한 젖가슴을 감싼 브래지어가 나타났다.
매끄러운 살결과 배꼽부터 청바지위로 살짝 드러난 골반라인이 역시 예상대로 죽여줬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브래지어를 풀려고 했으나 후크가 뒤쪽에 있는지 잘되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그냥 억지로 위로 빗겨 내었다. 조그마한 유륜과 유두가 빼꼼히 나타났다. 색은 연갈색에 가까웠다.
로망과도 같은 분홍빛의 유두는 역시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몸매를 감상했다. 약간 로켓형처럼 솟아오른 유방이 숨을 쉴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바보같이 아랫도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사용해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러자 갑자기 또 선택지가 나타났다.
[선택.1 청바지를 벗긴다.]
[선택.2 이만큼 봤으면 됐다. 물러나서 정보를 수집한다.]
나는 벗기긴 힘든 청바지에 손대는 건 포기했다. 그래서 2번을 선택했다. 그러자 다시 회색의 세상에서 현실로 돌아와 몸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포기 할 땐 포기하더라도 수면스프레이의 행위제한은 실험해야 했다. 나는 다시 흥분이 폭발하지 않도록 머릿속에 실험이라는 단어만 되 내이면서 그녀의 가슴을 살짝 주물렀다. 뭉클한 감촉이 느껴지며 부드럽게 손아귀에 가슴이 들어왔다. 마구 주무르고 싶었지만 더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몸을 때었다.
커튼을 걷고 배란다로 가서 집밖을 내다보았지만 경찰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타날 거였으면 벌써 나타났겠지. 일단 가슴을 만지는 것 까지는 문제없다는 사실을 노트에 적으면서 나는 과감하게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더 하다가 잘못되면 돈 낭비 시간낭비 여러 가지로 낭비였다. 실험은 끝났으니 여기서 만족해야지. 공략이 중요하지 눈앞에 있는 잠시의 쾌락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성의 끈을 잡고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안에는 그 흔한 사진 한 장이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아파트가 참 무미건조해 보였다. 식탁 위는 깨끗했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주방도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뭔가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방은 총3개나 있었는데 첫 번째 방에 들어가자 수많은 옷들이 보였다. 드래스룸인 것 같았다. 옷에서부터 핸드백과 액세서리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와서 침실을 살폈다. 1인용 침대와 화장대가 있었는데 별다른 게 없어보였다.
남은 하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이 있었고 그 뒤로는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창고로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상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 한권이 보이지 않았다. 서랍을 열어보니 다이어리라고 써진 노트가 하나 들어있었다. 열어보니 일기장인 듯 했다.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책상에 몸을 기대고 일기장을 넘겨보았다. 고등학교 때의 일기장처럼 보였다. 내용은 일반적이진 않았다.
죽고 싶다. 왜 나를 괴롭히는 걸까?
화장실에서 물벼락을 맞았다. 갈아입을 옷도 없어 그저 울었다.
선생님들은 수업에 빠졌다면서 호되게 야단을 쳤다.
원망스럽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일까지 정해준 액수를 가져오지 않으면 남자들한테 돌려버린다고 말했다.
그녀가 너무 무섭다.
이게 마지막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집 전체를 뒤져도 없던 사진 한 장이 끼어있었다.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가 친구처럼 보이는 다른 여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뭔가 겁먹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마지막 일기의 심각한 내용치고는 잘살고 있는데? 혼자 사는 걸로 봐서는 지방에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아는 사람들을 피해서 서울로 도망 온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난교파티를 주최할 정도로 망가 진거지? 어이없는 변화였다. 설마 일기장의 내용대로 남자들에게 돌려지다가 그쪽으로 눈을 떴나? 의문은 들었지만 볼 건 다 봤으므로 일기장을 다시 서랍에 넣어 놓았다.
다시 거실로 나오니 현관에 떨어져 있는 핸드백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들과 주고받은 걸 핸드백에 넣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열어보니 휴지심 모양으로 돌돌돌 말린 현금이 고무줄로 묶여서 들어있었다. 상당한 액수였다.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다. 같이 들어있는 지갑을 펼쳐보니 돈은 없고 신분증과 함께 수많은 명함들이 꽂혀있었다 .
즐거운 파티
가입문의 01011112222
눈에 들어온 명함을 꺼내보니 난교파티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다른 종류의 명함도 있었기에 집에 가서 분석해 보기로 하고 나는 지갑을 통째로 주머니에 넣었다. 돈이 들어있던 것도 아니기에 현금을 훔친 건 아니었다. 범죄로 취급해서 경찰이 출동하진 않겠지? 살짝 쫄아서 다시 베란다로 가보았으나 그럴 일은 없어보였다. 돈이 안 들어 있어도 지갑을 도둑질 했으니 범죄인건 맞지만 이 게임세상은 그런 경계가 참 애매했다. 말려있는 현금뭉치는 함정인 것 같았다. 괜히 소지금 불리자고 저걸 가져가면 함정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나는 돈 뭉치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수색을 마쳤다.
이쯤 되면 얻을 정보는 다 얻은 것 같았다. 나는 로드창을 불러냈다.
[로드 하시겠습니까?]
창을 터치하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위가 새하얗게 변하더니 곧 아파트 현관으로 이동되었다. 여자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다. 혹시라도 얼굴을 마주칠까봐 나는 재빠르게 아파트에서 발을 돌렸다.
혹시 몰라서 주머니를 뒤졌는데 명함이 든 그녀의 지갑과, 노트에 적은 정보들은 그대로였다. 얻은 소득에 만족하면서 나는 다시 번화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집에 가서 정보를 분석하고 명함에 나와 있는 번호로도 연락을 해볼 생각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마을버스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정류장 뒤에 넋 놓고 앉아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뭔가 꾀죄죄한 행색이었다. 그렇다고 뭐 때가 묻어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많아야 스무살 정도로 어려 보였고 머리는 목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였다. 쭈그리고 앉아있어서 몸매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꾀죄죄한 모습 때문에 미모가 가려진 느낌이었다. 제대로 꾸미면 매력적일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나의 레벨에서 여자 두 명을 동시 공략하는 건 무리였다. 더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몹시 머뭇머뭇 거렸다.
“아저씨”
결국은 입을 때고 한다는 말이 아저씨였다. 내가 아무리 매력치 12의 막 생긴 얼굴이어도 25살한테 아저씨라니. 나는 순간 욱해서 대답했다.
“누가 아저씨야?”
그러자 그녀는 약간 몸을 흠칫거렸다. 화난 목소리에 손찌검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잔뜩 몸을 웅크렸다. 그 토끼 같은 모습에 치솟던 화가 나도 모르게 가라앉아 버렸다. 먼저 말을 걸었으면서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는 그녀에게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에휴, 됐어, 왜?”
“저기 바, 방금 저 쳐다봤죠?”
뭐지? 쳐다본 것만으로 성희롱으로 고소라도 하겠다는 건가? 과거에 여자들에게 받았던 부당한 대우가 떠오르면서 이번에는 내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저, 저랑 잘래요? 싸게 해줄게요.”
하지만 이어진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 보려고 나는 순간적으로 스카우터를 사용했다. 창을 터치해서 그녀를 바라보자 정보가 나타났다.
서예리
나이 : 20세
남자친구 : 현 레벨로는 불가
직업 : 현 레벨로는 불가
공략난이도 : A
사는곳 : 현 레벨로는 불가
전화번호 : 현 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현 레벨로는 불가
호감도 : 현 레벨로는 불가
공략 난이도 A??? 나타난 정보는 어마어마한 내용이었다. 먼저 자자고 나서는 여자가 공략난이도 A라니 이상했다. 호감도 정보조차 확인불가였다. 그 유명한 아이돌조차 난이도가 B였는데 이 여자는 대체 뭐지?
레벨.2 진실과 거짓[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