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 옆집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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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보니 시야에 이상한 창이 보였다.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평소대로 더러운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달리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단칸방 안은 나의 소중한 컴퓨터와 침대가 전부였다. 간신히 몸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화장실이 딸린 자취방이다.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1회용 도시락용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시야에서 이상한 창은 계속해서 깜박거렸다. 눈의 착각인가 싶어 눈을 비벼도 보고 화장실에서 세수도 해보았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시야에 깜빡이는 윈도우 폴더 같은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 너무 방구석에 만 있었더니 미쳐버렸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상했다.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다. 또 고장인가? 짜증을 느끼며 컴퓨터 본체를 열어 안을 살펴보았다. 어제까지 잘 되던 컴퓨터였으며 육안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검색을 해볼 생각으로 핸드폰을 가져와서 인터넷에 연결해보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뜨질 않았다. 이리저리 만져본 결과 전화나 문자는 가능한데 인터넷만이 연결이 안 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침대위에 충전중인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전원을 넣었으나 이것도 기동을 하지 않았다.
“뭐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침착하게 컴퓨터, 핸드폰, 노트북 순으로 다시 천천히 만져보았으나 변화는 없었다. 이번에는 핸드폰을 들고는 전화를 해보았다. 아까 실험해 보았을 때 분명히 신호는 가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쪽도 컴퓨터가 안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호는 가는데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번호를 찾아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1년만의 전화인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덕분에 부모님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것은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를 해 볼 수밖에 없는 건 부모님이 컴퓨터 같은 하이테크 와는 거리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컴퓨터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런 것들과 관계가 없는 부모님께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바로 무너져 버렸다. 신호는 가고 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가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화가 나서 아무번호나 눌러서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감감무소식일 뿐이었다. 컴퓨터랑 노트북은 켜지지도 않고 인터넷도 먹통 전화는 불통.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했나? 나는 급하게 집밖으로 나와 보았다. 단칸방이 모여 있는 맨션 밖은 평범했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범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결국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시야에서는 여전히 창이 깜빡거렸다. 세상이 이상하다. 그리고 깜빡거리는 창. 눈에 띄는 변화나 이거 하나다. 그럼 결국 여러 가지 이상한 현상의 원인은 이 창 때문이라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눈앞의 조그마한 창에 집중했다. 꺼림칙해서 의도적으로 계속 피하고 있었던 미지의 것에 접근하는 순간이었다. 손가락을 시야의 창에 가져다 대니 놀랍게도 눈앞에 화면이 나타났다. 마치 컴퓨터의 창이 열리듯 말이다. 반투명한 창 위에 선명한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이브]
[로드]
[상태]
[아이템]
“헉?”
나는 나타난 창에 현실감을 잃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꿈속 인가? 이건 분명히 게임화면인데? 놀란 나는 볼을 꼬집어보았다. 매우 아팠다. 고통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꿈이 아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리저리 터치를 해보다가 상태창이 손에 닿아 버렸다. 곧 반투명한 창이 넘어가고 다른 창이 나타났다.
김영준
나이: 25세
직업: 백수
레벨: 1
체력: 55
정력: 60
매력: 12
크기: 5
지속력 : 1
지력: 70
소지금: 50,101,307원
성공횟수: 0
경험치 : 0
나타난 창에 나열된 것은 내 개인정보였다. 나이는 25살. 정확한 정보였다. 하지만 레벨부터 지력까지는 의미 불명이었다. 다만 소지금은 정확했다. 백수인 주제였지만 알바로 모은 오백만원으로 시작한 주식을 오천만원까지 불리면서 당장 먹고살 돈은 걱정이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운은 따랐다. 지인의 정보가 매우 컸다. 모아둔 돈만 더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
그 결론은 지금 나는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상태창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허구한 날 게임만 하고 살았더니 현실이 게임이 되 버렸단 말인가. 지인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것을 봐도 여기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했다.
정말 게임속이라면 아까 보았던 세이브&로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재빠르게 상태창에서 빠져나와 세이브창에 손을 대보았다. 그러자 세이브를 할 수 있는 한 칸의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다른 창이 나타났다.
[세이브 하시겠습니까?]
나는 현재 시간 오전 10시 30분 20초를 확인한 후 나타난 창을 터치했다. 별다른 변화 없이 비어있던 한 칸의 공간이 채워지면서 5월2일 10시30분이라고 표시되었다. 다만 세이브 공간은 하나였다, 여러 개의 세이브 포인트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신중히 사용하라는 소리겠지. 곧바로 로드창을 눌러보자 세이브창과 마찬가지로 5월2일 10시30분이라고 써진 창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위에 다른 창이 출현했다.
[로드 하시겠습니까?]
현재 시간은 10시 33분. 시간을 확인한 후 나는 망설임 없이 나타난 창을 터치했다. 갑자기 시야가 하얗게 변하더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재빠르게 시계를 확인하니 정확히 10시30분22초였다. 시계를 확인하는데 2초가 걸렸다고 생각하면 정확하게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놀라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진짜였다.
재미있지 않은가. 어차피 현실은 나에게 아무런 재미도 없는 세상이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것이 게임인 이상 클리어하면 되는 거겠지. 나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침대에 걸터앉아서 내가 들어와 버린 이게임을 분석해 볼 요량으로 다시 상태창을 불러냈다.
김영준
나이: 25세
직업: 백수
레벨: 1
체력: 55
정력: 60
매력: 12
크기: 5
지속력 : 1
지력: 70
소지금: 49,101,307원
성공횟수: 0
경험치 : 0
상태창을 유심히 보다가 나는 변화를 발견하였다. 무려 소지금이 백만원이나 줄어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행동 중에 소지금이 줄만한 것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저 세이브와 로드를 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세이브와 로드에 돈이 필요한 게임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현실과 똑같았기에 과거로 돌리는 것에 그만한 돈이 필요하다는 건 어찌 보면 등가교환 측면에서는 오히려 싼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진행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정보가 얽혀서 혼동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노트를 펼쳐서 알게 된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세이브&로드는 알 것 같고, 그럼 체력은 뭘 의미하는 걸까? 이건 말 그대로 체력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벨도 이제 막 시작했으니 레벨1 이라는 수치는 납득이 가능했다. 다만 어떻게 레벨업을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정력, 매력, 크기, 지속력, 이것들도 의문이었다. 수많은 게임을 섭렵한 머릿속을 검색해보자면 아무래도 이건 섹스에 관련된 것 같았다. 크기는 내 거시기크기를 말하는 거 같고 지속력은 아무래도 얼마나 오래할 수 있나 뭐 그런 건가? 정력이 60이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초기설정이 60인걸 보아하니 최대높이가 100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200내지 300까지 넘어갈 수 있어보였다.
하지만 지속력 1은 충격이었다. 어느 세월에 올려야 하는 거지? 물론 나는 동정이다. 그러니 지속력이 1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는 있는 소리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왠지 처참함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크기5는 큰 건지 작은 건지 애매한 수치였다. 그 다음 성공횟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이게임의 포인트 같았다. 뭘 성공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이 성공횟수가 게임의 클리어나 레벨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의 경험치란 건, 익숙했다. 레벨업을 하기 위한 숫자로 대부분의 게임에서 등장한다.
결론을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내가 빠진 이 게임 같은 현실은 H게임의 일종일 것 같았다. H게임은 MMORPG를 즐겨하는 나였기에 전공분야는 아니었지만 주로 야밤에 머리식히기용으로 즐겨하던 장르였다. 따라서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가 걱정이었다.
현실에서 H게임을 대입하자면 자신감이 확 줄어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자라곤 사귀어 본적 없는 동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클리어에 대한 자신감이 확 줄어들었다. 뭔가 게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고 순전히 내 힘으로 여자를 공략하라고 한다면 무리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는 그 게임적인 무언가를 바라면서 아이템창으로 화면을 바꾸었다. 뭔가 있을 것이다. 아이템창이 따로 있는걸 보니 그런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마찬가지로 불투명창이 나오더니 두 가지의 선택화면이 나타났다.
[아이템샵]
[소지아이템]
나는 일단 소지아이템을 터치하였다.
현재 소지하고 계신 아이템이 없습니다.
아무 소지품이 없다는 냉정한 문구만이 내 앞의 떠올랐다. 돌아가기를 터치해서 아이템샵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레벨1이라는 창과 함께 몇 가지 아이템이 나타났다. 아마 레벨이 오를수록 살 수 있는 아이템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Lv.1 스카우터 100만원]
[수면스프레이 250만원]
[만능키 600만원]
[카메라 100만원]
[외제차 5억]
[국산차 8천만원]
무슨 효과가 있는 건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딸랑 아이템이름과 가격만 나와 있었다. 그리고 가격의 단위가 어마어마했다. 가장 큰 의문은 왜 자동차가 나와 있냐 하는 거였다. 의문은 들었지만 소지금으로는 살 수도 없는 물건이기에 관심을 꺼버리고 살 수 있는 아이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별 망설임 없이 스카우터를 구입했다. 가격도 적당하고 왠지 가장 필요한 물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구입창을 터치하고 소지아이템으로 가보았더니 스카우터가 표시되어 있었다. 터치해보니 상세한 설명창이 나왔다.
[Lv.1 스카우터]
[스카우터를 사용한 상태에서 대상 여자를 바라보면 공략에 필요한 정보가 나옵니다.]
[레벨이 높은 스카우터 일수록 자세한 정보가 나옵니다. ]
다행이었다. 사기전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더니 구입을 하니 설명이 나오고 있었다. 구입을 해야 용도를 알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100만원이 줄어들었는지가 궁금해서 소지금을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터치했다.
김영준
나이: 25세
직업: 백수
레벨: 1
체력: 55
정력: 60
매력: 12
크기: 5
지속력 : 1
지력: 70
소지금: 48,101,307원
성공횟수: 0
경험치 : 0
아니나 다를까 정확하게 백만원이 줄어 있었다. 문득 여기서 궁금증이 떠올랐다. 게임 속에 빠져버렸다고는 하나 이 이상한 창을 뺀다면 현실 그대로였다. 따라서 배도 고파왔고 소변도 마려웠다. 그렇다면 밖에서 원래 파는 물건을 사도 소지금이 주는 것일까? 확인을 해보려고 일단 밖으로 나와 보았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카드로 결제하고 밖으로 나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김영준
나이: 25세
직업: 백수
레벨: 1
체력: 55
정력: 60
매력: 12
크기: 5
지속력 : 1
지력: 70
소지금: 48,089,307원
성공횟수: 0
경험치 : 0
정확히 사용한 만이천원의 돈이 빠져나가 있었다. 즉 소지금은 생활비용도 포함한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게임아이템을 제외하면 보통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현실의 가격 그대로라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갑자기 비싼 아이템을 의미 없이 구입하지만 않는다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소지금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늘릴 수 있는지 고민해봤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이 안 되니 인터넷 관련은 전부 에러다. 알바나 취업도 해답이 아니었다. 일을하면 시간이 없어져서 이게임의 진행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그냥 예감이지만 아마 게임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은 불가능 하지 않을까? 세이비&로드에 아이템까지 있으니 진행을 안 하고 방치하면 뭔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돈 문제는 일단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이왕 밖으로 나온 김에 스카우터를 한번 시험해볼 요량으로 아이템창 불러냈다.
[스카우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소지아이템으로 들어가서 사용부분을 터치하자 다시 또 창이 나왔다. 번거로움에 짜증을 내면서, 컴퓨터 앞이었으면 인터페이스가 이따구냐고 게시판에 욕을 날리고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스카우터를 터치한 후 편의점의 알바녀를 쳐다보았다.
이민영
나이: 21세
남자친구 : 있음
직업 : 대학생
공략난이도 : C
사는곳 : 현레벨로는 불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현레벨로는 불가 (현재의 공략정보는 공략난이도 F급이하에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남자친구 여부를 빼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 말은 현 상태에서는 아예 공략을 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공략요건은 대체 뭐지? 사귀야 되는 건가? 아니면 섹스? 여전히 알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허탈해져서 나는 일단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다가 옆 아파트의 여자와 마주쳤다. 이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으러 나오는 관계로 타이밍만 맞으면 자주 마주치는 여자였다. 항상 낮 시간에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처럼 백수거나 밤일을 하지 않나 지레짐작 하고 있었다. 자세히 아는 이유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머리와 도톰한 입술이 너무 섹시해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터질듯 한 엉덩이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저 여자도 공략가능한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급하게 아이템창을 소환하였다.
레벨.1 옆집여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