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SSS급 정령사. [完]
‘운디네, 나 너무 뜨거워.’
-젠장! 미친 드워프 놈들 도대체 반지에 뭘 때려 박은 거야.
위험해.
내 힘으론 무리야.
이대로 있으면 화기로 인해 뇌를 막고 있는 마나가 뚫릴 것 같아.
-살라만다, 이프리트, 피닉스. 반지 안에 수천 단위의 정령의 힘이 느껴져. 드워프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어떻게 이런 힘을 물질적으로 가둬 놓은 거지?
-정령의 힘이 느껴진다고?
-응. 네가 컨트롤 안 되면 내가 흡수할게. 그래도 되지?
-당연하지. 어서 흡수해. 이러다 뇌를 막고 있는 마나가 뚫리면 해용이 놈 백치가 된다고.
운디네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카샤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내,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해용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카샤?’
괜찮아? 더 커지고 있네.
또 성장하는 건가?
정신을 차린 해용은 걱정과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정령들을 쳐다봤다.
운디네, 카샤, 노움, 실프까지.
중급으로 각성하며 성인 인간의 크기로 커졌던 정령들의 외형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육체로 감당이 안 돼서 카샤가 반지 안에 깃든 힘을 흡수했어. 덕분에 우리도 성장하는 거야.
‘난 뭘 하면 되는 거야? 이대로 있으면 돼?’
-응. 그대로 있으면 돼.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래.’
해용은 가만히 서서 정령들을 지켜봤다.
2m, 3m…… 10m, 100m…….
2m 남짓하던 정령들이 몸을 부풀리더니 드래곤 로드 씨엘보다 더 커다랗게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이내,
반짝반짝.
반짝반짝.
‘예쁘다. 따뜻해.’
해용의 곁으로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 하얀색의 별들이 날아와 주변을 노닐었다.
‘할머니 보고 싶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안아 줬을 때도 이렇게 포근했었는데…….
글썽글썽.
추운 겨울. 연탄불에 데워 놓은 물에 목욕하고 방에 들어오면 혹여나 감기에 걸릴까 싶어 아랫목 이불 아래 넣어 뒀던 속옷과 내복들을 부랴부랴 입혀 주셨던 할머니.
행복했다.
돈이 없어서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부엌에서 씻어야 했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기에.
‘계란빵 먹고 싶다.’
목욕하고 나면 말 잘 들었다고 할머니가 늘 계란빵도 해 줬는데. 식혜도 만들어 주고.
주르륵.
별들을 바라보는 해용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왔다.
-고생했어. 수고했어.
‘끝난 거야?’
-응. 잘 갈무리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근데 이 별들은 뭐야?’
-정령들이야. 우리의 기운을 느끼고 다가온 것 같아.
‘이 많은 게 다 정령들이라고?’
-응. 아무래도 우리 예전보단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그래?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보기엔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추운 겨울 따뜻하게 목욕하게 해 줬던 물과 불.
그리고 할머니의 향기를 맡게 해 줬던 바람.
밀과 계란을 생산시켜 주게 했던 땅까지.
어느새 다시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진 운디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화룡의 반지에 깃들어 있던 불의 기운을 흡수하며 정령력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주위에 있던 정령들이 그 힘을 느끼고 다가올 정도로.
헌데 그 강대한 힘을 해용은 할머니에게 안겼던 포근함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강해진 것 같기도 한데.’
계란빵이 먹고 싶네.
아버지랑 새어머니. 은솔이. 그리고 수정이랑 세훈이랑 집에 가서 오순도순 얘기하며 계란빵 해 먹고 싶다.
주위로 몰려든 정령력 때문일까.
옛 추억에 빠져 감정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불의 기운을 잘 흡수한 것 같네. 다 흡수됐으면 어서 가 봐. 중국 쪽 상황이 꽤 다급한 것 같으니까.”
“네, 알겠어요. 후딱 다녀올게요.”
계란빵이 먹고 싶지만 조금 미뤄 둬야겠네요.
일단은 얼음 여왕부터 처치해야 하니까.
둥둥. 둥둥.
“헐…….”
“……?!”
나 지금 날고 있는 거야?
-얘기했잖아. 우리 조금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다고. 그 말은 너도 그렇게 됐다는 거야. 바람에 몸을 맡겨. 그럼 알아서 안내해 줄 거야.
‘……어.’
해용은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을 맡겼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등이 시릴 정도로 고소 공포증이 심했지만, 지금은 하늘은 날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을 믿었다.
아니 절로 믿어 졌다.
자신의 몸을 날게 하는 바람이 절대 자신을 땅에 떨어뜨려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다 왔어. 이제 눈 떠도 돼.
‘벌써?’
방금 눈 감은 것 같은데?
벌써 게이트에 도착했다고?
어라. 진짜네?
눈을 뜬 해용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게이트를 쳐다봤다.
그리폰을 타고 와도 1시간은 걸릴 거리인데 순식간에 도착해 있었다.
‘나 정말 강해졌나 보네.’
후딱 끝내고 빨리 계란빵 해 먹으러 가야겠다.
해용은 빙그레 웃으며 게이트를 넘어갔다.
* * *
[오셨습니까. 영주님!]
“네.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죠?”
[중국 군대와 대치 중입니다. 2시간 내로 철수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도 공격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습니다.]
“최후 통첩이라…… 세훈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미사일을 날리면 그 즉시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내 친구답네요. 세훈이한테 가죠.”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으신가?
당장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해용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였다.
퍼거슨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지휘부로 안내했다.
그런데 그때,
[퍼거슨 님, 선착장에 수십 척의 항공 모함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항공 모함이 들어오고 있다고?]
[네. 세계 헌터 협회에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령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달려와 보고해 왔다.
“드디어 세계 헌터 협회에서 우리의 손을 들어줬나 보네요.”
흐흐.
[재상님.]
“나 왔다.”
“왔구나.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흐흐.
중국 너흰 이제 끝났어.
항복하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미사일을 날리겠다고 도발해?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과연 세계 모든 국가를 적으로 돌리고도 너희가 무사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지윤미 마스터님 수고하셨어요. 마스터님이라면 해낼 줄 알았습니다.’
세계 헌터 협회에서 소속된 국가의 항공 모함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스카이 캐슬의 손을 들어줬다는 걸.
세훈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 * *
“……수호용님을 뵙습니다.”
“……수호용님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영주님 죄송해요. 영주님께서 이런 인사 싫어하시는 거 알지만 세계 헌터 협회 인사들이 옆에 있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세요.
항공 모함에서 내린 지윤미 마스터는 지휘부와 헌터들을 이끌고 해용에게 정중하게 인사부터 했다.
“일어나세요.”
수정이 어디 있지?
저기 있네.
지윤미의 인사를 받은 해용은 연인인 권수정에게 걸어갔다.
“다친 데 없지?”
“네? 네…….”
오빠 왜 그러세요?
지금 공무 중이잖아요?
뒤에 있는 사람들 다 각국의 헌터 협회 사무장들이에요.
얼음 여왕을 같이 해치우기 위해서 도우려고 오신 분들이에요. 저분들한테 먼저 인사를 하시는 게…….
수정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해용을 쳐다봤다.
“안아 봐도 돼?”
“네?”
갑자기? 지금요?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기분은 좋아 보이는데?
참고 있는 건가?
“안고 싶어.”
“……네.”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수정은 해용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따듯하다. 미안해. 수정아, 너랑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레이드를 하는 건데 정작 그동안 너를 신경 쓰지 못했어.”
“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싫어.”
“네?”
“그동안 소홀했던 것만큼 앞으론 너만 바라보면서 살 거야.”
“……?!”
“오빠 믿지?”
“……네.”
재상님?
무슨 일 있었던 건가요?
오빠 갑자기 왜 이래요?
수정은 해용의 품에 안겨 시선을 피해 이세훈을 쳐다봤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쪽 해안에서 치른 전쟁 때문에 후유증이 있는 건가?
안 되는데…….
왜 이 중요한 시기에…….
세훈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해용에게 걸어갔다.
“영주님…….”
“가자.”
“네?”
“얼음 여왕 잡으러 가야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일단은 중국의 항복을 받고…….”
“됐어. 그냥 가자. 김용규 본부장한테도 연락하고 철수해서 합류하라고 해.”
“영주님!”
왜 이래 인마.
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려고 해?
저기 세계 헌터 협회 사람들 안 보이냐?
지금 여기 온 헌터들만 수십만 명이야.
그리고 대한민국과 하얼빈에도 여기 있는 숫자만큼 지원 가 있고.
중국에선 이제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해.
우리를 공격하는 순간 세계 모든 국가와 전쟁을 치루 게 될 테니까.
이대로 이제 항복만 받으면 텐진과 하얼빈은 우리 땅이 된다고!
세훈은 당황과 짜증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노려봤다.
“이쯤 했으면 됐어. 중국도 이 정도 궁지에 몰렸으면 반성했을 거야. 그러니 병력 철수시키고 얼음 여왕이나 잡으러 가자.”
“영주님…… 저랑 잠깐”
“쓰읍. 가자고.”
지원이 형.
지윤미 마스터.
조성태 마스터.
최은빈 마스터.
하몽 님.
오키도키 님.
퍼거슨 님.
.
.
.
세훈의 말을 끊은 해용은 스카이 캐슬 연합 지휘부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바로 얼음 여왕 잡으러 갈 겁니다. 이의 있습니까?”
“영주님의 뜻대로.”
“영주님의 뜻대로.”
재상님 죄송해요.
영주님의 뜻이 너무 강경하네요.
일단 우리 따르도록 해요.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죠.
다른 나라 각료들이 저리 다 지켜보고 있는데 영주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우리가 영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저들도 영주님을 우습게 볼 수 있잖아요.
지윤미 마스터를 필두로 지휘관들 모두 일체의 고민 없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리암 님이라고 했죠?”
[네. 영주님.]
“바로 러시아로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겠죠?”
[물론이죠.]
그래 주시면 저희야 고맙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카이 캐슬의 손을 들어 주긴 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지도의 국경선이 바뀐다면 얼음 여왕을 해치워도 더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해용의 질문에 리암은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춥네요. 러시아 쪽엔 우리가 왔다고 얘기를 했나요?”
[네, 전달했습니다. 얼음 여왕을 이쪽으로 유인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정말 이렇게 맞닥뜨려도 되겠습니까?
불의 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아직 확실히 얼음 여왕의 마법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데…….
리암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지도를 쳐다봤다.
스카이 캐슬 30만 명.
대한민국 10만 명.
미국 10만 명.
영국 10만 명.
독일 10만 명.
프랑스.
네덜란드.
.
.
.
수백만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헌터들을 모아 이곳에 도착했지만, 얼음 여왕의 마법은 한 나라를 얼음 나라로 만들 만큼 강력했다.
이번 레이드에 실패하면 지구 역시 아스날 대륙처럼 몬스터의 땅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추운 줄은 알았는데 그래도 너무 춥네.”
카샤. 도와줘.
-응, 알았어.
“얼음이 녹고 있어.”
“헐…….”
“영주님…….”
해용이 손짓을 하자 러시아를 뒤덮고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리암 님, 헌터들을 뒤로 물리세요. 산개해 있는 헌터들한테도 전선을 물리라고 하시고요. 전투는 저랑 우리 마법사 부대가 맡을 테니까.”
하몽 님, 은빈 씨 준비됐죠?
카샤의 도움을 받아 대지를 녹인 해용은 하몽과 최은빈을 바라봤다.
그곳엔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발현 가능한 백여 명의 상위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습니다.”
“카프리 님.”
“우리도 준비됐다. 이곳으로 오면 얼음 여왕은 죽는다.”
급하게 대한민국과 스카이 캐슬에 설치한 마법진을 떼어 온 카프리와 드워프 종족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음 여왕을 해치울 공격 준비는 끝났다.
“세훈아, 너도 뒤로 빠져 있어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얼음 여왕의 마법 막을 수 있겠어? 하몽이랑 카프리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쏟아부으면 죽일 순 있어도 우리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고. 그리고 혹여나 단숨에 해치우지 못하면 우린…….”
“날 믿어. 내 성격 알잖아. 겁이 많아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그러니 뒤로 물러나 있어. 그리고 리암과 세계 헌터 협회 사무장한테 똑똑히 보라고 해.”
“뭘?”
“내 힘을. 그리고 우리 스카이 캐슬의 힘을.”
그럼 다신 우릴 도발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중국과 미국, 유럽의 열강들도 알아서 고개를 숙이게 될 거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무력으로 땅을 정복하지 않아도 스카이 캐슬은 네가 바라는 대로 아주 강력한 국가가 될 테니까.
-저기 오고 있어. 준비해.
‘그래.’
이세훈을 뒤로 물린 해용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북서쪽 하늘을 쳐다봤다.
얼음 여왕이라고 하더니. 진짜 여왕처럼 드레스를 입고 있네?
-인간? 인간이 내 얼음을 녹였다고?
‘응. 내가 녹였어. 너무 춥더라고.’
-……?!
정령?
설마 정령 왕인가?
젠장! 어떻게 정령왕이 현신한 거지.
이 차원엔 그만한 정령력이 없을 텐데?
시녀들과 함께 여유로운 모습으로 하늘로 날아 온 얼음 여왕의 얼굴이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운디네, 노움, 실프, 카샤.
해용의 곁을 맴돌고 있는 정령들의 힘이 자신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주위로 수백, 수천에 이르는 정령들이 맴돌고 있었고.
“#$#$#$#$#$#$#$블리자드.”
10서클 얼음 마법.
러시아를 얼음 나라로 만들어 버린 마법이 다시 발현됨과 동시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젠장! 위험해. 저 눈에 닿으면 모두 얼음 조각상이 된다. 피해.]
[하몽 님,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날리세요. 이대론 전멸입니다.]
얼음 여왕 레이드를 돕기 위해 지원을 온 세계 헌터 협회 사람들이 눈을 피해 사방으로 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놔. 춥다니까.”
-실프.
바닥으로 떨어지던 눈 들이 바람을 타고 얼음 여왕에게 날아갔다.
“추운 게 좋으면 너 혼자 그렇게 지내. 우린 싫으니까.”
하몽, 카프리, 은빈 씨!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날리세요.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해용의 손짓에 수십 발의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얼음 여왕에게 날아갔다.
“#$#$#$#$#$#$힐.”
“#$#$##$#$#[email protected]힐.”
“그냥 곱게 죽어.”
“꺄아악.”
“꺄아악.”
얼음 여왕의 곁에 있던 시녀들이 힐 마법으로 시전하려 했지만, 해용의 손짓 한 번에 모두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죽은 건가?’
-응. 죽었어.
‘너무 약한데?’
-얼음 여왕이 약한 게 아니라 네가 그만큼 세진 거야. 확실히 죽었으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래.’
운디네가 죽었다고 했으니 죽었겠지.
해용은 시원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본부장을 쳐다봤다.
“끝났네요.”
“정말 해치운 건가요?”
“네. 죽었어요. 그럼 이제 저흰 돌아가 봐도 될까요?”
“네? 돌아가신다고요? 저희라 하면 지휘부들도 모두 데리고 간다는 말이죠?”
“네. 얼음 여왕을 해치웠으니 남아 있을 이유가…….”
“그럼 뒷정리는 누가? 중국에 전쟁 배상금도 받아야 하고. 세계 헌터 협회에서 보상도 받고. 이래저래…….”
“본부장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힘드네요. 좀 쉬고 싶어요.
집에 가서 계란빵도 해 먹어야 하고.
“지윤미 마스터님. 집으로 갑시다. 귀환 주문서를 찢으세요.”
“……네.”
“……네.”
찌이익.
찌이익.
해용의 명령에 지윤미 마스터를 시작으로 수십만에 이르는 오크와 엘프 그리고 스카이 캐슬 연합 헌터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카이 캐슬 만세!”
“본부장님?”
“얼음 여왕은 죽었다. 오늘 같은 날 만세를 안 하면 언제 할래?”
“아…… 스카이 캐슬 만세!”
“스카이 캐슬 만세.”
“스카이 캐슬 만세.”
“스카이 캐슬 만세.”
재난 관리 협회소속 헌터들과 이아영과 이어진을 필두로 한 한국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이 사라진 스카이 캐슬이 연합 헌터들이 있던 곳을 보고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이내,
[스카이 캐슬 만세!]
[스카이 캐슬 만세!]
전 세계에서 온 수백만의 헌터들도 스카이 캐슬 연합을 찬양했다.
아직 게이트를 넘어온 수많은 몬스터들이 남아 있지만, 지구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했던 마지막 마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에필로그
1년 후,
“왕이 된다고 약속했잖아!”
“왕 됐잖아. 임명서 못 봤어?”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세계 각국의 수장들도 부르고 멋들어지게 임관식을 해야지. 이런 게 어디 있어!”
“임관식은 얼어 죽을.”
남사스러워서. 생일에 생일 케이크도 안 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야.
“계란빵이나 먹어.”
“안 먹어. 지겨워. 나 밖에 나가서 스테이크랑 스파게티 먹고 싶다. 그러니 제발 이것 좀 풀어 줘.”
세훈은 울먹이는 얼굴로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을 쳐다봤다.
“내가 해 줄게. 여기서 먹어.”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너도 알잖아. 스카이 캐슬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거.”
“아니야. 너 없어도 돼.”
지윤미 마스터도 있고. 김용규 본부장도 있고. 안지현 실장도 있고.
그 사람들이 운영 잘하고 있다.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 살 생각만 하면 된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으면 마음에 드는 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애 셋만 낳아. 그럼 풀어 줄 테니까.
“해용아, 제발…….”
“네가 원하는 대로 나라도 선포하고 왕이 되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내 부탁 좀 들어줘라.”
난 여기서 너랑 농사지으면서 같이 살고 싶다.
우리 옛날에 좋았잖아.
같이 낚시도 가고 회 먹으면서 소주 한잔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잖아.
해용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빵을 세훈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해용이 형.”
“부성이 왔네.”
“뭐예요. 전 보이지도 않는 거예요?”
“그럴 리가. 우리 제수씨는 가면 갈수록 예뻐지는 것 같네요.”
해용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과 윤다영을 쳐다봤다.
“오빠는 어쩜 가면 갈수록 더 능글맞아지는 것 같네요. 근데 세훈이 오빠는 아직도 고집부리고 있는 거예요?”
이쯤 하면 그냥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
“오빠, 그만 포기하세요. 그럼 편안해져요.”
다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밧줄로 몸이 묶이고 계란빵으로 입이 막힌 이세훈을 쳐다봤다.
오물오물.
냠냠.
“다영아, 나 좀 풀어 줘라. 넌 알잖아. 내가 있어야…….”
“풀어 주는 건 일도 아닌데. 어차피 풀어 줘도 오빠 여기서 못 나가요. 카프리 님이랑 하몽 님이 이 주택 주위 전부에 미로 마법진 깔아 놨어요.”
“젠장…….”
안해용 저놈을 믿으면 안 됐는데…….
어째 너무 순순히 말을 듣나 했더니…….
“풀어!”
“안…….”
“네 말대로 할 테니까 밧줄 풀라고!”
“정말?”
그러면야 당연히 풀어 주지. 흐흐.
해용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세훈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 줬다.
‘미안하다. 친구야.’
네가 그 누구보다 스카이 캐슬의 건국에 기여하고 능력도 출중하다는 건 알지만 난 내 친구가 더는 타락하는 걸 볼 수가 없다.
내 마음 알지?
우리 그냥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젠장!’
기껏 농사나 지으면서 살려고 내가 그렇게 애를 쓴 게 아닌데…….
“해용 오빠!”
“우리 자기 왔어. 뛰지 마. 뛰지 마. 그러다 다칠라.”
꼭.
빙그르르르르.
쪽쪽.
‘저것들은 왜 내 앞에서 자꾸 포옹하고 뽀뽀를 하는 거야! 쳇.’
해용이 수정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 걸 보고 세훈은 고개를 돌렸다.
‘친구야,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러니까 너도 어서 마음에 드는 여자 찾아서 결혼하자.
바라는 건 이제 딱 하나밖에 없었다.
친구인 세훈이가 자신처럼 모든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사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 * *
“대통령님, 미국과 프랑스에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빼앗아 갔던 문화재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벌써? 새끼들 아주 똥줄이 타나 보고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도 우리가 요구한 천조의 배상액을 물기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다들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혹여나 우리의 눈 밖에 날까 봐.
“하하. 계속해서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군. 국민 반응은 어떠한가?”
“국민이야 당연히 좋아하죠. 대통령 지지율도 다시 90%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90%라 매달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군.”
역대 대통령 중에 아니 세계 그 어느 대통령도 나만큼 편하게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은 없겠지.
‘영주님과 이세훈 그 친구한테 미안하군.’
내가 받을 명예가 아닌데…….
김용규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명패를 쳐다봤다.
대통령 김용규.
김용규는 역대 대통령 중에 국민의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되었다.
‘너무 억울하지는 말게나. 네 영주님과 자네가 꿈꾸던 것처럼 기술직이 대우받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이 소외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테니까.’
드워프 종족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아티팩트와 아스날 대륙에서 채취되는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조차 아득히 넘어서는 부유한 국가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