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SSS급 정령사 (4)
[재상님, 영주님입니다. 영주님이 마나를 개방해서 정령 마법으로 남쪽 해안에 매복해 있던 십만의 대군을 모두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헐…… 해용이가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네요. 해용이는 무사한가요?”
[네. 무사합니다. 마나 폭주로 인해 정신을 잃고 실신을 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어쩌다가 해용이가 마나를 개방하게 된 거죠? 제가 알기론 컨트롤되지 않아서 상위 정령 마법은 잘 쓰지 않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게 퍼거슨 님이랑 오키도키 님이 영주님의 안위가 걱정돼서 명령을 어기고 같이 돌격을 해서 수천여 명에 이르는 아군의 사상자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걸 보신 영주님께서 분노로 폭주를 하신 듯합니다.]
“수천여 명이라…….”
폭주할 만했네요.
해용이를 믿고 말 좀 듣지.
“쯧쯧.”
세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게이트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 역시 미티어 스트라이크의 공격을 받고 움직임을 멈춘 십만 단위가 넘는 인간들이 차갑게 식어서 땅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때,
슈우우우우웅 펑!
슈우우우우웅 펑!
화룡의 둥지 중심부에서 파란색 폭죽이 연이어 터져 올랐다.
[드워프랑 노예들도 무사히 구출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전 병력 게이트로 모이라고 해 주세요.”
[게이트로요?]
왜?
전장 정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남쪽 해안을 밀어내고 게이트 인근도 차지했다.
많은 사람이 죽긴 했지만 화룡의 둥지를 차지한 것이다.
린하이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세훈을 쳐다봤다.
[설마 진격하시려는 겁니까?]
“네. 맞아요. 여기서 멈추면 이곳 화룡의 둥지 게이트 입구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피가 튀기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될 겁니다. 전투 한 번 졌다고 중국에서 바로 꼬리를 내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건 저도 아는데…… 게이트를 넘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지요? 아스날 대륙에서의 일을 지구에서까지 연결 짓지 않기로 협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어기면…….]
“그건 군인이 투입되지 않았을 때. 헌터들 간에 적용되는 얘기입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승기를 잡았을 때 게이트를 넘어가 텐진을 차지하고 중국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세훈인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린하이와 하몽을 쳐다봤다.
“중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해졌고 이곳은 전장으로 삼기 올바른 곳이 아닙니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전장은 내 땅이 아니라 적의 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중국에서도 더 압박감을 느낄 테니까”
[아…….]
[아…….]
“최소 인원만 남겨 놓고 병력을 소집해 주세요. 바로 텐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재상님의 말이 옳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적의 땅에서 싸우는 게 낫겠네요.
하몽과 린하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맙습니다. 제 뜻을 따라 줘서. 그럼 병력이 오기 전에 린하이 님과 하몽 님은 먼저 베이징과 러시아로 넘어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많이 중국 수뇌부들을 붙잡아 주세요. 그리고 베이징 상공을 날아다니며 언제든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날려 줄 준비해 주세요. 혹여나 중국에서 전투기를 띄우거나 대한민국에 쳐들어갈 낌새를 보이면 바로 베이징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러시아는…….]
“그쪽은 전령만 보내시면 됩니다. 청방 길드에서 얼음 여왕의 마법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어려움을 외면했다고. 그리고 우리가 그걸 확보해 러시아로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려 주세요.”
[불의 인장이 새겨진 무구를 몇 개 들려 보내야겠군요.]
“네. 그럼 더 효과가 좋겠네요.”
아마 그걸 보면 러시아에서 화가 많이 날 거예요.
자신들을 도와줄 아이템이 있었으면서도 중국에서 모른 척한 거니까.
세훈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사무장님, 큰일 났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오크와 엘프 부대가 중국의 텐진을 점령했습니다.]
[텐진을 점령했다고?]
청방 길드에서 스카이 캐슬 본성에 쳐들어갔다고 보고 받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삼십만에 이르는 군인들도 게이트로 투입이 됐다며?
그 많은 병력을 반나절 만에 뚫어 버렸다고?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 리암은 놀람을 넘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전령을 쳐다봤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텐진은 물론이고 천 단위가 넘는 그리폰들이 베이징 상공 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들 상당수가 그리폰 부대에 의해 체포된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 세계 헌터 협회에 가입한다고 한 건 연막이었던 건가?!]
허락도 받지 않고 하얼빈까지 차지해 놓고 텐진까지 점령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3차 세계 대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리암은 낭패 어린 표정을 지으며 세계지도를 꺼내 들었다.
다렌, 선양, 길림, 하얼빈…… 텐진까지.
지도 위엔 중국의 동쪽 땅에 모두 스카이 캐슬 연합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연막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전쟁하려 했다면 저희가 여기 남아 있지 않았을 거예요.”
[지윤미 마스터…….]
“발키리, 그레이, 태백산맥, 마녀 부대. 사무장님은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4개 길드는 스카이 캐슬 연합의 창단 길드이자 최정예들이에요. 전쟁하려 했으면 우리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텐진에 가 있겠죠.”
안 그래요?
그 어떤 국가에서 최정예 병력을 타국에 대기시켜 놓고 전쟁을 치르나요?
“이세훈 재상님이 얘기한 것처럼 우린 평화를 사랑해요. 그래서 얼음 여왕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도우려고 하는 거고 또 세계 헌터 협회에 가입하려고 이렇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거고요.”
[흠…….]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도 아니고.
너무 뻔뻔하게 얘기하는군.
지금 러시아를 도우러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얼빈을 점령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텐진은 먼저 쳐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반격한 거고?
우리가 바보처럼 보이나?
리암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마스터님도 알다시피 UN은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구에 가입을 신청해 놓고 타국에 영토를 무단으로 침범하면 승인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얼음 여왕을 처단하기 위해선 수십만에 이르는 병력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비행기를 태워서 보낼 수도 없고. 육상으로 가야 하는 데 협조 요청을 할 땅의 주인이 정작 우리의 땅을 침범하니 저희로선 방법이 없었어요.”
저희를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따지고 싶으면 중국에 따지세요.
먼저 쳐들어온 건 그쪽이니까.
머리가 복잡 한 건 알겠는데 우리를 힐난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칼을 들고 내 집에 들어온 강도들을 그냥 내버려 두나요?”
재상님 명령이 있어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중국 주석의 머리는 내 손에 들려 있었을 테니까.
지윤미가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세를 내뿜으며 리암을 노려봤다.
“본국에 전달하세요. 2시간만 더 기다리겠다고. 그때까지 대답이 없으면 거절하는 거로 알고 저희도 중국으로 갈 겁니다.”
[중국으로 간다고요?]
“제 전우들이 싸우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가서 손을 보태야죠.”
[그 말은…… 거절하면 중국이랑 정말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승산이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많이 어려운 싸움이 되겠죠. 허나 일본이랑 대한민국. 그리고 러시아가 우리의 손을 들어 주면 그리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끙…….]
러시아라…….
리암은 앓는 소리를 내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러시아는 현재 스카이 캐슬의 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스카이 캐슬이 위기에 빠진 자신들을 구해 준다고 하는 유일한 헌터 집단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위기에 빠졌던 일본을 구해 주면서 대다수의 가입국이 스카이 캐슬에 우호적인 상태였고.
[2시간 안에 답을 받아서 갖다 드리죠.]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도 될까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중국은 이미 명분을 잃었어.
중국은 버린다.
스카이 캐슬과 함께해야 해.
리암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깨어났냐?”
“네.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은 거죠?”
“4시간 정도 잃었었다. 의사들과 힐러들이 와서 살펴보고 가긴 했는데 어디 불편한 데 있어?”
“없어요.”
몸이 좀 뻐근하긴 한 것 같은데 특별히 이상이 생기진 않은 것 같네요.
이것도 몇 번 해 보니까 적응이 됐나 보네요.
-적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막은 거야.
-너 조금만 더 정신줄 놨으면 생명력까지 다 폭발시킬 뻔했거든. 그럼 죽는 거였어.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고맙고.’
근데 어쩌겠어.
당장 눈앞에서 오크들이 죽어 나가는 게 보이는데.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정신을 차린 해용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왜 카프리 님만 계신 거죠? 다들 어디 갔어요?”
“이세훈 재상 지휘 아래 게이트 넘어갔다.”
“게이트를 넘어갔다고요? 왜?”
여기서 지키는 게 더 안전할 텐데?
“대충 들어 보니까 중국이 계속 쳐들어올 테니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지구로 넘어가서 싸우는 게 유리할 것 같다는 판단 아래 넘어갔다고 하더군.”
“아…….”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전쟁이 일으키기 싫어 그동안 무던히 노력했는데…….
뿌드득.
‘너희가 자초한 일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해용은 이를 갈며 무구를 챙겨 입었다.
1분이라도 빨리 가서 합류하기 위해서.
“무구 챙기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보네. 얘들아 들어와라.”
[네, 카프리 님.]
[네, 카프리 님.]
“다들 인사해라. 이 인간이 너희를 구해 준 스카이 캐슬의 지도자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아…….”
드워프들을 무사히 구출했구나.
다행이다.
혹여나 사고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일어들 나세요. 일찍 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무구를 챙기다 말고 수십여 명의 드워프들이 들어와 인사해 오자 해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닙니다. 영주님 덕분에 이제라도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되어 모두 행복해…….]
“인사는 그쯤 하면 됐다. 내가 만들어 오란 거 만들어 왔어?”
[네. 여기 있습니다.]
“흠…… 쓸 만하군. 영주야, 이거 착용하고 가라.”
“……?!”
반지는 갑자기 왜?
아티팩트인가?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드워프들이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상자를 바라봤다.
상자 안에는 붉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반지 2개가 들어 있었다.
“화령의 반지다. 그동안 청방 길드 놈들이 모아 놓은 코어랑 부산물들에 깃들어 있던 마나 추출해서 거기다 다 때려 박았다.”
“마나 팔찌가 있는데 굳이 왜?”
“화령의 반지라고 얘기했잖아. 마나 팔찌랑 다른 거야. 말로 설명하면 길어서 착용해 봐. 그럼 어떤 아이템인지 알게 될 테니까.”
“……네.”
설명 좀 해 주고 착용하라고 하면 참 좋을 텐데.
해용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화령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마나를 운용했다.
그리고 이내,
“으음.”
뜨거워,
절로 신음 소리가 나올 만큼 화기가 느껴졌다.
‘운디네!’
도와줘.
몸이 불타오를 것 같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저 미친 드워프 새끼.
이 정도 화기를 머금고 있는 아이템을 다짜고짜 착용하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해용의 부름에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운디네가 다급하게 물을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