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SSS급 정령사 (1)
“이번엔 뭐냐?”
“이번엔 뭐냐고?”
“미안한데 이제는 네가 그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면 불안해서 말이야. 그러니 꿍꿍이가 뭔지 말해.”
만약에 없으면 미안하다.
근데 왠지 내 감이 네가 또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해 주고 있거든.
그러니 이실직고하라고.
해용이 가자미눈을 뜨며 이세훈을 노려봤다.
불안했다.
이세훈이 뜻을 따라 주는 건 좋았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꿍꿍이라니!”
친구끼리 왜 그러냐.
네가 건국을 허락하고 왕이 된다고 했을 때부터 이제 너한테 숨기고 일을 진행할 필요 없거든!
“물론 화룡의 둥지로 가려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 서운하다.”
이세훈이 서운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얼굴을 붉혔다.
“그 이유와 목적이 다르니까 내가 지금 이러는 거 모르겠어?”
그러니 그걸 말하라고.
자꾸 나도 모르게 무언가 일 진행하지 말고.
‘친구야, 네 마음 알겠고 나도 이제 협조할 테니까 더 이상 욕먹을 짓은 하지 말자. 그럼 내가 너무 속상하단 말이야.’
눈에 힘을 주고 노려봤던 것도 잠시 해용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해갔다.
건국을 위해. 자신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자꾸 나쁜 짓을 하는 하려 하는 세훈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스날 대륙의 통일과 청방의 재물.”
“……?!”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화룡의 둥지를 차지하면 이곳 아스날 대륙에서 더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단체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청방 길드에서 모은 재물들마저 우리가 모두 차지할 수 있다면 스카이 캐슬의 발전은 더 빨라질 수 있잖아.”
그래서 협조를 하는 거다. 친구야.
넌 지금 드워프 종족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다신 청방 길드 같은 곳이 생기지 않게 싹을 자르려고 가려는 거겠지만…….
“그게 잘못된 거냐?”
이세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의 눈을 쳐다봤다.
건국을 꿈꾸고 준비를 하면서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하나뿐인 친구가.
‘같이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면 안 되는 거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버팀목이 되어줬던 존재가 계속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게 슬슬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쯧쯧.”
잘못된 거지. 그것도 아주 많이.
진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냐?
아스날 대륙을 통일하고. 청방의 재물을 차지하는 건 나도 좋다. 친구야.
근데 지금 네 머릿속과 마음속. 그리고 행동엔 사람이 없잖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 이세훈이 없잖아.
난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잡아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수정이랑 결혼해서 오순도순 사는 것을 꿈꾸고 있는데 왜 네 꿈엔 너에 대한 삶은 없는 거냐.
건국도 건국이지만 너도 나처럼 하루라도 빨리 결혼할 사람 찾아야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다.
난 네가 건국보다 너의 행복을 좇아 달려갔으면 하거든.
“안 되겠다. 넌…….”
건국만 하고 바로 내가 데리고 살아야 겠어.
재상이고 나발이고 나라 운영이 어찌 됐든 넌 내가 무조건 데리고 간다.
수호용인 해피도 있고. 김용규 본부장도 있고. 지윤미 마스터도 있고…….
그때가 되면 네가 없어도 잘 굴러갈 테니까.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됐다. 나중에 얘기하자.”
너도 나 몰래 계속 일 벌였잖아.
나도 말 안 해 줄 거다. 친구야.
씁쓸해했던 표정을 했던 것도 잠시 해용이 빙그레 웃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뭘 나중에 얘기해! 빨리 얘기…….”
“내 성격 모르냐. 말 안 한다고 하면 안 한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지휘부나 소집해. 바로 화룡의 둥지로 출정할 거니까.”
“지휘부 누구? 누가 필요한 건데?”
“뭐라는 거야. 또? 지휘부! 전부 소집을 하라고.”
“다들 출장 갔는데?”
“복귀한 게 아니고 출장을 갔다고?”
“어.”
끄덕끄덕.
발키리, 그레이, 태백산맥, 마녀 부대를 비롯한 스카이 연합은 세계 헌터 협회와 동맹을 추진해야 해서 대기시켰고.
재난 관리 본부, 플로라, 화랑 연합, 중립 연합, 다크 엘프 종족은 북한으로 넘어가서 북진 중이야.
현재 임무가 없는 부대는 여기 오크 부대랑 엘프 부대 그리고 그리폰 부대와 켄트 왕국 왕실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전부야.
‘요동 지역 일부와 만주 지역까지 점령할 계획이거든. 아, 그러고 보니 이걸 얘기 안 했구나.’
나도 이건 나중에 얘기해야겠다.
너도 말을 하다 말았으니까 나도 이건 나중에 얘기해 줘야겠다.
세훈은 현재 병력 배치 사항을 해용에게 보고했다.
“그래? 그럼 린하이 님이랑 퍼거슨 님이라도 바로 합류하라고 해. 저쪽에 연락이 가기 전에 도착해야 최대한 피해 없이 상륙할 수 있을 테니까.”
단숨에 끝내 버린다.
그래야 내 친구가 건국이 아닌 자신의 삶을 꿈꿀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화룡의 둥지가 있는 북서쪽을 바라보며 해용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 *
“덥다.”
“그러게.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야.”
청방 이 새끼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정착할 수 있었던 거지?
아직 바다 위인데도 이렇게 더우면 육지는 더 장난 아닐 텐데?
해용은 의문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얼음 팩을 목에 갖다 대었다.
정령과 계약하고 SS급으로 성장하면서 어지간한 더위와 추위엔 감흥이 없었는데 이곳 날씨는 그 범주를 넘어섰다.
“닻 내리라고 해.”
“닻을 내리라고? 설마 더워서 돌아가려고?”
“그럴 리가.”
더 다가가면 저쪽에서 우리가 보이잖아.
부우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웅.
해용은 갑판장을 보며 손을 들어 배를 멈춰 세웠다.
“린하이 님, 지금 본진에 남은 청방 길드 헌터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헌터들은 몇 명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켄트성 전쟁을 통해 10만이 넘는 헌터가 이탈했고, 스카이 캐슬에 쳐들어오며 수뇌부와 최정예 헌터들이 모두 죽거나 잡혀서 남아 있는 이들은 기껏해야 만 명 정도일 겁니다.]
“만 명이라…… 예상했던 것보단 많이 남아 있네요.”
[영주님도 알다시피 이곳에 정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건물을 짓고 발전을 시키려면 헌터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많이 필요하고 또 그들을 지키고 관리할 헌터들도 필요하니까요.]
“쩝. 만만치 않겠네요.”
해용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화룡의 둥지 지형지물이 그려진 지도를 쳐다봤다.
“해용아, 아니 영주님 왜 망설이시는 거죠? 만 명이라 해도 지금 우리의 숫자는 그 수십 배가 넘잖아요. 그냥 이대로 남쪽 해안에…….”
“그렇게 했다가 청방 길드 본진이 칼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우리한테 전멸했지.”
배를 대고 대규모 병력이 상륙할 곳은 남쪽 해안밖에 없는데 준비해 놓지 않았을까?
전쟁함에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그 방심으로 인해 이십만의 최정예 전사들을 이끌고도 수만의 헬퍼들한테 패배할 수 있는 게 전쟁이었으니까.
“만약 저들이 해안 쪽에 방비하고 있으면 우린 상륙을 하면서 엄청난 희생이 생길 거야.”
“그건 나도 아는데…….”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잖아.
위험하다고 해도 네 말처럼 우리가 상륙할 수 있는 곳은 남쪽 해안밖에 없으니까.
세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륙하려면 희생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영주님, 저희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쇼.]
“안돼요. 이대로 진격하기엔 너무 위험이 커요.”
[우리 오크들이 선봉에 서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돌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우리 오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적의 공격을 뚫고 빠른 시간 내에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용기라…… 그 용기 때문에 오크들이 수십만의 병력을 갖고도 채 수백도 되지 않는 우리에게 땅을 뺏기고 또 성까지 빼앗겼죠. 그건 용기가 아니라 그냥 무식한 겁니다.”
오키도키 님.
제 사람 아니 제 오크가 된 이상 그런 식으로 희생자가 생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해용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어떡하려고. 방법이 없잖아. 해안에 상륙해야 화룡의 둥지를 차지할 거 아니야.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 그마저도 안 하려고 하면 방법이 없잖아.”
“있어.”
“어?”
“있다고.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상륙할 방법이.”
“방법이 있다고?”
진짜 제갈공명이라도 된 줄 알고 착각을 하는 건가?
세훈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빠르게 해안에 상륙하려면 돌격을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은데…….
“자유 공원.”
“자유 공원? 갑자기?”
공원은 왜 찾냐?
“기억해 봐. 그곳에 뭐가 있는지.”
씨익.
해용은 빙그레 웃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에 있는 자유 공원.
어렸을 적, 해용이 동네 놀이터 가듯 찾아가서 놀았던 곳이고 그곳엔 남북 전쟁의 판도를 바꾼 지휘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 없는데…… 아! 인천 상륙 작전!”
팅!
세훈이 손가락을 튕기며 해용을 쳐다봤다.
“이제야 좀 감이 잡혔어? 어째 정치는 잘하는 것 같은데 전투는 내가 한 수 위지?”
씨익.
해용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린하이와 하몽을 쳐다봤다.
“두 분은 병력을 이끌고 날아가서 여기 동쪽과 여기 서쪽으로 가서 최대한 소란을 피워 주세요. 그리폰에 엘프들 태워서 갈 수 있죠?”
[가능하긴 한데 동쪽과 서쪽은 주요 시설이 없습니다. 굳이 병력을 분산시킬 이유가…….]
“얘기 드렸잖아요. 싸우라는 게 아니고 소란을 피우라는 겁니다. 적들이 해안이 아닌 그리폰 부대와 엘프 부대에 시선을 돌릴 수 있게. 그때 본진인 오크들이 상륙할 겁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에서 친다.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케 했던 핵심 병법.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천 상륙 작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맥아더 장군만 떠올리지만 실제로 그 작전에 성공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북한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장사리를 비롯한 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한국군의 영웅들이 있었다.
병법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고 역사에 관심이 많던 해용은 그 부분을 떠 올린 것이었다.
[성동격서군요. 목적이 뭔지는 알겠는데 이게 통할까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병법이라 떠올리지 않으신 모양인데 반대로 그래서 통할 겁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그 효과를 보기도 했고요.”
관건은 단 하나입니다.
그리폰 부대와 엘프 부대가 얼마나 리얼하게 연기해 주느냐.
거기서 판가름 나게 될 겁니다.
전쟁은 총과 칼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긴 한데. 스카이 캐슬의 번영을 위해서 눈 딱 감고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가고 싶은데 저도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펄럭펄럭.
펄럭펄럭.
해용은 미안함과 믿음이 서린 얼굴로 그리폰에 올라타는 엘프들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