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해피니스 제국 (8)
“모두 게이트로 이동해. 들어가서 바로 귀환 주문서를 찢는다.”
이 개새끼들. 다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 봐라.
뿌드득.
‘……다 죽여 버린다.’
해용이 서슬 퍼런 기운을 풍기며 게이트로 달려가 바로 귀환 주문서를 찢었다.
“영주님…….”
아나! 저리 서두를 필요 없는데…….
하여튼 성격 하고는.
해용을 붙잡으려다가 실패한 이세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병력을 멈춰 세웠다.
“오키도키 님이랑 하몽 님만 오크들과 엘프들을 데리고 넘어가시고 나머진 모두 대기하세요.”
[네.]
[네.]
세훈의 지시에 이십 만에 이르는 오크들과 수천의 엘프들이 귀환 주문서를 찢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왜? 우리는 막는 거죠?
청방 길드에서 쳐들어왔다는 얘기 같이 들으셨잖아요?
“그동안 스카이 캐슬 본성에 쏟아부은 돈만 수조 원이 넘어요.”
그 돈이 모두 발전을 위해서만 쓴 게 아니에요.
청방과 몬스터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최대한 방어에 유용하게 건물을 짓고 미스릴과 아만티움, 마나석, 사파이어들을 물 쓰듯 쏟아부었어요.
위험한 건 영지민이 아니라 청방 길드 헌터들이에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병력을 보며 세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러분들까지 비싼 주문서 소모하면서까지 텔레포트 할 필욘 없어요.”
“영지민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돈 때문에 저흴 막으려고 하는 건가요?”
아무리 재상님이라 해도 이번 판단은 따를 수가 없네요.
세훈의 설명에 지윤미가 정색하며 노려봤다.
“쯧쯧. 해용이한테 맞아 죽을 일 있나요? 돈 때문에 귀환을 막게. 전 카프리 님과 하몽 님이 설치한 마법진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헬퍼들을요. 그러니 우린 뒷일을 도모하자고요.”
해용이를 따라 전쟁을 하며 영토를 넓히느라 모르겠지만 우리 헬퍼들 실력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행주 부대 실력이야 직접 눈으로 봤으니 알 테고.
청방이 쳐들어와서 영지에 위협이 될 거라 판단됐으면 애초에 전군 출정을 하는 걸 그냥 두지 않았어요.
세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의 시선을 응시했다.
“저도 카프리 님과 하몽 님을 실력을 믿기는 하지만 이번엔 따를 수 없겠네요. 제가 직접 가서 눈으로 봐야…….”
“스카이 캐슬 재상으로서 명령입니다. 지시를 따르세요.”
그동안 제법 실력을 보여 준 것 같은데 아직도 날 신뢰하지 못한 건가?
해용이가 넘어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리고 혹시나 해 수십만의 오크 부대와 엘프 부대도 보냈잖아요.
“그러니 제발 제 말 좀 들으세요.”
어휴.
세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방금 들어서 알겠지만, 해용인 영지에 들어온 청방 길드 헌터들을 정리하면 바로 화룡의 둥지로 가려고 할 거예요. 노예로 붙잡혀 있는 드워프 종족을 구해야 하니까.”
“그거야 당연히…….”
“말 끊지 말고 들으세요. 그렇게 되면 중국이랑 전쟁이에요. 자국의 제 1길드가 우리랑 전쟁하고 아스날 대륙에 차지했던 영토를 잃으면 그 욕심 많은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
“……?!”
“표정을 보니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한 것 같네요. 당장 쳐들어온 청방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이 나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칠 수 있어요.”
이제 감이 오나요?
“그럼 저흰 뭘 해야 하죠?”
“지윤미 마스터님은 연합 병력과 함께 이곳에 머물면서 세계 헌터 협회에 가입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세요. 그래야 우리가 화룡의 둥지를 차지해도 중재할 수 있을 테니.”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전 해용이를 도와 화룡의 둥지로 넘어가 그곳을 점령할 테니. 여러분은 때에 맞춰 전쟁이 마무리될 수 있게 세계 헌터 협회를 우리 편으로 만들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죄송해요. 제가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아니에요. 이해해요. 저 역시 재상의 위치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 테니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세훈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와 이아영 마스터를 쳐다봤다.
“두 분은 한국 헌터 협회 소속 길드들과 린하이 님, 쿡쿠 님을 붙여 드릴 테니 한국으로 가서 북한으로 올라가세요.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언데드 몬스터들로 인해 혼란 상태라 우리 도움을 뿌리치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코가 석 자인데 지금 북한을 도울 이유가…….”
“없죠. 전 지금 북한을 도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스카이 캐슬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북한으로 올라가서 웨이브를 막으면 북한 병력을 회유해서 계속 북진을 하세요.”
“북진하라고요? 어디까지? 설마 중국 국경선…….”
“러시아까지. 다렌과 선양, 길림, 하얼빈까지 모두 점!령! 해 주세요.”
통일해도 한반도는 땅이 너무 작아요.
발해. 아니 옛 고구려가 차지했던 땅을 되찾아 와야 대한민국이 미래가 평안해질 테니까.
“그게 지금 무슨 말이죠? 전쟁을 막는다며 지윤미 마스터를 남겨 놓고 저희 보러 중국을 침략하라고요?”
“이런 제가 단어 선택을 잘못했네요. 점!령! 이 아니라 보!호!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얼음 여왕이 언제 밑으로 내려올지 모르니 그 4개 도시로 들어가 주민들을 보호해 주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사람이 많으니까.”
“…….”
“…….”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단어만 바뀌었을 뿐. 어쨌든 중국을 침략하라는 거잖아요.
김용규와 이아영이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지윤미 마스터님이 잘해 주시면 세계 헌터 협회에서 우리 손을 들어줄 겁니다. 그럼 중국도 어쩌지 못할 거예요. 우린 얼음 여왕에 의해 고통받는 러시아를 돕고. 위험에 빠진 주민들을 돕기 위해 가는 거니까요.”
그러니 다들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세계 헌터 협회와 전쟁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당장 바로 위에 있는 러시아와 척을 지는 거 역시 부담스러울 테니까.
여러분은 그냥 제 지시를 받고 러시아를 돕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럼 나중에 상황을 봐서 알 박기를 할 수 있게.
“모두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네.”
“……네.”
“그럼 전 여러분만 믿고 영지로 가 볼게요.”
모두 잘해 주리라 믿어요.
세훈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지휘부들과 눈을 마주치고 나서 귀환 주문서를 찢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핵폭탄이라도 터트린 건가?”
“핵폭탄이 아니라 멍청한 놈들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진 앞으로 알아서 기어들어 오더라고.”
“아…….”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다들 잘 싸워줬구나.
귀환 주문서를 찢어 영지로 텔레포트를 한 해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읔.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 제발 진통제 좀…….]
[저부터. 제발 저부터 치료 좀 해 주세요.]
영지 내에 신음 소리가 가득했지만 모두 청방 길드 헌터들의 소리였다.
“저자들은 왜 치료하지 않고 저렇게 두는 거죠?”
“목숨을 붙여 놓긴 했지만, 아직 부상자들을 치료하진 않았다. 포로로 잡힌 인원이 너무 많아서 치료했다가 혹여나 반항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
잘하셨네요.
근데 이제 우리가 왔으니까 치료를 하죠.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긴 하지만 저렇게 두는 건 아닌 것 같네요.
“하몽 님,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고 완치가 되면 모두 팔목과 발목은 물론이고 목에다가도 수갑을 채우세요.”
[목에도 말입니까?]
“네. 저들도 드워프 종족 목에다가 수갑을 채워 노예로 부리더군요. 똑같이 해 줘야죠. 마나 홀을 파괴하고 수갑을 채워 모두 광산에 보내세요.”
너흰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럼 적어도 곱게 죽을 수는 있었을 테니까.
‘알려 줄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해 주지. 평생.’
청방 길드 헌터들을 바라보는 해용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그런데 그때,
“오빠!”
와락.
“은솔아.”
해용의 동생 은솔이가 뛰어와 품에 안겼다.
“오빠 왜 이제 왔어요. 해피, 해피가 위험해요.”
“해피?”
해피가 누구지?
반려견이라도 한 마리 입양한 건가?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씨엘의 자식이다.”
“씨엘의 자식? 혹시 알에서 깨어난 건가요?”
“그래. 몇 달 됐는데.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나 보군.”
“아…….”
근데 해피가 위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알에서 느껴지는 기운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아무리 헤츨링이라고 해도 9티어 급 이상 몬스터가 아니면 위협이 되지 않을 텐데?
“오빠 어서요. 해피 구하러 가야 해요.”
“……그래.”
해용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은솔이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영주님…….]
“모두 뒤를 따라라. 영주가 가려는 곳에 청방 길드의 수뇌부들이 있으니까”
오크 부대와 엘프 부대. 그리고 헬퍼들까지.
해용이 움직이자 수십만의 대군이 그 뒤를 따랐다.
“동생 삼았다.”
“네?”
“네 동생 은솔이가 아스날 대륙의 유일한 드래곤이자 로드를 동생으로 삼았다고.”
“헐…….”
드래곤이 가만히 있어요?
해용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와 은솔을 번갈아 쳐다봤다.
“좋아하더군.”
“네?”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나도 드래곤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특히 헤츨링에 대해선 더더욱. 중요한 건 드래곤이 은솔이를 누나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솔이의 부탁으로 평생 스카이 캐슬을 지켜주기로 용언으로 맹세까지 했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맹세한 거지만 맹세는 맹세니까.
최하 오천 년에서 일만 년 동안 스카이 캐슬은 안전할 거다.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잘 키워서 성체가 되면 어지간한 마왕이 직접 찾아와도 다 찜 쪄 먹어 버릴 테니까.
“우리 은솔이가 정말 큰 일을 해냈네요.”
쓰담쓰담.
걱정 가득 귀환 주문서를 영지에 왔던 것도 잠시 해용이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으며 은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때,
“누나!”
“해피야!”
노란 머리에 노란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소년이 은솔이의 품에 안겨 왔다.
[젠장!]
우린 이제 죽었구나.
드래곤 한 마리도 버거운데 또 다른 드래곤이 오다니.
[안해용 영주…….]
하아…….
결국 도착했구나.
진즉에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
해피의 협박에 고기를 먹고 있던 김연창과 강유, 김지훈 그리고 청방의 헌터들은 모두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이 자가 마스터 김연창인가 보군.’
해용은 가장 강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김연창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흠…….”
뭐 이렇게 공손해?
수십만의 헌터들을 이끌던 마스터가 맞나?
고작 이런 자가 두려워 그동안 피해 다녔다니…….
휘이익.
“컥…….”
[마스터!]
[마스터!]
김연창이라는 것을 확인한 해용은 바로 달려가, 아니 날아가 마나 홀을 파괴했다.
[넌 적장에 대한 예의도 없는 것이냐. 차라리 죽여…….]
휘이익.
[컥…….]
“적장에 대한 예의는 얼어 죽을. 이곳 스카이 캐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너흰 더는 사람이 아니다.”
휘이익.
[컥…….]
강유.
김지훈.
해용은 살얼음 같은 차가운 기세를 풍기며 몸소 몸을 움직이며 마나홀을 파괴했다.
심문하고, 재판하고, 대화할 가치도 없었다.
그동안의 저질렀던 일들은 둘째치고 스카이 캐슬에 쳐들어온 사실만으로 이들은 편안히 죽을 자격도 없었으니까.
“하몽 님.”
[네. 영주님.]
“이들의 근맥을 모두 자르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광산으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네.”
으아악.
으아악.
해용의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숲에 비명 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리고 그때,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왜 이제 와?”
뒤늦게 귀환 주문서를 찢은 이세훈이 도착했다.
“왜긴. 이놈들 처리하면 화룡의 둥지로 갈 것 같아서 준비하고 왔지.”
“그래도 되겠어? 중국도 세계 헌터 협회 소속이라 일이 커지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데?”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냐?”
“아니.”
갈 거야.
드워프를 종족을 구해야 하거든.
그리고 그동안 이놈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분명 드워프 말고도 핍박받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거든.
“그러면서 왜 물어봐. 가고 싶으면 가. 친구가 가고 싶다고 하는데 보내 줘야지.”
해용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이세훈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