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해피니스 제국 (6)
[마스터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우리 청방 길드에서 크라켄을 처치했습니다.]
[축하? 지금 축하라고 했나?]
[……!]
지금 저 모습을 보고도 축하라는 말이 나와?
고작 문어 대가리 한 마리 해치우겠다고 길드 최정예 전사들 수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청방 길드의 마스터 김연창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화룡의 둥지 남쪽 숲을 쳐다봤다.
무려 6개월이었다.
석유가 나오는 비토섬을 뺏기고, 성수가 생성되는 켄트성을 뺏기고도 계속 갇혀 있었다.
성질 같아선 바로 스카이 캐슬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대왕 문어 크라켄으로 인해 바닷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훈아, 지금은 자축할 때가 아니라 크라켄을 이용해 우리의 재산과 땅을 빼앗은 스카이 캐슬에 복수해야 할 때다. 그리고 크라켄과 싸우다 죽은 전사들의 넋을 위로해 줘야 해. 바로 스카이 캐슬로 진격을 할 거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출정 준비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새끼가 자기도 좋으면서 분위기 잡기는.
내가 몰라서 그러냐?
크라켄 잡느라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서 분위기 좀 바꿔보려고 그런 거잖아.
[집합!]
청방 길드의 부 마스터 김지훈은 김연창의 눈을 피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병력을 집결시켰다.
헌터 십만 병.
군인 십만 병.
수송선 1,000척.
크라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청방 길드는 부족한 인원을 현대 무기로 무장을 한 군인들로 채워 놨다.
그런데 그때,
[마스터님, 재고해 주십쇼. 지금 바로 스카이 캐슬로 출정하는 건 무리입니다.]
[무리라고?]
청방 길드의 또 다른 부마스터 강유가 마스터 김연창의 앞을 막아섰다.
[크라켄과 싸우느라 20시간이 넘게 병사들 모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가면서 자면 되잖아! 식사도 조금만 참았다가 스카이 캐슬에 있는 걸 먹으면 되고.]
[마스터님…….]
[이번엔 네가 양보해. 꼼지락거리다가 안해용 그놈이 복귀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 몰라?]
[그렇긴 한데…….]
병사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
[이왕 고생한 거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해. 스카이 캐슬에만 도착하면 배부르게 고기도 먹고 여자들을 마음껏 안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뭐가 무슨 말이야. 약탈을 허락한다는 거지.]
그 정도면 보답이 되지 않겠어?
저 멀리 병사들을 쳐다보는 김연창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약탈이라니요! 불가합니다. 세계 헌터 협회에서 알게 되면…….]
[그놈들이 어떻게 알아? 다 죽여 버릴 건데? 그리고 설사 알게 된다 해도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겠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잖아?]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 가 있는 길드원의 보고에 의하면 이세훈 재상이 리암에게 세계 헌터 협회 가입 의사를 밝힌 건 물론이고 자처해서 러시아로 가 얼음 여왕을 처치하겠다고까지 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간 세계 헌터 협회에서 우리가 아닌 스카이 캐슬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더더욱 서둘러야겠네. 그놈들이 협회에 가입하면 우리가 움직이는 게 더더욱 어려워질 테니까. 그 전에 얼른 가서 수뇌부 놈들 가족들 싹 다 잡아 오자고.]
씨익.
감히 우리를 건드려 놓고 본성을 비워?
오늘 그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흐흐.
터벅터벅.
더는 실랑이를 하기 싫다는 듯 김연창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수송선으로 걸어가 올라탔다.
[강유야, 마스터님 그만 괴롭히고 얼른 타라. 마스터님 말대로 석유와 성수를 되찾아오고 미스릴 광산을 뺏으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멍청아, 너까지 이러면 어떡해?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라도 나면…….]
[그 전쟁 안 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정신 제대로 박힌 놈들이라면 자기 가족들이 모두 우리 손안에 있는데 우리한테 덤비겠냐?]
잔말 말고 얼른 타라.
짜증 나려고 하니까.
병사들을 봐라.
쟤네들도 다 근질거려 하잖아.
우리 괜한 거로 실랑이하지 말고 얼른 가서 회포 좀 풀어 보자고. 흐흐.
김연창을 따라 수송선에 올라탄 김지훈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얼른 올라타라며 손짓했다.
‘다들 석유와 성수 때문에 미쳐있어.’
[말려야 하는데…….]
[강유 형님. 올라타시죠. 말리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으로선 함께 가서 두 분의 뜻에 따라 최대한 빨리 납치를 해서 돌아오는 게 최선입니다.]
[……그래.]
하아…….
불안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적이라 하나 군인도 헌터도 아닌 일반인들을 학살하고 또 납치하는 작전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하나 그에게 지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마스터와 자신과 같은 위치인 또 다른 마스터가 의견을 합쳐 결정을 내렸기에.
강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수송선에 올라탔다.
* * *
[다 왔나?]
[네. 그렇긴 한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잠시 대기 중입니다.]
오후 1시인데?
해무가 왜 이렇게 심한 거지?
강유는 불안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스카이 캐슬 본성이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안개 때문에 대기 중이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선착장 어디 있는지 몰라?]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리로 대면 되잖아. 저놈들도 배가 드나들고 있으니 그 길을 따라가면 암초 같은 건 없을 거 아니야?]
[암초 때문이 아니라 혹시 모를 위협이 있을까 해서 대기 중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스카이 캐슬 본성과 연결된 선착장은 요새와 같습니다.]
[요새?]
[네. 선착장 근처에 20층 높이의 빌딩들이 빽빽이 지어져 있는데 그것들이 성벽의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그곳을 방패로 원거리 공격을 해 온다면 저희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쯧쯧. 우리 군사님께서 생각이 너무 많고만. 병력이 모두 일본으로 가 있다며? 그런데 우리에게 공격할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기껏해야 수백 단위겠지. 그 정도는 뚫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배 붙이라고 해.]
[마스터님!]
[어허! 오늘 진짜 왜 그러는 거야? 이 해무 때문에 우리도 앞이 제대로 안 보이지만 저들도 마찬가지일 거 아니야. 그런데 무슨 수로 우리가 온 줄 알겠어. 시키는 대로 해. 병사들도 병사들이겠지만 나도 배가 고프다고. 얼른 가서 우리 밥 좀 먹자.]
[끙…….]
불길한데…….
강유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올렸다.
마음 같아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서려 있는 이 해무가 모두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배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김연창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30시간.
찝찝하다는 이유로 병력을 계속 대기시키기엔 다들 너무 오랜 시간 굶었다.
게다가 이렇게 시간을 축내다가 안해용 영주가 돌아오면 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었으니까.
* * *
[거 봐. 내가 아무런 문제 없을 거라고 했잖아.]
[……네.]
[작전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모두 돌격해. 즐겨 보자고!]
선착장에 내린 김연창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돌격을 명령했다.
빈집 털이.
스카이 캐슬의 병력 대부분이 일본으로 가 있기에 김연창의 얼굴엔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휘이익.
[으읔.]
휘이익.
[으읔.]
먼저 뛰어갔던 헌터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만티움 화살입니다. 저쪽에서 우리가 온 걸 눈치챈 것 같습니다.]
[이런 상놈의 새끼들이 감히! 어서 돌격해. 몇 명 되지 않을 거야.]
여유로운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김연창을 소리를 지르며 병력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내,
스르륵.
스르륵.
[으읔.]
[으읔.]
화살이 날아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병력이 볏짚 쓰러지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스터님 큰일 났습니다. 정박해 놨던 수송선이 모두 폭파됐습니다.]
[폭파됐다고? 이놈들 영지에 미사일이라도 들여놓은 건가?]
[아닙니다. 마법입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같습니다.]
1,000여 척의 수송선이 화마에 감싸 바다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스터님 산개해야 합니다. 이대로 돌격을 하면 전멸입니다.]
[젠장! 흩어져.]
빌어먹을.
미티어 스트라이크라니.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이 많은 상위 마법사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김연창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지르며 병력을 산개시켰다.
* * *
[강유야,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마스터님은 괜찮으십니까?]
[나도 괜찮다. 근데 병력은 얼마나 남은 거냐?]
[백여 명 정도 저희를 뒤따라왔습니다. 나머진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처럼 다들 백여 명 단위로 모여 숨어 있을 겁니다.]
제가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유는 원망스럽다는 듯 김연창을 지그시 노려봤다.
[강유 너 인마. 마스터한테 눈빛이 왜 그래. 눈 똑바로 안 뜨냐.]
[속상해서 그러잖아. 내가 분명…….]
[됐고. 이미 지나간 일 얘기해서 뭐 하냐. 서로 가슴만 아프지. 우리 앞으로의 일만 얘기하자고. 아까 날아오는 화살도 그렇고 미티어 스트라이크 숫자도 그렇고 저놈들도 숫자는 얼마 안 된다. 기껏해야 일만 단위였어. 지금이라도 병력을 찾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안 돼. 우리에겐 얼마 시간이 없어.]
본성을 쳐야 해.
수십만에 이르는 병력이 산개해서 분명 저들도 우리의 행적을 놓쳤을 거야.
병력을 찾을 게 아니라 본성으로 들어가서 수뇌부를 잡아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
강유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스카이 캐슬 본성을 쳐다봤다.
[안해용 영주의 가족과 그리고 각 길드의 수뇌부들 가족들부터 잡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가능할까?]
[네. 가능합니다. 병력이 모두 분산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들 역시 그만큼 시선에 분산됐을 테니까요.]
이대로 스카이 캐슬 본성으로 가야 합니다.
S급 헌터 3명과 A급과 B급으로 이루어진 친위대 100명.
[지금으로선 소수 정예 부대로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이 옆에 절벽을 올라가서 산맥을 타고 우회하면 스카이 캐슬 본성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바로 이동하자.]
진즉에 군사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내가 경솔했다.
지금부터라도 네 지시를 따르마.
김연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부 마스터님. 이쪽으로 오셔서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병력 수백이 죽어서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무슨 공격을 받았기에…….]
가슴 부분이 다 뭉개져 있는 거지?
강유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 누워있는 헌터의 갑옷을 매만졌다.
[면적이 제법 넓은 무언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것 같은데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헌터가 있었나?]
[철퇴 아니야?]
[철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철퇴에 당했다고 보기엔 상처들이 다들 너무 뭉툭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부대가 있는 건가?
나름 스카이 캐슬에 대해 많은 것을 조사했다고 생각했는데…….
강유의 얼굴에 다시 걱정이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