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해피니스 제국 (4)
‘브레드보단 강한 것 같긴 한데, 거대 여왕개미보단 약하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에르메스 검을 곧추세우며 해용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작 이 정도 인원으로 나의 종속들을 다 해치웠다고?]
“의념을 전달할 줄 아는군.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일반 몬스터는 아니었나 보네.”
이놈 이성이 있다.
시간을 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단숨에 해치우자!
“헙.”
일정 거리를 두고 리치가 이동을 멈추자 해용이 먼저 자리에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켄트 왕국의 성검. 에르메스에서 바닷속 깊은. 심연의 빛을 띠며 검강이 퍼져나갔다.
[……텔레포트.]
벌레 같은 놈이! 얘기하고 있는데 공격을 해?
종속들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했더니 카시오페아의 선택을 받은 자인가 보네.
정면 상대를 하면 위험하겠어.
[……깨어나라!]
해용의 검강을 피한 리치의 몸에서 강력한 마나가 뿜어져 나와 대지를 진동시켰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언데드의 왕 리치.
그의 명령에 하얀색 갑주를 차려입은 수백 마리의 기사들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데스 나이트?”
7마리라고 했는데?
너무 많은데?
해용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방패를 추켜세웠다.
언데드에 상성이 좋은 에르메스 검을 이용해 단숨에 해치우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버러지 같은 놈이! 고작 성검 하나 들었다고 나와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어.”
지금 겁먹은 것 같은데?
에르메스 검 무서워서 똘마니들 불러낸 거잖아?
“발렌!”
[어떻게 데스 나이트를…….]
“싸우려고 왔는데 그런 것도 설명해야 하나?”
7티어에 이르는 수백의 데스 나이트를 보고도 해용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데스 나이트 로드 발렌과 듀라한들이 있기에.
게다가,
“모두 화살 장전해. 내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발사한다.”
“네!”
“네!”
해용의 뒤엔 창천의 활과 미스릴 화살로 무장한 수만의 병력이 있었으니까.
일본에는 위협적인 존재였을지 모르겠으나 스카이 캐슬 연합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난 아스날 제국의 위대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저놈들부터 좀 해치워.”
[아스날 제국으로 가야 하는데…….]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해용의 지시에 발렌과 듀라한들이 리치의 데스 나이트들에게 달려들었다.
“발사!”
스르륵!
스르륵!
“으으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
저놈 에르메스 검을 두려워하고 있어.
영주님이 다가갈 수 있게 데스 나이트는 우리가 상대해야 해.
“권수정! 박민정! 윤다영.”
“넵!”
“넵!”
에르메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을 꺼리는 걸 눈치챈 지윤미 마스터가 진형을 움직여 리치와 데스 나이트를 감싸기 시작했다.
‘역시 지윤미 마스터야.’
그럼 다시 공격을 해 볼까.
“이얍.”
실프 도와줘!
-오케이. 알았어. 나만 믿어.
장애물이 사라진 해용은 다시 리치를 향해 뛰어올랐다.
카프리에게 수련을 받고 바람의 정령 실프의 도움을 받은 해용의 몸은 마치 하늘을 날 듯 높이 뛰어올라 리치에게 다가갔다.
“합!”
[으읔.]
“하압.”
[크으.]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미티어 스트라이크.]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디스!]
죽어버려!
해용의 공격에 위기를 느낀 리치가 마법을 난사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디스.
파이어 윌.
.
.
.
하나, 하나가 모두 상위 마법사들이 오랜 시간 스펠링을 해야 발현할 수 있는 고위 마법들이었다.
그런데,
“아, 깜짝이야! 9티어는 9티어라는 건가? 이 와중에 마법을 다 발현하고?”
[어떻게…….]
멀쩡한 거지?
분명 마법이 명중했는데?
드래곤?
거대 여왕개미?
아스날의 성물?
어찌 한 명의 인간에서 이리 많은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카프리가 자신할 만하네. 미티어를 맞고도 이리 멀쩡한 걸 보면. 잘 가라!”
푸욱!
[으읔.]
리치가 당황하는 사이 해용은 가슴에 에르메스의 검을 쑤셔 넣었다.
“뭐야? 마법이었던 거야?
[으읔.]
거인족인처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던 리치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살려…….]
푸욱!
[으읔.]
“설마 지금 살려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
푸욱!
[으읔.]
9티어급 몬스터를 상대하며 방심은 있을 수 없다.
에르메스의 검의 신성력에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리치를 상대로 해용은 계속해서 검을 쑤셔 넣었다.
[영주님! 뺐다 꼈다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있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로브에 상처 그만 내십쇼.
그것도 마계의 성물입니다.
리치의 로브만 입으면 저도 10티어 급 마법을 난사할 수 있습니다.
후방에서 화력 지원을 하고 있던 하몽은 승리가 확실시되자 앞으로 뛰어나와 해용을 말렸다.
리치의 로브.
리치의 모자.
리치의 지팡이.
.
.
.
리치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하나하나가 모두 마계의 성물로 보였는데 그대로 두면 해용이 다 부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놈이…….”
[꽂아 두고 있는 게 더 대미지가 많이 들어갈 겁니다. 제아무리 언데드의 왕이라 하더라도 카시오페아 님의 신성력이 담긴 성물을 몸에 꽂아 놓고 힘을 사용할 순 없습니다.]
“흠…….”
알았어요.
불안하긴 하지만 하몽 님이 말씀하시는 거니.
마음 같아선 난도질을 해서 1초라도 빨리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해용은 리치의 몸에 박힌 에르메스의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가만히 기다렸다.
[사, 살려 주십쇼.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널 어떻게 믿고?”
[하데스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목숨만…….]
“하데스?”
[네! 아는지 모르겠지만 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다가 어기면 마나가 흩어집니다. 절 종속으로 거두면 큰 도움이…….]
“됐어. 그냥 죽어. 제법 구미가 도는 제안이긴 하지만 넌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어. 너 때문에 일본 전역의 땅이 황폐해졌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거든.”
이제 스카이 캐슬의 국민이 될 일본인들을 위해서라도 널 살려주긴 어려울 것 같네.
해용은 리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멍청한 놈. 얼음 여왕님께서 내 복수를…….]
리치의 움직임이 멈췄다.
“걱정했는데 금방 마무리를 하셨네요.”
“데스 나이트는 이미 영주님으로 인해 공략법이 나왔으니까요. 상대하는데 헤맬 이유가 없죠.”
수고하셨어요. 영주님.
우리의 승리에요.
지윤미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지그시 쳐다봤다.
대 승리.
해용이 혼자 리치를 상대해 준 덕분에 아군의 피해는 미비했다.
무려 일본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리치와 데스 나이트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 웨이브를 스카이 캐슬에선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종지부를 찍었다.
“영주님 만세!”
“스카이 캐슬 만세.”
[바다의 수호신 만세!]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했던 히로마시 대륙에 해용과 스카이 캐슬을 찬양하는 음성이 널리 울려 퍼졌다.
* * *
「SK에 대한 대응은 리암 사무장의 판단을 존중하며 전권을 부여함.
스카이 캐슬의 건국 인정.
과거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대한민국의 보상 문제.
.
.
.
성수와 미스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스카이 캐슬에서 원하는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 바람.」
[다행이다. 다행이야.]
휴우.
이세훈의 허락을 맡아 상부에 스카이 캐슬의 전력을 보고했던 리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명령서를 쳐다봤다.
‘세계 최강국 자리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스카이 캐슬 연합과는 적대 관계가 되어선 안 돼. 안해용 영주 한 명만 본국에 쳐들어와도 우린 멸망이야!’
9티어급 몬스터를 이리 쉽게 해치우다니…… 괴물은 리치가 아니라 안해용 영주야.
‘동맹을 맺어야 해.’
리암은 떨리는 몸을 겨우 애써 다 잡으며 이세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재상님…….]
“어떻게 됐나요? 전투기 출동은 취소됐나요?”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벌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쉽네요. 내심 미국이 건드려주길 바랐는데…….”
제법 인정받는 자인가 보네.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고작 한 사람의 판단으로 이리 태도를 달리 하는 걸 보면 말이야.
이세훈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리암을 쳐다봤다.
[제 독단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애초에 본국에선 전투기를 출정할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쇼.]
“그래요? 근데 당신의 판단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원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쇼. 성수와 미스릴을 수출해 준다면 그 어떤 조건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조건도요? 핵!”
[네?]
“제가 핵미사일을 달라고 해도 주실 건가요?”
[네. 드리겠습니다. 저희의 과오를 용서하고 스카이 캐슬과 우호적인 관계로 지낼 수만 있다면! 다만, 재상님도 공식적으로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용서해 드리죠.
핵미사일을 달라고 해도 준다는데 척을 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이세훈은 빙그레 웃으며 리암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제 보셔서 알겠지만 우린 건국을 할 겁니다. 미국도 스카이 캐슬의 우방국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하네요.”
[가, 감사합니다.]
“세부 사항은 정리한 후에 다시 한번 얘기를 하는 거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건국하는 게 훨씬 수월하게 될 것 같네요.
일본에 이어 미국까지. 아니 미국에서 인정해 준다면 굳이 6개 국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흔들흔들.
흔들흔들.
리암의 손을 붙잡고 악수하는 이세훈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남은 마왕은 얼음 여왕 하나입니다.]
“네?”
[게이트를 넘어 지구에 온 마왕은 총 셋이었습니다. 데몬과 발록 그리고 얼음 여왕까지. 그리고 그중에 발록은 우리 미국에서 해치웠고. 데몬도 영국 헌터 협회에서 해치웠다고 합니다.]
“……?!”
[미국과 영국 수뇌부에서만 아는 특급 비밀이긴 하지만 스카이 캐슬의 동맹국으로서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될까 하고…….]
“아…….”
미국과 영국이라…….
얼음 여왕은 러시아에 있으니.
이놈들 세계 최강국들을 점령해 지구를 정복하려 했던 거였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스카이 캐슬의 동맹국으로써 당연히 공유해야 할 정보를…….]
“그것 때문에 감사하다는 게 아니에요. 스카이 캐슬의 재상이 아니라 이 지구에 사는 한 사람의 사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우리 혼자 마왕 놈들을 다 상대해야 하나 싶었는데 미국과 영국에서 이미 처치를 했다니.
정말 고맙고 또 힘이 되는 정보네요.
‘언제까지 싸워야 하나 너무 막연했는데. 곧 끝낼 수 있겠네요.’
해용이 놈도 많이 좋아할 것 같네요.
세훈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리암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지현 씨.”
“네!”
“지휘부를 소집해 주세요.”
얼른 이 사실을 지휘부에 알려 우리 러시아로 바로 이동하죠.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조금 단조롭고 지루했지만,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세훈은 흥분 가득한 얼굴로 러시아가 있는 서쪽 하늘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