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해피니스 제국 (1)
“그 어떤 나라 앞에서도 눈치 보지 않는 나라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건국을 반대하고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한 것이 후회될 만큼 멋진 말이었다.
편부가정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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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평생을 살아오며 이래저래 눈칫밥을 먹었던 해용은 ‘눈치’라는 단어에 근원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자신이 됐건.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됐건. 나라가 됐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게 너무 싫고 짜증 났다.
해용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이세훈을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네 계획이 뭔지.”
단순히 내 힘만 믿고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을 도발한 건 아니지?
“도우려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너 정치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냥 지금처럼 반대만 하지 않으면 돼.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니 도울게. 아무리 네가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잖아. 스카이 캐슬의 영주로서 내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데 당연히 나도 협조해야지.”
스카이 캐슬을 그런 강대국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계획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당연히. 아니 무조건 협조해야 했다.
건국을 반대할 게 아니라면 지금으로선 이세훈에게 협조하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이미 그는 건국하는 길을 걷고 있기에 힘을 보태야 다가올 위험도 줄이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뭐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면 공유를 해야지. 너도 봐서 알겠지만 일단 내 첫 번째 목표는 일본을 무릎 꿇리는 거였어.”
“그건 이미 90% 이상 이룬 거 아닌가?”
일본 수뇌부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에서 일왕이 내게 무릎을 꿇었잖아.
내일 리치를 해치운다고 해도 언데드 몬스터들까지 모두 해치우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니 일본은 성수와 미스릴 때문이라도 우리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겠어.
지금까지 벌어진 일의 보고 말고. 앞으로 뭘 할 건지 얘기를 하라고 친구야!
“맞아. 근데 내가 이 얘기를 한 건 앞으로의 계획을 듣기 전에 다가올 문제에 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야. 이제 일본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다름이 없지. 근데 문제는 지금부터야. 미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우리가 일본과 힘을 합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아! 그렇겠네. 대한민국과 일본이 힘을 합치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굴게 하는데 부담이 될 테니까.”
“그래. 맞아. 그래서 내 두 번째 계획은 미국과 중국의 견제를 막아내면서 통일을 시킬 생각이야.”
“통일?”
갑자기?
북한마저도 먹겠다고?
“어. 통일. 일본이 아무리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어도 스카이 캐슬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들어줄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어.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과 대적할 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잖아.”
“흠…….”
“물론 당장 북한에 살던 사람이 내 옆집으로 이사 오고 막 그렇게 만들겠다는 건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강대국이 되려면 넓은 땅과 자원도 중요하지만, 인구가 많아야 하잖아. 그래서 일단은 무력으로라도 북한을 접수해 둘 생각이야.”
“무력으로?”
북한을?
걔네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걔네 핵미사일도 만들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미국이 그동안 예뻐서 북한을 가만히 놔둔 게 아닐 텐데?
그리고 우리가 북한을 접수하면 중국과 러시아에서 가만히 있을까?
우리를 미국과 한편으로 여기는 걔네 입장에선 그걸 핑계로 전쟁마저 하려 할지도 모르는데?
해용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일본이야 리치와 데스 나이트로 인해 이미 국토가 황폐화되고 정부가 마비되어 점령할 수 있었지만, 북한은 상황이 달랐다.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하늘의 도움을 받아 까다로운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지는 몰라도. 북한은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없었고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다른 나라와도 거미줄처럼 이해관계가 얼키고설켜 있었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네가 염려하는 것처럼 총과 칼로 북한을 상대할 생각은 없으니까. 북한은 다크 엘프들과 좀비들을 보낼 거니까.”
“좀비…… 설마 너…… 북한도 일본처럼 만들려고 하는 거냐?
“넌 내가 히틀러로 보이냐? 전부 다 감염시키겠다는 게 아니고 북한 수뇌부만 감염을 시킬 거야.”
사유 재산 제도의 부정과 공유 재산 제도의 실현으로 빈부의 차를 없애려고 한다며 사람들을 현혹해 놓고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놈들만.
“그놈들만 감염을 시키고. 또 죽이면 북한은 우리한테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거야. 현재 언데드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진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흠…….”
괜히 물어봤나?
왜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지…….
해용은 미간을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해용도 통일을 위해 움직이는 건 찬성이었다. 다만 그가 원하는 방법은…….
“평화 통일하는 방법은…….”
“없어.”
알면서 왜 그러냐?
평화 통일이 될 수 있었으면 진작 통일이 되었겠지.
북한 수뇌부 놈들을 떠나서 중국이랑 미국 때문에 불가능한 거 알잖아.
그놈들 입장에선 지금처럼 한반도가 반으로 갈라져 있어야 컨트롤하기 쉬우니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그러게 내가 그냥 모른 체하라고 했잖아. 네 심성으론 허락하기 어려운 일들이야. 그러니까 그냥 지금처럼 몬스터 레이드에만 집중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도 내가 다 짊어질 테니까. 넌 착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라.
“……그래.”
미안하다. 친구야.
네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또 동의하는데 가슴이 자꾸 반대하네.
내가 끼어들면 방해가 될 테니까 그냥 한발 뒤로 물러나 있을게.
해용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간의 대화였지만 해용은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과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그럼 난 일단 내일 레이드 때 있는 힘을 다 개방해서 싸우면 되는 거지?”
“어. 맞아. 내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일단 미국 콧대부터 꺾어 놔야 하거든. 그러려면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줘야 해. 네가 무서워서라도 함부로 도발하지 못하게.”
상놈의 새끼들.
마음 같아선 다크 엘프들 보내서 너희 수뇌부들도 싸구리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해용이가 평화를 원해서 참는 거야.
그러니 더는 설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여차하면 다크 엘프들이랑 마녀 부대 보내서 싸구리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이세훈이 시리도록 차가운 기세를 풍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핵이 있어야 해.’
자주 국방이 이루어져야 건국을 해도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을 테니까.
해용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세훈은 북한을 차지하게 됐을 때 따라올지도 모르는 한 가지 더 이득을 기대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개발하는. 아니 어쩌면 개발이 완성됐을지도 모르는 핵폭탄과 핵미사일을.
카프리와 하몽으로 인해 이능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발달 되어 있지만 스카이 캐슬엔 현대 무기가 없었다.
그것이 불안했다.
엔트 키트와 미스릴 광산을 빼앗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헌터 협회에서 스카이 캐슬 본성을 도모하려 했던 것처럼 몬스터로 인해 궁지에 몰린 그들이 정신이 나가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기에.
그들이 미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면 반드시 핵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쉬이 건드리지 못할 테고 여차하면 다 같이 죽자고 협박도 할 수 있으니까.
“다스 님, 계신가요?”
[네. 옆에 있습니다.]
“잘됐네요. 지금 영주님이랑 대화한 얘기 들으셨죠. 허락이 떨어졌으니 전사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평양 전부.”
[네?]
“일본처럼 북한의 수도를 모두 언데드 땅으로 만들어 주세요.”
[……?!]
아까 분명 영주님한테 수뇌부들만…… 죽이거나 전염을 시킨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다크 엘프 종족의 차기 족장 다스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해용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과 다른 명령이 하달됐기 때문이었다.
“알 만하신 분이 왜 그러세요. 수뇌부들만 죽고 전염이 되면 너무 인위적이잖아요. 북한 애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럼 분명 눈치를 챌 거예요. 그러니 평양 전부를 다 언데드화 시켜주세요. 그럼 북한도 일본처럼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릴 테니까.”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건데 너무 큰 죄책감을 가질 필욘 없어요. 두 달. 언데드에 감염되도 그 전에 엔트 키트와 성수로 치료하면 되돌릴 수 있으니 그리 많은 사상자가 생기지는 않을 거예요.”
[……네.]
저야 북한 사람들 몇만 명 죽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지만, 해용이는 그러지 않을 테니 대부분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게 될 거예요.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다스에게 명령을 내리는 이세훈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 * *
「찰리 파견 보고서.
1. 알파를 제외한 찰리 수뇌부 전원 사망. (언데드와 타란툴라의 독 증상이 있었지만 SK쪽에서 암살을 한 것으로 사료됨.)
2. SK의 브라보에게 알파 무릎을 꿇음. (생존을 위해 SK의 속국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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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K쪽에서 라이언 레이드에 성공한 즉시 조치가 필요함. ST 투입 요망.」
[로간 넌 이걸 가지고 바로 본국으로 귀환해.]
[정말 이대로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우리로선 감히 레벨조차 측정이 되지 않는 자만 열 명 가까이 됐습니다.]
그자들 모두 S급 이상의 헌터였습니다.
사무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S급 헌터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놈들인지.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 보좌관 로간은 염려하는 표정으로 리암을 쳐다봤다.
[그래서 ST를 투입해 달라고 하는 거잖아.]
코드명 ST라 불리는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
일반인들이 UFO로 알고 있는 미국의 비밀 무기.
완벽에 가까운 스텔스 기능은 물론이고 대기권 아래에서는 마하의 속도로 움직이며 중력마저 무시하고 수직 상승과 후진까지 되는 비행체 아니 우주선.
미국에 출몰한 마왕 발록을 세계 헌터 협회에서 미쳐 눈치를 채기도 전에 해치웠던 미국의 최종 병기였다.
[S급이고 자시고 언데드가 아닌 이상 미사일 맞으면 다 죽게 되어 있어. 우리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야. 성수와 미스릴을 차지해서 언데드의 부활 능력과 타란툴라, 라미아의 독을 해결만 할 수 있다면 몬스터는 물론이고 S급 헌터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과연 그럴까요?]
저도 미국의 전투력을 알고는 있지만 왜 이렇게 걱정이 되죠?
[이 봐! 로간!]
지금 나의 판단에 항명이라고 하겠다는 거야?
[……귀환하겠습니다.]
로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리암이 건네준 보고서를 품에 넣었다.
불안했다.
많이 불안했다.
스카이 캐슬과 화친이 아닌 적대 세력으로 분류한 리암의 판단이 불안했지만 차마 더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다.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운영되는 조직 특성상 상급자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기에.
[멍청한 놈. 미국의 한 주 만한 땅덩어리에 사는 놈들이 뭐가 무섭다고. S급이고 나발이고 언데드가 아닌 이상 총 맞고 미사일 맞으면 다 죽게 되어 있는 것을.]
리치만 처리되면 성수는 물론이고 미스릴과 스카이 캐슬의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차지한다.
보물은 그것을 지킬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게 자연의 섭리거든. 흐흐.
로간이 떠나가는 것을 확인한 리암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검과 방패를 착용했다.
리치를 처리하기 위해 출발하는 스카이 캐슬 연합에 합류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