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리치 (9)
“이분인가요?”
“네. 지시하신 대로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요를 만드시는 분 중에 최고 실력자를 모셔 왔어요.”
“박은정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세훈이라고 해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에스코트를 잘해 주셔서 편하게 왔어요. 동요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만들면 될까요?”
“실력이 좋으시다고 하니 어렵지 않게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템포는 최대한 간단하고 반복적으로 해서 사람들 머리에 쉽게 인식이 되게 하고 내용은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볼펜을 어디에 뒀더라.
대답하다 말고 세훈은 A4용지를 찾아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해용. (海龍)
“일본의 서쪽 바다를 지키는 수호용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당도했으니 모두 모여서 힘을 합쳐라. 뭐 이런 내용으로 만들어 주시면 돼요.”
“…….”
“…….”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수호용이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면 일본은 앞으로 천년. 만년 평화로워질 거라는 내용도 있으면 좋고요.”
“…….”
“…….”
“헐…….”
일반인을 왜 불렀나 했더니 해용이 형을 주인공으로 동요를 만들려는 거였구나.
“작곡가님이 동요를 완성하면 지윤미 마스터님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을 시켜서 성수를 나눠 주기 위해 출발하는 팀에 합류해서 이 노래를 널리 퍼뜨리시면 됩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 노래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다들 몬스터의 위협과 배고픔에 지쳐 있을 테니. 먹을 것과 성수를 나눠 주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면 다들 거부감 없이 배우게 될 거예요. 헌터들에게 은밀히 지시해서 노래를 배우려 하지 않으면 음식을 나눠 주지 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반대로 자발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부르는 아이들이 있으면 많은 음식과 옷가지, 그리고 해 줄 수 있는 모든 포상을 내려 주세요.”
“……네.”
“단. 그 과정이 최대한 은밀해야 해요. 우리가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불러 번지는 것처럼 이요.”
“……네, 알겠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당신을 따르기로 한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동요라니…….’
지윤미는 존경심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우리를 구한다!]
[~우리를 구한다!]
‘뭐지? 이 유치한 노래는?’
일본 동요인가? 아니 찬송가인가?
전장에서 왜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아이들이 무서워해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건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언데드 몬스터들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울리지 않게 꽤 감미롭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멜로디의 노래가 들려 오고 있었다.
[해용, 해용, 해용, 해에용!]
[해용, 해용, 해에용. 우리를 구한다!]
“해용? 설마 저 노래속의 해용이 나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듣자 하니 일본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비슷한 것 같은데 내 이름이 들어갈 리가 없잖아.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거지?
‘근데 이 아이들은 어디서 온 거지? 처음 보는 애들 같은데?’
해용은 불안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울리지 않게 전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처음 보는 어린아이들.
왠지 기분이 싸했다.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
게다가 며칠 사이에 일본인들이 열 배에 가깝게 늘어났고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꼬마야.”
[네?]
“너 그 노래 어디서 배웠어?”
[이거요? 엄마가 가르쳐줬어요. 옛날부터 내려오던 노래인데 일본에 위기가 생기면 바다를 지키던 수호용이 와서 우릴 구해 준대요.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했어요. 헤헤.]
“옛날부터라…… 그럼 일본 전통 노래가 맞다는 얘기인데. 가사에 내 이름이 들어간 건 우연인 건가?”
근데 햄버거와 콜라는 어디서 난거지?
포로들한테 간식마저 챙겨 줄 만큼 보급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을 텐데?
“우연이 아닙니다. 애초에 일본 전통 노래가 아니거든요.”
“……본부장님.”
“바다를 지키는 수호용. 해용은 영주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발키리 길드에서 의도적으로 이 노래를 일본 전역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헐…….”
“표정을 보아하니 영주님은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네. 몰랐어요.”
알았으면 제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나요?
화폐에 얼굴 새겨진 것도 남사스러워 죽겠는데…….
해용은 얼굴이 잔뜩 붉어져 숨을 곳을 찾았다.
노래 가사의 해용이 자신을 일컫는다는 말을 듣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거기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역시나 이세훈 재상 솜씨인가 보네요.”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 그럴 거예요.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그놈밖에 없으니까.”
“똑똑한 친구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대단한 능력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대단하다고요?”
지금 칭찬 하는 건가요?
노발대발하며 화낼 줄 알았는데?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재난 관리 본부장을 쳐다봤다.
노래의 가사는 대충 이랬다.
일본이 위기에 빠졌지만 바다를 지키는 수호용이 도우러 왔으니 모두 힘을 보태라. 그리고 수호용과 함께 다시 일본을 일으켜라.
얼핏 들으면 좋은 내용이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아니 스카이 캐슬에서 일본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저 노래의 뜻이 뭔지 파악이 되지 않은 거예요?”
“그럴 리가요. 저리 단순한 패턴의 음으로 대놓고 가사를 만들었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근데 왜?”
웃고 있는 거죠?
제가 일본 약탈하자고 했을 땐 전쟁 난다고 노발대발하셨잖아요?
“왜 제가 화를 내지 않는 거냐고 묻는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전 전쟁을 두려워한 것이지. 영주님이 왕이 되는 걸 말리려고 했던 게 아니니까요.”
“끙…….”
“게다가 이 노래로 인해 흩어져 있던 일본의 수뇌부 그리고 헌터들과 민병대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고작 이런 유치한 노래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고요?”
“저도 그게 좀 의아하긴 한데 사실입니다. 언데드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성수와 미스릴을 보급해 준 부분도 크게 기여를 했겠지만, 그보단 이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일조한 것 같더군요.”
“……?!”
그런 말도 안 되는.
이까짓 노래가 뭐라고…….
“우연인지. 아니면 그 또한 발키리 길드에서 소문을 낸 건지 모르겠지만 후쿠오카 지역에서 믿는 신중에 정말 바다의 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
“인간이란. 감당하지 못할 문제에 당면하면 신과 같은 미지의 존재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
“그리고 지금 일본의 대다수 사람은 다들 이 노래를 듣고 희망이 생겨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바다를 지키는 수호용. 해용, 아니 영주님께서 일본을 구원해 줄 거라 믿으면서.”
“헐…….”
이 새끼가. 살아 있는 사람을 화폐에 새겨 넣어 위인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제는 왕을 넘어서 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해용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세훈을 찾기 위해서.
스카이 캐슬을 위해서 참고 또 참고 있었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더는 간과하면 안 될 듯했다.
“영주님!”
“잠시만요. 잠시만 여기 계셔 보세요. 세훈이랑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신이 되어 주십쇼.”
“네?”
본부장님까지 왜 이러세요?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지금이야 상황이 상황이니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지만 나중에 정리가 되면 분명 전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신이라니…….
물론 아스날 대륙엔 분명 그런 존재들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전 그냥 소박하게 살고 싶은 한낱 인간일 뿐이라고요!
“이세훈 재상이 이런 것까지 예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십만의 병력을 몰래 데리고 일본에 와서 돕고 있는 우리를 향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로 인해 사람들은 정말 영주님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온 신이 아닐까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미친…… 다들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제가 신일리 없잖아요.”
“사실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지난 세월 대한민국과 전쟁을 벌여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했던 국가들이 지금 모두 은밀하게 그것들을 모으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문화재와 보물들을 모으고 있다고요?”
왜? 설마 돌려주려고?
“세작의 정보에 의하면 우리가 일본에 와서 문화재와 보물들부터 챙기는 걸 확인하자마자 부랴부랴 그것들부터 챙겼다고 하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우리가 일본을 정화하면 바로 돌려보내 줄 것 같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난 시절 대한민국에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서도 보상을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요.”
“……!”
왜? 갑자기?
지난 백여 년 동안 쌩까더니…….
“겁이라도 먹은 건가? 일본처럼 자신들도 몬스터들에 의해 짓밟히게 될까 봐?”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몬스터들도 두렵고 스카이 캐슬 연합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숨긴다고 숨기긴 했지만, 영주님의 명령에 수없이 많은 일본인이 상하고 또 일본의 보물과 문화재들이 훼손됐다는 게 알려졌거든요.”
“이런…….”
“하나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영주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것이니까요. 우리가 일본을 정화하면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체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편이 되고 싶어 하겠죠. 리치를 척살하는 순간 영주님은 사람들에게 정말 신으로 인식이 될 테니까요.”
“하아…….”
당해 낼 수가 없네.
뭔가 수작을 부릴 줄은 알았는데 동요 아니 찬양가를 만들어 분위기를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이건 뭐 삐딱선을 탈려야 탈 수가 없잖아?
해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세훈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거나, 아니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 줘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이 노래가 스카이 캐슬과 대한민국에 이롭게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일본 국기 같은데? 저 사람들은 뭐죠? 몬스터들 눈 피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저리 대놓고 행렬을 하고 오는 거죠?”
저 멀리 수천의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일왕 무리인 것 같네요.”
“일왕이요?”
“네. 성수와 미스릴을 나눠 주며 일본 수뇌부에도 같이 힘을 합쳐 리치를 물리치자고 제안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각을 운영하던 총리와 대신들, 그리고 기업의 대표들은 모두 사망하고 일왕만 살아남았나 보더라고요.”
“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약탈을 금지한다고 했지. 일본과 편을 먹는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냥 리치만 후딱 잡고 돌아가려 했는데…….
“영주님.”
“네. 알았어요. 가 보죠. 아무리 미워도 한 나라의 왕이 오는데 마중을 해야죠.”
해용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일왕 무리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바다의 수호용. 해용 님을 뵙습니다.]
[……바다의 수호용. 해용 님을 뵙습니다.]
“……?!”
“……?!”
일왕을 비롯한 수천의 무리가 모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묻으며 해용에게 인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