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리치 (7)
‘왜 이렇게 찝찝하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헌터들이 포로들을 끌고 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해용은 거리가 벌어지자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턱을 움켜쥐었다.
-찝찝하다고? 꿍꿍이? 저 인간 친구가 지금 무슨 작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거야?
‘어. 느낌이 그래. 이런 경험 한두 번이 아니거든. 저놈이 이렇게 옳은 말을 하면서 언성을 높일 때면 항상 뒤에 꿍꿍이가 있었거든. 그리고 이렇게 팩트 폭행을 하며 뼈까지 때릴 땐 그 사안이 가볍지 않았고.’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일본을 벌하기로 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시미켄이 스카이 캐슬을 도모하려고 했던 몇 달 전부터 계속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러했기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쳐 마스터들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하며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단인데 자신도 모르게 너무 쉽게 뜻을 꺾어 버렸다.
일본을 벌하는 게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친구를 미치광이 살인마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세훈이 스스로 재물로 해서 제 뜻을 이루는 걸 도우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어 버린 것이었다.
-기분 탓 아니야. 난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니야 분명 뭔가 있어. 내가 일본을 벌하고 배상받는다고 하면 세훈이가 내 뜻에 협조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아까 한 말과 보여준 의지는 너무 과했거든.’
-과했다고? 내가 보기엔 평소 저 인간 친구의 언행을 봤을 때 너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행동이었는데?
‘눈과 머리로만 보면 그렇지. 근데 네가 하나 모르는 게 있어. 사람이 같은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또 실행으로 옮기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거든.’
아무리 친구를 위해서.
스카이 캐슬을 위하는 것이라도 말이야.
근데 사람은커녕 몬스터조차 사냥해 본 적이 없는 세훈이가 앉은 자리에서 그런 판단을 하고 지시를 한다고?
그건 말이 되지 않거든.
분명 내 뜻을 꺾기 위해 압박하려고 그랬던 거야.
그렇게 나오면 내가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선 말이야.
-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너도 그렇고 그동안 만났던 인간들 모두 첫 도살을 하기 전에. 그리고 이후에도 꽤 크고 긴 심적 고통을 겪긴 했지.
‘맞아.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헌터라면 다 한 번씩 겪고 또 이겨 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처음엔 누구나 망설이고 또 괴로워할 수밖에 없어. 근데 세훈이는 경험도 없으면서 그 일련의 행동들이 너무 자연스러웠어.’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내가 말릴 거라는 걸 확신한 거야.
-네가 모르는 사이에 경험한 거 아닐까?
‘아니 아직 세훈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몬스터도 사냥한 경험이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해?
‘느껴지거든. 흑 마법을 배운 이후로 사람을 보면 그게 딱 느껴져. 이 자가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죽음의 기운.
살아 있는 생명체가 죽을 땐 각 종족 특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어느 샌가부터 해용은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고작 소문이 두려워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고?’
장난 똥 때리나.
친구야, 속일 사람을 속여라.
사람 죽이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대상이 총과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라며 더더욱 어렵고.
몇 날 며칠 꿈에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까딱했다간 정신병까지 생길 수 있어.
너 지금 도대체 내게 뭘 숨기고 있는 거냐?
그리고,
‘물론이죠. 저흰 언제나 영주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영주님이 나아가자고 하면 같이 나아가고 멈추자고 하면 멈출 거예요.’
지윤미 마스터도 아무리 내 뜻을 존중한다고 해도 너무 쉽게 대답한 것 같고.
의심이 생기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해용은 몸을 움직여 은밀하게 세훈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실프! 냄새랑 소리 좀 막아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소리와 냄새는 바람을 타고 이동한다.
혹시나 이세훈 옆에 있는 지윤미 마스터에게 발각될 것이 염려되어 해용은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그리고 이내,
“야!”
[네?]
“좀 맞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론 분해서 안 되겠다. 너희 같은 버러지 같은 놈들 때문에 스카이 캐슬의 재상인 내가 영주님한테 꾸지람을 들었잖아.”
퍽!
[읔.]
퍽!
[읔.]
퍽!
[읔.]
이세훈이 포로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꾸지람을 들었다고 포로들한테 저리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쟤 저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이상하긴 하네.
죄를 묻겠다는 뜻도 철회하고 약탈을 금지한다고 했으니 이제 굳이 포로들에게 가혹하게 굴 필요도 없잖아?
‘그치?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이리 단시간에 변할 사람도 아니거든. 그런 인성을 갖고 있었다면 그동안 친구로 지내지도 못했을 거야.’
-그럼 잰 왜 저러는 걸까?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왜 내 친구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자꾸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지.
-어떻게?
‘일단 부성이부터 만나 보려고. 요즘 둘이 부쩍 친하게 지내며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은밀히 세훈 일행을 뒤따르던 해용은 이부성이 헤어지길 기다렸다.
* * *
“부성아.”
“형이 제 막사엔 어쩐 일로?”
“우리가 일이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이였나? 이거 섭섭한데?”
“아,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죠. 전 그냥 바쁘실 텐데. 제 막사까지 오셔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뭐 이렇게 당황해?
역시 부성이 넌 뭘 알고 있는 거지?
해용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가만히 이부성을 쳐다봤다.
“별일 없어. 그냥 술 한잔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술 마시자고요? 지금요? 많이 힘드세요?”
아까 세훈이 형 모습 때문에 힘드신가?
하긴 자기가 내린 결정 때문에 친구가 악당이 되겠다는데…….
당연히 괴로우셨겠지.
근데 어떡하죠. 형님.
형님이 뜻을 바꾸셨어도 세훈이 형님은 이미 악당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길을 나아가고 있어요.
이부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막사 안에 몰래 숨겨두었던 술병을 찾아 술잔을 채웠다.
“힘들다기보다는 좀 짜증 나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예상대로 흘러가니까 술이 좀 땡기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런 일이 생길지 예상하고 계셨다고요?
근데 왜 결정을 번복하셨지?
세훈이 형 때문에 뜻을 바꾼 걸로 보였는데…… 그게 아닌가?
이부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그 표정 뭐야? 너 설마 내가 야만적이고, 잔인한. 전쟁의 무서움도 모르고 일본에 죄를 묻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
“어라?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 그동안 함께 지내며 내가 그리 머리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증명한 것 같은데?”
“…….”
“이 정도는 다 예상을 하고 있었어. 아니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까지 다 염두에 두고 결정을 한 거야.”
“근데 왜?”
결정을 번복하셨어요?
예상했으면 이미 감내할 준비까지 했었을 텐데…….
해용의 말이 이어질수록 이부성의 얼굴은 점점 의문이 짙어졌다.
“나쁜 놈이 되기로 이미 결심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내 친구가 나보다 더 나쁜 놈이 되려고 하니까. 그게 참 이상하더라고.”
“…….”
“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몇 달, 아니 1년 가까이 혼자 고민을 한 끝에 결단을 내린 건데. 세훈이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더 날뛰잖아. 그래서 궁금해서 그랬어. 도대체 무슨 결심을 했기에 아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건지.”
“…….”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세훈이가 내 속마음까지 알고 미리 준비해 두지는 않았을 테고 그 말은 내가 모르는 다른 계획이 있다는 뜻 아니겠어? 그래서 장단 좀 맞춰 준 거야.”
“…….”
“부성아.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 다 들린다.”
“…….”
“알고 있는 게 있으면 털어놔.”
“…….”
묵비권이야?
뭔가 들은 게 있는 건 분명한데 나한텐 말하지 못할 내용인가?
나 영주인데? 아니 영주이기 전에 부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나 아니었어?
근데 나한테 숨긴다고?
“죄송해요. 형님.”
“죄송하다고? 뭐가?”
“전 형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젠장.”
“죄송해요. 형님이 화내셔도 전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요.”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난 이미 대답을 들었거든.
세훈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긴 한데 나한테 말해 줄 순 없다.
네가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보아하니 협조까지 하고 있는데도 나한테 말하지 못할 사안은 하나밖에 없잖아.
내가 세훈이와 뜻이 맞지 않는 건 하나밖에 없으니까.
“건국.”
“…….”
“그리고 왕.”
“…….”
“아니야?”
“…….”
하아…….
저한테 왜 그러세요. 형님.
어떻게 아신 거지?
나 때문인가?
나 때문인 것 같네.
해용이 형이 찾아올 것을 예상해서 연습이라도 해 놨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해용이 형한테 거짓말을 할 순 없는 거잖아.
어떡하지.
이부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맞구나. 새끼. 생각할 시간 좀 달라니까 계속 혼자 진행하고 있었어.”
“…….”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거야?”
“죄송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하나예요.”
“세훈이 형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저희? 제가 아니라 저희? 역시 지윤미 마스터도 세훈이 쪽에 붙은 거네?”
“하아…….”
젠장.
죽겠네. 정말.
“대답.”
“……죄송해요.”
“알았다. 더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 근데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만 확실하게 말할게.”
“…….”
“너희가 원한다면 건국을 하는 건 도와줄게. 광산도 그렇고 석유도 그렇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선 건국을 하는 게 좋을 테니까. 하나 난 왕이 될 생각이 없어.”
“형…….”
“그러니 세훈이랑 지윤미 마스터. 그리고 지금 너희랑 뜻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한테 똑똑히 전해. 왕이 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선택하라고.”
미안하다. 부성아.
근데 형 화나서 이러는 거 아니야.
형 왕 되기 싫다.
마왕들 무찌르면 조용한 곳에 가서 그냥 농사나 지으며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해용은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세를 뿜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성의 막사를 나왔다.
영주의 직에 오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상황이 여의치 못해 영주의 자리에 올라 선봉에 서 있지만 몬스터에 대한 위협만 사라진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왕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즐기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만끽하며 살기 위해서.
소확행.
그것이 해용이 바라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