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36화 (236/255)

236화. 리치 (4)

“내 백성이라니…… 일본을 아예 통째로 복속을 시키겠다는 건가요?”

“네. 그러려고요. 해용이는 여전히 건국을 선포할 생각도. 왕이 될 의지도 없는 듯하지만, 일본이 우리 스카이 캐슬 연합의 일원이 되면 더는 안 한다고 고집부리지는 못할 거예요.”

대한민국 크기의 영토를 확보하고.

화폐도 만들고.

수십만에 이르는 군대도 양성하고. 수많은 이종족을 규합하고.

이제 건국할 때 됐잖아?

세훈은 빙그레 웃으며 지윤미와 장지원을 지그시 쳐다봤다.

“아니 일본마저 복속시키면 왕이 아니라 황제로 등극을 해야겠네요.”

“대통령이 아니고 황제라고? 이세훈!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놈이 미쳤나?

지금이 중세 시대도 아니고…….

뜻밖의 단어에 장지원이 미간을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헛소리라니요? 스카이 캐슬 본성도 그렇고 켄트 왕국도 그렇고 다 우리가 생사를 걸고 싸워서 영토를 확보하고 개척했잖아요. 당연히 황제가 되어야지요. 형님은 왕이 되시고요.”

“엥? 나도 왕이 되라고?”

“스카이 캐슬 본성, 비토섬, 켄트 왕국 그리고 일본까지. 지금 확보한 영토만 해도 너무 크잖아요. 인제 인구도 많아질 테고. 해용이 혼자 다스릴 수 없으니 당연히 형님도 왕이 돼서 영토를 다스려야죠.”

“흠…….”

두근두근.

쿵닥쿵닥.

나도 왕이 되라고?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화를 냈던 것도 잠시 장지원의 얼굴이 흥분에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왕을 시켜 주겠다고?”

“제가 시켜 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형님이 하신 일만으로도 스스로 왕이 될 자격을 만드신 거예요. 스카이 캐슬 연합의 창설부터 형님이 늘 해용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잖아요. 그래서 영지민도 해용이 못지않게 형님을 따르고 있고요.”

그렇지. 고생이라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했지.

듣다 보니 일리가 있었다.

장지원이 태도를 돌변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치! 해용이 때문에 내가 빛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영지민이 다 날 좋아하더라고. 하하.”

하도 돈만 밝히고 이래저래 깐깐하게 굴어서 오해했는데…….

이놈 이제 보니 좋은 놈이었네.

하긴 아무것도 없는 오지에 건물을 짓고 정착을 하려면 돈이 아주 필요했겠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장지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세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왕이 되어 주실 거죠?”

“그래. 난 별로 내키지 않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따라야지. 그게 다 스카이 캐슬을 위하는 일이잖아.”

“감사합니다. 제가 그동안 은밀히 마스터들을 지켜봤는데 형만 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형님도 거절할까 봐 제가 말을 하면서도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해용과 함께 스카이 캐슬 연합의 처음을 같이 시작한 태백산맥 길드의 마스터 장지원.

비록 무력이 약하고 지식이 엷다 하더라도 충분히 왕이 될 자격이 있었다.

어차피 나라 운영은 인재를 교육하고 선발하여 등용에 맡기면 되니까.

“세훈 오빠, 아니 재상님. 지금 그 말은 너무 위험해요. 황제라니요. 왕이라니요. 설마 계급 제도를 부활하려는 생각인가요?”

“21세기에 그렇게 할 수야 있나요. 영국과 일본처럼 명예직으로 수여하는 거예요. 단, 그동안 우리가 발견하고 또 개척한 광산과 영토는 모두 왕실 소유가 될 거예요.”

“흠…….”

“영국의 여왕이랑 일본에 일왕이 됐다는 얘기는 들어 보셨을 거예요. 해용이처럼 국정 운영은 하지 않지만 국가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국민 통합과 사회적 규범의 중심이 돼서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는 존재죠.”

“…….”

“전 해용이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고생한 마스터님들을 모두 그런 자리에 올리고 십 년, 만 년 명예롭고 품위 있는, 존경받는 삶을 살게 하려는 거예요.”

“아…….”

그럼 나도 여왕이 되는 건가?

나도 장지원 마스터 못지않게 열심히 싸워 왔는데…….

이세훈의 설명에 지윤미 마스터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전…….”

“지윤미 마스터님도 당연히 영토를 할애받아 왕이 되셔야죠. 태백산맥과 더불어 발키리 길드도 스카이 캐슬의 창단 멤버잖아요.”

“좋네요.”

“네?”

“생각만 해도 좋다고요. 솔직히 조금 걱정 했거든요. 지금처럼 마족들을 물리치며 나아가다가 마왕까지 무찌르게 되어 평화가 찾아오면 영주님께서 지금까지 이룩한 것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까 봐.”

미스릴 광산.

마나 광산.

엔트 키트.

석유.

지하수.

옐로우 사파이어.

.

.

.

지금까지 발견하고 얻어 낸 자원들은 모두 스카이 캐슬 연합에서 목숨을 걸고 차지한 것들이었다.

하나 해용은 그것들을 모두 영지 발전에 모두 투자하고 있었고 지윤미는 그게 두려웠었다.

저 모든 것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할까 봐.

지윤미 마스터 역시 이세훈의 뜻에 동의한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재상님의 뜻은 알았어요. 그리고 동의해요. 그럼 앞으로 저희가 뭘 하면 되죠?”

“방금 얘기해 드렸잖아요. 일본엔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일왕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그자를 찾아 죽여야 해요. 리치와 데스 나이트를 처치하고 상황이 안정되도 사람들이 뭉치지 못하게.”

“네. 알겠어요. 그럼 저희가…….”

“아니 그들을 처치하는 건 다크 엘프 종족이 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최대한 은밀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

“흠…….”

“그리고 왕족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내각을 이끌어 국가를 운영했던 총리와 대신들. 기업을 이끌었던 대표들도 모두 찾아서 죽여야 해요.”

명예와 권위를 가진 일왕.

권력을 가진 총리.

돈을 가진 기업.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균분 의식이 뚜렷한 국가였고 이세훈은 그들의 척살을 입에 올렸다.

“다크 엘프 종족이 아무리 은신에 특화되었다고 해도 그들만으론 쉽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돈과 권력을 갖고 있던 자들이라면 지금도 꽤 삼엄한 경계 아래 보호를 받고 있을 테니.”

“그렇겠죠. 근데 그래도 발키리가 나서면 안 돼요. 해용이와 발키리. 그리고 태백산맥은 구심점을 잃은 일본의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

“저희가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요?”

“일본 수뇌부들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 분이. 그리고 그레이와 마녀 부대까지. 일본을 구한 영웅이 꼭 되어야 해요. 그래야 일본을 복속시키는 일이 수월해질 테니까.”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쿡쿠는 내가 따로 만나볼게. 스카이 캐슬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분명 우리 뜻에 따라 줄 거야.”

“부탁드릴게요.”

“그래.”

왕이 되는데 이쯤이야.

장지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이세훈에게 손사래를 치며 막사를 나갔다.

“그럼 저는?”

“마스터님께선 저랑 이제 해용이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시작하죠.”

“벌써 준비해 놓은 게 있는 건가요?”

“네. 제가 다 준비해 놓았으니 마스터님께선 장단만 맞춰 주시면 돼요.”

이세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안지현 실장을 바라봤다.

“식량과 성수 출발했겠죠?”

“네. 출정할 때 전달을 해 놓았으니 지금쯤 1차 물량이 도착했을 거예요. 그리고 지속해서 당도할 수 있게 시스템도 구축해 놓았어요.”

이세훈과 눈을 마주친 안지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천 돈이나 되는 식량을 준비하라고 해서 왜 그러나 했더니 이러려고 미리 지시한 거였구나. 황제라니. 왕이라니…… 숨은 실세라고는 들었는데 이 자가 실질적으로 연합을 이끄는 사람이었구나.’

조심해야겠어. 위험한 사람이야.

안지현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소리장도(笑裏藏刀)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는…….

겉으론 돕는 척하고 뒤에선 암계를 펼쳐 일본을 통째로 먹으려 하는 계획을 듣고 있자니 절로 몸이 떨려왔다.

“가시죠. 우리 해용이 황제 만들러.”

“네.”

“네.”

이세훈은 지윤미와 안지현과 함께 걸으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해용의 막사를 찾아갔다.

* * *

“뭐야? 이거 설마 다 성수야?”

“어. 성수야. 그리고 옆에 있는 건 식량이고.”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수백, 수천여 개에 이르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속속 들어오는 것을 본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오래전에 감염된 사람은 둘째치고 최근에 전염된 사람들은 치료해 줘야지.”

“일본인들을 치료해 주려고 이 많은 성수와 식량을 가져왔다고? 내 허락도 없이?”

“네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었어? 이 정도는 내 재량으로 해도 되는 건지 알았는데?”

“그렇긴 한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일본에 죄를 묻는다고 듣지 못했어?”

“들었지. 나 역시 물론 네 뜻을 존중하고 따르기로 했고. 근데 죄를 물으려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 다 죽어 버리면 누구한테 물을 건데?”

“그렇긴 한데. 이 정도 양이면 영지에 있는 성수를 다 가져온 것 같은데 이렇게 다 소비했다가 영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건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행주 부대 봤잖아. 지금 영지의 방어는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니까. 그리고 카프리가 방어 마법진까지 만들고 있어서 대규모로 성수를 사용할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린드 공주가 각성한 덕분에 청방 길드가 켄트성을 차지했을 때보다 성수의 생산이 수백 배나 빨라져서 곧 다시 충당될 거야.”

“흠…….”

왜 이러는 거지?

자원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가면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뭐야? 말해.”

“뭐가?”

“내가 널 모르냐? 꿍꿍이가 있으면 자수를 하라고. 괜히 나중에 혼나지 말고.”

“꿍꿍이는 얼어 죽을. 너 벌써 잊었냐? 네가 스카이 캐슬 본성에서 오크들이랑 싸울 때 난 좀비에게 전염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두문불출하고 움직였던 거. 다른 경험이라면 몰라도 더는 네 눈앞에서 좀비에게 전염돼 괴로워하는 사람은 보고 싶지 않다.”

“흠…….”

“너도 그때 화냈잖아. 사람들을 치료할 성수가 있으면서도 수억 원의 가격을 책정해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판매했던 청방의 행태를. 똑같은 인간. 아니 쓰레기가 될 생각은 아니지?”

“끙…….”

독하게 마음먹고 일본을 혼내 주려고 했는데…….

말로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해용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러는 것 같은데 아버지를 거론하며 얘기를 하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포로도 어지간히 있어야 좋은 거지. 일본 인구가 1억2천만 명이야. 아무리 웨이브를 막아 내지 못했다고 해도 절반 이상은 살아 있을 테고 그것만 해도 6천만 명이야. 과연 지금 스카이 캐슬 여력으로 그 인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흠…….”

“일단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리고. 살아 있는 사람도 지금 있는 곳에서 일단 연명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순차적으로 데리고 가야 해.”

“알았다. 김용규 본부장한테 일전에 일본 수뇌부들을 접촉해서 우리 쪽으로 포섭할 수 있으면 포섭하라고 지시해 놓아서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김용규 본부장한테 전달하면 알아서 잘 전해 줄 거다.”

“오? 그래? 알았어. 그럼 난 김용규 본부장한테 가 볼게.”

잘됐네. 안 그래도 수뇌부들 찾아서 다 죽여야 하는데.

해용에게 식량 지원과 성수 공급을 허락 맡은 이세훈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죄송해요. 영주님.’

‘죄송해요. 영주님.’

영주님을 속이는 게 싫지만, 지금은 재상님의 선택이 옳은 것 같아요.

아무 죄 없는 일반 국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는 것보다는 수뇌부들만 처리하고 일본을 아예 차지하게 나을 것 같거든요.

지윤미와 안지현은 소리 없이 해용에게 묵례를 하고 이세훈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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