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리치 (2)
“치! 내가 또 한발 늦었네.”
“응?”
“평소엔 둔한 것 같은데 싸움할 때랑 이럴 땐 아주 재빠르단 말이야.”
지윤미 마스터가 그레이 기사단 단장 조성태를 보고 눈을 흘기고, 볼멘소리하며 앞으로 나섰다.
“영주님의 뜻대로.”
“영주님의 뜻대로.”
발키리.
“영주님의 뜻대로.”
“영주님의 뜻대로.”
마녀 부대.
태백산맥.
.
.
.
플로라 길드와 화랑 연합까지.
그레이 기사단을 시작으로 원정에 따라 나온 모든 길드의 헌터들이 해골로 변신했다.
‘애 좀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들 쉽게 뜻에 따라주네. 역시 이곳으로 바로 데려오길 잘했네.’
해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들을 쳐다봤다.
“히젠도를 제 눈앞에 가져오세요. 막는 자가 있으면 죽여도 좋습니다.”
“네!”
“네!”
후다닥.
후다닥.
해골로 변신을 한 수만여 명의 헌터들이 구시다 신사의 커다란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 선두는 그레이 기사단이었다.
[뭐야? 이 많은 해골이 어디서! 뭐 하고들 있어. 어서 타종을 울리고 저놈들을 막…….]
컥.
“막긴 뭘 막아! 생포할 필요 없다. 무기를 든 자는 다 죽여 버려!”
[한국어? 해골이 어떻게 말을?]
휘이익.
컥.
생포하려 했다간 아군에도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일본 헌터 백 명의 목숨보다 아군의 헌터 한 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성태는 커다란 창으로 길을 막는 자들의 몸을 일격에 베어 버렸다.
[듀라한? 데스 나이트인가?]
컥!
[젠장! 분명 데스 나이트는 오사카 지역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컥!
해골로 변신해 질풍노도처럼 휘몰아치는 그레이 기사단의 돌격을 일본 헌터들은 막아 내지 못했다.
“지윤미 마스터.”
“네!”
“일반인들을 찾아내 포박해서 한곳에 모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레이 기사단이 헌터들을 뚫고 신사로 진입하는 동안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신사 주위의 집들을 돌며 일반인들을 찾아 제압했다.
‘스카이 캐슬을 발전시키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
지윤미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그때,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죽이려면 절 죽이시고 이 아이는 살려 주세요. 제발…….]
한 가정집에 들어가 수색을 하자 중년의 부인과 어린 남자아이가 숨어 있다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며 사정해 왔다.
어머니와 아들인 듯싶었다.
‘어떡하지? 일을 시키기엔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지윤미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끌고 가도 일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린아이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게…….”
해용이 옆으로 다가왔다.
“일을 시키기엔 너무 어리군요.”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도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흠…… 내 말을 알아듣는 건가? 아! 아티팩트 때문이군.”
해용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일전에 하몽에게 건네받은 목걸이를 매만졌다.
‘해골로 변신했는데 살려 달라고 비는 게 이상하다 싶더니.’
통역 기능이 있어 해용이 했던 말을 그대로 다 고스란히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잘 된 건지 모르겠네. 똑같이 복수해 줄 수 있으니까.’
스카이 캐슬로 왔다고 다 스카이 캐슬 소속은 아니니까.
한국말을 한다고 다 한국 사람이라는 법도 없고.
혹시라도 소문이 나더라도 안 그랬다고 우기면 그뿐이었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둘 다 데리고 가세요.”
“아이도요? 노역을 시키려고 포로로…….”
“네. 그래서 데리고 가라는 겁니다. 안 그래도 힘든 일을 해야 할 텐데 자식마저 떨어뜨린다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지윤미는 두 모자에게 다가가 카프리가 만들어 준 벨트의 아공간을 열어 수갑을 꺼냈다.
“잠시만요.”
“……?”“생각해 보니 묶으면 안 될 것 같네요.”
“……?!”
“우리는 몬스터의 위협에 생명이 경각이 달린 일본 국민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켜주려는 거잖아요. 근데 묶어서 가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일본이 그랬다.
동학 농민 운동을 핑계로.
조선에 반역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조선 왕실을 돕고 보호해 준다는 핑계로 일본은 무단으로 군인을 보내 조선에 들어왔었다.
해용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두 모자에게 다가갔다.
“자식과 함께 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만든 보금자리엔 몬스터의 위협이 없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아들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일본인 중년 부인은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여기 혼자 남아 있게 되면 굶어 죽거나 아니면 좀비에게 물려 몬스터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탄광에 가든 성벽 공사를 하든 아들과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이 없었다.
“영주님, 반항하는 이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여기.”
“수고했어요.”
십 분, 이십 분…… 2시간 만에 조성태 마스터는 히젠도를 찾아 가져와 해용의 앞에 갖다 놓았다.
“영주님, 주민들도 모두 생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노인까지 합류시켰더니 생각보다 인원이 많습니다.”
“그러게요.”
수천여 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모아보니 수만여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 가고 있었다.
몬스터를 피해 가족과 함께 지인과 함께 삼삼오오 숨어 있던 이들이 소식을 듣고 슬그머니 찾아서 알아서 포로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던 것이었다.
포로로 잡혀 임금도 받지 못하고 광산과 성벽 공사에 투입되어 노예로 부려진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자처해서 찾아오고 있었다.
‘일할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뭐.’
해용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오크 섬은 물론이고 켄트 왕국 동쪽 숲에 이미 대규모 농경지를 구축해 놔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예는 굶지 않게 밥만 먹여 주면 되니까.
“이아영 마스터님.”
“네!”
“여기는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 화랑 연합과 중립 연합을 이끌고 오사카로 가 주세요. 그곳에 재일 한국인 집단 거주지가 있으니 2세든, 3세든 한국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이 있으면 정중하게 대열에 합류시키고. 일본인들은 상황에 맞춰 끌고 와 주세요. 반항하면 죽여도 좋습니다.”
“그것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돈이 될 만한 것도 다 챙겨서 영지로 함께 보내세요. 귀한 목숨을 구해 주는데 저희도 그 정도는 챙겨야죠.”
“개인 재산도 포함되는 거죠?”
“물론이에요. 한국인의 재산만 인정합니다. 나머지는 다 압수하세요.”
“네!”
영주님의 뜻이니까.
도덕? 양심? 존엄? 이런 건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전쟁은 수십, 수백 년 동안 지구에서 정립됐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는 거니까.
그리고 그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야.
몬스터 웨이브의 혼란을 틈타 먼저 공격한 건 일본 헌터 협회잖아.
이아영 마스터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아영 마스터까지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요?”
“본인의 위치를 잊었나요? 당신은 대한 헌터 협회 협회장입니다. 플로라 길드까지 합세하면 이 일은 국가 대 국가 간의 일이 되는 거예요!”
말려야 한다.
말려야 해.
이대로 다른 도시까지 넘어가면 세계 3차 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어!
마스터들의 뜨거운 시선을 이겨내며 김용규 본부장은 두 팔을 벌리며 플로라 길드의 길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고 또 서운함마저 가라앉아 있었다.
플로라 길드와 한국 헌터 협회.
스카이 캐슬 연합이 생기기 전 재난 관리 본부의 든든한 동맹이자 항상 함께 같은 뜻을 품고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김용규 본부장님 계속 이러실 겁니까?”
“한 번만, 아니 하루만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해 주십쇼. 이런 식으로 했다간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과도 전쟁해야 할지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아니 미국은 절대 끼어들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둘째치고 일본도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수십만의 군대와 또 헌터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쳐서 대항하면…….”
“왜요?”
“네?”
“위험에 빠진 국민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 지켜 주는데 왜 우리한테 대항할까요?”
“하아…….”
이 고집불통 같은 놈.
이미 오래전부터 결정을 내린 거였구나.
사람들까지 다 잡아가려고 할 줄이야.
일본에 선발대로 보낼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김용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용은 스스로 만든 가짜 명분을 내세워 일본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설득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셔서 알겠지만 이미 마스터들도 저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만 고집부리고 이아영 마스터한테 일본에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재 리스트와 일본 것도 함께 넘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북관 대첩비
안견의 몽유도원도
경천사 10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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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한국의 문화재와 보물 삼천 점의 리스트를 김용규 본부장은 마스터들에게 나눠 주었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헐…… 이 많은 게 일본에 있었다고요? 뻔히 우리나라 게 분명한데 그동안 왜 돌려받지 못한 거죠?”
“이런 개새끼들…… 비석과 석탑마저 뜯어서 들고 갔다고?”
구시다 신사를 부수고 그곳을 지키려 했던 일본인 헌터들을 처치하고 잠시나마 화가 풀렸던 것도 잠시 마스터들의 얼굴이 다시 사나워졌다.
“이아영 마스터님.”
“네!”
“오사카에 가시면 이총이 있을 겁니다.”
“이총이요?”
“일본 놈들이 자신의 공을 인정받기 위해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 가져와 만들어진 무덤입니다.”
“헐…….”
“헐…….”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었다고?
마스터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나서 몸이 주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을 붙잡으면 모두 그곳에 꼭 데리고 가서 절을 하게 만드세요.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보관하고 또 지키고 있었는지 꼭 알려 주신 다음에 영지로 데리고 가세요.”
오사카뿐만이 아니었다.
이총은 수도인 도쿄는 물론이고 일본 전역에 퍼져 있었다.
“……최영식, 최병용.”
“네!”
“네!”
“김용규 본부장한테 리치와 데스 나이트가 머무는 지역을 확인하고. 그곳을 피해서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 와. 사람이 보이면 다 붙잡고 재산을 몰수해”
“네!”
삿포르, 후쿠시마, 나고야, 히로시마…….
해용은 길드별로 나눠 일본 전역으로 나눠 출정을 지시했다.
“사람은 물론이고, 길가의 풀 한 포기조차 돈이 될 것 같으면 싹 걷어 오세요.”
“네!”
“당연히 일본의 보물과 문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크고 무거우면 부시고 불태우세요.”
“네!”
해용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스터들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