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32화 (232/255)

232화. 거대 여왕개미 (11)

“지윤미 마스터 어디 있는지 알아?”

“네?”

“지윤미 마스터 어디 있냐고!”

“지휘 막사에 있는데…… 형님…….”

지윤미 마스터가 미친 건가?

믿었는데…… 어떻게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할 생각을 한 거지?

내가 아무리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하기로서니 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내가 허락을 할 거라 여긴 건가?

8티어 급 몬스터 레이드 나가는데 아주머니와 어린 여자아이라니…… 용납할 수 없는 구성원들이었다.

해용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지휘 막사로 걸어갔다.

그런데,

“안 그래도 인사드리러 가려고 했는데 먼저 찾아오셨네요.”

“오빠!”

“수정아…….”

지휘 막사엔 지윤미 마스터가 아닌 한동안 보지 못했던 권수정과 박민정이 자리해 있었다.

“뭐예요? 그 얼굴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반갑지. 왜 안 반갑겠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해용은 눈을 흘기며 쳐다보는 권수정을 보며 손사래를 쳤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24시간 함께 하고 싶은 연인을 만났는데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그 표정은 뭐예요? 혹시 어머니랑 은솔이 때문인가요?”

“……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것 때문에 그렇게 흥분한 얼굴로 찾아오신 거였네요. 앉으세요. 제가 설명드릴게요.”

“……그래.”

일단 들어 보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 그때 돌려보내도 되니까.

해용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내,

“저희가 늦은 거 아니죠?”

“아니에요. 딱 맞춰서 오셨어요.”

이세훈과 이부성도 막사로 들어왔다.

“너희도 함께 온 거야?”

“응.”

“네.”

헬퍼들이 왜?

마나 팔찌는 그렇다 치고 근데 왜 너희까지 손에 활을 들고 있냐?

해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과 이부성을 쳐다봤다.

전쟁 지휘를 하느라 한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그새 두 명 모두 헌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보고를 못 받으신 것 같은데 전 그동안 여기 옆에 있는 부성이와 함께 스카이 캐슬 본성에 머물면서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영지 내에 있는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활쏘기 훈련을 시키고 있었어요. 물론 여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왜?”

“세훈 오빠의 지시였어요. 나라를 지키는데 성별과 나이를 구분해 열외를 시킬 이유가 없다고.”

맞는 말이긴 한데…….

몬스터는 공격을 할 때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나이도 가라지 않고.

하나 몬스터와 싸우겠다고 굳이 손에 무기를 들 필요는 없는데…….

전쟁은 창과 검으로만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연약한 사람의 손에까지 꼭 무기를 쥐여 줬어야 했냐?”

해용은 미간을 찡그리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전쟁 지휘를 하고 수련을 하느라 몰랐겠지만, 헌터들이 아무리 토벌하고 헬퍼들이 성벽을 쌓아도 늑대와 고블린, 그리폰과 하피 같은 공중형 몬스터들이 성내로 몰래 들어오는 경우가 제법 많았어.”

“흠…….”

보고를 받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상황이었다.

아무리 성벽을 쌓는다고 해도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라면 몰라도 작은 들짐승과 몬스터들까지 일일이 막아 낼 순 없었다.

“물론 성내에 경비 헌터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영지민이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처음엔 그래서 시작했어.”

“흠…….”

“경비 헌터들이 도착하기 전에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남자들이 있잖아.”

스카이 캐슬에 이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들어와 살고 있었고 해용은 총기 소유와 사용을 허락했다.

그 덕분에 일본과 미국 헌터 협회에서 도모하려고 했을 때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알잖아. 늑대인간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 몬스터한테 총은 소용이 없다는 걸.”

“그렇긴 한데…….”

“물어봤으면 말 끊지 말고 좀 듣자! 그다음에 네 생각을 얘기해도 되잖아.”

“……그래.”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여자들과 아이들에게도 활 쏘는 훈련을 시켰는데, 다들 예상치 못하게 활을 엄청나게 잘 쏘더라고.”

“엄청나게?”

“사람들 대부분이 활을 처음 쏴 보는 거라고 하는데 100m 거리에서 열 발을 쏘면 다섯 발 이상 표적에 명중했어.”

“헐…….”

“그리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표적에 맞추는 화살이 늘어 가고 한 달이 지나자 평균 아홉 발 이상 맞췄고. 게다가 처음엔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나왔던 아줌마들이 나중엔 재미를 붙여서 훈련 시간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찾아와 수련했고.”

“재미를 붙일 만큼 활 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무리 활을 잘 만들어도 활을 쏘려면 꽤 큰 근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평소 잘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써야 해서 어깨와 팔꿈치, 팔목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었고.

보기엔 쉬워 보여도 검술 수련 못지않게 힘든 훈련이었다.

재미 좀 붙였다고 집안일을 하고 장사를 했던 아주머니들과 어린 여자애들이 할 만한 수련이 아니었다.

“당연히 쉽지 않지. 근데 다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는 성취감과 스카이 캐슬의 주민으로서 위급 시 성벽으로 올라가 전투를 돕겠다는 사명감에 다들 손이 까지고 어깨에 염증이 생기는 와중에도 열심히 수련한 거지.”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스스로 몸을 지키고 최악의 상황에 도움을 주려고 수련을 한 건 인정할게. 한데 아무리 그래도 8티어 급 몬스터 레이드를 나가는데 아주머니들과 애들을 데리고 가는 건…….”

“직접 봐.”

“응?”

“직접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면 나도 이쯤에서 물러날게.”

“흠…….”

뭐지? 저 자신감은?

설득이 안 되니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건가?

“좋아. 근데 내 기준에 못 미치면 다들 돌아가는 거야. 그리고 발키리 길드의 인원을 늘리라고 했던 것도 취소시킬 거야.”

해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권수정을 쳐다봤다.

연인 관계가 아닌 지금은 영주로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네. 그러세요.”

나이가 어리다고. 아주머니들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은데 그들의 실력을 보면 그런 말 못 하실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세훈이 오빠가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

“지금 실력을 보러 가는 헌터들의 부대 이름은 발키리 길드 예하 행주 부대예요.”

“행주 부대? 행주산성에서 따온 건가?”

“네.”

권수정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행주 부대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 * *

착. 착. 착착!

착. 착. 착착!

“……제식 훈련까지 시킨 거야?”

샌드 마을 공터에 모여 있는 행주 부대원들을 보며 해용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앞엔 진짜 군인들이 서 있었다.

활을 잘 쏜다곤 했지만 그리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사오십 대의 중년 여인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행주 부대원들은 마치 사단장 사열을 받는 군인들처럼 모두 오와 열을 맞춰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당연하죠. 전술 운용을 하는데 제식은 기본이잖아요.”

“흠…….”

군 시절 훈련소에서 제식 훈련만 6주를 받았다.

물론 다른 훈련도 함께 받았지만, 제식 훈련은 항상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었다.

‘하루, 이틀 훈련한 기세가 아니야.’

차렷과 열중쉬어.

좌로 돌아, 우로 돌아.

2열 종대로 집합.

.

.

.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저 별거 아닌 제식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얼차려를 받는 건지, 훈련을 받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힘든 훈련이 제식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그렇게 훈련을 받으면서도 꼭 오와 열을 흩트리는 사람들이 꼭 한 명씩 있었으니까.

한데 행주 부대엔 그런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백 명 단위로 이루어진 수십의 부대가 정렬하고 이동하는데도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각성한 헌터들을 정렬시킬 때보다 더 빠르고 각 잡힌 움직임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대단하네요. 스카이 캐슬에 저런 비밀 부대가 있었다니!]

“비밀 부대요?”

[아닙니까?]

“…….”

해용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하몽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여군 특임 중대, 일명 독거미 부대라고 알려진 여군을 처음 봤을 때 해용도 그와 같은 눈빛을 했었으니까.

아직 활은 쏘지도 않았는데 제식만으로도 행주 부대는 자신의 실력과 마음가짐을 직접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 정도 제식이면 몬스터 레이드는 물론이고 청방 길드와 싸웠던 전쟁에 참여시켰어도 방해는 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그쪽이군요.”

[네?]

“다크 엘프의 수장 쿡쿠 님 맞죠?”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영주님의 허락하에 스카이 캐슬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네.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미 그전에도 당신들을 알고 있었고요.”

[저희를요?]

“네. 영지에 몰래 들어와 몇 번이나 식량을 훔치고 가끔은 영지민의 집 안까지 들어와 생필품도 가져갔잖아요.”

권수정이 쿡쿠를 보며 아는 체를 해 왔다.

“꽤 강한 기운이 느껴져 몇 번이나 그냥 보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

“엥?”

무슨 뜻이지?

다크 엘프들이 영지에 몰래 드나들었던 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해용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을 쳐다봤다.

“스물한 번. 맞죠?”

[네?]

“영지에 들어온 횟수를 물어보는 거예요.”

[그건 저희도 잘…… 근데 그 정도 갔다 온 것 같기는 합니다.]

우리가 들어온 걸 알고 있었다고?

마스터들을 주축으로 한 A급 이상의 선발대도 접근하는 걸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느낌이 싸해서 들어갔다가 몇 번이나 그냥 나온 적이 있긴 한데…….

쿡쿠 역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을 쳐다봤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알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희의 은신 기술이 그렇게 쉽게 발각될 만큼 허술하지는 않은데…….]

“여자들의 직감은 때론 꽤 예리하거든요. 그것도 24시간 머무는 보금자리에서는 더더욱 예민해지죠.”

[……?]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왠지 뒤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집안의 무언가가 없어지거나 집 밖에 쌓아 놨던 돌담이나 풀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나뭇가지들이 미묘하게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은신 중에 저흰 발자국은 물론이고 잡초조차 허투루 밟지 않는데…….]

“그래요? 그럼 확인해 볼까요?”

권수정은 쿡쿠를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1조!”

촥촥!

정렬해 있던 백여 명의 행주 대원들이 인근에 있던 수십 그루의 나무들을 보며 활에 화살을 메기고 화살을 조준했다.

[헐…….]

“……?”

“……?”

“저기에 수하들이 있는 것 같은데 맞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다크 엘프의 은신 기술은 심장 소리까지 감출 만큼 뛰어났다.

그런데 행주 부대원들은 은신해 있는 다크 엘프들을 향해 정확히 화살을 조준하고 있었다.

[알려주십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황한 것도 잠시 쿡쿠는 권수정을 쳐다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아야 했다.

꼭 알아내야 했다.

어떻게 자신의 은신 기술을 파악했는지.

“얘기해 드렸잖아요. 감이라고.”

[영주님의 정혼자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흰 이미 스카이 캐슬에 충성을 하기로 맹세했으니 은신 기술의 약점을 파악하셨으면 알려 주십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거 없어요. 진짜 그냥 감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시선이 느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고.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자들이…….

쿡쿠는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수하들을 쳐다봤다.

약점이 발견되면 보완하고 고쳐야 하는데, 시선을 느끼고 파악했다고 하니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종족의 탄압에도 수백 년간 다크 엘프들의 안위를 지켜줬던 은신 스킬이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간파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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