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거대 여왕개미 (10)
[어디 가십니까?]
“네, 카프리가 새로운 활을 만들었는데 그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시험 사격해 보러 가는 중이에요.”
[얼마나 뛰어나기에. 이 시간에…… 근데 이 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마치 창공을 나는 독수리 생김새와 비슷한 모양의 검은 활.
지윤미의 손에 들려 있는 활을 본 하몽은 미간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다가가 활을 매만졌다.
[창천의 활이군요.]
“아는 활인가요?”
[네. 과거 아스날 제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또 다른 전설급 무기입니다. 제작 비법이 실전(失傳)됐다고 알고 있는데 카프리 님이 알고 계셨군요.]
“전설의 무기라…….”
이번 일을 계기로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가?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 꽤 많은 아이템을 개발하긴 했지만, 그와 비교해서 살상을 목적으로 무구는 수량이 적고 성능이 현저히 떨어졌었다.
성격이 괴팍하긴 하지만 자신이 만든 물건으로 인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다치는 데에 거부감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전설급 무기면…… 지윤미 마스터가 흥분할 만했네.’
해용은 이제야 납득이 간 듯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윤미 마스터님 말로는 화살에 덧씌운 마나가 유지가 된다는데…….”
[네, 맞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활은 가장 강력한 공성 무기이자, 전쟁 무기였습니다. 하나 갑옷과 방패와 같은 방어 무구의 발전으로 언젠가부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었는데 ‘창천의 활’의 등장으로 그 분위기를 단숨에 바뀌었죠.]
“그 말은 갑옷과 방패마저 뚫을 수 있다는 거죠?”
[창천의 활로 쏜 화살은 기사들의 검기와 검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능이 담긴 방어 무구나 갑옷과 방패에 마나를 덧씌우지 않으면 관통당합니다.]
“카프리가 정말 엄청난 걸 또 만들어 냈네요.”
[그렇습니다. 이 활이 정말 창천의 활이라면 말이죠. 제가 함께 가서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근데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요? 일단 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확인을 해야 할지…….”
[하데스 신전 인근으로 가서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로 실험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좀비, 해골, 스파토이…….3티어 급 이하의 하위 몬스터였지만 언데드 몬스터는 미스릴 무기나 마나를 머금지 않은 공격을 당하면 다시 몸을 재생시켜 일어났다.
창천의 활의 성능을 확인하기엔 안성맞춤인 몬스터였다.
정말 목표 지점을 맞출 때까지 화살이 마나를 머금고 있으면 일반 화살을 쏴도 몬스터들이 사망할 테니까.
해용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몽과 지윤미와 함께 하데스 신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기 스파토이 무리가 보이는군요.”
[저도 확인했습니다. 용의 뼈가 있어서 그런지 유독 이 주위에만 스파토이가 많네요.]
“그게 무슨 말이죠? 용의 뼈랑 스파토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요?”
[아, 제가 얘기를 안 드렸나 보군요. 인간 혹은 이종족들이 죽어서 부활한 좀비와 해골과 달리 스파토이는 드래곤의 뼈에서 생성되는 몬스터입니다.]
“드래곤의 뼈에서요?”
몬스터도 생명체인데 뼈에서 탄생한다고?
해용은 놀람과 의문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비와 해골과 달리 스파토이가 더 빠르고 성장까지 하지요. 창천의 활을 시험하기엔 딱 제격인 몬스터인 것 같네요.]
“준비할까요?”
[네. 기대 하겠습니다.]
파란색 빛깔을 띤 뼈로 이루어진 스파토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좀비와 해골과 달리 불리하다 싶으면 땅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무기를 구하면 사용까지 해서 3티어로 분류된 나름 상위 몬스터였다.
‘세 발 안으로 처치해야 해. 안 그럼 땅으로 숨어 버릴 테니.’
지윤미는 긴장된 표정으로 미스릴 화살이 아닌 지금의 합금 금속으로 된 화살을 활에 메겼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트리플 애로우.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 푸르고 짙은 마나를 머금은 화살 세 발이 스파토이게 날아갔다.
뽀각.
스르륵.
스르륵.
뽀각.
스르륵.
스르륵.
뽀각.
백발백중.
200m 언저리.
꽤 먼 거리에 있는데도 지윤미가 쏘는 화살은 모두 스파토이에게 명중되었다.
“지금 일반 화살로 쏜 거 맞죠?”
“네. 일반 화살 맞아요. 확실히 마나가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일반 화살로 쐈는데도 스파토이가 재생을 하지 못하네요.”
“다시 한번 해 보시겠어요?”
“네.”
스르륵.
스르륵.
뽀각.
“화살에 검강이라니…… 아니 화살이니까 화살강이라고 해야 하나…….”
S급 헌터 지윤미가 쏘는 화살은 푸르고 진한 마나를 머금고 있었고 스파토이를 명중시키다 못해 아예 뚫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활에 화살을 메기면 마치 스코프를 장착한 것처럼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나 목표 지점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활의 궤적까지 가늠이 돼요.”
“눈으로 궤적이 가늠된다고요?”
“네. 여기 그려진 마법진의 효과 같은데…….”
“줘 보세요.”
덥석.
흠…….
처음 보는 마법진인데.
이번에 새로 개발한 건가?
창천의 활 활대에는 십여 개가 넘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지만 아는 마법진은 보이지 않았다.
“제 말이 맞죠?”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윤미를 보며 해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두 달 배운 그의 마법 지식으론 창천의 활에 그려진 마법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활을 배급할 인원을 선별할 때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네?”
“불특정 인원에게 나누어 주기엔 너무 위험한 물건 같네요.”
하나는 확실했다.
창천의 활이 정말 대단한 무기라는 걸.
지금 확인한 것만으로도 단숨에 지윤미 마스터의 전투력을 두 배에서 세배, 아니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열 배도 넘게 올려 주었다.
“이 활을 넘겨주면서 혹시 카프리가 전할 말이 없나요?”
“그게…….”
“잘 알아서 새겨들을 테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무슨 말을 했길래 이러지?
해용은 말을 잇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 지윤미를 쳐다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작업을 해도 지금 있는 재료로는 만 자루가 한계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무구를 아무나 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흠…….”
역시 발키리 길드를 겨냥하고 만든 것인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석궁과 달리 각궁은 숙련이 필요했다.
적지 않은 헌터들이 보조 무기로 활을 쓰기도 하고 대부분 한두 번 이상 활을 쏜 경험이 있었지만, 발키리 길드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 실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발키리 길드 헌터가 아닌 다른 길드에게 창천의 활을 주는 건 돼지 목에 금목걸이를 달아 주는 거와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그 성능을 100% 발휘하며 사용하긴 힘들 테니까.
직접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카프리가 누구를 위해 무구를 만든 건지 유추가 되었다.
해용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지윤미를 쳐다봤다.
“카프리가 이제 발키리 길드는 믿나 보네요.”
“네?”
“예전에 그랬잖아요. 우릴 아직 신뢰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네.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발키리에 소속된 헌터가 몇 명이나 있죠?”
“현역으로 있는 인원이 오백 명 정도 되고 천여 명 정도가 헌터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고 있어요.”
켄트 왕국이 영토를 넓혀 감에 따라 발키리 길드도 책임진 구역이 넓어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계속 인원을 늘려 가고 있었다.
“수련생까지 다 합쳐도 천오백 명밖에 되지 않네요. 지원자를 더 뽑아야 할 것 같네요.”
“얼마나…….”
인원을 늘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스카이 캐슬 연합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군대였고 대우도 좋았다.
뽑아만 준다면 바로 절을 하고 들어올 사람들이 널리고 널려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원을 확충하지 못한 건 운영비 때문이었다.
미스릴과 마나석…… 성수와 같은 막대한 자원이 있지만 그건 스카이 캐슬 연합의 소유지 발키리 길드의 소유가 아니었기에.
안 그래도 영지 개발을 하는 데 있어 돈 들어갈 때가 많은데 발키리 길드 단독으로 막대한 돈을 배당받아 세력을 확장하면 다른 길드의 반발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윤미는 기대감과 난처함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창천의 활이 제작되는 개수만큼이요.”
“방금 만 자루라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팔천 명 더 뽑으시면 되겠네요.”
카프리가 발키리 길드 주라고 하잖아요.
만든 사람이 그걸 원하는데 제가 어떡하겠어요?
해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힘들까요? 하긴 일주일 동안 팔천 명이나 받아서 훈련을 시키기엔 무리일 것 같긴 한데…….”
“아니요! 자금만 지원되면 가능합니다.”
“그래요? 훈련을 떠나서 인원 모집을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을 텐데?”
발키리 길드 헌터는 여자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다.
말이 팔천 명이지. 게이트를 넘어와 스카이 캐슬에 머무는 여성 인구를 다 합쳐도 만 명이 되지 않을 듯했다.
“혹시 남자도 받으려는 건가요?”
“아니요. 여자들만 받을 겁니다. 믿고 맡겨 주시면 레이드 일정에 차질이 없게 인원을 맞춰 공격을 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흠! 저야 항상 마스터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럼 이번에도 믿고 맡겨 주십쇼. 영주님이 무얼 염려하시는지 알지만, 영주님이 예상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엔 활을 잘 쏘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세계 양궁 최대 강국 대한민국.
동쪽에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활에 특화된 민족.
지윤미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네, 알았어요. 레이드 일정을 뒤로 좀 미뤄도 되니까 무리하진 마세요.”
“네, 알겠어요.”
똑똑한 사람이니 뭔가 생각한 바가 있겠지.
해용은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이내 막사로 돌아갔다.
* * *
“해용아, 해용아!”
“오빠, 오빠.”
누구지?
더 자고 싶은데…….
아침 10시.
해용은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막사 밖으로 나갔다.
“아주머니가…….”
“아주머니?”
“죄송해요. 입에 아직 붙지를 않아서. 은솔이까지 데리고 어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머니 활은 왜 들고 계시는 거죠?
그리고 팔목에 차고 있는 거 설마 마나 팔찌는 아니죠?
해용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새어머니와 여동생을 쳐다봤다.
스카이 캐슬 본성에서 살림하고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두 모녀가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눈앞에 서 있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발키리 길드에 차출됐어.”
“네? 어머니가요?”
“어. 은솔이랑 같이. 호호.”
“헐…….”
말도 안 돼.
50이 넘은 중년 부인이랑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어린 여자아이를 길드에 가입시켰다고?
해용은 당황을 넘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얘, 미자야! 일로 와. 해용이 알지?”
“그럼 알지. 호호.”
“미용실 아줌마?”
해용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슈퍼, 미용실, 식당…… 스카이 캐슬 본성에서 있어야 수백여 명의 여성들이 대부분 몸에 무구를 착용하고 손에 활을 들고 샌드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녕하세요.”
“누구?”
“하하. 제 와이프입니다.”
“성준이 네 와이프라고?”
“처음 뵙겠습니다. 이지원이라고 합니다.”
영지 헬퍼들의 아내들까지 계속해서 샌드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