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29화 (229/255)

229화. 거대 여왕개미 (8)

“영주님, 장지원 마스터가 술병을 들고 몰래 카프리의 막사에 찾아가서 둘이 함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아…… 만나지 말라니까.”

해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지원 마스터 성격상 사흘이면 오래 버텼습니다. 이 정도면 카프리도 반성했을 테니 용서해 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과연 반성했을까요? 아니 자신의 문제가 뭔지 알기는 알까요?”

카프리는 직선적이다.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의사 표현을 한다.

거짓을 말하지 않기에 친구로 동료로서 믿을 만한 존재인 건 분명하지만 때로 그 성격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대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친구인 자신도 가끔 상처를 받고 영주로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주의 자리를 지키고. 계획하고 원하는 대로 마왕들을 물리치고 평화가 유지된다면 상관없겠지만, 혹여나 자신의 생사에 문제가 생기고 이 싸움이 장기화한다면 카프리의 위치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어도 생사를 함께 넘긴 동료들이 있고 카프리의 기술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인간들의 삶이 그리 간단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니까.

‘그래서 이참에 고쳐 주려고 한 것인데…….’

해용은 못마땅한 표정을 카프리의 막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똑똑한 분이니 분명 영주님의 의도를…….”

“카프리가 똑똑한 건 맞지만 대인 관계에서 있어선 아닙니다. 서두르죠.”

후다다다다닥.

마치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해용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인간이었다면.

학교에 다니고 또 회사에 다니며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사회성을 기른 존재였더라면.

자신이 왜 화를 내고 벌을 내렸는지 알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독불장군처럼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서 직접 몸으로 겪게 해 알려 주려 했던 것인데…….

오는 말이 곱지 않으면 가는 말도 곱지 않다는 걸.

“영주님, 그래도 여기서 더 화를 내는 건 오히려 더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화난 사람한테 같이 화를 내면 싸우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왜?”

“지원이 형이 갔다면서요.”

장지원은 좋은 사람이다. 하나 똑똑하거나 현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걱정됐다.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카프리한테 엄한 소리를 할까 봐.

‘저기 있나 보네.’

척.

해용은 주먹을 말아 쥐고 얼굴 옆으로 들었다.

저 멀리서 장지원과 카프리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가택 연금이라고…… 집안에서 근신하게 하는 형벌이야. 해용이 허락 없인 아무도 널 만날 수 없어. 당연히 이번 전쟁 준비를 하는 데에도 넌 배제된 상태야.”

“형벌이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그게 죄가 되는 거라고?

카프리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난 평소와 그리 달리 행동한 적이 없는데…… 어차피 그때 그 전력으론 거대 여왕개미를 처치할 수 없어 마을로 돌아와야 했고 마을로 돌아오면 알려 주려고 했다.”

“그때 해용이가 물어봤을 때 바로 알려 줬어야지. 가뜩이나 평소에도 말을 재수 없게 하는데 레이드 나가서 잘난 체하며 공략법을 안 알려 주면 당연히 화나지.”

오죽 화가 났으면 영주의 권위마저 내세우며 대답을 하라고 했다며?

근데 거기서 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뻗대면 어떡하냐. 멍청한 드워프 놈아.

해용이가 아무리 착해도 참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야.

장지원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카프리를 나무랐다.

“내가 그렇게 말을 재수 없게 하나?”

“몰랐어? 친구만 아니면 죽여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멍청하다고 무시를 하다못해 구박까지 하고. 어, 실력도 안 되면서 맨날 무구 욕심만 부린다고 구박하고, 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넌 좀 많이 재수 없었어.

“몰랐다.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없어서.”

“안 한 게 아니라 네가 무시했겠지.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넌 맨날 투덜대고 불만을 입에 달고 살잖아. 그래서 그 연장선으로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얘기를 하는 건 줄 알았지.”

이 새끼가 이 상황에서도 또 그러네.

넌 진짜 혼 좀 나 봐야 해.

해용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나같이 착한 사람도 이렇게 불끈불끈하는데…….

장지원은 순간 욱해서 손을 들었다가 조용히 다시 허벅지에 갖다 댔다.

지금은 굳이 자신까지 구박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유야 어쨌든 무시한 거 맞네.”

“그래. 하지만 난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틀린 말을 한 적은 없다.”

“알아. 그래서 더 재수 없다는 거야. 때론 거짓말보다 진실이 더 아플 때도 많거든.”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이란 여전히 어렵군.”

선의의 거짓말. 뭐 이런 걸 얘기하고 싶은 건가.

카프리는 고민하는 표정을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나름 인간들과 어울리며 잘 지내기 위해 한다고 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았다.

“어려울 게 없어. 간단히 말해 해용이도 그동안 화가 났는데 계속 참았던 거고 이번에 터진 거니까. 그러니까 눈 딱 감고 가서 해용이한테 잘못했다고 그래. 그럼 용서해 줄 거야.”

“흠…….”

언제 불쾌했던 거지?

불쾌했으면 그때 바로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그때 시시비비를 가려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되는 건데.

왜 이제 와서?

영주가 돼서인가?

사람이 몇 없을 땐 이해하다가 이제 수십만 명을 이끄는 영주가 돼서 기분이 나쁜 건가? 아니 해용 영주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

카프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지원의 설명이 그럴듯하긴 했지만 뭔가 설득력이 부족했다.

백번 양보해서 자신의 말투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건 인정을 하지만 그로 인해 해용이 화가 났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원이 형!”

“해용아…….”

“혹시나 했는데…… 제가 이럴 줄 알았어요.”

“해용아, 내 말 좀 들어 봐. 난 카프리를 설득해서 너한테 용서를…….”

“카프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용서를 빌어요.”

“엥?”

잘못한 게 없다고?

근데 왜 화를 냈는데?

벌은 왜 주고?

갑자기 해용이 나타나자 당황했던 것도 지원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카프리.”

“말해라.”

“카프리의 언행에 문제가 있는 건 맞아요. 근데 그것 때문에 제가 화가 난 건 아니네요. 염려됐을 뿐.”

“염려?”

“네. 카프리가 무구를 만들어 줄 때마다 전 매번 감탄했어요. 카프리의 무구는 정말 하나하나 대단한 것들뿐이었으니까요. 근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렇게 대단한 무구를 만드는 드워프 종족은 마족은 물론이고 몬스터와 이종족에게 치여서 살았을까 하는.”

“흠…… 내 언행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제 판단에는 그래요. 솔직히 저도 가끔 카프리의 말에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어요. 근데 그것 때문에 화를 내는 건 말이 안 되죠. 카프리는 처음부터 그랬고 그걸 알면서도 친구가 된 거니까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

“저나 여기 있는 지윤미, 장지원 마스터는 카프리가 오크들에게 잡혀 노예로 있을 때부터 알게 되어 카프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지금까지 죽지 않고 버텨 왔는지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카프리의 거침없는 언행에 상처를 받아 어려워하고 또 껄끄러워할 소지가 다분하니까요. 전 그 부분에 대해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싶었던 거예요.”

“고치겠다.”

“네?”

이렇게 쉽게?

해용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네 말이 맞다. 우리 드워프 종족은 직설적이고 고집이 세다. 그래서 다른 이종족과 깊은 교류를 하지 못했다. 아니 서로 필요한 물물을 교환하기 위해 교류하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더 많았지.”

“…….”

“그래서 우린 이종족과도 최소한의 교류만 하며 폐쇄적으로 지냈고 대륙의 정보를 듣는데 항상 늦었다.”

“역시…….”

“만약 예전의 나였다면 내 말투 같고 트집을 잡았으면 그냥 안 보고 살았을 것이다. 마왕이고 나발이고 조용한 숲에 들어가 살면 그만이니까.”

“…….”

“한데, 영주 너랑 지내면서 나도 바뀌었다. 난 영주 네가 좋고, 멍청이도 좋고. 이곳의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는 이들이 웃는 게 좋다. 그러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해라. 이렇게 번잡하게 돌려서 가르치려 하지 말고.”

“네.”

제가 그냥 말로 했으면 들었을까요?

자기 입으로 고집이 세다고 말해 놓고선.

쿨한 척하지 마세요.

지금 안도하는 거 다 느껴지거든요.

해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느껴졌다.

카프리가 겁을 먹었었다는 사실을.

장지원 때문에 하마터면 오해가 생길 뻔했지만, 카프리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데는 성공한 듯했다.

“전 카프리가 친절한 드워프가 되길 원해요.”

“…….”

“친절이라는 뜻을 잘 모르면 가르쳐 드릴게요.”

“아니다. 대충 알고 있다. 노력해 보겠다.”

“기대할게요. 그럼 일단 거대 여왕개미 잡는 법부터 알려 주세요. 뭘 준비해야 하는 거죠?”

“강력하고 거대한 화력. 거대 여왕개미는 맷집이 좋은 게 아니라 회복력이 좋은 거다. 그러니 대규모 공격을 퍼부어 단숨에 해치우면 된다.”

“대규모 공격이라…… 화살 공격도 되는 건가요?”

“그렇다. 대규모 공격을 해서 신체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단시간에 마나를 소비하게 하면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하네요.”

워낙에 거대한 마물이라 걱정했는데 공략법이 예상외로 쉬웠다.

예전의 전력이면 거대하고 강력한 화력이라는 말에 막막해했겠지만, 지금 스카이 캐슬엔 수십만의 병력이 있었으니까.

“그럼 궁수가 몇 명이나 있어야 할까요?”

“최소 일만에서 이만은 있어야 할 거다.”

“일만에서 이만은 갭이 너무 큰데요?”

“이만은 있어야 한다.”

“이만이라…… 성능 좋은 활이 그 정도로 많지는 않을 텐데…… 부탁드려도 되죠? 일주일이면 될까요?”

“내가 무슨 로봇이냐! 일주일 만에 어떻게…….”

“친절한 드워프가 되기로 한 것 같은데?”

“끙…… 알았다.”

“감사해요.”

해용은 빙그레 웃으며 지휘 막사로 걸어갔다.

‘이건 친절이 아니라 호구가 된 기분인데?’

카프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로 배운 것 같은데…….

“멍청이. 나 지금 친절했나?”

“응. 친절했어. 굿이야.”

“지윤미 마스터.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지금 친절했어?”

“……네. 영지의 공방 대장으로 영주님이 명령하면 지금처럼 따르는 것이 맞으니까요. 사막에서 보단 훨씬 보기 좋았어요.”

“그렇군. 친절해진다는 거 정말 어려운 거였군.”

카프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공방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