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거대 여왕개미 (7)
“……생각을 좀 해 봐야겠네요.”
“네?”
“저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달래 줄 수 있지만, 그게 과연 카프리를 위해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 드네요.”
걱정됐다.
애초에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투가 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성격도 더 거칠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신지…….”
“마스터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카프리가 누구보다 스카이 캐슬을 아끼고 영지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계속 저렇게 툴툴대면 언젠간 사달이 나도 날 거예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근데 카프리는 말 한마디를 해도 곱게 하는 경우가 없었고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알고 나면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을 가진 이였지만 그건 친해지고 나서의 일이었다.
카프리의 뒷모습을 보는 해용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휘부에 전달해서 당분간 카프리에게 아무도 접촉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달래 줄 게 아니라 카프리한테 알려 줘야 할 것 같네요. 말을 밉게 하고 성깔을 부리면 사람들이 피하게 된다는 걸.”
“영주님, 진정하세요. 영주님까지 그러시면…….”
“화나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카프리의 친구로서 문제가 야기되기 전에 고쳐 주려고 하는 거예요.”
하루에도 수백에서 수천 명씩 사람들이 게이트를 넘어오고 있었다.
카프리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앞으로 그 인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계속 저렇게 독불장군처럼 굴면 혼자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고립이 될 가능성이 컸다.
오크들에게 잡혀 있던 카프리의 모습을 알고 있는, 카프리의 무구들로 인해 위기를 극복한 이들은 이해하겠지만 새로 스카이 캐슬에 가입한 이들에겐 카프리는 성질 고약한 권력자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
조금 서운해하더라도 사회성을 길러줄 필요가 있을 듯했다.
“우리도 이만 돌아가죠.”
“영주님, 다시 한번 생각을…….”
“지금 우리 전력으론 못 잡을 거예요. 마을에 필요한 게 있는 듯하네요.”
“네?”
“제가 그동안 겪은 카프리는 자기 불쾌하다고 이 많은 인원을 헛수고시킬 이가 아니거든요.”
카프리는 실리를 추구하며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이곳에 함께 온 인원만 수백 명이 넘었다.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이 많은 인원을 헛걸음하게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럼 정말?”
“얘기했잖아요. 화나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전 카프리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예요.”
“아…….”
“늘 그랬듯 저를 믿으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프리는 제가 잘 알고 있으니. 며칠 혼자 두면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알아서 가르쳐 줄 거예요. 겉으론 마지못해 알려 주는 것 같아도 지식을 뽐내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니까.”
영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달래 줄 수 있었다.
한데 그게 카프리한테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했다.
진정한 친구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수 있어야 하니까.
이참에 카프리의 거친 말투와 괴팍한 성격을 고쳐 줘야 할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마스터들한텐 어떻게…….”
“카프리는 물론이고 마스터들한테도 제가 아주 많이 화가 난 걸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알겠어요.”
하긴.
카프리가 요즘 안하무인으로 굴긴 했지.
지윤미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어느 때보다 해용의 의지가 강건해 보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근데 저 미소는 뭘까?’
수련 힘들게 시켰다고 복수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 * *
샌드성으로 복귀한 해용은 바로 카프리를 제외한 지휘부를 소집했다.
“쿡쿠 님, 거대 여왕개미만 처치하면 이곳에 더 이상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없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거대 여왕개미만 없으면 저희 다크 엘프만으로도 이곳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곳 샌드성은 병력만 남겨 놓고 전진 기지로 사용하고 주민들을 샌드 마을로 이주시키고 안지현 실장과 함께 사막의 북쪽과 남쪽에도 마을을 만들 준비를 하세요.”
사막을 살펴보니 더 확실해졌다.
마법진과 지형적 이점으로 인해 샌드성이 방어엔 최적화되어 있을 진 몰라도 생명체가 살기엔 가장 척박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쿡쿠 님을 정식으로 샌드성의 성주로 임명할 테니 앞으로 사막을 관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거대 여왕개미를 잡으려면…….]
카프리 님을 먼저 달래 주는 게 순서 아닐까요?
거대 여왕개미를 해치우지 못하면 북쪽과 남쪽으로 진출할 수 없는데…….
쿡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해용을 쳐다봤다.
“카프리가 공략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곧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새 얘기가 됐나 보…….]
“아니요. 아직. 근데 곧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진행해 주세요. 만약 계속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배짱을 부리면 이 땅의 영주로서 본때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찌릿.
해용이 두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헐…….”
“끙…….”
화가 많이 나셨다고 하더니…….
하긴 이번엔 카프리가 좀 심하긴 했지.
마스터들의 얼굴에 안쓰러움과 두려움이 서렸다.
“대답.”
“네?”
“대답들 안 하셨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흘에서 나흘.
길어봤자 일주일이면 카프리는 제풀에 지쳐버릴 것이다.
해용은 카프리를 배제하면서도 그가 가르쳐 줄 거라 확신하고 일을 진행했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각 성에 연락해서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놓고 모두 소환해 주세요. 거대 여왕개미를 해치우고 바로 일본으로 들어갈 겁니다.”
“오크 부대도 소환하는 거죠?”
“네. 오크들은 물론이고 그리폰 부대와 중국인 헌터들도 다 소환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김용규 본부장한테도 연락해서 저희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해 놓을게요.”
사막의 동쪽 끝에 있는 일본과 연결된 차원의 문.
거대 여왕개미만 처치하면 대규모 병력을 그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고 만전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죠. 내일부턴 또 바빠질 테니 오늘 하루는 푹 쉬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본이 아무리 위기에 빠졌다 하나 그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 얘기였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5위안에 들게 해줬던 현대 무기를 갖고 있었고 혹여나 모를 돌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해용은 30만에 이르는 전 병력을 소집했다.
이제 갓 개발을 시작한 샌드 마을이 맞이하기엔 엄청난 대군이었다.
“내일부터 또 죽어 나가게 생겼군. 해용아, 카프리한테 가 볼 거냐?”
“카프리요? 지윤미 마스터한테 전달 못 받으셨나요? 당분간 카프리랑 접촉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듣긴 했는데…… 거대 여왕개미는 둘째치고 일본에 가려면 전체적으로 무구 점검 싹 해야 하지 않아?”
“헬퍼들 있잖아요.”
“어?”
“헬퍼들한테 맡기세요.”
카프리의 지도 아래 마법진 그리는 걸 배우고 무구를 만드는 헬퍼들의 실력 역시 이제는 일취월장해 있었다.
카프리가 도와주면 더 수월하긴 하겠지만 당장 도와주지 않는다고 일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우린 지금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요.”
“…….”
“만약 제 말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겁니다.”
“……그래.”
어라. 진짜 화났나 보네.
그러게 카프리 이놈. 적당히 좀 하지.
“에휴.”
장지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해용의 지엄한 명령에 카프리의 막사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한 명쯤은 찾아올 만도 한데…….”
하다못해 멍청이 이놈이라도 와서 술 한잔하자고 하는 게 정상인데…….
카프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막사 주변을 돌아봤다.
‘전쟁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거대 여왕개미를 해치운 건가?
거대 여왕개미 공략법은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마왕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강력한 맷집을 자랑하지만, 그에 반해 공격력이 약해 S급 헌터 몇 명 앞에 세워 두고 단체 공격을 하면 되었다.
레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일만 명 이상의 궁수가 동시에 집중 포화를 하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가 있었다.
데스 나이트 공략법과 비슷했다. 다만 인원이 백배 정도 더 필요할 뿐.
기록엔 없지만 아스날 제국에서도 그렇게 거대 여왕개미를 잡은 것이었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출정을 했다가 거대 여왕개미와 맞닥뜨려 그대로 공격을 강행한 것이었다.
그동안 해용의 전술 이해도와 스타일로 봐선 공략법을 모른 상태에서도 시도해서 잡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라? 성민이 저놈도 왔네.”
왜 왔는데 인사를 안 왔지?
카프리는 의아함을 넘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성민과 수백여 명의 공방 헬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너희 뭐 하냐.”
“스승님…….”
“스승님…….”
“뭐 하냐고 묻잖아.”
“영주님께서 총동원령을 내리셨습니다. 헌터들의 무기도 보수하고 활과 화살촉을 만들기 위해 파견 나왔습니다.”
아…… 나만 죽어나게 생겼구나.
영주님이 스승님과 접촉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자인 입장에서 모른 체할 수도 없고…….
이성민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그럼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왜 여기다가?”
“그게 이번 원정대의 보급은 제가 책임을 맡기로…….”
“네가? 내가 있는데?”
“영주님께서 스승님은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다고 이번 원정엔 열외를 시킨다고 하셔서…….”
“……?!”
왜 저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나요.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스승님.
그저 위에서 그렇게 명령이 내려와서…….
이성민은 대답하면서도 마치 죄라도 지은 것같이 카프리의 시선을 피했다.
“알았다. 가 봐.”
“스승님…….”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았으니까 가서 일 봐.”
사흘 동안 아무도 찾지 않더니…….
자신의 제자들이. 대장으로 있는 공방 헬퍼들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와서 일하는 걸 봤으면서도 카프리는 아무런 말 없이 뒤돌아 막사로 걸어갔다.
당연히 달려와서 미안하다고 하며 달래 줄 줄 알았는데…….
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 늘 그랬듯 몇 번 튕기다가 못 이기는 척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거대 여왕개미를 잡아서 날개를 가져오면 정말 멋진 망토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처음 겪는 상황에 카프리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카프리.”
“…….”
“카프리, 여기야. 여기.”
“멍청이?”
막사 옆 풀숲에서 숨어 있는 장지원 마스터가 보였다.
“어, 나야. 이쪽으로 자연스럽게 걸어와. 조용한데 가서 한잔하자.”
“됐다. 일 없…….”
“너 삐졌지? 근데 해용이도 삐졌거든. 너 만나면 군법으로 다스린다고 협박했는데도 몰래 찾아온 거야. 그런데도 이럴 거야?”
“영주도 삐졌다고?”
내가 삐졌는데 같이 삐졌다고? 영주가?
카프리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풀숲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