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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227화 (227/255)

227화. 거대 여왕개미 (6)

“거참, 그냥 조용히 어떻게 생긴 지 보고만 오는 거라니까요.”

“저희도 보고 싶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나도.”

바늘이 가면 실이 따라오기 마련.

해용이 길을 나서자, 카프리와 하몽, 발키리, 그레이, 태백산맥 길드의 마스터들과 헌터들이 따라나섰다.

“피곤하실 텐데 그냥 여기서 쉬고 계세요. 어떻게 생겨 먹은 지만 보고 후딱 올 테니까.”

“영주님이 외부로 나갔는데 저희가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나요?”

아직 주변 지형이 파악되지 않고 어떤 몬스터가 출몰할지 모르는 곳에서 해용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마스터들의 얼굴에 기필코 따라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어휴. 알았어요. 같이 가죠.”

그냥 가볍게 정찰만 하려 했는데 그 수가 수백을 넘었다.

높은 자리에 오른 건 좋은데 이래저래 너무 과보호를 받고 있었다.

해용은 한숨을 내쉬며 쿡쿠에게 손짓을 하며 앞장을 서라고 했다.

[넓게 트여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다 길은 아닙니다. 눈앞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모래 언덕은 사구라고 하는데 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서 형성된 겁니다. 자칫 발을 잘못 들여 났다간 그대로 모래 속으로 푹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아…….”

[눈앞에 있는 것들은 버섯 바위라고 하는데 바람에 날린 모래가 바위의 아랫부분을 깎아 형성된 것입니다. 그 말인즉 이쪽 지형은 바람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죠. 그리고 때론 마나를 다루는 이들마저 버틸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회오리 폭풍도 발생하고요.]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란 쿡쿠는 위험 지역을 피해 해용 일행을 안내했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도움이 될까 해서 사막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공유했다.

[듣자 하니 사막의 동쪽에 있는 차원의 문으로 가시려고 하나 본데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거대 여왕개미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일이십 명이라면 모를까. 거대 여왕개미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딱 막고 있어서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면 분명 그놈의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이런…….”

해용이 사막으로 온 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다크 엘프들을 회유하고 샌드성을 차지하는 건 일종의 교두보인 셈이었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선 어떡해서든 거대 여왕개미를 해치워야 할 듯했다.

“영주님의 말이 맞네요. 사막에서도 정말 길이 있었네요. 우리끼리 왔으면 그냥 앞으로 쭉 걸어갔을 텐데 마치 미로라도 통과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계속 바꾸네요.”

쿡쿠의 안내에 따라 이동을 하니 돌아가는 경향이 큰 것 같아도 몬스터를 만나는 횟수가 적었다.

“11시 방향 스콜피온 4마리 접근 중입니다.”

“장전. 발사.”

스르륵.

스르륵.

설사 만난다 해도 십여 마리의 안팎의 소수라 금방 정리됐고.

[저기 저놈입니다.]

“어디요? 모래 산밖에 안 보이는데?”

[산이 아니라 거대 여왕개미입니다.]

“헐…….”

산이 왜 움직이나 했네.

쿡쿠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저 멀리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씨엘보다 더 큰 것 같은데요?”

개미라고 우습게 생각하고 왔는데 드래곤 로드보다 덩치가 더 큰 것 같았다.

게다가,

“설마 저게 다 알은 아니죠?”

“맞습니다. 알”

거대 여왕개미 주위엔 마치 개구리알처럼 수백, 수천 개의 알이 옹기종기 모여 여기저기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용과 일행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거대 여왕개미면 마물 아닌가요? 그런데 어찌 저렇게…….”

[마물들이라고 해서 다 약한 건 아닙니다. 앞에 있는 저놈 정도 되면 웬만한 상위 마족까진 먹이로 생각하죠.]

8티어? 9티어?

느껴지는 기세가 데스 나이트 로드와 뱀파이어 로드 브레드 이상이었다.

“대단하네요. 저런 놈이랑 싸워서 무사하다니…….”

[생긴 것만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맷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공격력은 그리 강력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알의 보호 때문인지 도망치면 일정 거리까지 따라왔다가 포기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고요.]

“흠…….”

저놈을 무찔러야 사막을 차지할 수 있는데…….

사막의 북쪽과 남쪽, 동쪽을 가기 위해선 이곳을 지나쳐야 했다.

물론 길이 트여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면 어떡하든 갈 수야 있겠지만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던 쿡쿠가 굳이 이 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터.

그런데 그때,

“혹시나 하고 따라와 봤는데 역시나 이놈이었군. 따라오길 잘했어.”

“아시는 놈이에요?”

카프리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거대 여왕개미를 쳐다봤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께서도 아스날 제국에 무구를 만들어 주신 적이 있지. 나도 본 적은 없지만 아스날 제국의 황제가 그 망토를 받고 아주 기뻐했고 또 황제의 상징 무구로 대대로 물려주기까지 했다고 하더군.”

[아스날 제국 황제의 상징 무구라 하면…… 혹시 바바리를 말하는 겁니까?]

“오! 하몽 자네도 알고 있나?”

[그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마법사들에게 있어 원수 같은 무구였는데…… 역시 그것도 드워프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군요.]

아스날 제국의 황제들이 대대로 물려받았던 망토. 바바리.

황제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혹여 모를 침입을 대비해야 했고 주위에 항상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기사들을 배치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마법사들이 왕궁 안까지 침입했지만 바바리로 인해 무사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 어떤 마법사도 바바리의 방어력을 뚫지 못해 황제의 몸에 상처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그런 무구를 우리 드워프가 아니면 누가 만들겠는가. 하하.”

“카프리 잘난 척은 그만하시고 본론만 얘기해 주세요. 그 바바리라는 무구랑 거대 여왕개미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거로 만든 거야. 저놈 등에 달린 금빛 날개로.”

“그럼 혹시?”

“저거 뽑아 와. 그럼 너도 바바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헐…….”

거대 여왕개미를 해치워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용 갑옷, 발렌시아가 방패에 이어 망토까지.

언제나 안전을 우선시했지만 이제 탱커가 되기로 한 해용에게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될 만한 무구였다.

‘일단 싸워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빠져야겠다.’

해용은 벨트에 꽂혀 있던 에르메스의 검을 빼 들었다.

“혼자 가게?”

“일단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나 한번 해 보려고요.”

“넣어 둬.”

“네?”

“쿡쿠 말 못 들었어? 맷집이 엄청난 놈이야. 마왕 놈들도 혼자선 저놈 못 죽여."

“마왕도요?”

“저 날개 자체 마법 방어력만 해도 앱솔루트 베리어 급이야. 혼자서는 마왕은커녕 마왕 할아버지가 와도 못 죽여.”

“그럼?”

어쩌라고?

뭔가 알고 있으면 한 번에 얘기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해용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게 공략법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속 시원하게 알려 주지를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저 날개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왔다는 건 누군가 저놈을 해치웠다는 거지.”

“그러니까요. 방법이 뭐냐고요?”

“우리 드워프가 장인으로 존경받고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건 단지 손재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재료를 보면 그 재료의 특성을 연구하고 또 탐구해서 이해하기 때문이야.”

마스터들 아니 이곳에 있는 헌터들과 다크 엘프의 시선이 모두 카프리에게 향했다.

분명했다.

카프리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혼자 알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있었고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을 보며 짜릿해하고 있었다.

“관종도 아니고…….”

해용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관종?”

혼자 한 말인데? 속으로 말을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카프리면 이해를 해 주겠지.

해용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관종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말은 튀어나와 버렸고 괜히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솔직히 얘기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따지고 보면 관종이 그리 나쁜 뜻만은 아니지 않는가?

“관심 종자 줄인 말이에요. 카프리처럼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또 관심받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흠…….”

기분이 별론데?

한국말 이제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알았다.

처음엔 억양에 따라 뜻이 바뀌는 부분이 많아서 헷갈렸지만, 이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설명하는 듯했지만 지금 해용이 빈정거리고 있다는 것을.

“불쾌하군.”

“네?”

“말하기 싫어졌다. 난 돌아간다.”

“엥?”

그냥 간다고요?

거대 여왕개미는 어쩌고?

해용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너무 뜸을 들여 살짝 짜증을 낸 것인데 카프리는 어느새 등을 돌려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카프리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이게 감정적으로 행동할 일입니까! 어서 돌아오지 못해요?”

아무리 친해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스카이 캐슬의 발전에 있어서 카프리의 공이 아주 크기에 그동안 웬만한 무례를 범해도 넘어갔지만, 이번엔 선을 넘어 버렸다.

거대 여왕개미의 처치는 앞으로 행보에 있어 큰 사안이 달린 일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게 하는 건 영주로서 간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영주로서 명령입니다. 이리로 와서 빨리 공략법을 말하세요.”

“잊어 버렸다.”

“뭐라고요?”

“떠오를 듯 말 듯 했는데 네가 말을 끊어서 까먹었다.”

“……?!”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카프리!”

“진짜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인간들도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분명히 보고 들은 것은 생각이 나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나한테 정보 맡겨 놨어?

네가 물어보면 내가 알려 줘야 하는 거야?

무구 만들어 달라하면 무구 만들어 줘.

탱커 하고 싶다고 해서 검술 가르쳐 줘.

근데 태도가 왜 그러는 건데? 어! 다크 엘프 애들도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게 면박을 줬어야 했어?

그리고 어차피 지금 알려 줘도 못 잡거든.

마을 갔다 와야 해.

“아까는 분명 말하기 싫다고…….”

“미안하다. 분명 생각이 날 듯했는데 갑자기 나지 않아서 자존심 상해서 그렇게 말한 거다.”

시무룩,

카프리는 어깨가 축 늘어져 샌드성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저 말 사실일까요?”

“카프리가 그럴 리가 있나요.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 민정이한테 몇 대를 맞았는지, 어디를 맞았는지까지 다 기억하는 분인데요.”

“근데 왜?”

“누가 봐도 삐졌잖아요.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그동안 잘해 오셨잖아요.”

저도 가끔 카프리의 말에 상처를 받아 아플 때도 있고 그래요. 근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쉬운 건 우리인데…….

카프리 덕분에 우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사소하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죠.

지윤미는 스리슬쩍 손을 들어 해용의 등을 밀었다.

“가서 달래 주세요. 그럼 알려 줄 거예요.”

“……그래야 하는 게 맞는 거죠?”

저 영주인데? 지금 영지의 행사를 하고 있고?

“네.”

화나게 한 사람이 풀어 줘야죠.

지윤미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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