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거대 여왕개미 (2)
영주의 권위에 도전한다며 마스터들을 타박하고 마신의 신전 복구에 손을 들어 줬던 안지현.
하나 그 이면엔 하데스를 모시는 다크 엘프들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품고 있어 도왔을 가능성이 컸다.
해용은 그걸 경계하는 것이었다.
혹여나, 만에 하나 다크 엘프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면 안지현 실장의 존재는 부담이 되기에.
“정리하자면 이런 거네요. 다크 엘프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들과 친한 제가 스카이 캐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니 입장 정리를 확실히 하고 가자. 이런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안지현 실장이 도우면 다크 엘프와의 외교를 시작할 때 한결 부드러워질 순 있겠지만…….”
“너무하시네요.”
“네?”
최선을 다했다.
이곳을 개발하라는 지시에 밖에서 진행되고 있던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이곳에 기업의 모든 역량을 퍼붓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박 기업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기업들 대부분이 자신의 설득으로 인해 켄트 왕국 개발 사업에 사활을 걸고 참여를 하고 있었다.
이곳이 무너지면 자신은 물론이고 대박 기업도 끝이었다.
그로 인해 켄트 왕국은 지금 눈부시게 성장을 하고 있었고 본인도 조금 전까지 칭찬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어떻게 뭘 더 하라는 말인가.
“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빨래하고 설거지를 한 것보다 이곳에 와서 한 게 더 많고요. 걷고 몸을 움직인 것도 더 많아요. 피부 나빠질까 봐 꼬박꼬박 하루에 8시간은 자고 관리도 기본 두세 시간은 받으며 살았고요. 그런데 그런 제가 지금 관리는커녕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자요. 영주님이 시키신 일을 하기 위해서.”
“…….”
“그런데도 전 아직 영주님한테 신뢰받는 사람이 되지 못한 건가요?”
몬스터 웨이브? 지구의 위기?
사실 그런 건 위협이 되지 않았다.
돈이 있고, 무력이 있고, 권력이 있으니까.
스스로 S급에 이르는 초인인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헌터들이 자신을 지켜 주고 있었다.
그냥 적당히 안전한 곳에 가서 숨어서 지내도 지금까지 살던 것처럼 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망하면 다른 나라로 가면 된다.
세계 전역에 그의 지인들이 있고 사업체가 있으니까.
돈만 있으면 어디를 가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명예롭고 살다 죽기 위해서.
설사 내일 몬스터와 싸우다 죽게 되더라도 자신의 사람들을 예전처럼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겠다며 애쓰는 안해용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괜히 왔어. 괜히. 그냥 아버지 말대로 게이트 없는 나라에 가서 조용히 사는 건데.”
흑흑.
안지현의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저 안지현 실장,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다크 엘프들한테 은혜를 입었잖아요. 그래서 전 은혜를 받은 이들을 적대시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으니 부담스러우면 차라리 한발 물러나 있으라고 얘기를…….”
“언제요.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째려봤잖아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의심했잖아요!”
“의심이라니요. 의심이 아니라 경계 정도가 적당한 표현…….”
찌릿.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눈물을 흘리며 노려보고 있는 안지현 실장을 보고 있자니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영주, 아니 총사령관으로서 마족과 전쟁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전쟁을 하기에 앞서 혹여나 생길지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물론 조금 불쾌하고 서운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 의심을 하는 것보단 차라리 툭 까놓고 말하는 게 현명한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왜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거지?
기업 총수의 대표라 나름 대우해 준 건데, 아직 어린애였던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이해해 준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계속 저를 의심하고 모질게 굴으시는 거죠!”
“제가 언제…….”
“다른 마스터들 그리고 하다못해 제가 데리고 온 직원들과 헌터들에게 조차 항상 따듯하게 대해 주시잖아요. 잘못해도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 주시고. 근데 왜 저만. 계속 그렇게 의심하고 뱀눈을 하고 쳐다보는 거죠.”
흑흑.
다크 엘프한테 생명을 건지고 기술도 사사하였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왜 어째서 나한테만.
나만 계속 의심하고. 경계하고.
안지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잘한다고 하고 있는데도.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계속 경계를 하고 의심을 하니 마치 혼자서만 외딴 섬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두가 꺼리는데 억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불청객이 된 듯했다.
“……그 사람들은 제가 보살펴야 하는 이들이니까요.”
“저는요. 그럼 저는 아니라는 말인가요?”
“안지현 실장은 저와 함께 그들을 보살펴야 할 보호자죠.”
S급 헌터이자 대한민국 기업 총수들의 대표.
그래서 그랬다.
나이가 어리긴 하나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온 지휘관이자 책임관이니까.
그래서 존중을 했고 또 경계한 것이다.
‘대답은 들은 것 같네.’
해용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안지현을 쳐다봤다.
반응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다크 엘프를 돕겠다고 영지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안해요. 제가 속상하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자리가 자리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다른 마스터들과 헌터들은 저와 함께 이곳에서 죽을 위기도 많이 넘기고 고생을 하며 의견을 맞춰 온 사이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데 안지현 실장은 아직 아니잖아요. 그래서 의견을 물어본다는 게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예전부터 말주변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에둘러 말하고 돌려 말하면 좋을 텐데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저도 함께 데스 나이트 로드랑 싸웠잖아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영주님이 조금만 늦게 오셨으면 저 죽었거든요. 그리고 저한텐 언제 친해질 기회라도 주셨나요?”
“헛, 험.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사과하고 있잖아요.”
“사과만 하면 끝인가요? 아까도 개발 잘해 놓았다고 칭찬해 놓고선 사이코패스처럼 1초도 지나지 않아서 노려보면서 의심했잖아요.”
“……?!”
만나기 전에 술이라도 먹은 건가?
사이코패스라니?
단어 선택이 좀…….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랑도 술 한잔해요. 다른 마스터들 이랑도 종종 하시잖아요. 그리고 커피도 마시고.”
“그거면 되겠습니까?”
“네. 저도 영주님이랑 친해지고 싶어요.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싶고요.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의심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안 그래도 한잔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네. 가, 감사해요.”
훌쩍.
창피해.
왜 눈물이 나왔지.
안지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해용을 따라갔다.
* * *
‘그냥 돌아갈까? 괜히 술 마시자고 했나?’
안지현은 몸을 쭈뼛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지윤미, 조성태, 장지원, 카프리, 하몽…….
해용을 따라가니 수련을 도왔던 스카이 캐슬의 수뇌부들이 모두 자리에 함께했다.
왜 왕따를 시키냐고 따지고 들었던 것도 잠시 막상 수뇌부들과 자리를 함께하니 부담스러웠다.
하나,
‘친해지고 싶어.’
그녀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뛰어난 안목과 원거리 사격을 무기로 항상 안해용의 곁을 지키는 발키리 길드의 마스터 지윤미.
평소엔 과묵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항상 최전선에 나서 전투를 하는 그레이 기사단의 단장 조성태.
말도 많고 이래저래 무시당하는 듯하지만 스카이 캐슬 최고 권력자인 영주와 카프리와 허울 없이 지내는 태맥산맥 길드의 마스터 장지원.
.
.
.
부담스럽긴 하지만 다들 너무 존경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자신을 믿고 이곳을 따라와 준 이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가깝게 지내야 할 이들이었다.
영주의 지지 하에 켄트 왕국 개발의 총책임자가 됐지만, 아직은 일원이라기보다는 손님의 입장에 가까웠으니까.
그래서 아직 의심을 받는 것이었고.
“이거 뉴 페이스가 오니 분위기가 어색하네. 노래라도 하나 뽑고 시작해야 하나?”
“노래요? 제가요?”
갑자기? 여기서?
안지현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을 쳐다봤다.
“하하, 너무 얼어 있어서 농담 한번 한 거야. 근데 해용이가 때리기라도 했어? 왜 이렇게 얼어 있어?”
“그게 아니라 제가 낄 자리가 아닌데 낀 것 싶어서…….”
“에이. 술 한잔하는 건데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마시고 싶으면 같이 마시면 되는 거지.”
“네, 감사합니다.”
장지원 마스터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반말해 주시니까 한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안지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박 그룹의 후계자.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모님과 친척들을 제외하곤 자신에게 편하게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당연시하고 자라오며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장지원의 반말이 너무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형님, 그룹 총수들의 대표입니다. 허락받지 않고 반말을 하는 건…….”
“그런가? 지현아, 나 말도 되지?”
“네. 그럼요.”
“됐지?”
“쩝.”
“넌 다 나쁜데 그렇게 사람들한테 선을 긋는 게 제일 큰 문제야.”
정 없는 놈.
얼굴 부대끼고 함께 지내면 대충 나이로 가는 거지. 대표는 무슨.
장지원은 미간을 찡그리며 해용을 타박했다.
“그게 왜 잘못인가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나이가 어리다고 다짜고짜…….”
“그럼 전 아직 친하지 않아서 존댓말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영주님?”
“네?”
지윤미 마스터님?
지금 팩트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해용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안지현에게 실수할까 봐 장지원에게 주의 준 건데…….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도 그동안 서운하긴 했어요. 발키리 길드 헬퍼들이랑 형, 동생을 하고 다영이랑 현지하고도 오빠, 동생을 하는 걸로 아는데 저한텐 아직도 마스터님! 마스터님! 이러고 있잖아요. 이제 말을 편하게 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직 친하지 않아서 말을 놓지 못하는 건가요?”
“마스터님까지 갑자기 왜 이러세요?”
“들으신 그대로예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호칭 때문에. 그리고 영주님이 대하는 말투 때문에 가끔 섭섭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도 좀 편하게 대해 주셨으면 해서요. 영주님은 잘 모르겠지만 그거 은근히 소외감 느끼거든요. 아마 그래서 아까 안지현 실장도 큰소리를 냈던 것 같고요.”
“네? 저요?”
아, 들었구나.
흥분해서 너무 크게 말했나 봐.
안지현은 잔뜩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웠다.
아까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불쾌함과 서러움 때문에 나오는 대로 얘기를 했는데 막상 진정되니 얼굴이 후끈거렸다.
“지현이라고 했지? 들어 보니 나보다 두어 살 어린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말 놓을까?”
“저도요? 그냥 마스터님만…….”
“마스터님? 난 지금 언니, 동생 하자는 건데?”
“아…….”
갑자기 다들 왜 그러시지?
좋긴 한데…….
“뭘 쭈뼛거리고 있어.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되는 거지. 뭐 어려운 거라고. 하하.”
우리 아까 다 들었어.
미안하다.
우리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앞으로는 잘할게.
장지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지현을 쳐다봤다.
그녀와 해용이 말한 것을 다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반성했고.
그들 역시 내심 안지현을 의심했었으니까.
하나 그녀의 투정스런 반발에 진심을 느낀 것이다. 안지현 역시 해용을 좋아하고 또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 켄트 왕국 개발을 하는데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라는 것은 이미 눈으로 확인을 했고.
“가, 감사해…….”
“말 놓으라니까.”
“고마워 어, 언니.”
흑흑.
안지현의 눈에서 다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도 눈치를 챈 것이다.
마스터들도 자신과 친해지려고 일부러 말을 놓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