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거대 여왕개미 (1)
-네게 도대체 무슨 짓을…… 난…… 복수…….
“아스날 제국은 망했어. 그리고 네가 증오하는 황제도 이미 죽었고. 그러니 그만 열 내고 들어가서 좀 쉬고 있어.”
일생을 충성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해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가족들마저 살해를 당해 그 증오심으로 데스 나이트 로드와 듀라한으로 부활한 이들.
그 분노가 어찌나 강한지 그들은 종속 마법을 당한 이후에도 계속 복수를 울부짖었고 해용은 아공간을 열어 밀어 넣었다.
카프리가 마신의 신전에서 복구한 세 가지 마법 중에서 서먼 몬스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수련은 이쯤 하면 될 것 같은데 카프리 생각은 어때요?”
“데스 나이트 로드 한번 상대했다고 그새 기고만장해진 거냐? 검술론 안돼서 결국 흑마법으로 제압해 놓고선?”
“그럴 리가 있나요. 근데 이제 굳이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의견을 한번 제시해 본 거예요.”
데스 나이트 로드는 빠르고 강했다.
그의 검질 한 번에 주위에 있던 수십 그루의 나무가 함께 베어졌고 방패를 휘두르면 땅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이 같이 전해 왔다.
그래서 얘길 꺼낸 것이다.
그렇게 강한 상대와 싸워 보니 늑대인간과 해골, 버그 베어와 같은 하급 몬스터와 수련을 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하여튼 말은. 하산해라.”
“네?”
“끝내자고. 그동안 고생했다.”
고맙다. 죽지 않고 잘 버텨줘서.
영주 너라면 해낼 수 있을지 알았다.
카프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SS급에 이르는 마나를 몸에 품고 시작한 수련.
수많은 전투를 지휘한 경험으로 인해 시야까지 좋았다.
안해용에게 필요한 건 몬스터와 맞닥뜨려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과 실전 감각이었는데, 데스 나이트 로드를 상대하며 스스로 그 성취를 증명했다.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었다.
“성민아, 그거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카프리의 지시에 수석제자 이성민이 벨트에 각인되어 있던 아공간을 열어 노란색 빛을 발하는 갑옷을 하나 꺼냈다.
“씨엘?”
갑옷을 본 해용은 드래곤 로드의 씨엘의 기운을 느꼈다.
의념과 맞닥뜨리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감을 뿜어 댔을 때처럼 갑옷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많이 크긴 많이 컸어. 기운만으로 단숨에 씨엘을 유추하고.”
“제가 느낀 게 맞나요?”
“그래. 귀환 마법진을 만들고 남은 드래곤 하트와 부산물로 만든 거다. 이걸 입고 다니면 아까처럼 앞에서 나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이런 걸 준비해 놓으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해용은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용의 갑옷을 입었다.
「지룡의 갑옷. (GOD)
물리 방어력:100000+
마법 방어력:100000+
씨엘의 가호: 일정 확률로 적의 대미지를 흡수.
.
.
.」
아이템을 수치화하는 걸 좋아하는 지구인들과 오래 지나서인지 친절하게 설명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동료들의 선두에 서서 탱커가 되기로 결심한 해용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무구였다.
“너 주려고 만든 거 아니야. 재료가 있으니까 그냥 만들어 놓은 거지. 원래는 방패를 주려고 했는데, 방패가 생겼잖아.”
일 년에 걸쳐 만든 갑옷이다.
끊이지 않고 일거리를 만드는 해용의 괴롭힘에도 잠을 줄여가며 따로 만든 무구였다.
딱히 누군가를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좋은 재료가 있어 장인의 본능으로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카프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한 6개월은 더 보며 즐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주는 것이었다.
켄트 왕국의 성물인 에르메스의 검과 아스날 제국의 성물인 발렌시아가 방패를 들고 있는 이에게 어설픈 무구를 주는 건 격이 떨어졌기에.
해용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한 왕국과 이미 사라진 제국이었지만 스카이 캐슬의 장인 대장으로서 그들에게 얻은 무구보다 떨어지는 아이템을 주는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카프리, 우린 뭐 없어?”
“기다려. 만들고 있으니까.”
“좋은 놈으로 만들어 줄 거지? 우리도 해용이 따라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우리 것도 신경 좀 써서 만들어 줘”.
장지원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카프리를 쳐다봤다.
“언젠 내가 안 좋은 무구를 만들어 준 적 있나?”
“아니 없지. 근데 이번엔 내가 많이,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으니 좀 카프리도 그에 대해 좀 부응해 줬으면 하는 거지. 흐흐.”
“실망하지 않을 거다. 영주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덕분에 재료들이 아주 풍부하니까.”
멍청이도 이제 그럴싸한 무구 하나 가질 때 됐지.
중간에 도망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수련도 잘 버텨 주었고.
카프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만들고 있어도 괜히 한 소리 했겠지만, 오늘은 장지원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했다.
“정리 다 했나요?”
“네. 출발하셔도 될 것 같아요. 글루틴 성으로 복귀하실 건가요?”
“아니요. 글루틴 성까지 가기는 너무 피곤하네요. 마을을 얼마나 형성했는지 확인도 할 겸 샌드 마을로 가죠. 조금이라도 빨리 뜨거운 물에 몸 좀 녹이고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쉬고 싶네요.”
“네, 알겠어요. 출발.”
부상자들을 응급조치하고 전장 정리가 끝난 걸 확인한 해용은 철수를 지시했다.
“역시 해용이 형님이 뭘 아신다니까. 그럼 가서 맥주 한잔 쭈욱 들이켜도 되는 거죠?”
“그래. 마음껏 마셔. 고생들 많았다.”
“고생은요. 사실 힘들긴 했지만 지나고 나니까 참 뿌듯하긴 하네요.”
얼떨결에 따라왔다가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수련을 받았던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수련 때문에 24시간 동안 해골밭에서 야영하며 지내다가 몇 달 만에 마을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 * *
“와! 벌써 건물을 이렇게까지 올린 거예요?”
“아직 영주님을 모시기엔 부족한 곳입니다.”
“부족하다니요.”
샌드 마을엔 이미 수백여 개의 단독 가옥이 지어져 있음은 물론이고 편의점과 피씨방, 당구장과 같은 편의 시설까지 다 들어와 있었다.
가장 먼저 개발을 시작한 스카이 캐슬 본성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최고네요. 이곳만 봐도 다른 성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다 짐작이 될 정도예요. 정말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샌드 마을을 둘러본 해용은 안지현 실장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내심 개발의 전권을 맡기고 잘 진행되고 있나 걱정을 했는데 그 염려가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샌드 마을의 개발 상황은 엄청나게 빨랐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근데 칭찬은 제가 아니라 이세훈 팀장이 받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세훈이요?”
“이세훈 팀장이 모든 마을을 에스 마트처럼 규격화시키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개발을 하는데 시간과 물자가 많이 절약됐어요.”
서울에 있는 에스 마트에 가든, 인천에 있는 에스 마트에 가든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는 똑같다.
지하 혹은 1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농, 수, 축산물을 파는 식품 코너가 있고 입구엔 화장품 코너와 잡화 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2층에 가면 스포츠와 문구, 완구 같은 PC가 있고.
오랜 시간 에스 마트에서 근무했던 이세훈은 켄트 왕국의 성과 마을들도 규격화를 제안했고 안지현 실장은 그걸 수락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마을을 구축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됐고.
게다가,
스카이 캐슬, 글루틴성, 켄트성, 샌드 마을…….
켄트 왕국에 있는 한 곳의 성을 간 경험이 있으면 다른 곳을 가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이점까지 생겼다.
“아…… 원래 세훈이가 돈 아끼고 시간 절약하는 데는 좀 일가견이 있긴 하죠. 어렸을 때부터 잔머리가 좋은 놈이었거든요.”
해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가 왕국 개발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니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나,
“안지현 실장님.”
“네?”
해용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별안간 표정을 없앴다.
하데스를 신으로 모시는 다크 엘프.
그리고 그 다크 엘프를 스승으로 둔 안지현.
어쩌면 이제 그녀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이제 일본으로 가려고 합니다. 리치를 잡기 위해서.”
“……?”
“전해 들으신 지 모르겠지만, 일본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게이트를 넘어 지구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저 동쪽 사막 어딘가에 있을 게이트를 넘어서 가는 방법이 있죠.”
“……?!”
“전 후자를 선택할 생각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면 절차가 너무 복잡할 것 같거든요.”
이미 일본에 대한 처우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힘이 없던 시절 일본이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만든 것처럼 그대로 똑같이 갚아 주겠노라고. 아니 그때 일본이 강제로 빼앗아간 재산과 재물들을 다시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이자까지 받아오기로.
그러기 위해서 이미 김용규 부장이 지원을 핑계로 투입되어 있었고.
아마 지금쯤 김용규 부장은 해용이 지시한 대로 일본의 자원과 재산을 챙기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수만의 헌터와 수십만의 오크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를 이끄는 제가 가겠다고 하면 웃으면 반기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크들까지 데리고 가신다고요?”
“네. 무력으로 일본을 정복할 생각입니다.”
“헐…….”
왜? 내게 이런 말을?
안지현은 놀람과 경악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얘기를 이제 갓 스카이 캐슬의 일원이 된 자신에게 굳이 할 이유가 없기에.
“아, 도우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막으로 진격하려면 다크 엘프들과 부딪힐 것 같아 얘기를 드리는 거예요. 일전에 얘기하신 대로라면 샌드 마을 동쪽 멀지 않는 곳에 그들이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요.”
“아, 그럼 다크 엘프들을 만나기 위해 저한테 주선을 부탁하시는 건가요?”
“네. 그것도 그거지만 어쩌면 실장님이 선택의 기로에 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제는 어느 편에 있을지 확실히 정해야 할 것 같네요.”
“……?!”
“다크 엘프들이 우리와 동맹을 맺고 힘을 보태면 다행이지만 만약 거절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을 겁니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기 위해선 사막을 지나쳐야 했다.
‘사막 지역에 가보셨으면 알겠지만, 그곳은 엄청나게 뜨겁고 습도도 높아요. 물이 없으면 버틸 수 없죠.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근처에 오아시스가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일전에 안지현의 말을 유추해 보면 다크 엘프들이 현재 사막 전체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고.
사막에서 물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말은?”
“네. 다크 엘프들과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동맹을 거절한 세력이 물을 차지하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대로 두고 진격하기는 뒤가 불안하니까요.”
안해용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