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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221화 (221/255)

221화. 발렌시아가 방패 (3)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위험하니까 또 도망치자고?

또 도망쳐서 힘을 기른 후에 후일을 도모하자 이 말이 하고 싶은 건가?

그동안 그렇게 아이템을 발명하고 또 죽어라 훈련을 받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하몽의 설명에 해용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넣어 뒀던 검을 빼내 들었다. 더 이상은 도망치기 싫었다.

이러려고 팔과 다리에 수갑까지 차고 몇 달 동안 죽을 둥 살 둥 훈련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동안 고생이 억울해서라도 그렇게는 못 한다.

[영주님, 위험합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퇴각해서 본진과 합류해 상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렵고 무서워서 마스터들에게 선수를 양보한 게 아니었다.

“영주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안전제일 주의 아니셨습니까?

하몽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해용을 쳐다봤다.

지금 이 전력으로 싸우면 승산은 반반이었다.

50:50

듀라한들도 쉽지 않은 상대들이었으나 어찌어찌 데스 나이트 로드만 무찌르면 이길 수도 있었다.

하나 분명 그렇게 되면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건 그동안 안해용이 치르고 지휘했던 전투 스타일이 아니었다.

단 한 명의 헌터에 생명도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인물.

하몽이 경험하고 느낀 안해용은 그런 사람이었다.

100% 아니 최하 90% 이상 승산이 있을 때만 싸우지 않았던가.

하몽으로선 지금 안해용의 판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데스 나이트 로드가 강하고 빠르긴 합니다. 하나 분명 눈에 보이고 있고! 보이는 것을 피하고 막을 정도로 충분히 수련했습니다. 안 그런가요. 카프리?”

내가 직접 탱커를 하면 된다.

데스 나이트 로드의 시선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진형을 유지 할 수 있잖아?

해용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카프리를 쳐다봤다.

“흠! 그렇긴 한데…….”

이놈 갑자기 왜 이러지?

검술 수련을 해서 근접 전투에 자신감이 생긴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느낌이 쎄한데?

멍청이가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갑자기 변한다고 했는데…….

“카프리!”

“해 봐.”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싸우고 싶으면 싸우면 되는 거지.

“검질, 방패질 몇 번에 죽을 만큼 허투루 가르치지는 않았으니까.”

똑똑하고 눈이 좋은 놈이니 안 될 것 같으면 뒤로 빠지겠지.

그때 퇴각을 해도 늦지 않아.

카프리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적의 전력이 꽤 높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몽의 말처럼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갈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제가 데스 나이트 로드를 맡겠습니다. 마스터님들은 헌터들을 지휘해 듀라한을 맡아 주세요.”

“……네.”

“……네.”

지윤미와 조성태 그리고 이아영마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비키며 안해용을 지켜봤다.

‘다르다.’

평소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마치 잘 갈아 놓은 검처럼 예리한 기운이 가득했다.

합!

기합 소리와 함께 안해용은 빠르게 데스 나이트 로드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쾅! 합! 쾅! 합! 쾅!

“지지 않아!”

-어스퀘이크. 지금이야! 다시 공격!“

“땡큐!”

합! 쾅! 합! 쾅!

안해용의 검질에 맞춰 노움이 지진을 일으켜 데스 나이트 로드의 중심을 흩트려 놓았다.

-대단해. 고작 몇 달 훈련한 거 가지고 이런 자신감과 움직임이라니.

우우웅.

우우웅.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노움은 전황을 살피며 계속해서 데스 나이트 로드를 괴롭혔다.

합!

컥!

-이 기운은…….

검술과 정령 마법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데스 나이트 로드의 몸에 하나둘씩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역시 효과가 있어.’

바다처럼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에르메스의 검에 맞은 데스 나이트 로드의 검은색 기운이 조금 옅어졌다.

[영주님의 무위가 언제 저렇게까지 발전을…….]

하몽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다 피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사라 하나 근접전투에서 막는 것보다 피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거 정도는 알고 있는데 안해용은 데스 나이트 로드의 검과 방패를 한 대도 맞거나 막지 않고 다 피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달라진 몸놀림이었다.

“수련의 성과지. 무언가 틀에 박힌 검술을 가르친 게 아니라 적의 공격에 맞춰 반응하게 가르쳤으니까.”

[그렇다 해도 데스 나이트 로드가 방어하지 못하는 건 설명이…….]

“그 또한 마찬가지야. 정령들의 도움도 큰 보탬이 되고 있지만, 그보단 형과 식이 없으니 제대로 막지 못하는 거야. 일반적인 검술이라면 그랜드 마스터의 경험과 실력을 갖춘 발렌시아가 관점에서 오히려 더 편했겠지.”

하몽과 달리 카프리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전투 모습을 지켜봤다.

염려했던 거와 달리 해용은 정말 훌륭하게 전투해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뭘 멍하니 서 있어. 우린 듀라한을 맡는다. 타점 바꿔. 영주님한테 다가가는 놈들부터 공격한다.”

“네.”

스르륵!

스르륵!

“우린 듀라한이 발키리 길드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길목을 차단한다.”

“네.”

“부상을 당한 이후에 힐이 들어가면 늦을 수도 있다는 거 알지? 집중하고 있다가 공격을 받는 헌터가 생김과 동시에 치료할 수 있게 해.”

“네.”

듀라한을 맡은 헌터들도 한결 수월하게 상대를 하고 있었다.

검강은 물론이고 방패로 충격파까지 날리는 데스 나이트 로드와 달리 듀라한들은 거리만 유지할 수 있다면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안해용의 수련을 돕기 위해 은연중에 함께 수련 아닌 수련을 했던 발키리, 그레이, 플로라 헌터들의 합격술은 더 오밀조밀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마치 하나의 길드가 전투하는 것처럼.

하나,

“이봐. 안지현 실장. 쉴 만큼 쉬었으면 슬슬 헌터들이랑 헬퍼들을 뒤로 후진시켜.”

“저희만요?”

“그럴 리가. 곧 있으면 전원 퇴각해야 할 것 같으니 먼저 뒤로 빠져 있으라고.”

“네, 알겠어요.”

카프리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진형을 조금씩 뒤로 물렸다.

아버지는 왜 저런 걸 만들어서 이 고생을 시키는지.

해용이 예상 그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긴 했지만, 발렌시아가 방패로 인해 결정적인 한 방을 때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헉헉! 헉헉!

“제길 저 방패만 없었어도!”

-고작! 이따위…… 잔기술로…… 날…….

점점 해용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머리, 어깨, 발, 무릎…… 에르메스의 검에 담긴 신성력으로 인해 몸에 제대로 적중만 시키면 큰 타격을 줄 수 있는데 간발의 차이로 계속 발렌시아가 방패에 막히고 있었다.

‘실프’

-윈드 블레이드.

휘이익.

휘이익.

-어스퀘이크.

우우웅.

우우웅.

합! 쾅! 합! 쾅!

‘젠장, 1초만, 1초만 더 붙잡아 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답답했다.

정령들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데스 나이트 로드의 움직임을 잡아 주면 에르메스의 검을 몸에 적중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1초가 아니 0.5초 정도가 모자랐다.

-물러…….

“닥쳐!”

몬스터 주제에.

합! 쾅!

“##$#$$#$테이밍 몬스터.”

검과 정령 마법에 이어 흑마법까지.

해용은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기술을 데스 나이트에게 쏟아부었다.

합!

-컥!

들어갔다고?

혹시나 하고 테이밍해 봤는데, 데스 나이트 로드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고 그 사이에 에르메스의 검이 팔을 베고 지나갔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랬다.

몸으로 베운 건 안 잊어버린다고.

요 며칠 계속 버그 베어들과 치고 박고 싸우며 테이밍 마법을 시전했고 본능적으로 나온 거였다.

그런데 그게 순간 전황을 바꿀 만큼 큰 타격을 주었다.

‘테이밍 몬스터에 반응하고 있어.’

해용의 눈이 스산하게 빛냈다.

마법을 시전할 때 느꼈다.

반발력이 있긴 했지만 데스 나이트 로드도 그만큼 정신적 대미지를 입고 있는 듯했다.

하몽과 카프리가 그랬다.

자신의 정신력과 지배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설사 신이 온다 해도 자신이 종속한 몬스터를 해제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 능력이, 아니 권능이 자신에게 생겼다고.

반대로 그 말은 신이 아닌 이상,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 하더라도 테이밍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여겨졌다.

“#$#$#$#$#$테이밍 몬스터.”

-으읔.

“#$$#$#$#$#테이밍 몬스터.”

-으읔.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느낀 게 맞는지.

해용은 거리를 벌려 흑마법을 시전했고 데스 나이트 로드가 에르메스의 검에 의해 베였을 때보다 더 괴로워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감히 날…….

“#$#$#$#$테이밍 몬스터.”

-…….

“된 건가?”

반복되는 테이밍 마법이 괴로운지 더 흉포하게 검과 방패를 휘두르던 데스 나이트 로드가 움직임을 멈췄다.

복수해야 하는데.

아스날 제국으로 가서 자신의 동료들과 가족들을 해친 황제에게 벌을 내려야 하는데…….

“앉아.”

-감히 인간 따위가 난 대아스날 제국의…… 앉으면 안 되는데…… 몸이…….

“일어서.”

-멈춰라. 난…….

으읔.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데스 나이트 로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였다.

“가져와.”

-…….

“방패 가져오라고.”

-안 된다. 이건 대아스날 제국의…….

버그 베어와 달리 데스 나이트 로드는 계속 거부 의지를 드러냈지만, 몸은 지시대로 움직였다.

“고마워. 앞으론 내가 쓰지.”

해용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발렌시아가 방패를 넘겨받았다.

마음에 들었다.

데스 나이트 로드의 손에 들렸을 때부터.

적의 손에 들렸을 땐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 아이템었지만 직접 들어 보니 마치 태산이라도 든 것처럼 든든하고 힘이 솟구쳤다.

“보답으로 부하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도와주지.”

휘익!

양손에 에르메스의 검과 발렌시아가 방패를 든 해용은 바로 듀라한에게 뛰어, 아니 날아갔다.

합!

쾅!

“@#$$#$#$테이밍 몬스터!”

한 마리.

합!

쾅!

“$##$#$#테이밍 몬스터!”

두 마리.

듀라한이 헌터들과 공방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해용은 뒤에서 기습해 한 마리씩 종속을 시켰다.

5티어급 이상의 상위 몬스터라 그런지 제법 반발력이 있긴 했지만, 몇 번 물리적 공격을 하고 재시도를 하면 성공이 되었다.

“$##$#$#테이밍 몬스터!”

세 마리, 네 마리…….

“모두 영주님 맞히지 않게 조심해. 듀라한이 죽지 않게 한 조씩 화살을 날려.”

“네.”

듀라한이 해용에게 종속되는 걸 확인한 지윤미는 센스있게 화살 양을 조절했다.

승리였다.

그것도 완벽한.

“#$#$#$#$#$#테이밍 몬스터!”

“영주님 만세!”

“……만세!”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해용이 듀라한 모두를 종속시키자 산맥 전체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변하고 싶었다.

몬스터가, 강한 적이 나타날 때마다 헌터들의 뒤에 숨는 게 아니라 앞에 나서서 맞서 싸우고 싶었다.

이곳의 지도자이자 영주로서.

내 사람들을 직접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걸 해내었다.

“스카이 캐슬 만세!”

착!

해용은 에르메스의 검을 높이 치켜세우며 만세를 외쳤다.

평소엔, 아니 지금까진 영지 민들이 자신을 칭송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섰지만, 지금은 왠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함께 소리를 지를 만큼 기분 좋은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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