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발렌시아가 방패 (2)
“버그 베어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다들 뭐 하시는 거예요. 어서 막지 않고!”
“안지현 실장, 뒤로 물러나세요. 영주님의 종속들입니다.”
“저 많은 버그 베어들이 다 영주님의 종속들이라고요? 어찌…….”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릴 테니 데스 나이트에서 떨어지세요.”
“……네.”
내 뜻을 눈치챈 지윤미 마스터가 버그 베어들과 함께 달려가며 안지현 실장의 신변부터 확보했다.
“다른 분들도 데스 나이트에서 최대한 떨어지세요. 지금부턴 저희가 맡을게요.”
“……네.”
“……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발키리 길드의 마스터 지윤미와 길드원들.
전쟁과 전투에 있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그녀들은 단숨에 전장 파악을 함과 동시에 헌터들을 뒤로 물리며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기업 헌터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무턱대고 원을 그리며 넓게 포위했던 그들과 달리 지윤미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정확히 데스 나이트의 퇴로를 선점하고, 활을 쏘기엔 용이한 반면 데스 나이트가 다가오긴 어려운 장소에 헌터들을 이동시켰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내 지시를 받은 백여 마리의 버그 베어가 자신들의 안위조차 살피지 않고 데스 나이트에게 다가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버그 베어…… 왜? 감히! 나를?
두웅! 두웅!
데스 나이트는 버그 베어의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방패로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반격을 했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테이밍 몬스터, 종속 마법이라는거 참 무섭고도 대단한 마법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방패 공격 한 번에 서너 마리의 버그 베어들의 머리가 터지고, 팔, 다리가 잘렸지만, 그들은 생명이 끊길 때까지 계속 달려들었다.
돌격은 통상적으로 공격 전투의 최종 단계에서나 쓰는 전술이었고, 성공하면 적의 방어 진지나 공격 목표에 접근할 수 있고 승패마저 결정할 수 있는 최후 행동이다.
버그 베어들은 책에서나 나올 법한 제대로 된 돌격 전술을 보이고 있었다.
팔이 잘려 무기를 잃어버린 버그 베어는 데스 나이트에게 다가가 입으로라도 물어뜯으려 했고, 다리가 잘린 버그 베어들은 기어서 걸어가며 계속 공격 의지를 드러냈다.
지윤미 마스터가 경험으로 인한 뛰어난 안목과 지휘 능력으로 전장을 안정시키긴 했지만, 버그 베어들의 시간을 끌어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버그 베어들이 없었으면 지금보다 더 사상자가 많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몰이할 테니까 민정이랑 수정이는 헌터들 지휘해서 화살 쏠 준비 해.”
“네, 언니.”
“네.”
진형이 구축됐다 싶었는지 헌터들에게 화살 장전을 명령한 지윤미 마스터가 데스 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 발사!”
“2조는 대기. 3조 발사!”
스르륵!
스르륵!
수백여 발의 미스릴 화살이 데스 나이트에게 날아갔다.
안지현 실장이 몰이하고 있을 땐 행여나 그녀가 다칠까 봐. 나무와 바위 같은 것들로 인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하나,
“으아아아아아아.”
-고작! 막을 수…… 인간…… 모두…… 죽인다.
데스 나이트는 되레 방패에 마나를 실어 화살을 튕겨 내는 것은 물론이고 폭발까지 일으키며 반격해 왔다.
외형적으론 1m 정도 크기에 넓이를 하고 있었지만 마치 성벽처럼 보일 정도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크고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젠장! 어디서 봤다 했더니 발렌시아가 공작입니다.]
“발렌시아가요?”
[백 년 전, 아스날 제국의 기사 단장이었던 인간입니다. 헌터들을 더 뒤로 물려야 합니다.]
데스 나이트의 전투 모습을 보던 하몽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르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이내,
우르르르르 쾅쾅.
우르르르르 쾅쾅!
두웅! 두웅!
“으아악!”
“으아악!”
데스 나이트 주변에서 마치 미사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기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찌 마법을…….”
[마법이 아닙니다. 발렌시아가 공작은 그랜드 마스터였습니다. 검강을 검에 씌우는 경지를 넘어 던져 버린 겁니다.]
“헐…….”
그랜드 마스터라니…….
강해도 너무 강하다 싶더니 보통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방패군.”
“네?”
“저자가 들고 있는 방패. 우리 아버지가 아스날 제국의 마지막 황제에게 진상한 무구다. 드래곤 하트, 마왕의 뿔…… 중간계에 존재하는 자 중에 가장 강력한 놈들의 부산물로 만들었…….”
“미친. 드래곤 하트도 모자라 마왕의 뿔까지 들어갔다고요?”
난 경악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하몽에 듣기로 마나가 심장에 쌓이는 드래곤과 인간, 이종족과 달리 마족은 뿔에 쌓인다고 했다.
“물리적 공격뿐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마법 공격도 저 방패를 뚫기는 힘들 거다. 내가 살아 있는 드워프 중에 가장 뛰어난 장인이기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드워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인이었으니까.”
카프리가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이라도 만난 것같이 그리움과 경외감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데스 나이트의 손에 들린 방패를 쳐다봤다.
하몽과 카프리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우린 지금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렀던 것도 모자라 전설급, 아니 신화급에 이르는 방패마저 뚫거나 피해서 미스릴 화살을 적중시켜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화급 무기를 들고 있다 해도 언데드 몬스터이기 미스릴에 취약할 테니까.
10분이나 됐을까.
“버그 베어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지윤미 마스터와 함께 데스 나이트의 시선을 붙잡고 있던 버그 베어들이 모두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어찌나 공격력이 강한지 애초에 살아있던 버그 베어를 보지 못했으면 어떤 몬스터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갈가리 찢겨 졌다.
“계획했던 것보다 이르긴 하지만…… 후우…….”
난 깊게 심호흡을 하고 손목과 팔목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며 데스 나이트를 쳐다봤다.
지윤미 마스터와 버그 베어들 덕분에 충분히 숨은 돌렸다. 그리고 데스 나이트의 힘과 스피드가 얼마인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을 했고.
“영주님 수갑은 왜? 혹시 직접 싸우시려고 하는 건 아니죠?”
“맞아요. 제가 직접 가서 데스 나이트를 상대할 생각이에요. 그러려고 그동안 계속 카프리한테 훈련을 받았던 거니까요.”
몇 달 동안 양쪽 팔목과 발목을 괴롭혔던 수갑을 푼 난 벨트에 꽂혀 있는 에르메스의 검을 꺼내 들었다.
9티어 급 고위 마족이었던 뱀파이어 로드 브레드에게 조차 강력한 데미지를 주고 무력화시켰던 성검이다.
아무리 발렌시아가 방패가 있다 해도 이미 생명이 꺼져 언데드로 부활했으니 이 검을 쉽게 막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데스 나이트의 검강을 맞으면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영주님, 단순한 데스 나이트가 아닙니다. 저 정도 무위라면 분명 로드가 분명합니다. 8티어 이상이라는…….”
“브레드는 9티어 였습니다. 8티어라고 해도 상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브레드는 마법이 주력이었습니다. 비록 경험이 부족하다 하나 SS급 정령사라 그나마 신경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겁니다. 검을 쓰는 몬스터와는 다릅니다.”
플로라 길드의 마스터 이아영이 양팔을 벌리고 내 앞을 막아섰다.
게다가,
“영주님, 저희가 먼저 상대하게 해 주십쇼. 영주님이 수련한 만큼 저희도 그동안 나름 열심히 실력을 키웠습니다.”
그레이 기사단 단장 조성태 역시 내 앞을 막아섰다.
“지윤미 마스터, 이아영 마스터 그리고 저를 믿고 한 번만 맡겨주십쇼. 저희가 어떡하든 저 방패를 떨어뜨리게 해 보겠습니다. 그럼 지금처럼 헌터들의 미스릴 화살을 막아 낼 수 없을 겁니다.”
“하아…….”
기껏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전투 준비를 했는데 다시 검을 집어넣어야 할 듯했다.
“절대 죽지 않겠습니다. 다치지도 않겠습니다. 상대해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뒤로 물러날 테니 그때 영주님이 나서주십쇼.”
“……네.”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집어넣고 뒤로 물러났다.
마스터들의 눈이 마치 활화산이라도 넣어 놓은 것처럼 불타올라 오고 있었다.
내게 입으로 약속을 한 것처럼 죽음을 각오한 얼굴이 아니라 정말 승산이 있어 보여 나가고 싶어 표정이었다.
[다들 제 말을 흘러 들으셨나 본데 저자는 아스날 제국의 기사단장이자 그랜드 마스터였습니다.]
“……?”
[켄트 왕국은 물론이고 이 대륙에 존재했던 모든 왕국이 아스날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제국의 땅을 넓히고 또 수호했던 최강의 기사였고요.]
“…….”
[보아하니 기사단장이라고 해서 퍼거슨 님 정도나 약간 위라고 생각하시나 본데 살아있었다면 저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소드 마스터, 지구 기준으로 S급 헌터 열 명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방패를 어떻게 떨어뜨리게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전원 후퇴를 하거나 싸울 거면 총공격을 해야 합니다. 그랜드 마스터의 공격거리는 활의 사정거리만큼 기니까요. 멀리 떨어져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하몽이 평소답지 않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나무라듯 설명해 왔다.
그리고 그때,
-귀찮은…… 것들. 일어나라. 나의 기사들이여!
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데스 나이트 로드 주변의 땅이 울렁거리더니 검은색 갑주를 차려입은 수많은 기사가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갑옷은 하얀데 그들의 주위를 검은색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하나, 둘, 오십, 구십…….
얼핏 봐도 백 마리는 넘어 보였다.
[젠장! 듀라한입니다.]
“듀라한?”
[발렌시아가가 이끌었던 아스날 제국의 기사단이었던 이들입니다. 하아…….]
하몽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흑기사들 아니, 듀라한들을 쳐다봤다.
좀비와 구울, 해골, 스파토이와는 풍기는 포스부터 달랐다.
언데드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생전에 입었을 거라 짐작되는 무구들을 착용하고 있었고 움직임도 더 자연스러웠다.
‘5티어? 6티어?’
떨거지들이 아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발렌시아가의 무력을 두려워한 아스날 제국의 황제가 발렌시아가는 물론이고 그의 기사단까지 모두 죽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주군의 명령을 목숨보다 더 중요시 했던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요. 한데, 황제는 그것도 불안한지 그들의 가족과 친척까지 모두 처형했다고 합니다.]
“……?”
[저자들 마왕이나 리치에 의해 강제로 부활한 게 아니라, 원념과 분노, 증오…… 같은 것들이 쌓여 스스로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럼 뭐가 다른가요?”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강제로 부활한 이들은 어느 정도 제약을 하고 있지만, 저들은 살아생전 갖고 있던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SSS급 데스 나이트.
A급에서 S급까지 섞여 있는 듀라한 백여 명.
숫자는 적지만 그동안 만났던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전력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