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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219화 (219/255)

219화. 발렌시아가 방패 (1)

하루, 이틀, 일주일…….

백여 마리의 버그 베어들을 테이밍하고 한참이 지나도 내겐 아무런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카프리를 의심한 적 없어요. 그저 노파심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제가 먼저 한 거예요. 견습 마법사들을 불러주세요.”

이제 견습 마법사들한테도 흑마법의 발현을 허락해도 될 듯했다.

“너희 방어력으론 아직 버그 베어는 위험할 것 같으니 해골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흑마법을 발현할 의향이 있는 견습생이 있나?”

“드디어 저희도 흑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제가,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내 마법 해석은 완벽했다. 먼저 흑마법을 발현한 영주 역시 일주일 동안 아무런 이상이 없고. 하나 그렇다고 백 프로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다. 그래도 하겠는가?”

“네. 물론입니다. 저희를 위해 영주님이 솔선수범해서 앞길을 열어 주셨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설사 부작용이 생긴다 해도 그 길 역시 영주님과 함께 할 터. 영주님과 함께라면 지옥도 같이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해골밭에 집합한 견습 마법사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다들 흑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따윈 보이지 않았다.

견습 마법사들은 서로 경쟁하듯 자처해서 먼저 발현하겠다고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힘없고 보호받아야 하는 견습 마법사로 지내는 것보다는 버그 베어를 테이밍해서 다른 헌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하게 해 주세요.”

“자세가 좋군. 그럼 이채령 자네가 먼저 하는 거로 하지.”

“감사합니다.”

카프리의 지명을 받은 견습생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그녀의 얼굴과 눈빛에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하나,

“#$#$#$#$#$#$#$테이밍.”

한 마리.

“#$#$#$#$#$#$#$테이밍.“

두 마리.

“@#$#$$#$#$#$#$#테이밍.”

“으으으으으.”

“#$#$#$#$#$#$테이밍!”

“으으으으으윽.”

어찌 된 일인지 해골 2마리의 테이밍에 성공한 그녀는 이후에 계속 연달아 마법에 실패했다.

“#$#$#$#$#$#$테이밍!”

“플로라!”

“네. 알았어요. #$#$#$#$#$#$$힐!”

“#$#$##$#$#$힐!”

연달아 테이밍 실패한 이채령은 해골의 검을 그대로 몸으로 맞았고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부랴부랴 그녀에게 치료 마법을 해 주었다.

“이채령 물러서!”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 보겠습니다.”

“물러서라고 했다. 명령이다.”

“……네.”

아무리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백업해 준다고 해도 지속된 마법 실패로 위험 상황이 계속 발발했고 이아영 마스터가 강제로 이채령을 철수시켰다.

“어떻게 된 거지? 마나가 다 떨어진 거 아닌가?”

“아니에요. 십 분의 일도 쓰지 않았어요.”

“근데 왜 갑자기 실패한 거지?”

“모르겠어요. 2번째까지는 괜찮았는데 3번째부터 마법을 사용하면 뭔가 반발력이 느껴졌어요.”

“흠…… 일단 자네는 뒤로 빠져 있고 다른 사람이 해 보지.”

잠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하던 카프리가 이번엔 다른 견습생을 지명했다.

하얀색에서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아직 전투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마나양만 봤을 땐 D급에 이르는 중급 헌터였다.

“#$#$#$#$#$#$테이밍!”

한 마리.

“@#$$#$#$#$#$테이밍!”

두 마리.

“#$#$#$#$#$X테이밍!”

세 마리.

“#$#$#$#$#$#$테이밍.”

“으으으으으읔.”

“#$#$#$#$#$#$테이밍.”

“으으으으으읔.”

이번에도 같은 형국이었다.

이채령보다 한 번 더 성공하긴 했지만 두 번째 참가자 역시 3마리 이후엔 계속해서 테이밍을 실패했다.

“다음.”

“이번엔 제가 해 보겠습니다.”

연이어 실험했지만 다 마찬가지였다.

간혹 4마리까지 테이밍에 성공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두 마리에서 세 마리를 테이밍 하면 그 이후론 몬스터를 길들이지 못했다.

“너희 모두 반발력을 느꼈나?”

“두 마리까지는 괜찮더니 세 마리째부터는 마법을 실현하고 나면 마치 몬스터가 마법을 쳐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발력이 느껴졌어요.”

“흠……무엇이 다른 거지?”

카프리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마나양의 차이 때문 아닐까요? 마나가 남아 있어도…….”

“아니야. 술식 어디에도 그런 해석이 보이진 않았어.”

“흠…… 그럼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서?”

“그것도 아니야. 마신의 신전에 적혀 있는 마법이야.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유로 더 혜택을 받을 순 없어.”

“그 두 개 말고는 견습 마법사들이랑 저랑 차이점이 없는데?”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견습 마법사들이랑 나랑 차이점은 그것밖에 없는데 말하는 족족 아니라고만 했다.

게다가,

“으으으으으윽.”

“뭐야? 왜 마음대로 움직여? 가만히 있어.”

“으으으으으으으윽.”

“말을, 말을 듣지 않아요.”

두 시간 정도 지나자 견습 마법사들이 테이밍 한 일부 해골들의 종속이 풀리기 시작했다.

“발키리.”

“네.”

스르륵.

스르륵.

카프리와 눈을 마주친 발키리 헌터들이 바로 해골들을 해치웠지만, 해석에 나와 있지 않은 현상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카프리, 여기 뚱땡이들도 해치워야 하는 거 아니야? 이놈들도 별안간 종속이 풀리면 골치 아플 것 같은데?”

장지원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종속된 버그 베어들을 쳐다봤다.

내게 테이밍 된 이후로 일주일 넘게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눈앞에서 해골들이 종속이 풀리는 걸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버그 베어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놈들은 괜찮다고요?”

[제가 짐작하는 바가 맞았다면 그놈들은 계속 유지가 될 겁니다.]

잠자코 있던 하몽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는 뭔가 짐작되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나양도 마나양이지만 정신력과 지배력의 차이 때문에 생긴 현상인 듯하네요.]

“정신력과 지배력이요?”

[네. 종속 마법은 마나 양을 떠나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하게 하죠. 물질적인 힘이 아닌 마나와 의지로 상대의 정신을 굴복시키는 마법이거든요.]

“.......?!”

난 당황과 의문이 서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그가 나를 높게 평가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견습 마법사들과 수백 배의 차이가 날 만큼 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도 강한 사람도 아니었다.

[견습 마법사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영주님의 정신력과 지배력이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듯하네요.]

“설마 권능이 생긴 건가?”

[역시 카프리 님도 짐작하고 계셨나 보네요.]

“왠지 테이밍이 되도 너무 많이 된다 싶다더니…‥ 놀랍군. 수백 년 만인가?”

[네. 그 정도 될 겁니다. 켄트 왕국의 초대 황제였던 분이 마지막으로 권능을 얻은 걸로 알고 있으니.]

카프리와 하몽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당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권능이 뭔가요? 뉘앙스가 왠지 제게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하는데 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니요. 영주님은 이미 느끼고 계십니다. 영주님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수백, 수천만의 생명의 무게를!]

“.......?”

[수천만 아니 은연중에 지구에 있는 수억 명에 목숨의 무게까지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것이 다 정신력과 지배력으로 승화된 듯합니다.]

“......?!”

[수억 명에 목숨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사는 존재가 종속 마법을 했는데 고작 하급 마족인 버그 베어나 해골 따위가 이겨 낼 수는 없죠. 그래서 괜찮다고 한 겁니다. 마왕이 와도 아니 마신이 직접 현신을 해도 영주님의 의지가 담긴 마법을 쉽게 파하지는 못할 겁니다.]

“.......”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몽의 말이 허황하게 들렸지만, 왠지 속으론 수긍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많이 힘들긴 했었다.

그래서 도망가려고도 했었고, 어쩔 땐 차라리 죽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권능이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혜택은 좀 받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그때,

“마스터, 큰일 났습니다. 샌드백 마을로 가는 길목에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발키리 길드 소속 정찰병이 무구에 잔뜩 피를 묻히고 사색이 달려왔다.

샌드백 마을은 안지현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베이스캠프로 쓰기 위해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루카스!”

“히이이이이이잉.”

“가죠!”

“네.”

“네.”

난 더는 묻지도 따지지 않고 바로 헌터들을 이끌고 말에 올라탔다.

7티어급 몬스터. 데스 나이트.

이미 공략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A급이나 되어야 겨우 시선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뭐야? 저기 우리 애들 아니야?”

“네. 맞아요. 데스 나이트를 막다가 부상을 당해서 의료팀을…….”

전령을 따라 데스 나이트 출몰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곳곳에서 부상을 당한 발키리 헌터들이 누워 있는 게 보였다.

“데스 나이트를 왜 막아? 붙어서 싸우면 안 되는 거 몰라?”

“알고 있어요. 일단 마을로 가지 못하게 시선만 사로잡으려고 했는데 기존에 상대했던 데스 나이트보다 훨씬 빨라서 미처 피하지를 못했어요. 아무래도 일반 데스 나이트가 아닌 것 같아요.”

“이아영 마스터님, 플로라는 남아서 치료부터 해 주고 오세요. 저흰 먼저 가고 있겠습니다.”

“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다급한듯했다.

발키리 길드원 대부분 모두 데스 나이트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인데 그녀들조차 몸을 사릴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놈이 나타난 모양이다.

“일반 데스 나이트가 아닌 것 같다고?”

“네. 이놈 빠르기도 엄청 빠르지만 윤다영, 나현지 팀장이 쏘는 미스릴 화살을 방패로 다 튕겨냈어요.”

지윤미 마스터의 다그침에 전령으로 왔던 발키리 길드 헌터가 변명하듯 출몰한 데스 나이트에 관해 설명했다.

얘기를 듣자 하니 대한민국에 출몰했던 놈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일 듯했다.

스르륵!

스르륵!

쾅! 쾅!

“저기인가 보네요.”

“네.”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급히 가 보니 기업 소속을 상징하는 문양을 단 수백여 명의 헌터들이 보였다.

다행히 다들 공략법을 들었는지 데스 나이트와 멀리 떨어져서 화살을 쏘고 있었다.

“안지현 실장인가요?”

“네. 안 실장이 데스 나이트의 시선을 붙잡고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S급 헌터 안지현.

다행히 그녀가 있어서 큰 피해는 받지 않은 모양인데 많이 위태해 보였다.

입고 있는 무구가 핏빛으로 물들 정도로 그녀의 몸 곳곳에 검과 마법에 베인 상처들이 가득했다.

스르륵!

스르륵!

쾅! 쾅!

기껏 날리는 화살은 파란색 빛을 머금고 있는 방패에 다 막혀 버렸고.

얼핏 봐도 평범한 방패가 아니었다.

“길을 트세요.”

“네.”

“뚱땡이들 돌격!”

“크아아아.”

“크아아아.”

현장에 도착한 난 바로 백여 마리의 버그 베어를 데스 나이트에게 보냈다.

일단은 안지현 실장이 뒤로 빠질 시간부터 벌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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