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흑마법을 배우다 (2)
어렸을 때 매일 동네 공터에서 노는 날 보며 동네 어르신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하곤 하셨다.
공부는 어렸을 때 하는 거라고.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 몸이 늙는 것만큼이나 뇌도 늙어서 하고 싶어도 못 한다며.
그리고 난 지금 그 말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마음먹고 하면 어렸을 땐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들을 곧잘 외우곤 했었는데, 불혹을 앞둔 내 뇌는 그때와 비교해 많이 굳어 버린 듯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름 열심히 집중해서 외운다고 외웠는데 막상 스펠을 읊으려고 하면 생각이 나지 않아 매번 흐름이 끊겼다.
마법 주문을 읊는 것은 정확히 발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듬도 중요했다.
리듬에 따라 마나를 움직여야 하는데 흐름이 끊기니 마법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네 머리로 그 정도 했으면 훌륭한 거다.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한번 해 봐.”
“……네.”
검술을 가르칠 때와 달리 마법을 가르치는 카프리는 꽤 친절했다.
한데 난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견습 마법사들이 한 시간 만에 외운걸. 난 사흘이 지나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데도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니 왠지 자신이 더 초라해 보였다.
차라리 검술 훈련을 할 때처럼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게 마음이라도 편할 듯했다.
[영주님, 조바심 내실 거 없습니다. 이곳에 데리고 온 견습 마법사들은 5분이면 52장의 포커 카드를 모두 외우는 천재들입니다. 애초에 영주님과는 태어나길…….]
“그쯤 하세요. 그 말이 더 기분 나쁘니까.”
나쁜 엘프 같으니라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몽이 딴에는 위로해 준다고 거드는 말조차 상처받은 내 마음에 소금을 붓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주님, 저희를 위해서 이러는 거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게이트를 넘어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저흰 모두 다짐을 했어요. 일본이나 미국, 러시아처럼 헌터들을 믿고 기다리다 몬스터들에게 허망하게 죽느니 비록 위험하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그들을 상대할 힘을 기르기로.”
“카프리 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룬어를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혹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겨도 절대 영주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스카이 캐슬에 이바지하기 위하려다가 죽은 것이니 저희에겐 그것마저도 영광입니다. 그러니 저희를 믿고 맡겨 주십쇼.”
이미 세 개의 마법 주문을 모두 외운 이채령과 견습 마법사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존경에 마지않는 내가 자신들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많이 힘든 모양이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볼게요. 여러분들을 위해 자처한 것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제 한계를 극복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버그 베어를 쳐다봤다.
대상의 생명력, 마나, 마기를 빼앗아 내 몸을 회복시키는 흑마법. 뱀파이어 터치.
카프리가 해석한 바로는 시전자의 체력과 마나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상대에게 빼앗는 양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동안 탱킹 능력이 부족해 후방에서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내게 검술만큼이나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크아아아.”
부웅.
원수라도 만난 거처럼 내게 질주를 하던 버그 베어가 점프를 뜀과 동시에 내게 방망이를 휘둘러왔다.
뚱뚱한 몸에 비해 상당히 빠른 몸놀림이었다.
‘젠장, 가만히 서 서하면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난 스펠을 읊다 말고 일단 버그 베어의 공격을 피했다.
“멍청아, 몸을 움직이면서 스펠을 계속 읊으라고. 그래야 마법이 발현될 거 아니야!”
“그러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 어쩌라고 드워프 놈아!
네가 이렇게 가르쳤잖아!
“크아아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절로 움직인다.
지난 몇 달간 했던 카프리의 수련 때문이었다.
버그 베어가 방망이를 휘두르기 위해 어깨와 발을 움직이는 순간 눈이 그 동선을 파악하고 알아서 피했다. 그리고 피하기에 늦었다 싶으면 마나가 절로 움직여 타격 부분에 모여 피해를 최소화했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몬스터와 전투를 했더니 이제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마법을 써야 하는데 견습 마법사들을 투입하려 했다고?’
마법사들은 대게 머리가 좋은 대신 체력이 약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마법사들을 괜히 후방에 두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미티어 스트라이크 같은 마법을 구사하는 강력한 화력 부대이긴 했지만, 스펠을 외우며 집중을 할 수 있게 적과 거리를 두고 발키리나 태백산맥 길드를 곁에 두게 해서 보호해 줘야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봤을 때 내가 아닌 견습 마법사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바로 즉사였다.
“머리로 날아오는 게 아니면 그냥 맞아. SS급 각성자가 고작 버그 베어가 휘두르는 방망이 한 대 맞고 죽지는 않을 테니.”
“……!”
“스펠 외우는 데 집중하라고. 어차피 맞아도 마법만 발현되면 바로 치료될 거야.”
저걸 그냥 맞으라고?
말이 방망이지. 버그 베어의 손에 들린 건 야구 선수들이 쓰는 방망이보다 몇 배는 더 두껍고 길었다.
“쿠아아아.”
또 피했다.
많이 맞아봐서 안다. 아니 몸이 기억하고 있다.
머리로는 카프리의 말을 들어야 하나 싶다가도. 몸이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나로 타격점을 보호하고 치료가 된다 해도 일단 맞으면 아프니까.
“눈 감아.”
“그러다 머리로 날아오면?”
“머리로 날아오면 알려 줄 테니까 일단 눈감고 집중해서 스펠링을 외워 봐. 이번에도 실패하면 바로 빼 버릴 거야.”
“……네.”
내가 말을 듣지 않아도 카프리가 어깃장을 놓았다.
나를 빼 버린다는 얘기는 견습 마법사들을 투입 시킨다는 말과 같았다.
눈을 감았다.
많이 위험해 보이는 지시였지만 이대론 내가 봐도 답이 없을 것 같았다.
견습 마법사들을 투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눈앞에서 바로 방망이가 날아오는데 스펠을 읊으며 평정심을 지킬 만큼 그들의 전투 경험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결국 난,
“크아아아.”
컥!
“#$#$#$#$#$#$#$터치!”
위이잉!
버그 베어의 방망이가 내 허리를 타격함과 동시에 뱀파이어 터치를 발현시켰다.
인간의 손을 형상화한 검은색 기운이 잠시 눈앞에서 보였다가 사라졌다.
사람이 위험에 닥치면 초능력이 발휘된다고 했나.
몇 날 며칠을 외워도 막상 읊으려고 하면 안 되던 것이 지금은 구구단을 외듯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흘러나왔다.
“쿠아아아!”
“#$#$#$#$#$#$터치.”
두웅!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한번 발현해 보니 두 번째는 더 쉬웠다.
“쿠아아아.”
“#$#$#$#$#$#$터치.”
철푸덕.
3티어 급 몬스터인 버그 베어가 뱀파이어 터치 세 방에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누웠다.
‘해낸 건가?’
기분이 요상했다.
버그 베어의 방망이에 세 번이나 맞았는데 아픈 곳이 없었다.
카프리가 자신한 대로 뱀파이어 터치가 발현되는 순간 다 치료된 것이다.
두근두근.
쿵닥쿵닥.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동안 정령들에게 힘을 빌려주며 수없이 많이 마법을 발현했었지만, 내가 직접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짜릿했다.
며칠 동안 구박을 받으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싹 잊혀질 만큼 성취감이 넓게 온몸 곳곳에 퍼져나갔다.
“어때? 막 피를 빨고 싶다거나, 누군갈 막 죽이고 싶다거나 그렇지 않지?”
“네. 아무렇지 않아요.”
-몸에 전혀 이상은 없어. 카프리랑 하몽이 제대로 변형을 시켰나 봐.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자신한 대로 흑마법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부작용은 없었다.
“좋아. 그럼 다음엔 뱀파이어 터치 2번 쓴 후에 죽이지 말고 바로 테이밍해 봐.”
“네.”
난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위이잉!
두웅!
위이잉!
두웅!
두 번째 버그 베어 역시 뱀파이어 터치를 사용해서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그리고 카프리의 지시대로 3번째는 뱀파이어 터치가 아닌 테이밍 몬스터를 발현했다.
“@#$#$#$#$#$#$#$테이밍!
“……!”
“……!”
아무래도 나 천재는 아닐지 몰라도 수재 정도는 되는 듯했다.
테이밍 몬스터는 한 번의 실패조차 없이 성공시켰고 미친 듯이 달려와 방망이를 휘두르던 버그 베어가 마치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명령해 봐. 제대로 테이밍 됐으면 네 지시에 따를 거야.”
“네. 앉아.”
“두웅.”
“엎드려.”
“두웅.”
“손.”
“두웅.”
버그 베어가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내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앉아.”
“…….”
“엎드려.”
“…….”
카프리도 버그 베어에게 명령을 내려 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각인이 제대로 된 모양이네. 계속해 봐. 몇 번 해서 괜찮다고 계속 괜찮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네.”
위이잉!
두웅!
위이잉!
두웅!
“@#$#$#$#$#$#$#$테이밍!”
두 마리.
“별 징후 없지? 더 할 수 있겠어?”
“네. 마나는 넉넉해요. 이대로라면 100번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케이. 좋아. 그럼 이번엔 뱀파이어 터치하지 말고 바로 테이밍부터 해 봐. 확인할 게 있으니.”
“네, 알겠어요. #$#$#$#$#$$#$#$테이밍!”
“크아아아아!”
“컥.”
두 번이나 성공했기에 당연히 테이밍이 될 줄 알고 방심했다가 버그 베어의 방망이가 내 허리를 가격했다.
“역시 바로는 안 되는군. 뱀파이어 터치 한 번 하고, 다시 해 봐.”
“네. #$#$#$#$#$#$#$#$터치!”
위이잉.
두웅!
“#$$%$%$%$%$%$%%테이밍!”
세 마리.
“됐어요.”
“계속해.”
“네. #$#$#$#$#$테이밍!”
네 마리, 다섯 마리. 백 마리.
난 카프리의 지시를 받으며 계속 테이밍 마법을 시전했고 어느새 내 주위 가득 버그 베어들이 감싸고 있었다.
“1번 뚱땡이 기준.”
“크아아아!”
내가 호명을 하자 첫 번째로 테이밍 된 버그 베어가 방망이를 하늘로 높게 추켜올렸다.
“4열 종대로 집합.”
두웅! 두웅!
훈련소에 입소해 제식 훈련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지시를 내리자 중구난방으로 서 있던 버그 베어들이 보기 좋게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하기 시작했다.
“지금 버그 베어들이 4열 종대라는 말을 알아듣고 움직인 건가요?”
“그건 아니고 제 의지를 느끼는 것 같아요.”
내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버그 베어들을 보며 지윤미 마스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어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령들처럼 생각과 감정까지 공유하는 것 같진 않지만, 버그 베어들과 뭔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산개해서 주변 경계해!”
“크아아아!”
움직일 때마다 자꾸 괴성을 지르는 게 좀 그러긴 했지만, 버그 베어들은 내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