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흑마법을 배우다 (1)
[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하데스가 중간계에 해를 끼쳤다는 기록은 없지만, 마계의 신임은 분명합니다. 여기 적혀 있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그의 힘을 빌려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대가가 뒤따르지 않겠습니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신전에 적혀 있는 룬어를 살펴보는 카프리와 달리 하몽의 얼굴에 근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계의 신을 모시는 신전에 적혀 있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대가는 얼어 죽을…… 혹시 인간의 피, 생명력 이런 걸 무조건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까? 제가 알기론 흑마법사들은 보통…….]
“에휴. 9서클이라는 자가 아직도 그런 편견에 휩싸여 있으니 10서클에 도달하지 못하지. 쯧쯧!”
[여기서 왜 그 얘기가…….]
카프리의 면박에 하몽의 잔뜩 얼굴 붉어졌다.
어지간해선 항상 여유로움을 갖고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대했는데 카프리가 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니까 하는 말이지. 여기 룬문자들을 자세히 봐. 인간의 피와 생명력을 매개체로 사용해도 되지만, 이걸 조금만 변형하면 마력의 돌이나 정령옥을 갖고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헐…… 정말 그러네요. 이걸 어떻게 단번에 알아보신 거죠?]
“보이니까 보는 거지. 뭘 어떻게 알아봐. 난 자네처럼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니까.”
[아…….]
한참 동안 룬어를 살펴보던 하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프리의 말대로 정말 눈을 막고 귀를 막기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분위기가 요상했다.
현자 급에 이르는 9서클에 이르는 마법사가 대장장이에게 가르침을 받는 분위기였다.
[감사합니다. 카프리 님 덕분에 개안을 한 기분입니다. 이 은혜는…….]
“됐고. 알아들었으면 같이 룬어 좀 변형해 보자고. 마법진이라면 몰라도 이쪽은 내 전문이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몽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와 함께 신전 기둥을 살피기 시작했다.
[카프리 님,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 여기 이곳의 룬어를 빼고 이걸 넣으면 백마법과도 상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현자님답고만. 좋아! 이 정도면 당장 써 봐도 될 것 같은데?”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카프리와 하몽은 신전에 있는 마법 2개를 복구해 변형시켰다.
뱀파이어 터치.
테이밍 몬스터.
서먼 몬스터.
그동안 하몽이 사용하고 가르쳤던 마법들과는 괴를 달리하는 것들이었다.
“성민아, 마력의 돌이랑 정령옥 가져온 거 있지?”
“네.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챙겨 왔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챙겨 오다니. 그동안 고생고생해서 가르친 보람이 있군. 다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카프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성민 헬퍼를 쳐다봤다.
성벽 공사를 하다가 마법진을 배우고 싶다고 한 헬퍼였는데 어느새 카프리의 수제자가 되어 있었다.
“어이, 거기 이채령이라고 했나? 이리 좀 와 보지. 그리고 너랑 너, 그리고 너도 이리로 와 봐.”
“네.”
“네.”
카프리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견습 마법사들을 호명해 불렀다.
다들 마나 팔찌가 하얀색에서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변한 이들이었다.
F급으로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모두 버그 베어와 해골을 잡고 마나 팔찌에 D급에 이르는 코어 에너지를 충전시킨 것이었다.
다들 카프리가 왜 부르는지 짐작을 하고 있을 텐데도 그들은 아무런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카프리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눈빛엔 충성심이 가득했다.
마나 팔찌의 발명으로 인해 오십만 원 정도 하던 오크 코어가 지금은 백만 원을 넘어갔다.
2티어인 해골의 코어는 이백만 원을 넘었고 3티어인 버그 베어의 코어는 사백만 원을 넘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작 에너지 볼트 하나만을 배운 견습 마법사가 D급의 이르는 코어를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카프리의 고집으로 인해 지금 특별한 혜택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 터치라고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마법이야. 외워. 백마법처럼 룬이 복잡하지 않으니 5분이면 되지?”
“네.”
“네.”
“그리고 이건 몬스터를 종속시키는 마법이고. 이건 종속시킨 몬스터를 아공간에 넣었다가 다시 소환하는 마법이야. 다 외웠으면 이것도 외워.”
“네.”
“네.”
이채령을 비롯한 견습 마법사들은 카프리의 지시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보기엔 꽤 복잡하고 긴 룬어였는데 그들은 큰 어려움 없이 룬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일전에 최은빈은 마법 공식이 지구의 수학 공식과 비슷하다 했고 하몽이 인재들만 골라서 뽑은 모양이었다.
마법을 배우고 익히려면 마나양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머리가 좋아야 했다.
“카프리 님, 다 외우고 이해했습니다.”
“저도 다 외웠습니다.”
“저도 다 외웠습니다.”
천재들인가?
왜 저 좋은 머리로 이 위험한 곳을 왔지?
차라리 사법 시험이나…… 아, 사법 시험은 없어졌구나.
그럼 공무원 시험을 봐도 여기보단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1서클 마법인 에너지 볼트만 해도 10개에 이르는 룬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카프리가 보여 준 마법들은 20여 개에 이르는 룬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채령과 견습 마법사들이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복잡한 룬어로 된 마법 주문을 단숨에 외워 버렸다.
난 영어 단어 열 개만 외우려고 해도 1시간 동안 읊으며 써도 외울까 말까였다. 아니 컨디션이 좋아 외운다 해도 몇 시간만 지나면 까먹었다.
근데 견습 마법사들은 외운 것은 물론이고 이해까지 했다고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똑똑한 인간들이군. 너희도 이곳에서 사냥하며 보고 들었으면 지금 너희가 외운 룬어들이 흑마법사들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네. 알고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영주의 허락이 있었고 또 편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흑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혹시라도 우리의 보호 아래 있는 곳이 아닌 땅에 가면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카프리는 다시 한번 흑 마법을 배웠을 때의 위험성을 견습 마법사들에게 주지했다.
“선택은 너희의 몫이다. 익히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강요하지 않겠다. 단, 내 뜻에 따라서 흑마법을 익히면 난 내가 가진 모든 힘과 능력을 퍼부어서 너희를 후원할 거다.”
“……?!”
“……?!”
“솔직히 말해서 현재 분석한 바로는 시전자에게 해를 끼치는 요인이 없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너희에게 실험하려 하는 것이고. 상급 헌터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그만큼 전력에 누수가 생기니까.”
“아…….”
“아…….”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수련 마법사들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라앉았다.
나쁜 드워프 자식.
직설적이어도 너무 직설적이다.
상급 헌터들을 상대로 문제가 생기면 부담스러우니 약한 너희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제가 하죠.”
“……!”
“……!”
난 굳은 표정으로 카프리에게 다가갔다.
약한 것도 서러운데 실험 대상까지 되라고?
만약 카프리가 아닌 다른 자였으면 바로 이단 옆차기를 날렸을 것이다.
“영주, 넌 안 된다.”
“왜요? 전 강해서요?”
“그래. 혹시라도 네가 마기에 잠식돼서 폭주라도 하면 이곳에서 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기에 잠식될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도 이들에게 흑마법을 발현하게 하려는 거예요?”
“최악의 경우를 말하는 거다. 그동안 흑마법사들과 마신의 신전만 보이면 보이는 족족 부수고 불태워서 비축된 정보가 없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고.”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안전이 확실하지 않으면 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것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난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카프리를 노려봤다.
난 이곳의 지도자이자 책임자다.
위험해서 내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없다.
“멍청한 놈. 내가 지금 너 걱정해서 하지 말라는 것 같아?”
“……?”
“네가 폭주하면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이 다친다고. SS급 정령사가 미쳐 날뛰면 이곳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미쳐 날뛰면 때리고 패서라도 제압해야 하는데 영주 널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그리고 너 얘들처럼 이 룬어들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외울 수 있어? 마법진 하나 그리고 익히는데도 몇 달이나 걸려 놓고선. 너 이거 외우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
“네가 착하고 영지민을 아끼는 건 나도 아는데 우리 좀 나설 때 나서자. 오키?”
“죽이세요.”
“뭐라고?”
“제게 이상 징후가 보이면 바로 죽이시라고요.”
그동안 내가 너무 ‘네, 네’ 하면서 지내니 카프리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 강, 최.
고집이라면 나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난 내가 실험 대상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카프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흑마법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거나 계속할 거면 그 첫 번째 대상자는 무조건 나여야 할 것이다.
“영주님…… 저희를 이렇게까지…….”
“영주님…….”
훌쩍.
견습 마법사들이 감동이라는 받은 것처럼 울먹거리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부담스럽다.
난 저들을 챙기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못살고 없이 살아 그로 인해 이래저래 무시 받은 경험이 많아 숨겨 왔던 반항심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었다.
못하고 안 된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어졌다.
“하아…… 알았다. 영주,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따르지.”
“카프리 님…….”
“카프리 님…….”
“걱정할 거 없다. 하몽과 나의 분석은 완벽하다. 혹시나 모를 만약을 대비하자는 거지. 우리의 분석을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날 믿어라.”
카프리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령사의 한계를 느끼고 검술을 익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제는 흑마법까지 배우게 생겼다.
“일주일은 너무 길다. 사흘 주겠다.”
“하루면 됩니다. 내일 바로 발현할 수 있게 오늘 다 외울게요.”
“과욕은 금물이다. 네 머리론 하루 만에 외우는 건 불가능하다.”
카프리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견습 마법사들이 1시간 만에 외운걸, 난 하루의 시간을 줘도 불가능할 거라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내일 아침에 찾아뵙죠.”
나도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내가 수학에 흥미가 없어서 안 한 거지. 못해서 안 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