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초보 헌터들의 성지 (2)
마신의 신전을 복구하라는 지시에 안지현 실장이 일만 명의 헌터와 헬퍼들을 이끌고 해골밭에 찾아왔다.
‘왜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온 거지?’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을 쳐다봤다.
고작 신전 하나 복구하고 지키기엔 너무나 많은 인원이었다.
천여 명 정도만 있어도 충분할 텐데 무려 10배나 데리고 온 것이다.
안지현 실장은 현재 켄트 왕국을 개발하는 총책임자로 있었고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기에 필요 이상의 인원이 투입되면 그만큼 손해라는 걸 알 텐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판단해서 인원을 데리고 왔음에도 그녀의 얼굴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다른 마스터들과 같이 그녀도 마신의 신전을 복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뭐.’
난 안지현 실장에게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바쁠 텐데 실장님이 직접 왔네요. 사람들만 보내 줘도 되는데.”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마신의 신전을 복구한다는 게 알려지면 전 세계 국가에 공적으로 찍힐 수도 있는데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복구를 하려는지 궁금했거든요.”
“……?”
안지현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전 세계 국가들의 공적이라…….’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거부감이 좀 있을지언정 우릴 공적으로 간주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었다.
“표정을 보니 그렇게까지 생각해 보지는 않으신 듯하네요. 하나 이 신전을 복구하면 꽤 높을 확률로 공적이 될 가능성이 커요.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피해를 받고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이 모시는 신의 신전일 수도 있는 곳을 복구한다고 하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난 안지현의 설명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업을 하시던 분이라 그런지 역시 시야가 넓네요.”
“그러게요. 미처 저희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감안하고 계셨네요. 영주님, 신전의 복구는 재고하시지요. 몬스터랑 싸우기도 버거운데 세계 헌터 협회의 공적까지 되면 감당하기 힘듭니다.”
지윤미와 조성태가 마치 저 말만 나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반대 의향을 내비쳤다.
내가 죽으라 명령하면 그것마저 따를 사람들인데 마신의 신전을 복구하는 게 제법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흠…… 진짜 자칫했다간 큰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겠네요. 궁금하네요.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왜 안지현 실장이 이리 많은 사람을 이끌고 왔는지.”
“전 지시가 내려오면 따르는 사람이지. 뭔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
“……?!”
마스터들이 당황과 분노가 섞인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 실장을 쳐다봤다.
다들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영주님은 마신의 신전을 복구하라 명령했고 전 그로 인해 당면할 수도 있을 일들을 확인하고 대처 방법을 강구하려고 온 거예요. 다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끙‥….”
“끙…….”
마스터이 적대적인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다 안지현이 되레 그들에게 꾸짖듯 말을 했다.
시키니 따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일들을 예상하고 조치를 취한다.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그리고 다른 마스터들은 문제와 사건이 생길 여지가 있으니 애초에 반대하는 것이었고.
“하하하. 안지현 실장 말 잘하네. 그래 그 말이 정답이지. 영주가 신전을 복구하자고 하면, 하면 되는 거지. 뭔 이렇게 말이 많아! 앙! 이것들은 맨날 지도자라며, 충성을 한다며 말만 뻔지르르하지. 쯧쯧.”
안지현 실장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카프리가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마스터들을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마신의 신전을 복구했을 때의 위험과 이익에 상관없이 마스터들이 내게 깊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해 왔다.
다들 진심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건 별론데…….’
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마스터들과 안지현 실장을 쳐다봤다.
그녀로 인해 마스터들의 반발을 잠재우긴 했지만, 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주가 시키니 이유 불문하고 따른다.
왠지 너무 폭군 같지 않은가.
“마스터님들, 아니 성주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영주님도 영주가 된 것은 처음이잖아요. 도움을 받고 조언을 받을 만한 또 다른 영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때론 착오가 있는 지시를 내릴 수도 있을 거예요. 하나 그때마다 우리가 그에 반목을 하고 뜻을 바꾸려고 하면 영주님이 너무 힘드실 것 같네요.”
“아…….”
“아…….”
“신전을 복구했을 때 위험이 뒤따르긴 하겠지만 예상되는 이익도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러니 우린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영주님을 돕는 게 참모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영주님께서 항상 먼저 대화를 청하고 저희의 의견을 물어보셔서 저희가 착각을 했던 것 같네요.”
마스터들이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안지현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대단한 여자였다.
카프리의 말로 인해 자칫 험악하게 흘러갈 수 있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모두 허락 하신 걸로 알고 해골밭 아래 마을을 만들까 하는데 시작해도 될까요?”
“마을을 만든다고요?”
“네. 명령서를 보니 영주님께서 이곳을 초보 헌터들의 사냥터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곳은 글루틴 마을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위험 상황이 생겼을 때 피신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 같아서요.”
“아…….”
사람을 왜 이렇게 많이 이끌고 왔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인 듯했다.
몬스터의 이끌림.
지금이야 접근하는 몬스터 양이 적긴 하지만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 대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이었다.
“그레이 기사단에 부탁해 정찰해 보니 5시 방향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머물 만한 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 마을을 만들어 물길을 뚫으면 농사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네요. 시작해 주세요.”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에서 사냥할 초보 헌터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곳도 필요하지만, 사막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전진 기지가 있어야 했다.
안지현이 말한 곳에 마을을 만들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을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 따라오세요.”
“네.”
안지현이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사람들을 이끌고 5시 방향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이내,
[영주님, 저희도 이만 켄트성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린드 공주한테 말 좀 잘해 주세요.”
근위 기사단과 마법사단을 이끌고 온 퍼거슨이 내게 다가와 복귀할 뜻을 전해 왔다.
카시오페아가 아닌 다른 신을 모시는 신전을 복구하기로 결정되니 그의 얼굴이 편치 않아 보였다.
[미안하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마신의 신전을 복구한다는 사실을 들으면 린드 공주가 불편해하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영주님의 뜻입니다. 영주님이 아니었으면 저흰 카시오페아 님의 뜻을 듣기 전에 이미 청방 놈들의 노예로 살며 죽거나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요. 조심히 가세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퍼거슨을 배웅했다.
뒤돌아가는 퍼거슨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내 앞에서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몽, 하몽, 얼른 이리 와 보게!”
[무슨 일이십니까? 뭐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신전을 복구하고 있던 카프리가 호들갑을 떨며 하몽을 불렀다.
[이건?]
“흑마법사 놈들 룬어 맞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건 테이밍 마법이고, 이건 뱀파이어 마법, 이건 소환, 아공간 룬어처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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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이 놀람과 경악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의 뼈로 된 기둥을 쳐다봤다.
내가 보기엔 하몽이 사용하는 마법의 룬어들과 비슷해 보였는데 다른 룬어인가 보다.
[하데스의 신전이었던 모양이네요. 다행이네요. 악신은 아니라서…….]
퍼거슨과 마찬가지로 신전을 복구한다는 결정에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던 하몽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보아하니 아는 신인 모양이다.
“하데스요?”
[네. 마계 전체를 관장하는 최고신입니다.]
“마계 전체를요? 그럼 위험한 신 아니에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데스가 중간계에 해를 끼쳤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한테 도움이…….”
[도움을 줬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수많은 흑마법사와 사제들이 하데스의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를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아무도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보이는 족족 인간과 이종족들에게 죽임을 당했거든요.]
“……?!”
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악신이 아닌데 보이는 족족 왜 죽이죠?”
[마계의 신이니까요. 그동안 또 다른 마신을 믿는 마족과 추종자들이 중간계에 해를 끼쳤고 하데스의 사제들 역시 당연히 그럴 거라 믿고 다 죽여 버린 거죠. 그들 역시 마기를 원천으로 마법을 쓰는 존재들이었으니까요.]
“…….”
[켄트 왕국은 물론이고 이 대륙을 지배하던 왕조 중에서 마신의 신전을 인정하고 또 복구를 명령한 지도자는 영주님이 처음입니다.]
“아…….”
[이제 갓 스카이 캐슬의 일원이 된 아이가 영주님의 권위를 운운하며 설득을 하는 모습에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하몽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 실장이 떠나간 방향을 쳐다봤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혹시 안지현 실장이 이 신전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다크 엘프를 스승으로 모셨다면 분명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이 하데스이니.]
“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치밀한 아이였네요. 저 아이의 말 한마디 때문에 수백 년간 숨어 지내야 했던 하데스의 신전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네요.]
“흠…….”
난 고민어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의 시선을 따라갔다.
기특해한 것도 잠시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나에게 비밀을 만들지 않기로 했는데 하몽의 말처럼 그녀가 알고도 모른 체했다면 많이 실망할 듯했다.
[영주님, 노여워하지 마세요. 저 아이가 이 신전의 정체를 알았어도 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방금 얘기를 드렸다시피 이곳에 살던 인간과 이종족 모두 마신을 믿는 사제들이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였으니까요. 저 아이로선 자신의 스승과 동족에게 해가 가지 않게 숨겨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어떡하죠?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요?”
[지금으로선 그편이 현명할 것 같네요. 이유야 어떻든 현재 영주님의 뜻에 최선을 다해 돕고 있으니. 그리고 영주님이 이곳을 지켜주시면 다크 엘프들의 마음도 얻을 수 있을 테니 굳이 반목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네.”
난 하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내,
“얘기 끝난 거지? 그럼 하몽 빨리 이리로 와서 이것 좀 자세히 봐 봐.”
카프리가 하몽의 소매를 잡고 다시 신전 기둥으로 데리고 갔다.
“이거 조금만 손대면 우리 애들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흠…….”
흑마법사들이 사용한다는 룬어를 보는 카프리와 하몽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