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언데드 학살자 (8)
스윽!
뽀각!
에르메스의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언데드 몬스터가 바닥에 쓰러졌다.
심장과 몸 곳곳에 퍼져있는 정령력도.
마나 팔찌에 있는 마나의 힘도 아니었다.
오로지 내 순수 근력과 에르메스의 검이 머금고 있는 신성력의 힘이었다.
스윽!
뽀각!
스윽!
뽀각!
네 마리, 열 마리, 백 마리…….
수련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내 주위엔 백여 마리가 넘는 언데드 몬스터의 사체가 나뒹굴었다.
비록 제대로 된 정식 검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지난 몇 달간 맨몸으로 늑대인간과 치고받았던 수련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발과 몸이 빠르고 날랜 늑대인간에 비해 언데드 몬스터는 느렸고 또 공격하는 패턴도 단조로웠다.
카프리가 얘기한 것처럼 그저 베고 찌르는 동작만으로도 해골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물론,
‘으윽, 내 팔목…….’
“검을 너무 꽉 쥐어서 그렇다. 달걀 쥐듯이 부드럽게 잡아라. 그래야 반발력을 흘려보낼 수 있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들고 싸우느라 예상치 못한 자잘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카프리가 그때마다 옆에서 지도해 주었다.
“네, 알았어요. 근데 기본 동작이라도 좀 가르쳐 주면 지금보다 한결 수월하게…….”
“우리 드워프 검술엔 그런 거 없다. 정해진 틀과 형에 맞춰 수련하면 처음엔 성취가 빠르겠지만 벽에 가로막혔을 때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검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죽고 죽이는 싸움일 뿐이다. 지금처럼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싸우다 보면 알아서 깨닫게 될 것이다.”
무기를 들고 시작한 수련에서도 카프리의 지도 방식은 한결같았다.
근데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는 딱히 뭘 어떻게 하라 알려 주지 않았지만,
“으읔.”
“멍청아, 발은 폼이야? 그럴 땐 한 놈은 발로 배를 걷어차거나, 발목을 걷어차면 되잖아. 손에 검 들었다고 검으로만 싸우는 거야?”
전투를 지켜보며 문제점을 알려 주고 때론,
“으읔.”
“어휴, 그럴 땐 검을 위로 치켜세우며 막았으면 바로 내리면서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잖아!”
더 효율 있게 싸울 수 있게 조언도 해 주었다.
훈련장에서 혼자 검을 들고 수련을 했으면 바로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몬스터와 싸우면서 들으니 그의 말 한마디가 다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짐작건대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면 켄트성 안에서 퍼거슨의 지도로 훈련을 시작한 헌터들보다 내 실력이 훨씬 더 빠르게 늘어갈 것 같았다.
반면에,
“지윤미 마스터님, 엔트 키트 좀 주세요. 다 떨어졌습니다.”
“네, 알겠어요.”
“저도, 저도 다 떨어졌습니다. 전 엔트 키트 말고 성수로 주세요.”
“……?”
“엔트 키트를 맞아도 중독은 안 되겠지만, 성수를 먹고 치료해야 더 안심되거든요.”
“아…….”
장지원과 태백산백 길드 헌터들은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꽤 애를 먹고 있었다.
신성력을 가득 머금고 있는 전설급 무기인 에르메스의 검을 들고 싸우는 나와 달리, 그들은 그저 아무 이능이 깃들어져 있지 않은 미스릴로 된 검으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스릴로 된 무기도 언데드 몬스터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지만, 에르메스의 검처럼 치명적이진 않은지 두세 번 공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늑대인간에 비해 느리고 공격 패턴도 느렸지만 언데드 몬스터는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미스릴 무기가 있다고 쉽게 없앨 수 있었다면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었던 경제 대국이자 군사 대국이었던 일본이 이렇게 휘청거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검에 베이고 찔리면 피도 흘리고 아파하는 늑대인간에 반해 언데드 몬스터들은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계속 달려든다.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적대감으로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오직 맹목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단 한 번만 물리거나 할퀴어도 바로 중독이 돼서 언데드화가 되어 버리기까지 하고.
2티어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아주 지랄 맞은 몬스터였다.
그런데 그때,
“쿠아아아아아아아!”
“뭐야 저건? 오우거인가? 근데 왜 피부색이 하얗지? 키도 좀 작은 것 같고?”
신전 위에서 처음 보는 몬스터 떼거리가 나타났다.
3m 정도의 크기. 하얀색 피부. 몸과 팔, 다리보다 상당히 작은 얼굴.
인간형 몬스터인 것 같은데 상당히 괴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버그 베어다.”
“버그 베어요?”
“몬스터가 아니라 마족이다. 인육을 즐기는.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고기를 좋아하는 아주 흉악한 놈이다.”
카프리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버그 베어를 쳐다봤다.
부들부들.
버그 베어와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지 몸을 떨기까지 했다.
“3티어급 몬스터예요. 저희도 도와야 할 것 같아요.”
급히 태블릿 PC를 꺼내 살펴본 지윤미 마스터가 발키리 길드 헌터들과 이아영 마스터에게 전투 준비를 하고 눈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수련은 여기까지 해야 할 듯했다.
“3티어로 분류된 이유가 뭐죠?”
“오우거보다 힘이 살짝 약하긴 한데, 늑대인간만큼이나 빠른 몬스터예요. 게다가 근접 마법이긴 하지만 불속성 마법까지 부린다고 나와 있어요.”
지구에 게이트가 열린 지 어느덧 5년이 지났고 다행히 조사된 몬스터인 듯했다.
“저희가 맡을게요. 붙으면 꽤 위험하긴 하지만 그 전에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아요. 1시 방향 제일 앞에 있는 놈부터 조준해.”
“1시 방향 확인.”
“1시 방향 확인.”
인근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활에 화살을 메기고 버그 베어를 조준했다.
30여 마리쯤 되어 보였고 꽤 빨리 달려오고 있었지만, 발키리 길드 헌터들의 화살 공격력이면 우리에게 당도하기 전에 해치울 수 있을 듯했다.
하나,
“멈춰. 누가 허락도 없이 수련을 중단시키라고 했지?”
“카프리 님, 3티어급 몬스터예요.”
“3티어고 자시고. 뒤로 빠져 있어. 조성태 마스터한테 들어서 버그 베어가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카프리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의 앞을 막아서며 공격을 중단시켰다.
“카프리 님!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시끄럽다. 너 때문에 수련 일정이 어그러졌잖아!”
버그 베어가 곧 있으면 당도할 위치에 있어 지윤미 마스터가 나름의 판단 아래 전투 준비를 한건 데 카프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멍청이 가서 시선 좀 끌고 시간 좀 벌어 봐.”
“엥? 나 혼자 저놈들을 상대하라고? 방패도 없는데?”
“싸우라는 게 아니고 시선 좀 끌라고. 저돌적인 놈들이 앞으로 가서 돌 몇 개 던지면 널 따라갈 거다. 잠깐만 도망 다니고 있어.”
“꼭 해야 하는 거지?”
“아직 수련 시간이라고 했다.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 들어라.”
“젠장. 쩝.”
장지원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가 버그 베어를 향해 돌을 던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수련이라는 말에 두말없이 지시를 따랐다.
지난 석 달간의 훈련 경험으로 인해 카프리에게 뭔가 의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장지원이 돌을 던지자 버그 베어는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를 쫓아갔고 장지원은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빠르게 달리며 신전 주위를 돌며 크게 원을 그렸다.
“헉! 이 새끼들 뭐 이렇게 빨라. 카프리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빨리해. 개자식아! 이러다 나 죽겠어!”
“카프리 저도 돕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저도 같이할게요.”
“마음대로 해라.”
“고마워요.”
장지원이 위태위태 보이자 김현규와 김영균도 앞으로 나가 버그 베어를 향해 돌을 던졌고 함께 뜀박질을 시작했다.
버그 베어가 제법 빠르긴 했지만 셋 다 C급 이상의 상위 헌터였고 늑대인간을 상대했던 수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버그 베어의 방망이질을 잘 피하며 버티고 있었다.
“저 정도면 직접 싸워도 될 것 같은데?”
난 한결 여유가 생긴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장지원은 도망치기 바빠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지만, 세 명의 다리에 모두 빠르게 마나가 회전하고 있었다.
퍼거슨이나 켄트 왕국 기사단처럼 마나 심법이나 보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위험에 닥치니 마나가 몸에서 반응하는 것이었다.
“참아라. 버그 베어는 너희 것이 아니다. 거기 이름이 뭐지?”
“이채령이라고 합니다. 카프리 님.”
아, 맞다. 견습 마법사들이 있었지.
수련하기에 바빠 잊고 있었다.
“에너지 볼트만 할 줄 안다고 했지?”
“네. 다들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그것만 배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없다. 그거면 충분하니까. 앞으로 가서 에너지 볼트 날려.”
“네?”
“에너지 볼트 날리라고!”
“저흰 아직 견습생들입니다. 3티어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시전 속도도 느리고 명중률도 낮아서 자칫했다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수련을 하려고 온 거잖아. 걱정하지 말고 날려라. 버그 베어가 맷집이 좋긴 하지만 에너지 볼트 20여방 정도면 죽는다. 천 명에서 쏘는데 그 정도도 못 맞출까? 그리고 행여나 가까이 다가와서 공격을 해도 플로라 헌터들이 있으니 죽지만 않으며 치료해 줄 거다.”
카프리가 이채령을 보며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얘넨 또 뭘 잘못한 거지?’
나름 포근한 분위기를 내려고 애쓰는 미소였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우리에게 첫 야간 훈련을 시키려고 할 때처럼 뭔가 음흉하고 신이 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쟤네 죽고 나면 시작할래? 난 너희가 해치우지 않으면 계속 저렇게 놔둘 생각인데?”
“끙……하겠습니다. 얘들아.”
이채령을 필두로 한 견습 마법사들이 진형을 짜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도 이미 듣고 온 모양이었다.
카프리는 한다면 하는 이라는 걸.
그리고 이내 난 알 수 있었다.
견습 마법사들은 카프리한테 찍힌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에너지 볼트.”
“#$#$#$#$#$#$##에너지 볼트.”
.
.
.
둥! 둥! 둥! 둥!
카프리의 강요에 견습 마법사들은 버그 베어를 향해 에너지 볼트를 날렸고 카프리의 예상대로 적지 않은 마법이 버그 베어에게 명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5마리가 추가돼서 버그 베어는 40여 마리 정도 되었고 견습 마법사는 천 명이었으니까.
하나 문제는 에너지 볼트가 버그 베어한테 날아간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나무를 맞추거나 아니면 엄한 땅을 맞추거나 심지어,
“으읔, 야씨! 너희 마법 똑바로 안 날려? 아군을 공격하면 어쩌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직 컨트롤이 서툴러서…….”
도망 다니고 장지원 헌터까지도 맞췄다.아무리 1써클 마법에 견습 마법사가 날린 에너지 볼트라고 해도 일단 맞으면 많이 아프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아군의 방향에서 날아온 것이라면 더더욱 치명적이고 위협적이었다.
다행이 견습 마법사들의 공격에 눈앞에 있던 버그 베어는 해결됐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했다간 사고가 날 수도 있을 듯했다.
“카프리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견습 마법사들을 훈련할 거면 안으로 더 들어가거나 떨어져서 해야 할 것 같네요.”
난 수련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수련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하나,
“검 까지 쥐여 줬는데, 언데드 몬스터만 상대하는 건 너무 시시하잖아?”
“네? 그럼 일부로…….”
“리치 잡으러 간다며? 그럼 마법 공격에도 적응해야지. 1단계이긴 하지만 에너지 볼트는 마법 발현 속도가 가장 빠르기도 하지. 등 뒤에서 날아오는 에볼을 피하고 벨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마법은 다 방어할 수 있을 거야.”
카프리는 웃으며 내 이의를 묵살했다.
견습 마법사들을 수련시키는 건 핑계였다. 아니 겸사겸사한 모양이다.
“수련이란 자고로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성취가 좋은 법이지. 크크. 그리고 겸사겸사 견습 마법사들도 수련시키고 좋잖아. 대한민국 십대 길드 세 곳에서 서포터로 돕고 있는데 너희만 수련하면 인력 낭비잖아.”
“끙…….”
이제 조금 할 만 해지나 싶더니 내가 카프리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앞으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에너지 볼트마저 경계하며 언데드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