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언데드 학살자 (6)
한 마리, 두 마리, 삼십 마리.
순식간에 수십여 마리의 늑대인간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늑대인간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내기 급급했던 태백산백 길드 헌터들이 이제는 반대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무기가 없다 하나, 마나가 덧씌워진 헌터들의 주먹질과 발차기의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멍청이, 잘하고 있다. 그렇게 잘 싸우면서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아까는 네가 무기도 빼앗고 몸을 구속하기까지 하니 당황해서 그랬지. 몸이 안 풀리기도 했고.”
“그래.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너는 그 누구 못지않은 훌륭한 전사였다. 이 정도 수련은 우습게 이겨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카프리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장지원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표정만 보면 늑대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한 태백산맥 헌터들을 정말 기특해하는 것 같았다.
하나,
‘무슨 꿍꿍이지?’
난 카프리를 믿지 않았다.
지난날, 카프리에게 마법진을 배우면서 난 어느 정도 그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까칠하긴 하지만 작업을 할 때나 누군가에 무슨 가르침을 내릴 때 그는 더 차갑게 변했다.
내가 알고 있던 카프리는 저리 쉽게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휘이익.
“어딜.”
난 나를 타겟으로 공격해 오는 늑대인간의 공격을 피하며 주위를 살폈다.
‘못마땅해하고 있어.’
그리고 난 분명 보았다.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과 달리 내가 늑대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피하니 그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찡그려졌다.
짐작건대 카프리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주먹에 마나를 실고 늑대인간을 제압하길 원하는 듯했다.
이미 늑대인간의 속도에 적응하고 몸놀림까지 눈에 익어 공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나 마나가 문제였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인간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 우리를 향해 찾아오고 있었고 만약 마나가 떨어지면 낮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카프리 2시간이나 지났잖아.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거야!”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수갑을 풀어 주세요. 카프리!”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장지원과 태백산맥 헌터들이 수련 중단을 요청했다.
다들 마나 고갈로 인해 오전 훈련을 했을 때보다 더 힘들고 고단해 보였다.
“2시간 남았다.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라.”
“뭔 개소리야. 마나가 없다고.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우리 정말 죽을 수도 있어.”
“안 죽는다. 정 불안하면 공격하지 말고 오전처럼 위급할 때만 마나로 몸을 보호하면 된다.”
장지원은 안달이 난 얼굴로 말을 하는데 카프리는 별거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끼며 흘려들었다.
짐작건대 마나를 소비시키기 위해 아까 일부러 칭찬한 듯했다.
“카프리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내가 아는 너는 혼자서 능히 만 마리의 늑대인간을 해치울 수 있다.”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무기가 있어도…….”
“말 끊지 말고 들어라. 마나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회복된다. 근데 너흰 지금 회복되는 양보다 더 빨리 사용을 해서 그런 거다.”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알았으면 진즉에 마나 조절을 했어야지. 실제 전투를 할 때도 마나가 떨어지면 상대한테 마나가 찰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거야?”
카프리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장지원을 노려봤다.
참 고약한 드워프였다.
자기가 우쭈쭈하며 마나를 사용하게 해 놓고선 이제 와 그걸 모두 장지원의 책임으로 돌렸다.
게다가,
“영주를 봐라. 영주는 너희와 달리 마나 조절을 해서 아직 생생하지 않은가.”
엄한 나를 예를 들며 동료들의 눈총까지 받게 했다.
“영주, 아주 잘하고 있다. 지금 너의 마나양이면 십만 마리의 늑대인간도 해치울 수 있을 거다. 어스퀘이크 몇 방 쏘면 단숨에 다 묻어 버릴 수 있을 테니까.”
“흠…….”
“하나 그렇게 되면 너도 마나가 고갈이 되겠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다. 마왕과 상위 마족들이 강하긴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인 브레드와 같은 선상에 있다. 다만 그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휘하에 데리고 다니는 수하들 때문이다. 리치와 데스 나이트만 해도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끌고 다니지 않는가.”
“아…….”
“전투라고 해서 힘만 강하다고 능사가 아니다. 머리를 써서 가진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실력과 경험을 쌓는다면 지금 당장 리치를 해치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다.”
“……네.”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과격하고 설명이 없어서 그렇지.
카프리의 수련 방법엔 다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새 또 적응했어.’
얼핏 생각하면 골탕을 먹이기 위해 마나 사용을 독려한 것 같아도 다시 전투를 시작한 장지원과 태백산백 길드 헌터들은 어느새 최소한의 움직임과 마나 사용을 하며 늑대인간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수련이라 칭하고 있었지만 우린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사이를 오가며 전투를 하고 있었고 궁지에 몰릴 때마다 머리와 몸이 잔뜩 날이 서서 대처하고 있었다.
그렇게 카프리는 우릴 계속 천 길 낭떠러지와 같은 사지로 몰아넣었고 우린 스스로 몸을 관조하고 또 몬스터의 움직임과 습성 같은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경험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 * *
‘김국종이 이래서 미친 듯이 운동을 하는 거였구나.’
카프리에게 수련을 받은 지 석 달이 지나자 내 생활 습관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식사하면 햇빛이 비치는 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하고 낮잠을 자거나 사색에 빠지는 걸 즐겼는데 언제부턴가 난 적당히 소화를 시키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
아침 먹고 운동.
점심 먹고 운동.
저녁 먹고 운동.
자기 전에 스트레칭.
필드에 나가 전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난 항상 몸을 움직이고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정령들의 도움으로 진즉에 몸이 좋아지긴 했지만 내 의지로 운동과 전투하며 생긴 근육을 보는 건 날 더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부터는 무기를 들어도 좋다.”
“정말이요? 이제 숲 안쪽으로 더 이동하는 건가요?”
“그렇다. 이제 늑대인간을 상대하며 배울 건 더 이상 없다. 앞으론 검을 들고 몬스터를 해치우는 경험을 갖게 될 거다.”
“네, 알았어요.”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늑대인간의 숲을 지나가면 이제 사막과 글루틴 필드의 마지막 경계선인 해골밭이었다.
퍼거슨의 말에 의하면 과거 해골밭에서 큰 전투가 치러져 수백만 명의 사람과 마족 그리고 몬스터가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언데드화가 되어 해골밭을 떠돌고 있었고.
짐작건대 해골들을 상대하게 해서 이제 제대로 된 검술을 가르쳐 주려는 모양이었다.
“카프리, 근데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은 그렇다 치고 전 검을 들고 싸운 경험이 없는데 이렇게 바로 나가도 될까요?”
“검술 별거 없다. 베고 찌르기만 할 줄 알면 된다.”
“베고 찌르기요?”
난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카프리의 수련 방법이 실전 위주의 훈련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제 검을 주었으니 뭐라도 가르쳐 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처음엔 어설픈 검질에 손목도 좀 나가고 자기가 든 검에 몸을 좀 배기는 하겠지만 계속 휘두르다 보면 나아질 거다.”
“……네.”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석 달간 훈련을 받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어차피 여기서 더 무언가 요구를 하고 건의해 봤자 내 입만 아프다는 걸 충분히 경험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벨트에 에르메스 검을 착용하고 수련을 나갈 준비를 하는데 하몽이 찾아왔다.
그의 뒤엔 천여 명의 헌터들이 서 있었다.
보아하니 하몽이 운영하는 마법사의 탑에 새로이 받은 수련생들인 듯했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어요? 마법진 그리느라 정신없으실 텐데?”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그는 혹시나 얼음 여왕이 쳐들어오면 막기 위해 대한민국과 켄트 영지에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진을 그리고 A급 헌터들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마탑주인 그는 지금 수련생들 통솔해서 데리고 다닐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카프리 님께서 견습 마법사들을 수련해 준다고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카프리가 마법사들을 수련시킨다고요? 제가 알기론 마법은 못 하는 걸로 아는데…….”
[마법도 검술과 비슷합니다. 계속 쓰다 보면 시전 속도도 빨라지고 컨트롤도 잘 할 수 있게 되지요.]
하몽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견습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카프리 님의 수련은 상급 헌터들조차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큼 힘들고 과격하다. 빠질 사람들은 지금 빠져라.]
“없습니다.”
“없습니다.”
견습 마법사들이 막 군대에 입대한 신병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목소리도 그렇고 눈이 초롱초롱한 게 다들 의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준비됐으면 가자.”
“네.”
카프리의 1차 수련을 통과한 우린 견습 마법사들과 함께 해골밭으로 이동했다.
* * *
“벌써 음침하네요.”
많은 이의 목숨이 사라진 곳이라 그런지 늑대인간의 숲을 지나가자마자 공기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왠지 끈적끈적하고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바닥 역시 황토색이 아니라 핏빛에 더 가까웠다.
“여기서부터 해골밭입니다.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순간 방심하면 수천에 이르는 해골한테 둘러싸이는 수가 있습니다.”
아직 개척 하지 못한 위험 지역이라 이번엔 그레이 기사단도 함께 왔고 조성태가 다가와 다시 한번 내게 주위를 시켰다.
수련생의 신분이긴 하지만 위험 상황이 생기면 난 바로 일행들을 이끌어야 하는 총지휘관이기 때문이었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본에 출몰한 리치와 데스 나이트도 이곳에 머물다가 이동한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곳에 아직 데스 나이트에 준하는 몬스터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베이스캠프 옆에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그동안 그레이 기사단이 나름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처음 오는 지역인데도 내게 설명하며 비교적 걷기 쉬운 길을 찾아 잘 안내했다.
그런데 그때,
“멈춰!”
“……?!”
“……?!”
카프리가 주먹을 말아 쥐고 올리며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의 앞엔 동물의 갈비뼈 형상을 한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이게 뭐야? 설마 동물의 뼈는 아니지?”
“에이, 설마요. 이 정도면 드래곤 씨엘보다 덩치가 더 클 것 같은데요.”
난 기둥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여멀건 게 동물 뼈 같긴 했지만 크기가 너무 컸다.
만약 저게 갈비뼈라면 웬만한 아파트 한 동 크기는 될 것이다.
“드래곤의 뼈다.”
“네?”
“드래곤이라고!”
카프리가 심각한 얼굴로 하얀 기둥 아니 드래곤 뼈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