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11화 (211/255)

211화. 언데드 학살자 (5)

“아니요. 하라면 할게요. 저흴 강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시키는 건데 따라야죠.”

“맞다. 야간 훈련을 강행하려는 주요 목적은 너흴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주요 목적이요? 그럼 다른 부가적인 이유도 있다는 건가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카프리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뭔가 비릿한 미소였다.

눈칫밥 먹은 세월만 최소 30년이다.

아무리 봐도 야간 훈련은 수련만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적인 마음을 담아 진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알고서 당했으면 해서요.”

“뭘?”

“단순히 우릴 빨리 강해지게 해 주기 위해서 야간 훈련을 바로 시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제가 잘못 본 건가요?”

난 자세를 바로 하고 카프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카프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느낌대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도 그는 솔직히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혹여나 내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정중히 사과하면 될 테고.

괜히 혼자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그냥 대놓고 물어보는 게 나았다.

“날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나?”

“처음 만났을 때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난 아주 못돼 먹은 인간을 만났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분명 내가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싶다고 보디랭귀지를 보고 알아들은 것 같은데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

“먹을 것 갖고 약 올리는 것만큼 치사한 거 없다.”

“그게 언제 적 얘기인데…….”

“그 인간에겐 한참 전 지나간 일일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꿈에 나타날 만큼 생생하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됐나?”

“그럼 그때 일로 앙금이 남아 일부러…….”

“겸사겸사 다. 나의 소소한 복수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영주는 좋은 사람이니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난 영주를 좋아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일이 시시각각 떠오르니 잊을 수 있게 협조해 주길 바란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간 훈련을 강행하는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네.”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프리가 한 뒤끝 하는지는 알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성격이 더 고약했다.

그동안 복수를 안 하고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밥은 먹게 해 줄 거죠?”

“당연하다. 수련을 이겨내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나 먹을 것 갖고 장난치는 그런 쪼잔 한 드워프 아니다.”

“네.”

카프리가 얼른 가 보라는 듯 손짓을 했고 난 찝찝함을 뒤로 한 채 식당으로 이동했다.

* * *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식당에 도착하니 김용규마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영지 내부 일은 안지현이 맡아 잘 진행하고 있으니 밖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게 미국에서 일본에 지원을 가 달라고 협조 요청이 왔습니다.”

“협조 요청이요?”

“네. 리치와 데스 나이트,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로 인해 대부분 도시에 통신 시설과 도로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나라가 망할 것 같으니 미국에 정식으로 파병 요청을 한 모양입니다.”

“흠…….”

통신 시설이 파괴되었다는 걸 보니 상황이 아주 많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군 시절, 우리 군은 적의 특작 부대가 우리의 통신 시설과 도로를 일차적으로 요격하고 파괴할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방어하기 위해 수십 년간 회의하고 대비를 마련하고 있었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이 나서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않고 버티려면 통신 시설을 지키는데 사활을 걸어야 했다.

통신이 마비되는 순간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군인은 물론이고 주민들 역시 바로 외딴섬에 갇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피해가 있을지언정 얼마간은 버틸지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쉽게 무너졌네요.”

“언데드의 전염성과 마나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현대 무기의 공격으론 아무리 공격해도 다시 살아나니 일본으로선 버텨낼 재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그럼 진즉에 미스릴이랑 엔트 키트. 그리고 성수마저 보내 줬을 텐데.”

난 일본이 싫었다.

독립군이었던 할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만행들을 귀에 박힐 정도로 배우고 들으며 자랐고 그로 인해 엄청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이참에 일본으로 쳐들어가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차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들이 무단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36년 동안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자원을 착취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해 주고 싶었다.

“영주님 이대로 일본이 무너지면 리치와 데스 나이트의 시선이 우릴 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난민들도 어쩌면 우리가 떠안아야 할 수도 있고요. 지금이야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무시해도 되겠지만 나중에라도 안정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지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탄이라…… 그럴 수도 있겠죠. 하나 안정이 돼도 우리가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면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지는 못하겠죠.”

역사는 승자가 바꾼다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 프랑스…….

지난 시절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약탈하고 사람들을 해친 건 일본만이 아니었다. 하나 우리는 일본은 물론이고 그들에게도 죄를 묻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인권과 도의가 중요시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힘이 세면 다 무마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에 가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네. 맞아요. 하나 일본을 구하려고 가는 게 아니라 리치와 데스 나이트를 처치하기 위해 간다는 거였어요. 근데 지금 우리가 지원을 가면 마치 일본을 구하러 가기 위해 가는 모양새가 되잖아요. 전 그게 싫네요.”

“끙…….”

김용규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그도 속으론 나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는 게 부담스러운 듯했다.

“오늘 카프리를 보며 전 확실히 깨달았어요.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받고 맞았으면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걸. 그래야 두려움이 생겨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

“흠…… 영주님, 제가 머리가 나빠서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김용규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가 딱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내라고 하지도 않으니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본부장님이 원하시면 지원을 보내는데 허락하죠. 그 대신 헌터 한 명에 1조는 받아야겠습니다.”

“1조 나요? 그럼 열 명만 보내도 10조인데…….”

“네. 맞아요. 그리고 만약 지원을 보내게 되면 만 명은 보낼 생각입니다. 그럼 1경(10,000,000,000,000,000원) 정도 되겠네요. 물론 지원 나간 헌터들이 다치지 않게 미스릴과 엔트 키트, 그리고 성수까지 끊이지 않게 공급하는 걸로 해서요.”

“1경이요? 아무리 군수 물자까지 지원해 주는 거라 해도 지금 일본은 그 정도 금액을 결제할 여력이 없을 겁니다. 아니 몬스터 웨이브가 발발하지 않아도 그 정도 돈이면…….”

“통신 시설까지 파괴돼서 나라가 망할 판이라면서요. 당연히 안 되겠죠. 그러니 알아서 우리가 챙겨 와야죠.”

“설마 그 말은…… 약탈을…….”

“네. 맞아요. 일본의 국보와 문화제 그리고 금과 같은 광석과 산에 있는 나무들과 같은 자원을 닥치는 대로 깡그리 캐서 가져오는 걸로 하죠. 설사 이 혼란이 끝나도 돈이 없어서라도 우리한테 까불지 못하게.”

“헐…….”

“아, 맞다. 그리고 우리 쪽 광산과 성곽에도 인력이 부족하니 사람들도 좀 데리고 와서 일도 시키면 좋겠네요. 우리나라에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우리나라를 강제로 침탈한 게 아니라 보호해 줬다며 개소리하는 종자들 있잖아요.”

“……?!”

김용규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잃은 채 날 가만히 쳐다봤다.

김용규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런 조건에 계약하지는 않을 겁니다.”

“친일파 놈들이 그랬듯이 일본에도 자기 목숨이 먼저인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일본 정부 수뇌부에 올리고 사인을 받으세요. 몬스터로 인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 분명 우리에게 협조적으로 구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아…….”

“이 정도 얘기를 했으면 전 충분히 제 뜻을 밝힌 것 같은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다 제가 계획을 짜 주어야 하나요?”

난 얼굴에 표정을 없애고 김용규를 가만히 노려봤다.

내가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이었다.

미스릴과 성수로 무장한 우리 헌터들이 가면 그 지역은 언데드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중독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다시 되돌릴 수 있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렇게 괴롭혀 놓고도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은 나라를 도우러 가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전쟁 배상금과 이자 정도는 받아와야 헌터들도 불만 없이 명령을 따를 듯했다.

“하나만,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그럼 혹시라도 리치와 조우하게 되면 어떻게 하죠? 데스 나이트는 몰라도 리치는 승패를 장담하기가 어려울 텐데…….”

“당연히 도망을 가야죠. 남의 나라 국민 구하겠다고 우리나라 헌터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일본의 보물과 문화재를 가져오려면 혼란이 지속되는 게 편할 거예요. 제가 갈 때까지 리치는 피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영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일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김용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일본이 동학 농민 운동을 핑계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수탈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해 줄 생각이었다. 아니 굳이 지난 일이 아니더라도 스카이 캐슬을 도모하려 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그 죗값을 치러야 했다.

* * *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난 태백산맥 길드원들과 함께 다시 동쪽 필드로 나갔다.

예정에 없던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던 것도 잠시 일본 자원들을 가져올 생각을 하니 얼굴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영주. 힘들면 말해라. 그럼 그냥 돌아가겠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굳이 오늘부터 야간 수련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늑대인간 숲에 도착해 알아서 수갑에 쇠사슬을 묶는데 카프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나를 바라보는 카프리의 얼굴엔 두려움마저 서려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김용규한테 전달한 사실이 수뇌부에 전달되고 카프리도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참 재밌는 드워프였다.

아마 올해 광복절이 74주년이고 독립운동을 한 지는 100주년이 된 해일 거다.

74년이나 지난 일로 내가 복수를 명령하자 이제 와 후환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나도 카프리만큼이나 기억력이 좋고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에요. 수련받을게요.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야 있나요. 그리고 하나만 더 기억해 주세요. 전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누군가 저나 제 지인을 괴롭히면 반드시 당한 만큼 돌려줄 거예요.”

터벅터벅.

난 빙그레 웃으며 저 멀리 다가오는 좀비들을 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휘이익.

‘왼쪽.’

휘이익.

‘오른쪽.’

카프리의 말이 제법 달콤하게 들리긴 했지만, 수련을 받는 데 더는 두려움이 없었다.

단 하루 수련을 받았을 뿐인데, 눈이 트여 그런지 이제는 늑대인간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해 냈었다.

“지원이 형, 할 만하세요?”

“어. 걱정하지 마. 아까는 죽겠다 싶으니 지금은 제법 할 만하네.”

태백산맥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물론이고 태백산맥 헌터들 역시 발이 구속되고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너도 한번 맞아 봐라!”

휘이익.

휘이익.

“깨겡.”

“깨겡.”

여유가 생긴 헌터들이 주먹에 마나를 싣고 늑대인간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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