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언데드 학살자 (4)
‘운동이 제대로 되긴 됐나 보네.’
성으로 돌아가며 난 어깨를 주무르며 계속 스트레칭을 하며 걸어갔다.
늑대인간의 공격을 피하고 막느라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 온몸에 뼈마디, 마디가 욱신거렸다.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힐 마법으로 상처는 치료해 주었지만, 근육통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짐작건대 이대로 바로 들어가 잠을 자면 온몸에 알이 배겨 내일 더 고생할 듯싶었다.
“영주님,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아니요. 그런데 없어요.”
“근데 왜? 몸을 계속…….”
“분위기를 보아하니 알 좀 배겼다고 카프리가 열외를 시켜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풀어 놓는 거예요.”
내가 계속 몸을 주무르자 지윤미 마스터가 걱정스레 날 쳐다봤지만 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비록 헬퍼를 고집하며 몬스터와 싸우고 몸을 쓰는 일에 소극적이었지만 난 그래도 제법 내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축구, 족구, 농구, 야구 선수처럼 전문적으로 운동을 한 적은 없었지만 어렸을 적 난 꽤 많은 시간 운동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TV가 24시간 나오지도 않고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공놀이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이 좋아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돈 안 들고 친구들이랑 놀 수 있는 것이 공놀이 말고는 마땅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미루어 봤을 때 힘들고 고단하다고 바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단 이렇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긴장을 풀어 주는 게 고생도 덜하고 내일 있을 수련이 그나마 수월해질 듯했다.
“이 수련 계속하셔야겠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얼굴을 보아하니 수련을 중단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크게 다친 사람이 없지만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분명 중상자가 생길 거예요. 어쩌면 죽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저도 처음엔 이대로 있다간 죽겠다 싶었는데 계속 맞다 보니 언젠가부터 늑대인간의 공격이 보이더라고요.”
“흠…….”
“아마 내일은 오늘처럼 긴박한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저도 한나절 만에 늑대인간의 공격에 적응했는데 태백산맥 길드원은 헌터 일까지 했던 이들이니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테니까.”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카프리의 훈련 방법이 꽤 무식하고 과격하긴 했지만, 확실히 수련 효과가 있었다.
뒤에서 지휘만 하다가 수갑에 묶여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낯설어 엄청나게 두들겨 맞기는 해도 눈이 좋아졌다.
처음 늑대인간들과 맞닥뜨렸을 땐 늑대인간이 텔레포트를 하는 건 아닐까 착각을 할 정도로 번개처럼 움직이는 것 같더니 어느 샌가부터 늑대인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처음 스크린 야구장에 갔을 때처럼.
이세훈과 맥주 한잔을 하고 스크린 야구장에 갔을 때도 처음에는 평균 속도 120km에 달하는 야구공을 쳐 내지 못했지만 6회 7회쯤 되자 한두 개씩 안타를 치곤 했었다.
처음엔 총알이 날아오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느껴졌지만 계속 보다 보니 눈이 적응한 것이었고 늑대인간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저들의 공격이 보이지 않아 두들겨 맞았지만 아마 내일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전투 경험이 없어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눈으로 좇을 수 있다고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네. 저도 알아요. 오늘 충분히 경험했고요. 분명 늑대인간이 팔을 휘두르는 걸 보고 막을 수 있겠다 싶어 수갑이 있는 부분을 갖다 댄다고 팔을 올렸는데 그전에 훅하고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걸 경험하셨으면서…….”
“그래서 수련을 하려는 거죠. 오늘은 몸이 안 따라 줘서 막지 못했지만 계속하다 보면 막고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늑대인간의 공격을 막지 못해도 맞다 보니 도움이 된 것도 많고요.”
“맞으면서 도움이 된 게 많다고요?”
지윤미 마스터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가 카프리의 수련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설명까지 하며 수련이 된다고 하니 많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보기엔 난 전투에 있어 풋내기로 보일 테니까.
“정령력.”
“……?”
“처음엔 늑대인간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아야 했는데 계속 맞다 보니 정령력이 알아서 움직이며 늑대인간이 공격한 부위에 집중돼서 모였다 사라지길 반복하더라고요.”
“아…… 그건 저절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영주님이 무의식중에 정령력을 움직인 거예요.”
“네. 그래서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마스터님도 알다시피 전 전투 경험이 몇 번 없어서 정령력을 움직이는데 아직 미숙하거든요. 근데 가만히 있다간 죽겠다 싶으니 무의식중에 정령력을 움직였고 피해를 최소화했어요. 버텨만 내면 이보단 좋은 수련법은 없는 것 같아요.”
“흠…….”
“게다가 많이 위험하고 과격해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호사스러운 수련이 또 어디 있나 싶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 두 곳에서 서포터해 주고 엔트 키트까지 퍼부으면서 수련을 한다고 하면 돈을 내면서라도 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아…….”
지윤미 마스터가 마지못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제, 어디서나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녀였기에 훈련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가 내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풀 꺾인 듯했다.
“그럼 전 이만 지원이 형한테 가 볼게요.”
“……네.”
지윤미 마스터와 대화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글루틴 마을에 도착했고 앞서 걸어갔던 장지원 마스터가 보였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두고 길드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쁜 놈들.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내 편을 들지 못할망정 방패 하나 때문에 홀랑 넘어가 버리다니.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젠장!”
보아하니 카프리에게 계속 훈련을 받겠다고 한 얘기를 전해 들었는지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다.
길드원도 같이 안 하겠다고 해야 그도 뭔가 액션을 취할 텐데 계속 훈련을 받겠다고 하니 배신감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이래서 길드원도 데리고 온 거구나.’
난 장지원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혼자 하면 못 버틴다. 그래서 멍청이들 부른 거다.’
‘혼자 하면 못 버틴다고요?’
‘영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단할 거다. 혼자 하면 외롭다. 위로될 거다.’
이제 보니 카프리는 내가 아니라 장지원을 위해서 길드원을 데리고 온 듯했다.
장지원의 성격상 혼자서 수련을 시작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안 한다고 할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는 노력과 끈기 이런 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았고 길드원을 아끼는 사람이었기에 길드원이 계속 수련을 한다고 하면 절대 혼자 안 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프리는 그걸 정확히 간파하고 미리 안배해 둔 듯했다.
“영주 왜 웃냐? 훈련이 부족했나?”
“그럴 리가요. 지원이 형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길드원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닐까 하고 추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눈치 빠른 놈. 맞다. 멍청이 도망 못 가게 하려고 일부러 데리고 온 거다. 멍청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한테 잘해 줬다. 그래서 나도 멍청이가 좋은데 너무 약하다. 저대로 있으면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 그래서 영주를 가르치는 김에 수련을 시키려는 거다.”
“역시 그랬군요.”
“영주도 그렇고 다른 성주들도 그렇고 다시 감당하지 못할 고위 마족이 나타나도 마음만 먹으면 도망칠 수 있다. 그리고 어떡하든 살아 내서 복수하려 할 거다. 한데 멍청이는 그거 안 된다.”
“…….”
“그렇게 허망하게 죽느니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굴려야 한다. 다시는 소중한 이를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아…….”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직설적인 말로 상처를 주긴 하지만 카프리는 확실히 장지원을 좋아하고 아끼고 있었다.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러 남들이 봤을 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말이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라.”
“오늘 하루 수련을 받은 건데 나름 제법 큰 성취를 얻었거든요.”
“당연하지. 보기엔 무식해 보여도 우리 드워프 부족에서 수백 년간 내려온 수련 방법이다.”
“전 그게 궁금해요. 이런 수련 방법이 있는데 카프리 님은 왜…….”
“난 중간에 포기했다.”
“네?”
“힘들어서 포기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수련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대로 있다간 오크들한테 죽을 것 같아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헐…….”
“때론 안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를 하는 것도 현명한 거다. 그때 포기를 해서 난 종족 최고의 장인이 됐으니까.”
“끙…….”
카프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결국 그는 포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까 장지원에게 나약하다며, 정신 상태가 썩었다며 그리 구박하더니 내로남불 드워프였다.
“멍청이한텐 비밀이다.”
“……네.”
카프리는 손을 코에 대며 날 지그시 쳐다봤고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지원이 들어 봤자 좋을 얘기가 아니었기에 비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굳이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피곤할 텐데 쉬어라. 해지면 또 나가야 하니까.”
“네? 어딜?”
“아까 보니 늑대인간의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더만.”
“그렇긴 한데…….”
“늑대인간, 언데드 몬스터 해 지면 더 빨라지고 강해진다. 원래 일주일 정도 몸을 풀고 야간 훈련도 병행하려 했는데 오늘부터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아서 준비하라고 했다.”
“헐…….”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지원이 형한테 얘기해서 그냥 같이 확 엎어 버릴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련을 받는 게 아프고 힘들고 또 고단했지만 그래도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는데 그가 내 기대를 처참히 뭉개 버렸다.
“야간 훈련은 보류해 주세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길드원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야간 훈련까지 하려고 했으면 미리 훈련 계획서를 짜서 공지한 다음에 추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훈련 계획서?”
“네. 훈련 계획서를 짜 놓으면 수련생들이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잖아요.”
“오케이. 알았다. 훈련 계획서는 오늘 바로 짜서 보여 주겠다. 하나 야간 훈련은 진행한다.”
“네?”
“훈련 계획서 작성은 내가 이해할 만한 요청이라 받아들인다. 하나 야간 훈련 취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야간 훈련받기 싫으면 나가라. 안 잡는다.”
얘기가 잘 되는 것 같더니 카프리가 별안간 정색을 해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또 이의를 제기하면 아까 장지원한테 군것처럼 나한테도 한소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