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언데드 학살자 (3)
‘뭐지? 여기에 왜 이런 것이 있는 거지?’
고개를 숙이니 바닥에 수갑에 연결할 수 있는 쇠사슬이 보였다.
한쪽 끝은 보이는데 반대쪽은 보이지 않았다.
짐작건대 땅속에 고정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찰칵! 찰칵!
“…….”
“…….”
카프리가 쇠사슬을 우리 발목에 채워져 있는 수갑에 연결했다.
“오크도 그렇지만, 우리 드워프는 성체가 되어 어느 정도 근력이 붙으면 바로 무기를 들고 사냥을 나간다.”
“그래야겠죠. 제대로 된 농사를 짓지 않았으니 지속해서 사냥해서 먹을 것을 충당해야 했을 테니.”
“그렇다. 우린 농사짓는 방법을 잘 몰라서 험난한 숲을 돌아다니며 매일 사냥을 나가야 했고 자연스레 포식자들과 싸우며 생명을 지켜나갔다.”
“아…….”
“나에겐 퍼거슨처럼 체계적인 훈련 양식은 없다. 하나 그런 게 없어도 더 빨라지고 강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
카프리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등에 메고 있는 주머니에서 수십 개의 물통을 꺼냈다.
주머니 크기보다 상당히 많은 양인 걸 보니 하몽이 만든 아공간 주머니인 듯했다.
“실전. 우리 드워프 전사들은 따로 훈련하지 않는다. 열 번의 훈련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빨리 성장해 주니까.”
주르륵.
“……?!”
“……?!”
카프리가 물통을 꺼내 우리의 몸에 퍼부었다.
‘피?’
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붉은색을 띤 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오는 피였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그리고 이내 수십 아니 백여 마리가 넘어 보이는 늑대와 늑대인간들이 으르렁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카프리, 뭐 하는 거야? 우리 무기도 없단 말이야.”
“남자는 주먹이다. 주먹으로 싸우면 된다. 맨몸으로 늑대인간과 싸우다 보면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몬스터들의 움직임도 더 잘 보일 거다.”
“그럼 이 쇠사슬이라도 풀어 주던가!”
“그 자리에서 싸우라고 묶어 놓은 거다. 탱커는 항상 최선봉에 서야 한다. 화살이 날아왔다고, 마법이 날아왔다는 이유로 피하면 적의 공격은 너희 뒤에 서 있던 동료들이 맞는다.”
“미친!”
장지원의 입에서 거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늑대와 늑대인간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계속 다가오는데 카프리는 우리를 풀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맨몸으로 늑대와 늑대인간을 상대해야 할 듯했다.
‘운디네는 부르면 안 되겠지?’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주위에 언데드 몬스터로 변신을 한 발키리와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있으니 늑대인간의 공격을 받아도 전염되거나 죽는 일은 없을 거다.
게다가 정령 마법을 쓸 수 없지만 난 정령들과 계약하며 여러 번 신체가 개조됐고 SS급에 이르는 정령력을 품고 있었다.
2티어 급 몬스터인 늑대인간은 내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크아앙!”
휘이익.
“컥!”
아프다. 많이 아프다.
‘피할 수가 없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늑대인간의 움직임이 훨씬 빠르고 날랬다.
고작 2티어 몬스터라고 얕볼 게 아니었다.
“카프리, 얼른 이 밧줄 풀어 줘! 이러다 우리 죽겠어!”
“사람 쉽게 안 죽는다. 힐러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친놈아! 힐러들이 대기하고 있으면 뭐 해. 이러다가 머리나 심장 중요 장기가 상하면 단숨에 골로 갈 텐데…….”
“전사라는 놈이 고작 수갑 몇 개 찼다고 늑대인간한테 급소를 내줄 실력이면 그냥 이쯤에서 죽는 게 낫다.”
“제길.”
헌터 생활을 꽤 했던 장지원과 태백산맥 길드원들 역시 무기도 없이 쇠사슬에 묶인 채 늑대인간을 상대하는 건 버거운지 카프리에게 타박하는 말로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드워프의 훈련법은 조금 과격한 게 아니라 완전 미친 훈련법이었다.
“크아앙.”
“으윽.”
목에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동물형 몬스터라서 그런지 늑대인간은 집요하게 목을 노렸고 난 결국 상처를 입었다.
“쯧쯧. 플로라.”
“네, 알겠어요. #$#$#$#$#$#$힐!”
“#$#$$#$#$#$힐.”
발이 묶인 상태에서 늑대인간과 맞닥뜨린 우린 계속 상처를 입었고 언데드 몬스터로 변신한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바로바로 힐 마법으로 치료해 주었다.
“느려. 느려! 그런 식으로 치료 마법을 시전하면 쟤네 다 죽는다.”
“카프리 님, 빨리 영주님의 쇠사슬을 풀어 주세요. 이러다 정말 죽겠어요.”
“너희들이 힐만 제대로 넣으면 안 죽는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한데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저희가 미처 치료하기 전에…….”
“상처가 나고 나서 시전을 하려니까 그렇지. 미리 해라.”
“마법을 어떻게 미리…….”
“계속 보다 보면 눈이 뜨일 거다.”
목에 상처를 입어 피가 흐르는데도 카프리는 훈련을 중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훈련을 중단하자는 플로라의 요청을 묵살하고 그녀들마저 훈련하려 했다.
“크아앙.”
“으윽.”
“크아앙.”“으윽.”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죽어도 열 번은 죽었을 정도로 늑대인간이 파상 공세를 해 대었다.
‘머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깨를 움직이는 거야. 어깨가 움직이면 머리는 자연스레 피해지게 되어 있어.’
위기에 빠져서일까.
고등학교 시절 채 3개월도 다니지 않은 복싱 체육관 관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왼쪽.’
피했다.
‘오른쪽.’
나이스.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야. 상대의 눈을 보지 말고 어깨를 봐. 방어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공격을 할 때도 어깨가 먼저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까.’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처음엔 늑대인간의 팔이 너무 빨라 저걸 어떻게 막고 피하나 싶었는데 자꾸 맞다 보니 조금씩 늑대인간의 움직임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영주가 제법 소질이 있군. 멍청아, 영주 좀 보고 배워라. 칼 밥 먹는 놈이 영주보다 못해서 어디 쓰겠냐?”
열 번에 한 번, 두 번씩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늑대인간의 공격을 피하자 카프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보고 동시에 장지원을 타박했다.
SS급 정령력.
그동안 정령 마법을 시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쓰지 않았던 힘이 조금씩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앙.”
쾅.
“크아앙.”
쾅.
어느 샌가부터 늑대인간이 공격하는 부위에 절로 정령력이 모였다.
그런데 그때,
“크아앙.”
“으으으으으으으윽.”
부들부들.
결국 늑대인간의 팔에 김현규 부마스터의 심장이 꿰뚫렸다.
“발키리!”
“네!”
휘리릭.
휘리릭.
“깨에엥.”
“깨에엥.”
“#$###$#$##힐.”
“#@#$#$#$#@힐.”
상황의 심각함을 알았는지 지켜만 보고 있던 발키리 길드원이 늑대인간을 해치웠고 동시에 플로라 길드원이 김현규에게 힐을 퍼부었다.
‘운디네!’
-응. 알았어.
아쿠아 워터.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김현규에게 날아갔다.
김현규의 부상은 꽤 심각했고 플로라 길드원을 도와 나도 정령력을 퍼부으며 치료 마법을 했다.
“현규야, 괜찮냐?”
“네. 형님. 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휴우. 다행이다. 다행이야.”
“죄송해요. 막는데 정신이 팔리다 보니 마나가 다 소진된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마나가 없으면 헌터들도 일반인과 별다름이 없었다.
마나가 있으면 늑대인간의 공격을 받아도 피부 끝에 상처를 입는 정도로 막아 낼 수 있지만 마나가 없으면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김현규는 그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싸운 모양이었다.
덥석.
“이 개새끼야, 수련을 시켜달라고 했지. 언제 죽여 달라고 했어!”
“마스터님…….”
“지원이 형…….”
김현규의 부상에 놀랐는지 장지원이 거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카프리에게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보이 스카우트 왔어?”
“뭐라고?”
“아님 병영 체험이라도 온 건가?”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그게 할 말이야. 현규가 죽을 뻔했다고!”
“안 죽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선택은 멍청이, 네가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된다.”
장지원에게 욕을 먹고 멱살을 잡힌 상태에서도 카프리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화도 내지 않았고 사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수련을 시켜준다고 하니 하몽처럼 마나 운영법이라고 가르쳐 줄 줄 알았어?”
“…….”
“인생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마라. 지금처럼 살면 너와 태백산맥 길드는 점점 뒤로 밀려날 거다. 아니 영주의 최측근이 아니었다면 넌 애초에 성주조차 되지 못했다.”
“……”
“넌 강해지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불렀지. 다른 길드 마스터처럼 그리고 헌터들처럼 강해져서 스카이 캐슬에서 내 몫을 다하고 싶다고.”
“…….”
“강해지고 싶다면 나한테 와서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고 영주한테 가서 늑대를 나눠 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네 썩어빠진 정신 상태부터 개조해야 한다.”
“…….”
참 나쁜 드워프였다.
쇠사슬에 묶여 늑대인간과 싸울 때보다 장지원의 얼굴이 더 힘들고 아파 보였다.
짐작건대 카프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을 헤집는 것처럼 느껴진 듯했다.
“영주가 위험에 빠졌을 때 방패를 들고 그를 감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켄트 왕국에 머무르는 이들 대부분이 영주를 대신해서 다 자기 한목숨 정도 충분히 희생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으니까.”
“…….”
“하나 힘이 없는 자의 방패는 영주한테 방해만 될 뿐이다. 정말 스카이 캐슬에 그리고 영주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만해. 젠장.”
장지원이 카프리를 멱살을 잡았던 손에 힘을 빼고 등을 돌리고 영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도 알고 있다.
계속 카프리랑 얘기해 봤자 상처를 받는 건 자신이라는 걸.
팩트 폭행범.
아무래도 카프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다.
육체도 육체지만 장지원 마스터의 정신 상태도 뜯어고쳐 주려고.
“멍청이 투 그만하고 싶어?”
카프리가 김현규에게 다가갔다.
장지원과 대화할 때보단 상대적으로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져 있었다.
“멍청이에게도 말했지만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도 된다. 한데 만약 내 수련법을 버티면 그에 걸 맞는 방패를 만들어 주겠다.”
“방패를 만들어 준다고?”
“무구를 갖는데도 자격이 필요한 거다. 한데 지금 너흰 내가 만든 무구를 가질 자격이 없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내라. 그럼 너희가 상상도 하지 못한 무구를 만들어 줄 테니까. 너희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곳에서 단 한 번도 내 실력을 모두 발휘해 무구를 만든 적이 없다. 하나 이번엔 다를 것이다. 너희가 목숨을 바쳐 수련하는 것처럼 나도 내 목숨과 열정을 모두 바쳐서 만들 거니까.”
“헐…….”
“헐…….”
지쳐 쓰러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태백산맥 헌터들이 반쯤 넋을 놓은 얼굴로 카프리를 쳐다봤다.
헌터에게 있어 제대로 된 무구 하나는 또 하나의 목숨과 같았다.
대륙 최고의 장인.
카프리가 목숨과 열정마저 다 바쳐 만든 무구가 얼마나 좋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쁜 드워프라고 생각했던 취소해야 할 것 같다.
교활한 드워프였다.
채찍에 이어서 주는 당근이 너무 달콤했다.
“할게.”
“우리도 버텨 보겠습니다.”
부 마스터와 길드원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래서 길드원도 데리고 온 거였나 보네.’
저들이 저리 나오면 내게 선택의 권한은 없었다.
장지원도 마찬가지였고.
죽으나 사나 계속 이 위험한 수련을 계속해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