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스카이 캐슬 드림 (6)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님과 여기 계신 지휘부 분들의 믿음에 금이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안지현이 나와 마스터 아니 이제 성주가 된 이들을 보면서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녀는 물론이고 함께 이곳에 소환된 기업 관계자들의 얼굴에도 경계심이 사라지고 어느새 미소가 서려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낸다고 장담도 하지 못하면서 정부에 기부해야 하는지 알고 왔다가 우리가 남몰래 몬스터를 막아 내고 또 밀어내며 땅을 넓혀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스릴, 마나석, 석유, 지하수…….
몬스터 웨이브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가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막아 낼 수 있는 막대한 지하지원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봤으니까.
지금 이 시국에 우리와 손을 잡으면 반도체, 핸드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을 벌고 머리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세계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마저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만, 안지현은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전 그쪽을 믿는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
“지현 씨가 저 같으면 S급 마나를 가지고 있는 걸 숨긴 채 영지를 몰래 돌아다닌 사람을 믿을 수 있겠어요?”
“그건 김용규 본부장님과 영주님의 의도를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안지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안지현 실장이 S급 헌터라고요?”
“마나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헌터 등급을 감췄다는 사실을 들킨 것도 모자라 마스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많이 난처한 모양이었다.
“그럼 알려 줄 수 있나요? 그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
“마나는 회사의 도움을 얻어 코어를 모아서…….”
“쯧쯧. 말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마세요. 거짓말하지 마시고요.”
“아닙니다. 정말 코어를 모아서…….”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분이니 코어를 모아서 마나 팔찌에 마나를 충전할 수는 있어요. 하나 마나가 많아진 것만으론 같은 S급 헌터의 이목을 숨길 수는 없어요.”
찌릿.
난 눈에 힘을 주고 안지현을 노려봤다.
보아하니 대부분 기업이 이미 협력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재계 서열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의 관계자들이었고 그 회사들의 자금력이라면 헌터 한 명 정도는 S급으로 만들었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으니 A급 헌터라면 몰라도 같은 S급이거나 그보다 위의 등급인 사람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마나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헌터한테는 힘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가능했지만 같은 등급의 헌터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몰랐다.
그동안은 자신과 같은 등급의 헌터를 만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내가 묻는 건 마나를 어떻게 모은 것인지가 아니라 마나를 숨기고 있는 그 힘 혹은 기술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수련을 통해 최상급 익스퍼트에서 소드 마스터로 각성을 하고 또 계속 수련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힘을 갈무리해서 숨길 수 있습니다. 하나 안지현 실장의 몸 어디에서도 검을 수련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검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제가 못 알아볼 리 없습니다. 굳이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검사라면 걸음걸이에서부터 티가 났을 테니까요.]
퍼거슨이 안지현 실장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걸음걸이요?”
[네.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선 마나의 양과 검술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치기 위해선 스텝도 중요합니다. 린하이님께선 보법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끙…….”
안지현이 퍼거슨의 눈치를 살피며 앓는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검사쪽 기술을 익힌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몽 님?”
[마법사도 아닙니다. 마법사 역시 정상적인 수련을 통해 9클래스가 되면 마나를 갈무리해 숨길 수 있습니다. 하나 안지현 실장의 몸 어디에도 마법을 수련한 흔적이 없습니다. 마법을 수련하다 보면 필수적으로…….]
하몽 역시 안지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검술과 마법을 수련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챙! 챙! 챙!
“움직이지 마세요.”
마스터들이 벨트에서 무기를 꺼내 안지현에게 겨누었다.
“안지현 씨, 똑바로 말하세요. 어떻게 마나를 감춘 거죠?”
“왜들 이러세요. 전 진짜 여러분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S급 아니, 보우 마스터가 되니 알겠더라고요. 지금까지 지구에 알려진 S급 헌터는 대부분 가짜라는 걸. 강력한 상위 몬스터를 잡고 획득한 아이템으로 인한 힘이 강대했을 뿐. 이곳 대륙 인들이 규정하는 S급 헌터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활을 겨눈 채로 지윤미 마스터가 살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을 노려봤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바로 활시위를 놓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전 이곳에서 반신에 이른 존재에게 축복을 받았고 정령이라는 존재와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S급 아니, 보우 마스터가 되었죠.”
“…….”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않은 이상 아니 수련을 해도 퍼거슨 님과 하몽 님처럼 오랜 시간 하지 않은 이상 S급이 되는 방법은 제가 아는 한 한 가지밖에 없어요. 특별한 존재와의 계약.”
“……?!”
“우리와 한편이 되고 싶으면, 아니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존재와 계약한 거라면 얘기를 하세요.”
“하아…….”
안지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퍼거슨과 하몽이 설명을 할 땐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짐작건대 지윤미 마스터의 추측대로 특별한 존재와 계약을 한 모양이었다.
“안지현 실장님.”
“……네.”
“제가 왜 믿지도 않는 사람한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곳의 실체를 보여 드렸는지 알아요?”
“……?!”
“당신이 설사 고위 마족을 소환한 청방과 손을 잡은 스파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제압할 힘을 갖고 있거든요.”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웅.
난 안지현을 보며 마나를 개방했고 마치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폭풍이 온 것처럼 강풍이 휘몰아쳤다.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를 잠재울 정도로 해일도 만들 수 있지만 제 영지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으니 여기까지만 보여 드리죠.”
“……?!”
“전 저희의 자원과 힘을 모두 보여줬어요. 그러니 당신도 숨기지 말고 알려 주세요. 그래야 함께 할 수 있으니.”
“…….”
난 다시 힘을 갈무리하고 안지현을 쳐다봤다.
“지구에 게이트가 생기고 이곳 대륙과의 차원이 연결된 지 이제 고작 5년이에요.”
“……?”
“아이템에 의한 힘. 그리고 특별한 존재와의 계약. 지윤미 마스터님은 확신할 수 있나요? S급 헌터가 되는 방법이 그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
아무런 말 없이 상황을 주시하던 안지현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노려봤다.
“맞아요. 저 S급 헌터예요.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것처럼 특별한 기술도 갖고 있고요. 한데 제힘의 근원을 말해 드릴 수는 없어요.”
“이유가 뭐죠? 떳떳하다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약속했어요. 저한테 힘을 넘겨주고 또 가르침을 주신 분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이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요.”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네요. 힘의 근원을 말할 수는 없지만 스카이 캐슬을 도와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싶은 건 진심이에요. 둘러보니 감옥도 있는 것 같으니 포로로 그곳에 들어갈게요. 그러니 돕게만 해 주세요.”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을 쳐다봤다.
그냥 힘의 근원이 뭔지만 알려 주면 될 텐데 그녀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짐작건대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이쯤 하죠.”
난 마스터들에게 걸어가 무기에 손을 올려 땅으로 내렸다.
그녀가 힘을 숨기고는 있지만, 우리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진심인 듯했다.
“영주님…….”
“말 못 할 사정이 있나 본데 괜한 일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요.”
“괜한 일이 아니에요. 안지현 실장은 이곳의 실체를 모두 보았어요. 만약…….”
“스스로 이곳에 머문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안지현 실장과 안지현 실장의 가족은 물론이고 사촌, 육촌, 팔촌 할 것 없이 다 대한민국 사람이고요.”
“흠…….”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재벌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혼인으로 엮이고 엮여 있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재벌, 정치인, 고위 공무원들의 자제들은 대부분 같은 환경의 사람들과 결혼을 하니까.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이 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기득권으로 살아왔고.
돈 없는 서민들보다 그들은 이 나라를 더 지키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지금처럼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잘 먹고 잘살 테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반기를 들 이유가 없었다.
“퍼거슨, 린드 공주님을 모셔와 주세요.”
“린드 공주님을요?”
“네. 신성력 확인해 보고 반응이 없으면 이 일은 이쯤에서 넘어가는 걸로 하죠.”
난 퍼거슨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흑마법과 같은 마족과 관계된 힘만 아니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아…….”
“……?!”
“……?!”
신성력이라는 말에 안지현이 깊은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눈앞에서 사려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바로 몇 발자국 앞에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형체는 물론이고 마나까지 종적을 감췄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있잖아.
운디네, 노움, 실프, 카샤.
네 명의 친구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내 몸을 감쌌다.
마스터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든 바로 휘두를 수 있게 무기를 곧추세우고 전투 자세를 취했고.
그런데,
-어라? 얘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그치?
실프와 노움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이 서 있던 곳을 쳐다봤다.
‘그 자리에 있다고?’
-응. 마나는 숨겼을지 몰라도 바람을 피할 수는 없어. 확실해.
-나도 느껴져. 분명 저 땅 위에 서 있어.
실프와 노움이 확신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었다.
안지현은 모습을 감춰 놓고도 도망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몽을 쳐다봤다.
“하몽 님, 마법사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요?”
[마법이 아닙니다. 9단계에 투명 마법이 있긴 하지만 저렇게 시동어도 없이 단숨에 자취를 감추지는 못합니다.]
“그럼 엄청나게 빨리 움직여 저희 모두의 이목을 속인 건가요?”
[끙! 분명 마법은 아닌데…….]
[모습을 감추는 게 꼭 마법만 아니 백 마법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몽 님.]
[아…….]
하몽이 무언가 놓치고 있던 게 생각났는지 퍼거슨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크 엘프…….]
“다크 엘프요?”
[아주 오래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다크 엘프들이 저런 기술을 쓰곤 했습니다.]
“하몽 님과는 다른 종족인 건가요?”
[네. 저희와 달리 그들의 뿌리는 오크족처럼 마계입니다.]
“그럼 마족?”
[마계의 종족이니 마족이긴 하지만, 그들은 마왕을 섬기진 않습니다. 그러니 마족보다는 다크 엘프족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겁니다.]
“흠…….”
“인간이 모두 같은 편이 아닌 것처럼 마계의 종족이라고 해도 모두 마왕을 섬기지 않습니다. 근원이 마계인 오크족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처럼요.”
“아…….”
난 하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이제야 왜 안지현이 힘의 근원을 말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힘은 그 원천이 마기였던 모양이다.
난 안지현이 서 있는 곳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들으셨죠. 마계의 힘을 사용해 우리가 오해할 것이 염려되어 말도 못 하고 몸을 숨긴 모양인데 이제 나오세요. 그러고 있으면 더 큰 오해만 쌓이게 됩니다.”
[……?!]
[……?!]
“안 나올 거예요?”
[#$#$#$#$#$#$디텍션!]
펑!
나의 설득에도 안지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하몽이 마법을 쓰고 나서야 강제로 몸을 드러냈다.
“……?!”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안지현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놀라고 당황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고 하몽과 퍼거슨이 했던 대화도 그녀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어떻게 다크 엘프에 대해 아시는 거죠? 스승님 말로는 이 대륙에서 몸을 숨긴지 백년도 넘었다고 하셨는데…….”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하몽과 퍼거슨이 꽤 나이가 많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 대륙이 마족에 의해 잠식된 걸 경험한 산 증인이라는 것도.
“이분들이 동안이라 그렇지. 나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 종족을 이끄는 수장이자 한 왕국의 병사를 총괄했던 기사단장이고도 했고요. 자원과 기술. 그리고 정보 역시 안지현 실장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 그러니 앞으론 혼자 지레짐작하고 숨지 마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죄송해요. 저도 사실 다크 엘프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저 마계의 종족이라는 것밖에. 아니 사실 속으론 의심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스승님께서 마족의 편에 선 존재가 아닐까 하고…….”
“네. 알았어요. 왜 그랬는지 알겠으니 긴장하지 마세요. 그 스승이라는 분이 마계의 인물이라고 해도 지현 씨만 인간의 편에 서 있는 게 확실하면 상관하지 않을 테니.”
“……네.”
안지현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