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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205화 (205/255)

205화. 스카이 캐슬 드림 (5)

-해용아, 안지현이 움직였어.

‘벌써? 헌터들한테 허락 맡았어?’

-아니 그레이 기사단 헌터한테는 막사 안에서 쉰다고 하고 몰래 빠져나갔어. 그러니까 얘기하러 왔지.

‘몰래? 막사를 빠져나가는데도 아무도 눈치 못 챈 거야?’

-얘기했잖아. S급 헌터라고. 최하 하몽과 퍼거슨과 동급이야. 붙어서 싸우면 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마나를 숨기고 있으면 그들이라도 눈치를 채는 게 쉽지 않아. 나니까 알아본 거야.

‘하아…….’

운디네의 설명을 들은 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통제대로 경호원들의 무장을 하지 않아 그나마 마음에 들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S급 헌터인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겠는가.

S급 헌터는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 말은 즉 몬스터를 제외하고 그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전 세계에 열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가 볼 거지?

‘어디로 간지 알아?’

-응. 네가 따라간다고 할 것 같아서 실프한테 부탁하고 왔어.

‘잘했어. 그럼 나 변신 좀 하고.’

난 미리 하몽에게 받아둔 변신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어 다람쥐로 변신했다.

성곽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글루틴 마을은 아직 숲과 나무가 즐비해 있어서 다람쥐로 변신을 하고 미행을 하면 안지현의 이목을 따돌릴 수 있을 듯했다.

처음 토끼로 변신할 때만 해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것도 자꾸 해 보니 이제 동물로 변신해 활동하는 게 꽤 익숙해져 있었다.

-저기야, 저쪽으로 가면 돼.

운디네의 안내를 받아 안지현의 뒤를 쫓으니 진용태를 비롯한 기업 관계자들을 감금한 막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몸놀림을 보니 정신계는 아닌 것 같고 육체계 각성을 한 것 같은데 특성을 모르겠네?

운디네가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을 쳐다봤다.

아직 해가 쨍쨍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보초를 서 있는 헌터들의 눈을 피해 진용태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리면서도 빨랐고 소리가 없었다.

“용태야.”

“누나…….”

막사 안에 감금되어 처량하게 쭈그려 앉아 있던 진용태가 안지현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무례하고 싸가지 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이제 보니 경호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접촉이 있었는지 진용태의 얼굴과 몸에도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게, 내가 그만하라고 했을 때 그만했어야지. 왜 고집을 부려서 이런 꼴을 당해.”

“몰랐지. 나는. 나는 누나가 대본대로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

“에휴. 그런 것 같더라. 미안해. 나도 눈치가 보여서 대놓고 신호를 보내지 못했어.”

토닥토닥.

안지현이 마치 어린 친동생을 달래듯 진용태를 안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야. 내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건데 뭐. 누나는 이제 밖으로 나갈 거지?”

“모르겠어.”

“엥? 모르겠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빨리 밖으로 나가서 어른들한테 알려야지. 이대로 있으면 저놈들한테 헌터들을 다 뺏기잖아.”

“내가 나가서 알린다 해도 막을 수 없을 거야.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스카이 캐슬의 헌터들 너무 강해.”

“그건 나도 봐서 아는데 아까는 누나가 실력을 감춰서 그런 거잖아. 누나한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될걸?”

“그게 그렇지 않아. 안해용 영주도 그렇고 엘프도 그렇고 이계 사람도 그렇고 나보다 강한 사람이 최하 다섯 명은 넘어. 그리고 마스터들 역시 일대일로는 내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둘 이상 힘을 합쳐서 덤비면 이기리라고 장담을 못 해. 그래서 아까도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야.”

안지현이 진용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재벌들의 수장이 성진 그룹이 아니라 대박 그룹인 듯했다. 그리고 헌터들을 이끄는 사람 역시 안지현이었고.

“헐!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 이대로 헌터들을 잃으면 분명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재산까지 다 나라에 귀속시키려 할 텐데…….”

진용태가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지현을 쳐다봤다.

‘재산을 귀속시킨다고?’

근데 대화를 엿듣다 보니 내용이 이상했다.

진용태와 안지현은 마치 우리가 강제로 재산이라도 뺏을 것처럼 단정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삥을 뜯을 생각을 하긴 했지만 켄트 왕국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기업들 입장에서도 완전 손해 보는 장사만은 아니었다.

미스릴, 마나석, 엔트 키트, 성수, 카프리가 만든 무구들과 아이템, 버프 음식들 그리고 비토섬의 석유와 지하수.

이곳에 들어와 공사하고 개발하는 대신 나도 그에 합당한 물품을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공사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저들도 현금보다는 당장 몬스터를 처치하고 막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서로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수 있었다.

이래서 내가 불러서 대화하려고 한 건데 저들이 오해하고 너무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 이 사달이 난 듯했다.

둘의 대화만 들으면 나만 완전 나쁜 놈이 인 것 같았다.

“저기요. 지현 씨.”

“헐…….”

“헐…….”

내가 변신을 풀고 나타나자 진용태와 안지현이 반쯤 넋이 나가 입을 쩍 벌리며 날 쳐다봤다.

“영주님께서 여길 어떻게…….”

“잊으셨나 본데 여긴 제 영지입니다. 그리고 지현 씨는 지금 저희 헌터들의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이동을 하셨고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쪽인 것 같은데요?”

“끙…….”

안지현이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변신 조종 반지의 존재를 몰라 이 상황이 아주 당황스럽고 놀란 얼굴이었다.

“뭐 그 얘기는 차차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따라들 오세요. 보여 줄 게 있으니.”

“……네.”

“……네.”

난 진용태와 안지현을 데리고 스카이 캐슬 본성으로 이동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채취한 막대한 미스릴과 마나 석이 쌓여 있는 창고로.

“이것들이 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죠? 그리고 현재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네.”

“……네. 정말 놀랍네요. 스카이 캐슬에 미스릴 광석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일부러 밖에 풀지 않았습니다. 언데드 몬스터과 싸우려면 미스릴이 필수로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혹여나 미스릴의 매장량이 풍부한걸 알면 강대국의 침입을 받을 수 있고요. 아니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미국과 일본의 헌터 협회에서 기습한 적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곳을 쳐들어왔었다고요? 몇 명이나?”

“한 이천 명쯤 됐을 겁니다.”

“헐…… 그걸 막아 내신 건가요?”

“네. 막아 냈으니 저희가 아직도 여길 차지하고 있겠죠?”

“휴우. 다행이네요.”

안지현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마치 깡패처럼 여기고 경계를 하더니 외국의 침입을 받았었다고 하니 순간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여기는 이쯤 하면 됐고. 다른 데로 가죠.”

“네.”

“네.”

난 진용태와 안지현을 비토섬으로 데리고 갔다.

눈에 보이는 표면에 석유가 있는 공사 현장으로.

“설마 이거 석유인가요?”

“네. 석유입니다. 이곳 역시 외부에 알려지면 침공의 위협이 있어 제대로 된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꽤 많은 석유가 내장되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로 가면 마나를 잔뜩 머금고 있어 건강을 지켜 줄 수 있는 지하수도 있고요.”

“헐…….”

“헐…….”

“그리고 얼마 전에 성수도 확보했습니다. 저흰 재벌들의 재산을 뺏을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자원도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은데 뭐 하러 그런 짓을 벌이겠습니까?”

“아…….”

“아…….”

진용태와 안지현이 반쯤 아니 완전 넋을 놓고 날 가만히 쳐다봤다.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다.

스카이 캐슬 곳곳에 있는 자원을 본 그들은 이제야 자신들이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럼 총수들을 소환한 이유가 이곳의 자원을 캐내기 위해서였나요?”

“네. 그런 것도 있고 글루틴 마을이 있는 대륙에 1억 명이 먹을 수 있는 농사를 지을 생각입니다. 러시아 얘기를 들었으면 알겠지만 대한민국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상황을 열어놓고 그에 대해 대비를 하려는 겁니다.”

“아…….”

“저흰 그런 것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꾸벅.

안지현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왔다.

“말이 나온 김에 묻죠. 왜 그런 터무니없는 오해한 건가요?”

“저희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곳의 사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동안의 역사가, 그리고 현재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몬스터 웨이브를 핑계로 기업의 재산을 강제로 국가에 귀속시키고 있거든요.”

“그거야 나라가 위태로우니…….”

“네. 맞아요. 나라가 위태로우니 그럴 수 있어요. 근데 대부분 몬스터 웨이브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할뿐더러 기업에서 빼앗은 재산을 몬스터 웨이브가 아닌 권력을 잡은 권력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우를 여럿 봤거든요. 그래서 저희로서는 설사 정부와 트러블이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재산과 목숨을 지킬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 그 말은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주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저희도 이곳에서 이렇게 몬스터들과 싸우며 땅을 넓혀 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자진해서 도왔을 거예요.”

“누나 말이 맞아요. 일부 망나니 같은 재벌들 때문에 우리 모두 깡그리 묶여서 욕을 먹을 때가 많아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지만, 나라를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재벌들은 많아요.”

진용태와 안지현이 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어른들을 부를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대부분 기업이 모두 지현이 누나가 다 컨트롤하고 있거든요.”

“지현 씨가요?”

“네. 부족하지만 헌터들을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기업들을 컨트롤하고 있어요. 장사꾼이니 장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지 못하면 어차피 미래는 없으니까요.”

“안 그래도 상황이 번거롭게 돼서 피곤했었는데 잘됐네요. 그럼 지현 씨에게 켄트 왕국을 개발하는 전권을 맡길 테니 수고 좀 해 주세요. 아 그리고 헌터들을 이곳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네, 알겠어요.”

안지현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업 관계자들이 김용규 본부장의 소환장을 색안경을 끼고 본 것처럼 나도 색안경을 끼고 재벌들을 쳐다본 모양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해 식량 확보를 한다는 말에 기업들의 대표인 안지현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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