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스카이 캐슬 드림 (4)
“제 영지에서 무기를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스카이 캐슬에 소속된 헌터들과 그리고 동맹을 맺은 대한민국 재난 관리 본부와 대한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 뿐입니다.”
“영주님…….”
내가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기업 관계자들을 쳐다보자 김용규 본부장이 죄라도 지은 사람같이 내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김용규 본부장이 저들의 무기 착용을 허락한 모양이었다.
난 그에게 분명히 말했다.
이곳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공권력이 아닌 다른 단체가 무력을 갖게 하지 않을 거라고.
“성태 씨.”
“네. 영주님.”
“무기를 압수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척! 척! 척!
내 지시와 함께 글루틴성의 방어를 맡은 그레이 기사단이 기업 소속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뭐죠?”
“죄송하지만 무기를 반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VIP의 안전을 위해서 그럴 수 없다고?”
“안전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곳은 지구의 그 어떤 도시보다 더 안전한 곳이니까요.”
그레이 기사단 헌터들이 정중하게 무기 양도를 권유했다.
그런데,
“그건 너희들 생각이고! 우리가 안심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리고 몬스터는 둘째 치고 너희를 어떻게 믿고 무기를 내놓으라는 거야!”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있던 젊은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와 막말하며 그레이 기사단에 삿대질해 대었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 반면 꽤 비싸 보이는 양복과 구두를 착용한 걸 보아하니 비서진은 아니고 후계자쯤 되는 듯했다.
“요즘도 저런 재벌들이 있네요? 클로버 배지면 성진 그룹인가요?”
“네. 맞습니다. 성진전자 사장 아들 진용태입니다.”
“흠…….”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진용태를 쳐다봤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성진 그룹.
반도체와 핸드폰 제조 및 판매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알려진 회사였다.
재벌들의 삶과 경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알 만큼 대단한 회사의 자제였다.
그 정도 위치쯤 되면 대한민국의 병력을 총괄하고 있는 김용규 본부장의 초청을 받고 온 이 자리에서 행패를 부려 봤자 이득이 될 게 없을 걸 알 텐데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진용태와 그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의 얼굴을 보아하니 압수를 강행하면 무력 사용까지 불사할 듯한 기세였다.
“용태야, 왜 그래.”
“내가 뭘? 내가 틀린 말 했어? 가뜩이나 시국이 어수선한 와중에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들인 저의가 의심스럽잖아. 막말로 우리를 포로로 잡아 놓고 회사를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김용규 본부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겪으며 충분히 증명하셨잖아.”
진용태의 태도가 불안했던 것일까?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나와 우리를 대신해 진용태를 설득하려 했다.
“저 아가씨는 대박 텔레콤 후계자인가 보네요?”
“네. 맞습니다. 안진상 회장의 첫째 딸 안지현입니다.”
“역시 맞네요. 뉴스에서 얼핏 봤는데 실제로 보니 더 야무진 사람 같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안지현을 바라봤다.
진용태의 경호원들과 달리 그녀의 경호원들은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짐작건대 게이트를 통과하며 이미 무기를 반납한 모양이었다. 그도 아니면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우리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진용태와 달리 안지현은 일단 대화해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는 재벌 3세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입대해 군 복무까지 한 거로 알고 있다.
재계 서열 3위 대박 그룹.
지구에 있을 때 핸드폰은 물론이고 인터넷도 모두 대박 텔레콤을 이용할 정도로 대박 그룹이라면 나도 참 좋아하는 그룹이었고 우리의 통제를 따라 주니 더 좋게 보였다.
하나,
‘다들 진용태 쪽을 따르는 건가?’
그녀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기업 관계자들 대부분 진용태의 눈치를 살필 뿐 무기를 반납하려 하지 않았다.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김용규 본부장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이들은 이미 모두 법 위에 존재하는 자들인 듯했다.
그러니 공격력 앞에서도 무기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일 테니까.
“재미있네요. 혹시 경호원들을 믿고 그렇게 까부는 건가요?”
“까부는 건가요? 이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그쪽은 제가 누군지 알고 새끼라고 하나요? 지금 한 말을 감당 할 수 있겠어요?”
난 미소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진용태를 쳐다봤다.
얼핏 봐도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데 욕을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다들 A급인가 보네요. 이러라고 마나 팔찌를 시중에 내 놓은 게 아닌데…….”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레이 기사단을 쳐다봤다.
“뭐 하고들 계세요? 전 분명 무기를 압수하라고 한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바로 압수하겠습니다.”
챙! 챙! 챙!
“뭐야! 지금 우리랑 해 보겠다는…… 컥.”
“해 보긴 뭘 해 봐? 너희가 우리랑 상대할 깜냥이 되는 것 같아?”
휘이익!
퍽!
“컥!”
다시 한번 내 의지를 확인한 그레이 기사단은 창을 뽑아 성진 그룹 경호원들을 향해 거침없이 휘둘렀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뭐 하고들 있어! 어서 도와주지 않고.”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일까?
경호원들이 두들겨 맞는 걸 보면서도 진용태는 언성을 높이며 등을 떠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기습을 당해서 그렇지. 자신의 경호원들이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A급 헌터 오십여 명.
대한민국 1위에 세계적인 기업이어서 그런지 성진 그룹 경호원들이 차고 있는 마나 팔찌엔 마나가 가득했고 그 힘을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
“마나가.”
“컥.”
“많고 짙다고.”
“컥.”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야.”
“컥.”
“마나도 중요하긴 하지만 검술과 창술도 중요하거든.”
“컥.”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히면 적의 힘조차 이용해서 반격을 할 수 있거든.”
“컥.”
그레이 기사단이 마음먹고 움직이자 성진 그룹 경호원들은 제대로 검 한번 섞어 보지 못하고 하나둘씩 자리에 쓰러졌다.
“죽이지는 마세요.”
“네. 영주님.”
“죽지 않을 정도로 패는 것까진 허락하죠.”
“네. 영주님.”
난 빙그레 웃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No.1 아레스
그레이 기사단은 아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이었고 퍼거슨에게 가르침까지 받은 지금은 그때보다 움직임이 더 부드럽고 간결했다.
게다가 대부분 2m가 넘는 창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데도 전투가 아니라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때론 빙글빙글 돌면서 멋있고 화려한 움직임까지 보여 줬다.
“영주님, 진용태가 좀 까칠하긴 해도 여기까지 와서 저리 안하무인으로 굴만큼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보아하니 기 싸움에 밀리지 말라고 지시를 받고 온 모양인데 이런 식으로 대처를 하면 성진 그룹과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성진 그룹의 주력 사업은 반도체와 전자 제품이잖아요. 당장 영지를 개발하는 데 있어 급한 부분도 아니고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다른 기업을 통해서 수급하면 되니 배제해도 될 것 같네요.”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김용규의 얼굴에 걱정이 어리기 시작했지만 난 괘념치 않았다.
통신과 건설, 중공업과 관련된 기업이라면 나도 한발 양보하겠지만 성진 그룹은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참을 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게 없었다.
게다가 저들이 기 싸움을 걸어온 것이라면 확실하게 눌러줄 필요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얘기하죠. 재난 관리 본부와 대한 헌터 협회 소속이 아닌 자는 이곳에서 아니 앞으론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도 무기를 착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 반납하세요. 좋은 말로 할 때.”
난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성진 그룹 경호원들을 처리하면 이제 그들 차례였다.
만약 그때까지도 계속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면 저들도 성진 그룹 경호원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뭘 망설이는 거예요? 지금 우리 경호원들 맞는 거 안 보여요? 이 모습을 보고도 무기를 내려놓은 걸 아버지가 알면 가만히 계실 것 같아요?”
“끙…….”
“끙…….”
경호원들이 쓰러진 걸 보면서 진용태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질렀고 기업 관계자들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레이 기사단의 압도적인 무력도 무섭지만 성진 그룹이라는 이름도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발키리 전투 준비!”
“네!”
“삼 초 드릴게요. 만약 삼 초가 지났는데도 무기를 들고 있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모두 사살합니다.”
소식을 듣고 왔는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달려와 경호원들을 포위하고 화살을 조준했다.
“…….”
“…….”
빈말이 아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삼 초가 지났는데도 무기를 들고 있으면 정말 죽이기라도 할 기세였다.
내가 아는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명령이 내려지면 이유 불문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윤미 마스터와 박민정 부마스터, 그리고 수정이 역시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려놓으세요.”
“……우리도 내려놓죠.”
척. 척.
발키리 길드 헌터들의 기세에 눌린 것일까.
기업 관계자들이 경호원들을 보며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고 그때서야 모두 싸울 마음이 없다는 듯 손을 펴고 하늘로 향하며 항복 의사를 전해 왔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영주님.”
“본부장님과 제 앞에서도 이러는데 밖에선 어떻게 하고 있을지 안 봐도 뻔하네요. 마녀 부대와 함께 지구에 가서 기업에 속해 있는 헌터들을 모두 잡아 오세요. 반항하면 죽여도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지윤미 마스터가 김용규 본부장을 쳐다봤다. 그에게도 동의를 얻는 얼굴이었다.
“이아영 마스터와 함께 가세요. 얘기해 놓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군인들도 투입할 수 있게 합창 의장에게도 말해 놓죠.”
“감사합니다.”
김용규 본부장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뜻을 따라줬다.
그도 아는 것이다.
아무리 몬스터를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라 하지만 공권력을 제외한 세력이 무력을 갖는 건 언제든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된다는 걸.
“김용규 본부장님. 안지현 씨만 빼고 이들을 모두 감금하세요. 그리고 소환장을 다시 보내세요. 그래야 제대로 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네, 알겠습니다.”
“뒷정리를 부탁할게요. 전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네요.”
“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가급적 대화로 일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무력을 선보여 나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그때,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
-저 인간 여자 S급이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박 그룹 후계자 안지현을 쳐다봤다.
‘S급이라고? 난 마나를 하나도 못 느꼈는데?’
-그래서 나도 속을 뻔했는데 확실히 S급 맞아. 그것도 마나를 감출 수 있을 정도로 꽤 높은 수양을 했거나 그도 아니면 특별한 기술을 배운 것 같아.
‘이런…….’
난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그녀가 S급이라면 S급이 분명했고 S급이면 나는 물론이고 마스터들에게조차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각성을 하기 전까지 한국엔 S급 헌터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동안 계속 힘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따라가서 내가 감시할까?
‘어. 부탁할게.’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