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03화 (203/255)

203화. 스카이 캐슬 드림 (3)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러시아가 얼음의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원래 추운 나라 아닌가요? 그게 왜 큰일이죠?”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본부장을 쳐다봤다.

급히도 뛰어왔는지 그의 얼굴엔 땀이 흥건했다.

재벌 총수들에게 소집령을 내리라고 보냈더니 뜬금없이 얼음 타령을 하고 있었다.

“그게 자연적으로 추워진 게 아니라 코드 네임 얼음 여왕이라 불리는 10티어 급 몬스터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얼음 여왕이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와 임풍훈 팀장을 쳐다봤다.

‘……북쪽을 다스리는 얼음 여왕님까지 해서 총 세 분이 계십니다.’

얼음 여왕이라는 이름은 뱀파이어 로드 브레드의 입을 통해 들은 마족 아닌 마왕이었다. 같은 존재가 아닐 수가 있겠으나 10티어로 분류됐다면 마왕일 가능성이 컸다.

“얼마나 강하기에 10티어로 분류된 거죠? 일본에 등장했다는 9티어 급 몬스터 리치보다 더 강한가요?”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7티어 급 몬스터를 수하로 데리고 다니는 리치도 강하지만 그놈은 눈앞에 있는 생명체만 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음 여왕은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러시아 전체를 북극처럼 빙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나라 전체를요?”

“네. 얼음 여왕이 등장함과 동시에 러시아의 평균 온도가 영하 50도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영하 70도까지도 떨어지고요. 이대로 있으면 러시아는 멸망입니다.”

임풍훈 팀장이 비장한 표정을 김용규 대신 러시아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멸망이라…….’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다고 계속 보고가 들어오고 염려스러운 말을 하긴 했지만 재난 관리 소속 헌터가 멸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건 처음이었다.

상황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심각하긴 했는데 그것보다 더 위험해진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육을 먹고 인간을 전염시키는 언데드 몬스터도 무섭지만, 온도를 영하 50도까지 떨어뜨리는 건 더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혹시 얼음 여왕의 생김새가 젊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얼음 여왕 근처에 시녀 복장을 한 십 여명의 여자들이 함께하고 있고요?]

“네, 그렇습니다.”

대전으로 들어온 하몽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임풍훈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듣지도 않았는데 얼음 여왕의 생김새와 수하들을 아는 걸 보니 내 짐작대로 마왕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몽 님 마왕이 맞습니까?”

[일단 생김새와 패턴이 마왕과 동일합니다. 이곳에서도 얼음 여왕이 저 광활한 북쪽 대지를 모두 얼음으로 뒤덮으며 등장했었습니다.]

“끙…….”

마왕의 출현.

난 앓는 소리를 내며 하몽을 쳐다봤다. 짐작은 했지만, 내심 아니길 바랐는데 결국 우려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임풍훈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농사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면 뭐 하겠는가.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면 말짱 도루묵인 것을.

그 정도 온도면 아마 바닷물도 얼 것이다.

“도와야 하는 건가?”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육지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얼음 여왕이 대한민국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우리도 무사하지 못할 게 자명했다.

어차피 싸워야 하는 거라면 대한민국이 아닌 남의 땅에서 싸우는 게 나을 듯했다.

그래야 전투 중에 생기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지원을 가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세계 헌터 협회에서 지원 요청이 오긴 왔습니다.”

임풍훈 팀장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불가합니다. 지금 우리 전력으론 얼음 여왕을 상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몽과 퍼거슨이 정색을 하며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저도 알아요. 근데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는 것 같네요. 이대로 멍하니 있다고 우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차원을 넘어가 한 대륙을 얼음으로 뒤덮을 정도로 마나를 썼다면 당분간 운신하는데 제약이 있을 테니까요. 이곳에서도 그랬습니다. 북쪽 대지를 모두 얼음으로 뒤덮고 얼음 여왕은 한동안 몸을 숨겼었습니다.]

“아! 그래서 얼음 여왕이 사라진 건가?”

임풍훈이 손가락을 튕기며 하몽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얼음 여왕이 사라졌다고요?”

“네. 얼음의 나라가 된 이후로 게이트를 통해 눈사람, 설인, 아이스 타이거, 아이스 골렘과 같은 냉기형 몬스터들과 맹수들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얼음 여왕은 자취를 감췄다고 했습니다.”

“휴우! 불행 중 다행이네요.”

임풍훈의 설명을 들은 난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 싸워야 할 상대라면 힘이 약해졌을 때 쳐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몽 님 당분간 운신의 제약이 있다고 했는데 차라리 이참에 힘을 합쳐 함께 쳐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아무리 막대한 마나를 소모했다 해도 마왕은 마왕입니다.]

하몽과 퍼거슨이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계는 철저하게 힘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얼음 여왕과 발록, 데몬 그 세 존재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이고요.]

[하몽 님의 말이 맞습니다. 얼음 여왕이라면 지금 있는 힘만으로도 뱀파이어 로드와 리치 같은 상위 마족조차 가볍게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아…….”

하몽과 퍼거슨의 설명에 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뱀파이어 로드 브레드 백작.

그의 티어를 측정한다면 아마 9티어 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그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만약 린드 공주의 신성력과 에르메스의 검이 아니었다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건 그가 아니라 우리가 됐을 테니까.

상성이 좋아 이겨 낸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딱!

“상성?”

[네?]

[네?]

난 손가락을 튕기며 하몽과 퍼거슨을 쳐다봤다.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며 나타났던 브레드는 신성력에 노출돼 물먹은 솜처럼 몸이 축 처져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얼음 여왕도 상성에 맞지 않는 힘을 모아 공격을 하면 먹히지 않을까 싶었다.

“언데드 몬스터인 브레드가 신성력에 취약한 것처럼 얼음 여왕도 불에 약하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얼음 여왕도 그렇고 수하들도 그렇고 불속성 마나에 약합니다.]

내 추론이 맞았다는 듯 하몽이 고개를 위아래를 움직였다.

[하나, 꽝꽝 언 얼음을 성냥불로 녹이는 건 한계가 있지요.]

“아…….”

[얼음 여왕을 해치우려면 미티어 스트라이크 백 번은 쏴야 할 겁니다. 한데 지금 우리에겐 단숨에 미티어 스트라이크 백번을 쏠 마법사도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그 전에 얼음 여왕의 공격에 얼어 버리고 말 겁니다.]

“흠…….”

나쁘지 않았다.

하몽과 퍼거슨은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꽤 희망적인 말이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100방 난사.

상대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게 했던 존재인데 일단 공략법이 생기지 않았는가.

“불에 약하면 거대한 화염 방사기를 만들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며 이미 경험하셨을 텐데요? 마계의 존재들에게 마나가 담기지 않은 공격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얼음 여왕과 얼음형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불속성은 물론이고 그 안에 마나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아…….”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임풍훈 팀장이 나름 아이디어를 냈다가 하몽의 말을 듣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지원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니 얼음 여왕을 해치울 수 없다면 가 봤자 의미가 없었다.

“지원 가겠다는 말은 철회하죠. 하나 준비는 해야 할 겁니다.”

[네. 물론이죠. 얼음 여왕이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해서 만전의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하몽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원 간다는 말에 정색한 것도 무색하게 방어를 하는 데는 나름 자신 있어 하는 얼굴이었다.

짐작건대 내 안위가 걱정되어 가지 못 하게 하려고 일부러 더 겁을 준 듯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 하더니 방어하는 거는 자신이 있나 보네요?”

[공격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처음엔 몰라서 당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마족에게 핍박 받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 온 덕분에 이제 어느 정도 저들의 습성을 알고 있습니다.]

“흠…….”

[지금 당장은 마법사들의 성취가 낮아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몇 번 쏘지 못하지만, 카프리 님의 도움을 받아 마법진을 설치하면 수십 번까지는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백방 이상도 가능하고요.]

[네. 맞습니다. 저희에게 시간을 주십쇼. 영주님께서 지구인들과 이곳을 개척하고 개발하는 동안 저희는 마법진을 만들고 마법 공격을 증폭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고 찾아 놓겠습니다.]

하몽과 퍼거슨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용규 본부장님. 이쯤 하면 우리의 뜻은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더 다른 말이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세계 헌터 협회 쪽은 제가 알아서 적당히 지원하는 척하며 처리하겠습니다. 임 팀장. 가지.”

“네. 알겠습니다.”

김용규 본부장과 임풍훈 팀장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내게 고개를 숙이며 하몽과 퍼거슨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들도 이제는 국제 외교를 들먹이며 곤란해질 수 있다는 말 등을 하며 지원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들도 이제 깨달은 것이다.

얼음 나라로 변한 러시아가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를 걱정하기보다는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주력해야 할 일은 재벌 총수들을 설득해 몬스터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영주님, 재벌 총수들이 도착했습니다.”

“저들이 총수라고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본부장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정도 되는 회사의 총수라면 적어도 나이가 40대 이상은 됐을 텐데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게 총수의 권한을 위임받은 후계자들이랑 사장단이 온 기업들도 있습니다.”

“흠…….”

“서울 아니 지구도 아닌 이곳 대륙까지 오기엔 연로한 총수들이 많습니다. 나름 저들도 우리의 초청장에 성의를 다하는 것 같으니 못마땅하셔도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부른 건 총수들이었다.

강줄기를 열고 확장해서 물길을 트고 산업시설을 만들며 켄트 왕국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려면 조 단위 아니 수십조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기업들에게 일임하려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지시하는 일을 행하기엔 다들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누가 보면 우리가 잡아먹기라도 하려는지 알겠네요?”

“죄송합니다. 안전에 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던전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다들 필요 이상으로 경호 인원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다들 적게는 십여 명에 많게는 수십여 명에 이르는 헌터들을 이끌고 왔다.

비서진들이야 그렇다 치고 무기를 찬 헌터들이 잔뜩 날이 서서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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