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스카이 캐슬 드림 (2)
“왜 그렇게 웃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기업 총수들을 소환하라는 말에 그의 얼굴이 너무 싱글벙글 이었다. 아니 왠지 웃음 속에서 사악함마저 느껴졌다.
“좋아서. 평생을 개처럼 일한 우리도 여기서 목숨 바쳐 몬스터랑 싸우고 있는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며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고 살아온 그놈들은 밖에서 호의호식하는 게 꼴 보기 싫었거든.”
“나도.”
“응?”
“나도. 너랑 같은 마음이라고.”
씨익.
이세훈의 대답을 들은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가 아웃 소싱 회사에서 십오 년을 일했던 이세훈.
군대를 제대하고 십오 년 동안 협력 업체를 떠돌았던 나.
이세훈이나 나나 살아온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세훈처럼 나도 재벌들에 대해 약 오르는 마음이 있는 건 당연했다.
막말로 마왕과 마족들로 인해 지구에 그리고 대한민국에 위협이 있으면 나 같은 소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이 앞장서서 싸우는 게 맞았다. 이능이 없으면 금전적으로나마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쳤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열 받네.”
“응?”
“김용규 본부장 말 들어보니까 어지간한 나라는 전부 다 바리케이드 뚫려서 도심 속에도 몬스터 천지라며?”
“그렇다고 하더라. 언데드 몬스터랑 뱀파이어도 문제지만, 동물형 몬스터랑 공중형 몬스터 처리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가 봐. 그래서 언젠가부터 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됐어.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다 비상용으로 구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각성자들이 순식간에 강도로 변하는 일도 허다하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당연히 괜찮지. 우리가 여기서 다 막아 내고 있잖아.”
“그런데도 입을 싹 닫고 있다? 아주 괘씸한 놈들이네.”
이세훈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막대한 재력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그 혜택을 받고 살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는 못할망정 여기서 대신 싸워 주고 있는데도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으니 이처럼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일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참에 그동안 받지 못한 보호비와 앞으로의 보호비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눠 봐야 할 듯싶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아까 네가 말한 뉘앙스를 보니 공사 참여를 하면 그에 걸맞은 이익을 나눠 주려고 했나 본데. 사실 그럴 필요도 없어. 우리가 이렇게 여기서 자리를 잡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큰 이익을 보고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거 생각을 좀 달리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직접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손해를 보면 안 되겠지만 굳이 회사에까지 이익을 챙겨줄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치? 그럼 일단 김용규 본부장 데리고 올 테니까 얘기 좀 나눠 보자. 본부장님한테는 우리 뜻을 먼저 알려야 하잖아.”
“그래.”
난 이세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내,
“해용아, 본부장님. 모셔왔다.”
이세훈이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본부장을 데리고 왔는데 우리와 달리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얼굴색이 안 좋으시네요?”
“정말 모르셔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김용규가 어이없다는 듯 날 노려봤다.
“혹시 저 때문에 아픈 건가요?”
“아픈 게 아니라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이세훈 팀장한테 듣자 하니 재벌 총수들을 불러 영지 개발을 시키고 보호비도 상납 받으려 하나 본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김용규가 마치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쉬운 게 아니라고요? 그냥 소환해서 공사도 좀 하고 돈 좀 달라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말은 쉬운데 소환을 해도 오지 않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본부장님이 소환하는데도 오지 않는다고요?”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아무리 우리가 이곳에서 몬스터를 막아 주고 있다 하나 지금 전 세계는 전시 체제로 운영을 할 정도로 국가 비상 상태였다.
그리고 김용규 본부장은 병권을 쥐고 있는 최고 실력자였고.
그의 소환을 불응할 수도 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공권력보다 헌터들이 그 위에 서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스카이 캐슬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헌터 집단을 가진 세력이 바로 재벌들입니다.”
“재벌들이 헌터 집단을 갖고 있다고요? 개인 사병이라도 양성했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대기업에 고용되어 용병으로 근무하는 헌터만 족히 수만은 될 겁니다.”
“수만이라…… 많기는 많네요. 그럼 그들은 나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고용된 기업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네요.”
“네. 바로 보셨습니다. 영주님이 스카이 캐슬을 지키기 위해 헌터들을 모집했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재산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헌터들을 고용한 것이라 저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해서 대기업에서 헌터들을 양성하는 걸 은밀히 권유까지 했었지요. 혹시나 스카이 캐슬과 헌터 협회에서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 웨이브가 생겼을 때 그들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힘이 될 테니까요.”
김용규 본부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보니 그동안 나랑만 푸닥거리를 한 줄 알았더니 재벌들과도 꽤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이리저리 치이며 지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결정엔 모두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냄과 동시에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깔려 있었다.
“역시 본부장님답네요.”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기는요. 본부장님 마음이 제 마음인 것을. 근데 본부장님을 이해하는 거지. 저들을 이해하는 건 아니에요.”
“네?”
“어차피 우리가 이곳을 틀어막고 있는 이상 저들이 몬스터의 위협에 대비해서 헌터들을 양성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공권력조차 무시할 정도의 힘이 있는 세력이 대한민국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김용규 본부장님과 이아영 마스터를 도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헌터 협회 회원으로서 저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겠어요.”
“헐…….”
나의 다짐하는 말에 김용규 본부장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영주님께서 언제부터 그렇게 협회 일에 사명감을 가지셨다고…….”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본부장님을 도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리고 제가 말로는 조금 삐딱선을 타긴 했지만, 그동안에도 나름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게 얘기하시면 제가 조금 서운할 것 같은데요?”
“죄,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김용규 본부장이 얼굴이 잔뜩 붉어져 내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을 말했으면서도 내가 서운해하자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뭐 우리 사이에 그렇게까지 사과를 할 필요는 없고요. 일단 재벌 총수들에게 재난 관리 본부 이름으로 소집령을 내려 주세요.”
“영주님의 뜻이 그렇다면 보내긴 하겠지만 만약 오지 않으면…….”
“대화하자는데 자리마저 참석하지 않으면 저로서는 방법이 없죠. 액션을 취할 수밖에요.”
“액션이라 하면…….”
“아시잖아요. 우리 지휘관들 스타일?”
난 빙그레 웃으며 저 멀리서 훈련을 하고 있는 발키리 길드 헌터들을 쳐다봤다.
* * *
“임 팀장, 팀원들을 모두 소집하게.”
“네, 알겠습니다.”
안해용 영주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김용규 본부장은 재난 관리 본부 소속 직원들을 전부 소집 시켰다.
‘어떡해서든. 총수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김용규 본부장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가 그동안 지켜본 안해용 영주는 평소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지만 스카이 캐슬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잔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스카이 캐슬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 모두 그의 명령이라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이행할 자들이었고.
만약 재벌 총수들이 소환에 불응한다면 어떤 사단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안해용 영주님께서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켄트 왕국을 개발함과 동시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헌터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길 원한다. 그리고 만약 그걸 거절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올 계획이시고.”
“본부장님께서도 동의하신 겁니까?”
“재벌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건 염려가 되지만 나 역시 안해용 영주님과 같은 생각이다. 스카이 캐슬 연합에서 몬스터를 막아 주는데 굳이 재벌들이 따로 헌터로 이루어진 사병들을 보유할 이유는 없으니까.”
“본부장님께서 동의하셨다면 그냥 소집령을 내리면 될 것 같습니다.”
“총수들이 오란다고 오겠나?”
“불응하거나 밑에 사람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안해용 영주님의 뜻대로 될 겁니다.”
“그걸 내가 모르나? 내가 염려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서로 마찰이 생길까 봐 이러는 거잖아.”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근데 본부장님이 염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용규와 달리 재난 관리 본부 소속 1팀장 임풍훈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자네도 알다시피 마나 팔찌로 인해 기업 소속 헌터들도 코어 에너지를 잔뜩 흡수해 꽤 많은 상위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어.”
“그래봤자 실전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들입니다. 발키리와 그레이, 아니 마녀 부대만 가도 쉽게 제압이 될 겁니다. 반항하면 몇 대 얻어맞기는 하겠지만 죽는 사람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다고 해도 그 정도로 차이가 나나?”
“마나 팔찌로 마나를 채워 등급이 비슷하다 해도 스카이 캐슬 연합 전사들과 마법사들은 아예 레벨이 다릅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도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지형지물을 이용해 진을 구축했다 하나 청방의 헌터 수는 무려 십만이 넘었습니다. 근데도 적 중에 사상자는 만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죽이는 것보다 살려서 제압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 놀라운 일을 해낸 최고의 전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비하면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은 유치원 수준입니다.”
임풍훈은 마치 자신이 스카이 캐슬 일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안해용 영주님이 워낙에 생명을 귀히 여겨 소극적으로 병력을 운영해서 다들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하몽 님과 퍼거슨 님의 교육을 받고 카프리 님이 만들어 준 무구를 착용하고 있는 스카이 캐슬 헌터들은 정말 강합니다.”
“그럼 자네 말은 영주님이 시키신 대로 소집령을 내리고 거부하면 스카이 캐슬에서 알아서 하라고 놔두자는 거지?”
“네. 그러시면 될 겁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강대국들도 막지 못한 몬스터 웨이브를 스카이 캐슬은 막아 내고 있습니다. 저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쉽게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러시아? 러시아도 바리케이드가 뚫렸나?”
김용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임풍훈을 쳐다봤다.
아직 러시아의 바리케이드가 뚫렸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코드 네임 얼음 여왕이라 명명된 10티어 급 몬스터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10티어라고?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이기에?”
“러시아 전체를 얼음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라 전체가 얼었다고? 미친! 자넨 그걸 왜 이제 보고하나?”
“오늘 아침에 들어온 소식이라……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본부장님께서 급히 회의를 소집해서…….”
“쯧쯧. 소집령은 팀원들에게 맡기고 얼른 일어나서 따라오게. 영주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
“……네.”
김용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풍훈 팀장을 데리고 부랴부랴 안해용 영주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