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00화 (200/255)

200화. 영주가 되다 (3)

“아참, 깜빡하고 그냥 갈 뻔했네요. 혹시 그리폰 둥지가 몰려 있는 곳에 옐로우 사파이어 광산이 있는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린하이 님께서 그리폰을 길들이는 방법을 알고 우리에게도 삼천여 마리나 되는 그리폰이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야생의 그리폰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잖아요. 당연히 그곳을 개발해야죠.”

막사를 나가던 이세훈은 다시 등을 돌려 린하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옐로우 사파이어.

변신 주문서를 만들 수 있는 마력을 머금고 있는 보석.

옛 켄트 왕국에서는 험난한 지형과 그리폰의 위협 때문에 개발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린하이 님께 옐로우 사파이어 광산 개발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광산 개발까지 저희가 맡으면 다른 길드에서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린하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현재 스카이 캐슬에서 가장 귀히 쓰이는 아이템은 카프리가 만든 강력한 무구도 아니고 엔트 키트도 아닌 바로 변신 조종 반지였다.

비토섬에 숨어들 때도 그렇고 켄트성을 정벌할 때도 그렇고 변신 조종 반지의 이능으로 몬스터로 변신해 정체를 숨긴 덕분에 수십만의 대군을 아무런 피해 없이 적의 턱밑까지 진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수가 생산되는 켄트성의 성주가 된 것도 모자라 변신 주문서를 만들 수 있는 옐로우 사파이어의 채굴까지 맡게 된다면 린하이는 포로에서 단숨에 스카이 캐슬 연합 최고의 세력이 될 수 있는 발판을 갖추는 것이었다.

“반발이 있긴 하겠지만 그건 제가 커버해 드릴게요. 그러니 린하이 님께선 광산 개발을 맡아 주세요.”

{왜 제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지…….}

“스카이 캐슬의 영지에 있는 미스릴과 마나석 광산을 개발하다 보니 광석 판매에 대한 이익뿐만이 아니라 이래저래 다른 수익이 꽤 많이 창출되더라고요.”

{그렇겠죠. 광산 개발을 하려면 장비도 들여와야 하고 노동자들의 식사도 그렇고 많은 이권이 걸린 사업이니…….}

“맞아요. 그래서 린하이 님께 광산 개발을 맡기는 거예요. 어차피 다른 길드에서 맡아도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린하이 님의 휘하에 있는 헬퍼들이 될 테니까요.”

{흠…….}

“아시다시피 광산 개발은 고단한 작업이고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중국인들인데 그 이권을 다른 길드에서 챙겨도 어차피 언젠간 반발이 생길 거예요. 전 그게 더 두렵거든요.”

{아…….}

“헌터들과 헬퍼들을 모두 설득해 이곳에 남게 된다면 린하이 님은 스카이 캐슬 연합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휘하에 두게 될 거예요. 옐로우 사파이어의 판매와 사용은 지휘부에서 관리하겠지만 부수적인 수입은 린하이 님께서 챙기셔서 직접 고생하는 헬퍼들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실지 몰랐는데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긴장한 것도 무색하게 린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심으로 이세훈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까지 권력과 이권을 나누어주면 헌터들과 헬퍼들을 전향시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전 성주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에요. ‘일한 만큼 돈을 준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준다.’ 그게 성주님께서 바라는 이곳의 모습이거든요.”

{아…….}

“포로로 이곳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중국인이라고 해서 다른 길드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요. 린하이 님께서도 보셨다시피 이곳엔 우리 한국인이 아니라 다른 종족과 이세계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애초에 그들을 반목하고 배제했으면 우린 지금 여기까지도 오지 못했을 거예요.”

{아…….}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볼게요.”

이세훈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제 김용규 본부장 만나러 갈 거죠?”

“그래야죠.”

“걱정이네요. 그 양반 성격상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을 텐데…….”

“염려할 필요 없어요. 해용이를 설득했던 말 그대로 얘기하면 김용규 본부장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빙그레 웃으며 권수정과 함께 김용규 본부장이 있는 글루틴 마을로 이동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권수정과 달리 이세훈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미 스카이 캐슬과 대한민국을 달리 보지 않는 김용규 역시 내분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본부장님 저 왔습니다. 하하.”

“끙…… 성주님이 오시길 바랐는데 결국 자네가 왔군.”

글루틴 마을에서 임풍훈과 대처 회의를 하고 있다 이세훈과 권수정을 본 김용규는 난색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제가 온 걸 봤으니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린드 공주를 여왕으로 추대하고 이곳의 이름을 켄트 왕국으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린하이가 중국인들을 모두 전향시켜서 켄트성 방어와 옐로우 사파이어 채굴해 주기로 했고요.”

“성주님이 영주가 되기로 결심하셨군.”

“네. 그게 제 조건, 아니 스카이 캐슬 연합 마스터들의 조건이었습니다. 성주님이 원하는 대로 이름을 양보하는 대신 영주가 되어 주는 걸로.”

“끝내 독립된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건가?”

김용규는 코끝을 찡그리며 이세훈과 권수정을 노려봤다.

“글쎄요. 그건 본부장님 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본부장님도 알다시피 더 이상 이곳은 우리 스카이 캐슬 연합 단독으로 이끌기 어려울 만큼 거대해졌습니다. 오크들도 오크들이지만 중국인만 해도 이십만 명입니다. 지금 당장은 안해용 성주를 따르고 있지만, 저들을 계속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십 년, 만 년 컨트롤할 수 있겠습니까?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죠.”

“끙…….”

김용규가 앓는 소리를 내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대한민국 재난 관리 본부장. 아니 그는 안해용 성주의 도움으로 버팔로 길드를 처단하고 데스 나이트 웨이브를 막아내며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병력을 모두 움켜진 최고 권력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세훈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안해용 성주를 괴롭히지 마세요. 이제 제가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번처럼 안해용 성주가 심마에 빠져 정치에서 물러나거나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그건 본부장님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하아…….”

이세훈의 협박스러운 말에 김용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용규 본부장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이곳을 대한민국의 테두리 안에 가둬 놀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빌어먹을 놈들. 그놈들만 아니었어도.’

중국과 일본, 미국의 견제로 인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곳을 지켜줄 힘도 없었다.

일본 헌터 협회 사무장 시미켄.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 크리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최고길드인 청방의 부마스터를 2명이나 죽이고 이십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포로로 잡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괜한 일로 고집부리지 마시고 건국을 도우세요. 그럼 대한민국은 이곳에 만들어질 지금은 켄트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국가의 최대 우방국이 될 테니까요.”

“…….”

“그리고 비록 이름은 달리 쓰나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가져오고 한민족의 역사를 우리의 것이라 가르칠 겁니다.”

“……?!”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그 나라들이 다른 나라의 역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른 이름을 쓸 수밖에 없지만, 김용규 본부장님이 하기에 따라 먼 훗날 이곳의 후인들은 켄트 왕국의 역사마저 대한민국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협박과 회유에 이어 이세훈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애국심이 투철한 김용규가 혹할 만한 사탕발림을 하며.

린하이를 설득시키고 감탄시킨 패턴과 비슷했다.

“그게 가능하겠나?”

“본부장님이 도와주시면 가능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나?”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곳의 인원 구성이 아주 이상하게 되어 있다는 걸. 오천만 명의 인구가 있는 대한민국도 군인이 칠십만 명 남짓일 겁니다.”

“…….”

“근데 저희는 오크와 중국인 헬퍼들까지 포함해서 병력만 오십만 명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자원과 이능 아이템이 있어도 이대로 있으면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흠…… 국민이 될 사람들을 보내 달라는 거군.”

김용규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제대로 된 나라를 건국하고 유지해 발전시키려면 국민이 필요했으니까.

“네. 맞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몇 명 정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천만 명.”

“뭐라고? 자네 미쳤나?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한 번에 보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십 년이나 이십 년에 걸쳐 장기 계획을 잡고 보내 달라는 겁니다. 그래야 이곳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일세.”

김용규는 이세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십 년에 걸쳐 사람을 보낸다 해도 너무 턱없이 많은 숫자였다.

“본부장님은 방해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발키리 길드의 정보 라인에게 듣기론 현재 미국과 일본, 중국까지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이미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아프리카 쪽의 소국들은 망한 나라도 여럿 되는 걸로 알고 있고요.”

“…….”

“본부장님만 방해하시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곳으로 알아서 몰리게 될 겁니다. 세계 최강의 헌터 안해용. 귀환 마법진, 성수, 엔트 키트……. 오십만의 병력까지. 현재 지구의 어떤 나라보다 지금 이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게 점점 사람들한테 알려질 테니까요.”

“하아……. 시간을 주게. 참모들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겠네.”

“그 말은 우리의 건국을 인정하고 도우시겠다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래.”

결국 김용규는 이세훈의 설득에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세훈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김용규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그럼 같이 가 볼까요? 우리의 영주님을 만나러?”

“그러세.”

* * *

“……영주님을 뵙습니다.”

“……?!”

늦은 저녁.

이세훈과 대화를 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김용규가 찾아와 날 영주라 칭하며 인사를 건네 왔다.

“지금 저한테 영주님이라 한 건가요?”

“네. 이세훈 팀장한테 영주가 되는 걸 허락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좀 의외네요. 설마 이세훈 팀장이 절 왜 영주로 올리려는 건지 모르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걸 돕기로 했습니다.”

“헐…….”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용규 본부장은 끝까지 반대할 줄 알았는데 되레 돕기까지 한다고 하니 꽤 당황스러웠다.

“이곳의 이름을 켄트 왕국으로 하고 린하이를 켄트성의 성주로 막강한 권력과 이권을 줬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반목을 하다간 튕겨 나갈 것 같더군요. 그래서 돕기로 했습니다. 튕겨 나가는 것보단 건국에 협조하는 게 이로울 것 같더라고요.”

“아…….”

난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럼 일어나죠.”

“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김용규에게 다가갔다.

왠지 이 자리에서 딱딱한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술 한잔하면서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본부장님.”

“네?”

“이세훈 팀장이 어떻게 설득한 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

“벌써 16년이나 지났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군 시절 일과가 시작할 때 그리고 일과가 끝날 때 태극기를 보면서 경례를 하는 자신이 전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

“특히 지역 행사에 나가 국기 게양을 할 때 일반 시민 앞에서 경례할 땐 왠지 더 폼 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영주님…….”

“그냥 그랬다고요. 술을 마시기 전에 왠지 그 말을 하고 싶더라고요.”

난 어색한 웃음과 말과 함께 김용규의 술잔을 채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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