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뱀파이어 로드 (1)
“젠장! 뱀파이어예요. 모두 미스릴 무기로 교체해.”
“네. 마스터.”
“엔트 키트 체크하고.”
“네.”
박쥐들을 본 지윤미 마스터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헌터들의 무기 교체를 지시했다.
4티어 급 몬스터 뱀파이어.
언데드 몬스터와 늑대인간처럼 물리면 전염이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마법까지 부려 김용규 재난 관리 본부장이 긴급 소집령을 내려 군인과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부르고 나서야 막아 낼 수 있었던 몬스터였다.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파티를 열어보자. 캬캬.]
[어여쁜 인간들이여! 내게 오라!]
‘이런…….’
우리에게 날아온 박쥐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함과 동시에 헌터들의 목에 송곳니를 박았다.
지윤미 마스터가 무기 교체를 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헌터들이 뱀파이어들과 눈을 마주치자 마치 넋이라도 나간 사람같이 무기력하게 뱀파이어의 공격을 허용했다.
씨엘의 레어에서 봤던 서큐버스처럼 뱀파이어들도 매혹 마법을 부리는 듯했다.
“바보 같은! 눈 마주치지 말고 어서 심장과 목을 공격해.”
“네. 마스터.”
“공격당한 헌터들에게 엔트 키트를 주입해. 어서!”
“네.”
휘이익.
휘이익.
스르륵.
스르륵.
부산에서 이미 뱀파이어와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마스터들은 헌터들이 뱀파이어가 되지 않게 바로, 바로 응급조치를 했다.
뱀파이어의 주력 공격은 매혹 마법을 시전해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송곳니로 목을 물어 전염을 시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엔트 키트가 있어 적의 가정 위협적인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겠는데…….”
난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켄트성 위 하늘을 쳐다봤다.
푸다닥.
푸다닥.
마계의 문이 완전히 열린 것인지 하늘에 검은색 물결을 그리며 박쥐로 변신한 뱀파이어들이 끊임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성주님…….”
“성주님…….”
“저도 보고 있어요.”
제길.
뱀파이어들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성벽 위 청방 길드 사람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와 달리 엔트 키트가 없는 그들은 뱀파이어에게 전염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바로 동료들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이대로 두면 성내에 있는 이들 모두 뱀파이어가 될 듯했다.
“엔트 키트는 넉넉하죠?”
“헌터와 오크들 모두 1회분씩 갖고 있어요. 전투가 길어지면 버티지 못할 거예요.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폰 부대와 특공대에게 돌격하라고 하세요.”
“네. 알겠어요.”
휘이익.
휘이익.
“모두 돌격하세요.”
“네.”
둥! 둥! 둥!
나의 명령과 동시에 후방에서 수천 마리의 그리폰들이 하늘에 나타났고 난 전군 돌격을 지시했다.
성벽 위 헌터들은 뱀파이어들과 싸우느라 우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이미 뱀파이어가 된 자들 역시 새로운 피를 찾아 헤맬 뿐 성벽을 지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성주님, 왕성으로 가서 마계의 문부터 점령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마계의 문을 점령하지 못하면 이곳은 순식간에 뱀파이어 세상이 될 거예요.]
“네, 알겠어요.”
성안으로 들어오자 하몽과 퍼거슨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채근했다.
이제는 살리타이와 홍복원을 제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몬스터 웨이브를 걱정해야 했다.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컥.]
스르륵.
스르륵.
“발키리 모두 성주님을 엄호한다.”
“네!”
성안으로 진입한 난 바로 왕성 수호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내 앞을 막는 뱀파이어들은 나를 따르는 발키리 길드 헌터들의 집중 사격으로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물러나라! 여기는 대청방 길드가 머무는 곳이다. 더 이상의 진입을 허가하지 않겠다.}
착! 착! 착!
내성 앞에 도착하자 아직 뱀파이어한테 전염되지 않은 헌터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미안하지만 당신들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네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마계의 문을 점령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뱀파이어들은 계속 몰려올 테고 하몽과 퍼거슨의 말처럼 이곳은 물론이고 뱀파이어들이 모두 지구로 넘어가 다시 웨이브가 발발할 수도 있었다.
‘노움!’
-응. 알았어.
두두두두두두두두둥.
두두두두두두두두둥.
어스퀘이크.
난 힘을 개방시켜 지진 마법으로 내성의 한쪽 성문을 그대로 무너뜨렸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말도 안 돼. 뱀파이어들을 이렇게 쉽게 무찌르다니…….}
수호탑 인근에 다가가자 화려한 무구를 차려입은 헌터 두 명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들의 뒤엔 꽤 강해 보이는 헌터들이 도열해 있었고, 짐작건대 저들이 살리타이와 홍복원인 듯했다.
엘프 부대.
켄트 왕국 근위 기사단과 왕실 마법사단.
발키리 부대.
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천 명의 그리폰 부대까지.
순식간에 우리가 눈앞에 나타나자 꽤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게 누구야? 엘프 장로 하몽 아니신가?]
[브레드…….]
살리타이와 홍복원의 뒤에 서 있던 젊은 청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뒤로 물러나. 아주 강력한 마기를 머금고 있는 놈이야. 저놈 단순한 뱀파이어가 아니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엘프들은 중립을 선언한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중립을 선언했던 건 맞습니다. 허나 지금은 인간들과 함께 마족들을 막기로 했습니다.]
[하하. 그래? 똑똑한 놈인 줄 알았는데. 이거 실망인데? 드래곤이 있을 때도 막지 못했던 우리를 이제 와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창백한 피부와 파란 눈을 한 브레드가 빨간 입술을 혀로 핥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서로 일면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브레드와 달리 하몽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성주님, 제가 시간을 벌 테니 도망치십쇼.]
“……?”
[뱀파이어 로드입니다.]
“……?!”
[백작급 마족입니다. 현재 저희 전력으론 저자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일단 자리를 피하시고 후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몽이 브래드의 눈을 피해 내게 귓속말을 전해왔다.
수만의 언데드 몬스터를 부렸던 네크로맨서 조차 처단한 그였는데 뱀파이어 로드와는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세계수가 꽤 좋은 선물을 준 모양인데 그거 믿고 그러는 건 아니지?]
브레드가 미소 지으며 엘프들의 벨트에 있는 엔트 키트를 쳐다봤다.
[꽤 곤란한 물건이긴 한데 이제 곧 보름달이 뜰 거야. 나의 아이들의 마력은 더 강해질 테고 그걸로 언제까지 막아 낼 수 있을까?]
[끙…….]
브레드는 마치 약을 올리는 것처럼 하몽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하몽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푸다닥.
푸다닥.
“성주님, 후방에 점점 뱀파이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 쪽 헌터들이 엔트 키트로 치료를 한다고 하는데도 전염되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브레드와 대치하고 있는데 헌터 한 명이 다가와 후방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거기 인간. 꽤 강한 마나가 느껴지는데 네가 이곳의 대장이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헬퍼들을 치료하지 말고 그냥 다 죽여. 그럼 조금이나마 내 종속이 되는 걸 늦출 수 있을 거야. 크크]
브레드가 하몽도 모자라 나한테도 놀리듯 말을 건넸다.
우리에게 포위되어 있음에도 브레드는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아니 그는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는 모양인지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운디네!’
-마나의 양은 비슷하지만, 저놈이 뱀파이어 로드가 맞는다면 마계에서 수천 년을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놈이야. 정면 승부를 해선 승산이 없어.
‘그래도 싸워야 해. 이 자리에서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을 거야.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며 도망칠 순 없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저자가 착용하고 망토를 보니 마계의 보물인 것 같아. 내가 알고 있는 그 물건이 맞았다면 네가 시간을 끄는 동안 도망친다 해도 금방 잡힐 거야. 어차피 도망쳐 봤자 스카이 캐슬이나 지구일 테니까.
운디네가 브레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디네 역시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대충 분위기 파악은 끝난 것 같은데 얌전히 무릎을 꿇고 내게 목을 넘겨. 그럼 너희에게 영원한 행복과 포근한 영면을 선사해 줄 테니까.]
햝짝핥짝.
햝짝핥짝.
브레드가 혀를 입술을 핥으며 내 목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내 목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빠는 상상을 하는 듯했다.
인생사 참 부질없었다.
나름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그동안 무던히도 고생하고 노력을 한 것 같은데 백작급 마족 한 명이 그 모든 걸 물거품을 만들었다.
-그러게, 농사지을 시간에 육체 단련 좀 하지 그랬어. 그럼 어떻게 비벼보기라도 했을 거 아니야!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마법 준비나 해 줘.’
난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운디네를 노려보고 마스터들을 쳐다봤다.
“제가 저놈을 상대할 테니 그동안 마스터님들은 헌터들을 지휘해 귀환 주문서를 찢어 탈출하세요.”
“성주님…….”
“네. 저 성주입니다. 성주로서 명령입니다. 그러니 군말 말고 따르세요.”
“……네.”
“……네.”
마스터들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자와 싸워선 승산이 없다는 걸.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저희가 모두 피신하면 성주님도 귀환 주문서를 찢겠다고.”
“네. 알겠어요.”
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죽음을 결심했지만 그렇다고 저 자에게 내 목숨을 그냥 줄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반항을 할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얄밉게 말을 한 저자의 얼굴에 마법이라도 한번 명중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아 동료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나 역시 탈출할 계획이었고.
그런데 그때,
[제가 조금 늦었네요.]
[공주님…….]
[공주님이 왜 여기까지…….]
켄트 왕가의 유일한 후손.
후방에 있던 린드 공주가 내성 안으로 걸어왔다.
[제가 말했잖아요. 그분께서 정령의 친구가 찾아오면 그를 도와 마왕과 마족들을 물리치는 걸 도우라고 했다고!]
린드 공주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와 브레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설마 성녀…….]
[린드라고 해요. 카시오페아 님을 모시고 있어요.]
[이런…….]
우리를 만나고 내내 여유로운 모습을 일관했던 브레드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린드 공주를 쳐다봤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지팡이, 귀걸이, 목걸이, 반지…….
수호탑 인근에 다다르자 그녀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착용하고 있는 액세서리에서 태양처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브레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기 보세요.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어요.”
수호탑 인근에 있던 아니 정원에 있는 모든 분수대의 석상들이 빛과 함께 물을 뿜어냈고,
달랑달랑.
달랑달랑.
순식간에 물이 채워진 분수대 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읔! 빌어먹을.]
분수대의 물에 맞은 브레드의 몸이 불타오르고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고 괴로운지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