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95화 (195/255)

195화. 공성전 (2)

블랙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닭꼬치 구이.

잔치국수.

옐로우 아이찜.

그린 피쉬찜.

바이올렛 피쉬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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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성문 앞에 있음에도 우리는 마치 피크닉이라도 나온 것같이 이능이 깃든 음식을 메뉴로 푸짐하게 식사를 차려 배를 채웠다.

어차피 이곳에 자리만 잡고 있어도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허나 식량과 식수가 끊긴 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음이 급해질 테고.

“그리폰 부대랑 특공대도 준비가 됐다고 했죠?”

“네.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 돌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주님의 지시대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게 플로라 길드 힐러들이 부사수로 탑승해 파티를 맺게 했습니다.”

“잘했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이능이 깃든 음식을 복용한 것도 모자라 동충하초 포션을 구비하고 힐러까지 백업해 준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청방이 아무리 중국 최고의 길드라고 해도 버프를 잔뜩 받는 우리 헌터들을 상대하려면 꽤 애를 먹을 것이다.

“어떻게?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하라고 할까요?”

“아니요. 공격은 사흘 후에 할게요.”

“사흘이나 있다가 하신다고요?”

“우린 급할 게 없잖아요. 병력에 충분한 휴식과 식사를 제공해 주세요.”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켄트성 수비 병력과 공방을 치른 우린 다시 진형을 뒤로 물러 휴식을 취했다.

성벽이 견고해 방어하는 데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공격하지 않고 이렇게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적의 피로 도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우리와 달리 저들은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할뿐더러 잠도 자지 못할 테니까.

한 사흘쯤 이렇게 적을 괴롭히고 피로도가 최상으로 올랐을 때 공격하는 게 효율적일 듯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성주님, 양양 님께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후방으로 빠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비밀 통로를 통해 양양이 사람을 보내왔다.

“안에 상황은 전달해 주러 온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성내 헌터들은 모두 성벽과 왕성 두 곳으로 나누어져 수성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왕성을 지키고 있다고요? 성벽이 건재한 이상 당장 그곳을 지킬 이유는 없을 텐데요?”

{공방 헬퍼들에게 알아보니 성벽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을 왕성 정원에 있는 수호탑으로 조정을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헬퍼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성벽에 그려진 대광역 마법진 때문에 마음이 쓰였는데 양양이 정말 소중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네. 공방 헬퍼들에게 물어봐서 두세 번 확인했습니다. 왕성 정원에 있는 수호탑만 부수면 성벽에 그려진 마법진은 무용지물이 될 거라고 합니다.}

“덕분에 공성이 한결 더 수월하게 됐네요. 혹시 살리타이와 홍복원의 위치는 파악이 됐나요?”

{네. 두 사람 모두 현재 왕성 내에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쯧쯧. 총사령관이라는 작자가…….”

난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토섬의 귀족들을 처리할 때도 그러더니 청방 길드의 수뇌부들 역시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병사들을 지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안전한 후방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짐작건대 우리가 정공법으로 성문 먼저 공략하려 했다면 그들은 내성에 숨어 ‘막아, 어떻게든 막아!’ 이 지랄을 하면서 헌터들과 헬퍼들을 계속해서 성벽으로 몰아붙였을 것이 자명했다.

그리폰 부대가 없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헬퍼들에게도 동원령이 떨어졌죠?”

{네. 지금 대부분 성벽으로 와서 화살촉을 만들고 기름을 끓이고 돌들을 나르면서 수성을 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네요. 양양 님한테 다시 한번 얘기해 주세요. 이렇게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헬퍼들을 모두 성벽으로 데리고 가서 수성하는데 협조하라고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난 청방 길드 헬퍼한테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살리타이와 홍복원 그들만 제거하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였기에 병력을 성문으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에게 좋았다.

우리 스카이 캐슬이야 설사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마스터들이 부대를 지휘해 전쟁을 치르겠지만 적들은 달랐다.

청방 길드 수뇌부들은 이미 민심을 잃었기에 그들만 제거하면 성벽으로 몰려오고 있는 헌터들과 헬퍼들은 우리에게 투항하게 될 것이다. 이미 양양을 통해 우리를 돕고 싶다는 인원만 수만여 명에 이르렀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 번 다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전쟁은 총과 칼과 같은 무기도 중요하지만, 정보도 그 이상으로 중요했고 양양과 헬퍼들 덕분에 우리는 내성 안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드워프와 마법사.

변수는 이제 두 가지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성벽에 마법진을 그린 존재들.

하몽조차 한 수 접어 줄 만큼 뛰어난 마법 이해력을 가진 마법사. 그리고 그 마법진을 그린 기술자.

그들의 위치와 정체만 확인하면 나머진 우리 계획대로 될 듯했다.

“혹시 성벽에 마법진을 그린 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셨나요?”

{이리저리 수소문하긴 했지만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드워프의 존재와 고위마법사들은 수뇌부에서도 극비로 취급하기에 헬퍼들인 저희가 정보를 접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헬퍼를 쳐다봤다.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역시나 드워프와 마법사에 대한 것은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능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과 마법사들은 우리조차 최우선으로 보호할 만큼 귀한 인재들이었고 반대로 적의 눈에 띄면 첫 번째로 타깃이 될 테니까.

사로잡아서 전향을 시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눈에 띄자마자 죽이는 게 좋았다.

특히 고위 마법사는 광역 마법을 쓸 수 있기에 한순간의 방심이 수많은 아군의 생명을 해칠 수 있기에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근데 눈으로 확인을 하지 못했을 뿐 아마 내성 안에 같이 있지 않을까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그곳이 가장 유력하겠죠. 허나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모든 가능성을 열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요. 혹여라도 내성을 기습했을 때 다른 곳에 숨어 있다가 공격을 하면 정말 큰 피해를 입게 될 테니까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양양 님도 이 부분은 그냥 모른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헌데 내성 안에 살리타이와 홍복원 말고도 높은 인물들이 잔뜩 몰려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죠?”

{헬퍼들에게 확인하니 지난 수년간 내성으로 천여 명이 넘는 젊은 여자 천여 명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흠…….”

{그리고 최근엔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 헬퍼들도 모두 내성으로 들어갔습니다.}

“……?!”

{내성 안 헬퍼들에게 확인하니 정기적으로 계속 젊은 남녀가 계속 그렇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헬퍼를 쳐다봤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성내에 고위 마법사가 있다면 여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헌터도 아닌 젊은 헬퍼들이 내성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상황에 마법사가 남색을 탐한다고?’

하몽과 그의 제자가 된 마녀 부대를 보면 마법을 배우고 익히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 수양 역시 꽤 해야 하는 것 같았고.

“흑마법사인가?”

헬퍼의 말이 맞는다면 하몽과 같은 정상적인 마법사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그때,

[혹시 어린아이들이 들어간 적도 있습니까?]

{어린아이요? 에이. 이곳에 애들이 올 리가…….}

[잘 생각해 보십쇼.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내성으로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들이 들어간 적이 있나요?]

하몽이 사색이 되어 헬퍼의 팔을 꽉 잡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말이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하몽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흠! 그러고 보니 간혹 아이들이 이곳에 오긴 했습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한번 들어오면 꽤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니 부모님을 보러 온…….}

[나간 걸 본 적 있습니까?]

{네?}

[부모님을 보러 온 아이들이라면 다시 밖으로 나갔을 거 아닙니까?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본 적이 있냐고 묻는 겁니다.]

{흠…….}

하몽의 질문에 헬퍼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들어 온 것은 봤지만 나가는 걸 본 적은 없는 모양이었다.

[젊은 남녀도 들어가는 것만 확인했지.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죠?]

{……네. 근데 다들 내성 안에서 머물고 있을 겁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헬퍼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하몽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안 좋은 쪽으로 짐작 가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하몽 님, 짐작 가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실래요?”

[소환진.]

“네?”

[젊은 남녀의 피. 어린아이들의 피. 성주님이 예상하는 것처럼 성내에 있는 마법사가 흑마법사라면 그들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소환진의 제물이 되어서]

“소환진이라면 설마, 마계의 문을 말하는 건가요?”

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불길한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하몽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네. 맞습니다. 흑마법사의 마법은 대부분 살아 있는 생명체의 피가 있어야 하지만 천여 명이 넘어가는 많은 피가 필요한 건 소환진 밖에 없습니다.]

하몽이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청방 길드 마법사가 소환진을 그렸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스스로 그렇게까지 할 리가 있을까요? 이곳에 마계의 문을 열면 우리만 위험해지는 게 아닐 텐데요?”

난 하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급 정령사로 각성하며 난 분명히 보았다.

마계의 문이 열린 곳에서 수없이 많은 몬스터가 물밑 듯이 몰려오는걸.

마계의 문을 여는 건 같이 죽자는 거나 다름없는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소환진을 만든 자는 안전합니다. 정령들이 성주님과 계약을 하고 한편이 된 것처럼 인간의 피로 소환된 마족은 계약을 한 자에게 우호적입니다.]

“……?!”

[하아…… 마법진이 범상치 않아 보이더니 이미 고위 마족이 이곳에 당도해 있었나 보네요.]

하몽이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푸다닥.

푸다닥.

“저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석양이 내려앉아 있었고 수천 마리의 박쥐들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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