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공성전 (1)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와! 장난 아닌데요? 지금 당장 전투에 참여시켜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훈련 한 부대들이랑 별 차이가 없네요.”
그리폰 라이더 삼천 명.
린하이에게 헌터들을 차출해 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리폰 라이더들은 마치 항공 쇼를 벌이는 것처럼 갖가지 모양의 수를 놓으며 하늘을 상공했다.
“최하 몇 달은 걸릴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그리폰에 적응을 시키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린하이를 쳐다봤다.
{다 카프리 님 덕분입니다. 그리폰의 등에 올린 안장 때문에 승차감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칭찬받는 게 어색한지 린하이가 공로를 카프리에게 돌렸다. 아니 카프리의 무구들이 지금의 결과를 만드는데 일조한 건 확실했다.
마법진이 그려진 안장과 발찌.
그리폰을 본 카프리는 마치 뮤즈를 만난 예술가처럼 바로 앉은 자리에서 무구를 만들어 내었다.
다른 부위와 달리 상대적으로 약한 배 부위를 안장을 넓게 만들어 그리폰의 방어까지 할 수 있게 했고 네 개의 발목 옆에 커다란 낫과 같은 연결하여 공격력까지 상승시켰다.
짐작건대 고속으로 낙하 비행을 하는 그리폰의 발목 낫에 스치면 어지간한 헌터들의 공격보다 더 치명적으로 다가올 듯했다.
허나 난,
“겸손해할 필요 없어요. 카프리 님의 무구들이 뛰어난 건 분명 하지만 제가 보기엔 린하이 님께서 평소 그리폰들을 잘 훈련 시켜놓아서 그런 것 같으니.”
린하이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안장 덕분에 승차감이 좋은 건 분명하지만 휘파람으로 그리폰을 부리는 린하이와 수하들의 능력이 더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머리가 나빠 교감이 안 되는 단점이 있지만, 휘파람 소리만 숙지하면 누구든 쉽게 그리폰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받아 주십쇼.}
“이게 뭔가요?”
린하이가 몸을 쭈뼛거리면 내게 손바닥 길이만 한 피리를 건네주었다.
{카프리 님에게 부탁해 만든 그리폰 전용 피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휘파람을 불지 못하는 사람도 그리폰 라이더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일주일 정도만 훈련을 받으면 헬퍼들까지 라이더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린하이를 쳐다봤다.
난 그에게 그리폰 부대 운영의 전권을 맡겼고 그가 왜 자처해서 피리를 만들어 내게 주는 건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늑대들을 오크들에게 몰아줘서 태백산맥 마스터랑 실랑이하고 성주님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끙…… 누구한테 들었나요?”
{카프리 님한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피리를 오백 개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태백산맥 길드한테 양도를 했으면 합니다.}
“그럴 필요 없는데…….”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성주님의 명령에 지휘부 마스터들이 저희한테 협력하고 있지만, 속으론 많은 염려를 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염려 속엔 질투가 있을 것도 분명하고요. 전 지휘부 마스터들이랑 더 가깝게 지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제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난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린하이를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참 괜찮은 사내였다. 아니 그는 정말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부대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같은 화합이 되지 않으면 그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아니 화합이 되지 않고 반목이 생기면 뛰어난 능력이 상쇄되고 오히려 오합지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이러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감사히 받을게요.”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나도 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기엔 이 상황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먼저 오백 마리만 분양해 달라고 했어도 린하이는 알겠다고 했겠지만, 그가 먼저 말을 꺼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청이 있습니다.}
“말하세요. 어지간한 건 다 들어 드릴 테니.”
{양양이 살리타이와 홍복원이 머무는 곳을 알아내서 보내 주었습니다. 이게 그들이 머무는 성안의 지도고요.}
“살리타이와 홍복원이요?”
{현재 켄트성 헌터들을 이끄는 최고 지휘관입니다. 그리고 헬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아주 악질들이기도 하고요.}
린하이가 내게 지도 한 장을 건네줬다.
켄트성 안의 지도는 퍼거슨이 건네준 게 있어 우리도 갖고 있긴 했지만 청방 길드가 머물면서 새로이 많은 건물과 도로가 생겨 제법 다른 곳이 많았다.
{저희 그리폰 부대가 선봉에 서서 그들을 처단하게 해 줬으면 합니다.}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린하이를 쳐다봤다.
그 어떤 전투건 선봉에 서면 피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수십에서 수백 명.
재수가 없으면 부대가 한순간에 반파가 될 수도 있었다.
이제 갓 전향한 부대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건 마땅치가 않았다.
{성주님께서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번 전투에선 저희가 선봉 부대로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폰 부대가 선봉에 서게 되면 저희를 알아본 헬퍼들의 반항도 최대한 억제하고 협조마저 받을 수 있습니다.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긴 한데…….”
{허락해 주십쇼. 반드시 성공해서 스카이 캐슬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성주님의 인정뿐만이 아니라 지휘부의 마스터들과 영지민에게도 우리 그리폰 부대가 스카이 캐슬의 수호자라는 걸 알려 주고 싶습니다.}
린하이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단, 며칠 사이에 부담스러울 만큼 그의 태도는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네, 알았어요. 허락할게요.”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허락을 하지 않으면 되레 부대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플로라 길드를 부를 테니 같이 태워서 가세요.”
{플로라 길드요?}
“대한 헌터 협회장이 마스터로 있는 길드에요. 구성원 대부분이 힐러들로 구성되어 있고요. 함께 가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난 그리폰 라이더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 조건 하나를 내 걸었다.
{네, 알겠습니다. 선봉에 서게만 해 주시면 다른 건 어찌 됐든 상관없습니다.}
린하이가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공성전.
그동안 매번 성을 방패로 방어전만 치르다가 첫 공격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 * *
{발키리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레인보우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울프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화랑 연합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근위 기사단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왕실 마법사단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엘프 부대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오크 부대 모두 준비 끝마쳤습니다.}
“출발하죠!”
둥! 둥! 둥!
이만여 명 남짓 남았던 헌터들의 투항을 받고 우린 전 병력을 이끌고 켄트성으로 진격했다.
그 숫자가 무려 삼십만에 이르렀다.
{멈춰라! 더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우린 대한민국 스카이 캐슬의 헌터들이다. 성문을 열어라!]
{스카이 캐슬? 감히 중국의 대 청방 길드를 공격하고도 너희가 무사할 것 같나! 포위를 풀고 물러나라. 그럼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
켄트성 정문으로 다가가니 청방 길드의 헌터가 성문 위에서 되레 큰소리를 치며 우리를 겁박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인정하고 그냥 항복하면 좋을 텐데 역시나 그럴 생각은 없는 듯했다.
보통 공성을 할 때는 수성을 하는 인원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많아야 뚫을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30만의 대군을 보고도 해 볼 만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특히 30만 중엔 20만 명이 오크들이었던 게 적의 사기를 올려준 모양이었다.
성문 위에 서 있는 헌터들의 얼굴에 모두 자신감이 가득했다.
{성주님, 성벽과 성문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법진이요?”
{네. 켄트 왕국에서 사용했던 마법진을 복구시킨 것 같습니다. 다들 상당히 고위 마법들입니다.}
“얼마나?”
{9서클 이상입니다.}
“헐…… 9서클 이상의 마법진이라고요? 안에 드워프라도 있는 걸까요?”
{카프리 님이라 하더라도 저 마법진을 혼자서 복구시키긴 힘들 겁니다. 재료는 둘째치고 마법에 대한 이해력이 상당히 높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내성 안에 저랑 동급이거나 더 뛰어난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몽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성벽을 쳐다봤다.
단순히 1티어 몬스터인 오크들이 주력으로 된 부대라 자신감이 넘친 줄 알았는데 숨겨진 한 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몽과 동급이면 마법진을 떠나서 적들도 대광역 마법인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발현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자칫했다간 커다란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일단 계획대로 투석기와 활 공격으로 시선을 붙잡아 보세요. 그리폰 부대를 믿어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드드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드드.
나의 지시에 헌터들이 수십여 대의 투석기를 밀고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 뒤엔 다시 수만여 명의 헌터들과 오크들로 이루어진 궁수 부대가 따르고 있었고.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두렵긴 하지만 다행히 사정거리가 활보다 짧았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알겠어요.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스르륵.
스르륵.
나의 지시를 받은 지윤미 마스터가 투석기 공격과 화살을 성문으로 퍼부었다.
{하하! 미개한 놈들. 이런 되지도 않는 공격으로 이 성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은가!}
{하하하!}
{하하하!}
성문 위에 있던 청방 길드 헌터들이 우릴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릴 깔보고 비웃는 기색이 가득했다.
투석기와 화살의 사정거리 끝에서 공격해서 성벽에 닿았을 땐 힘이 빠져 그리 큰 피해를 주지 못하니 우리가 가소롭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참 한심한 사람들이네요. 우리가 다른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네요.”
“이런 간단한 기만책에도 저리 건방을 떨다니. 그냥 이대로 돌격해도 뚫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적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윤미와 조성태가 마스터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우린 오크들과 싸우며 수많은 공성전을 치렀다.
우리가 성문을 뚫으려 했다면 이렇게 어설프게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리폰 라이더와 비밀 통로로 들어간 특공대가 기습을 할 수 있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어서 일부러 전력을 최소화해서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철수시키세요. 밥 먹고 하죠.”
“네. 알겠습니다.”
한참 동안 투석기와 화살로 성벽을 공격한 난 철수를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