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그리폰 (8)
“성주님, 포로들의 숫자가 벌써 이만이 넘어가고 있어요. 미리 준비한 지형으로 끌고 가 보호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나면 금세 한계가 올 것 같아요. 게다가 혹여나 적의 대규모 병력이 진형을 뚫고 구출이라도 하러 오면 큰 낭패를 겪을 수도 있어요. 뭔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흠…….”
청방 길드를 공격한 지 한나절 만에 지윤미 마스터가 찾아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오크들을 제외하고 이번 전쟁에 참여한 스카이 캐슬 연합 헌터들의 숫자가 채 이만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나절 만에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을 포로로 잡으니 불안함이 몰려온 모양이었다.
“포로들 분류는 다 해 놓았나요?”
“청방 길드 직계 헌터들과 동맹 길드 헌터들. 그리고 상인 길드 헌터들. 그리고 헌터 등급에 따라 다 분류해 놓았어요.”
“고생하셨네요. 그럼 오키도키 님한테 얘기해서 켄트성 남쪽 성곽 공사 현장에서 보내는 거로 하죠.”
“전부 다 그곳으로 보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같은 성안에서 생활했다 해도 다 친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상인 길드 쪽은 서로 경쟁 관계라 꽤 불편하게 지냈던 것 같으니 서로 데면데면한 길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서 투입 시키면 딴마음을 품지 못할 거예요. 김용규 본부장이 있으니 이 정도는 알아서 잘 관리해 주겠죠.”
“네. 알겠어요. 그럼 포로 건은 그렇게 진행하는 거로 할게요. 오크들이랑 헬퍼 분들이 좋아하겠네요. 안 그래도 8개나 되는 산성을 쌓느라 힘들어했는데.”
지윤미 마스터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며칠이 지나면 더 좋아할 겁니다. 지금 생포한 포로보다 앞으로 생포할 포로들이 더 많을 테니까.”
“네. 맞아요. 이대로라면 최하 오만에서 칠만 이상은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면 승부했으면 우리도 제법 피해를 받고 적들 역시 대부분 다 죽었을 텐데 지금은 다 산채로 항복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 마스터님과 발키리 헌터들 덕분이죠. 제가 지시한 대로 적의 부대를 잘게 쪼개 놓고 있는 거죠?”
“네. 간혹 진형이 뚫려 삼천 명 정도의 규모로 합쳐진 부대가 있긴 하지만 그 이상 모이지는 못하게 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네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제부턴 더더욱 무리하게 싸울 필요 없어요. 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주요 거점만 차단하고 적의 부대가 모이지만 못하게 하면 돼요. 그럼 이 넓고 큰 산맥을 헤매다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우리한테 항복하게 될 테니까.”
“네. 오면서 지휘부와 길드원들에게 다시 한번 얘기를 하고 왔어요. 처음 성주님의 말을 들을 땐 사실 좀 모호했지만, 지금은 모두 감을 잡을 상태에요.”
“다행이네요. 제가 머릿속으로만 그렸지. 설명을 잘못하는데 다들 똑똑하셔서 알아서 새겨들으신 것 같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계획은 내 머리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손쉽게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지난 6개월 동안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숲에 머물며 길을 익히고 또 만들어 눈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허나,
‘오만에서 칠만이 아닌데…….’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포로로 잡을 인원은 켄트성에 안에 더 많다는 것이다.
전투력을 가진 헌터들이 대부분 출정을 했을 테고 성안에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헬퍼들일게 분명했으니까.
그럼 오만에서 칠만이 아니라 십오만 에서 십칠만이 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관 한 명만 붙잡으면 될 것 같은데…….’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포로들이 모여 있는 숲속을 쳐다봤다.
우리 쪽 인물을 보내는 것보다 평소 인품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적의 장수를 잡아서 항복 사절로 보내면 쉽게 설득할 수 있을 듯했는데 마땅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장원재의 위치를 찾았어요.”
“그래요? 혹시 항복한 건가요?”
“아니요. 삼천여 명의 병력을 모아 반항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떡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고 하몽 님께서 전령을 보냈어요.”
발키리 길드 헌터가 들어와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제가 직접 가죠.”
“저도 함께 갈까요?”
“네. 당연하죠.”
“네. 알겠어요.”
난 지윤미 마스터와 함께 장원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전령을 따라 하늘 다리 인근 협곡에 도착하자 하몽과 에릭, 오키도키, 최은빈, 조성태, 최병용, 최영식이 각 길드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와서 장원재를 포위하고 있었다.
A급 정도면 이 중의 한 명과 오크들만 있어도 쉽게 제압이 되지만 S급에 이르는 헌터이기에 다들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기지 않게 소식을 듣고 바로 다 달려온 모양이었다.
“처음 뵙는군요. 스카이 캐슬의 안해용이라고 합니다.”
난 변신을 풀며 앞으로 걸어가 장원재에게 인사를 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각진 턱이 육체적 능력뿐만이 아니라 성격 역시 강인할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오크가 아니었군. 하긴 오크 따위가 이런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전쟁을 할 리가 없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날 보고도 장원재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내심 안도하는 듯했다.
짐작건대 오크들에게 이리 처참하게 패해 갇혀 있던 상황이 몹시 분했었던 모양이었다
.
{스카이 캐슬의 안해용이면. 한국에 있다던 그 S급 헌터인가 보군.}
“네. 맞아요. 제가 한국의 S급 헌터예요. 그리고 여기 계신 분 중에도 S급이 몇 명 더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시고 무기를 내려놓으세요. 저흰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습니다.”
난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장원재를 설득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의 항복이 필요했다.
그럼 헌터들은 물론이고 켄트성을 공략할 때 불필요한 희생이 나지 않고 다들 투항을 할 테니까.
{웃기는 소리. 고작 오크와 엘프들의 힘으로 우릴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이야 다들 기습에 당해 우왕좌왕 하고 있지만, 나의 전사들이 날 찾아올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당신의 전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우리한테 항복하고…….”
{말이 많군. 린하이!}
{네.}
스르륵.
스르륵.
{$$%$%$%$%$%$%미티어…… 컥!}
#$#$#$#$#$#$#$미티어…… 컥!
장원재와 눈이 마주친 헌터들이 마법 주문을 외웠지만 모두 수백여 발의 화살을 맞고 완성을 하지 못했다.
하몽을 만나기 전이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우린 광역 마법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고 가만히 있다 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움직여도 된다고 한 적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투항을 하세요. 당신들이 살길은 그것뿐입니다.”
{닥쳐라! 모두 돌격해!}
{충!}
{충!}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었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는데도 장원재와 친위대들은 거칠게 반항을 했다.
“쏘세요.”
“네.”
“네.”
스르륵.
스르륵.
“컥!”
“컥!”
[#$#$#$#$#$#$디스!]
[#$#$#$#$#$#$미티어 스트라이크.]
청방 길드 헌터들이 움직이는 순간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수만의 오크와 헌터들이 마법과 화살을 난사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우리의 공격을 받은 이후 적들의 이동 경로를 수백 군데 이상 상정해 놓았고 그 경로 위에서 적을 맞이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 놨다.
그로 인해 적들은 우리보다 한참이나 낮은 곳에 있었고 우린 높은 지역에 넓게 산개해서 적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장원재와 친위대가 아무리 화룡의 둥지에서 능력을 키웠다고 하나 우리는 지금 인원도 몇 배는 더 많고 등급 역시 밀리지 않았다.
질려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부마스터님!}
{부마스터님!}
마치 성난 황소처럼 덤벼들던 장원재는 하몽의 마법 공격과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화망을 집중해 쏜 화살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S급이고 뭐고 산속에 갇혀 도망 다니다가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합공까지 당하니 버텨내질 못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죠. 항복하세요. 그럼 목숨은 살려 드릴게요.”
{닥쳐라!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모두 부마스터님을 지켜라!}
{충!}
{충!}
장원재가 길드원들한테 제법 잘해준 모양이었다.
이미 마법과 화살 공격에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모두 장원재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끼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악!
“미친! 또 그리폰이에요.”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천여 마리가 넘는 그리폰 때가 나타나 부상을 당한 청방 헌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피 냄새를 맡고 온 모양이네요.”
“네. 맞아요. 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더라고요. 그리고 엄청 집요한 놈들이에요. 도망가 봤자 피 냄새를 맡고 악착같이 따라가 결국엔 낚아채 가더라고요. 그래서 청방 길드 헌터들이 그리폰 때문에라도 항복하는 인원이 많은 것 같아요.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느니 저희한테 항복하는 게 나으니까요.”
지윤미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폰들을 쳐다봤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모두 부마스터님을 보호해!}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그리폰들을 막아. 병사들이 상하고 있잖아}
{충!}
{충!}
우리와 싸우던 청방 길드헌터들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항복하지 않고 상대를 바꿔 그리폰과 싸우기 시작했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그리폰을 따라가 주세요.”
“네?”
“저 고약한 놈들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 같네요. 헌터들을 이끌고 그리폰의 근거지를 찾아주세요.”
“네. 알겠어요.”
내 지시를 받은 지윤미 마스터가 눈을 스산하게 빛내며 발에 사람을 매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그리폰을 쫓아갔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나 눈앞에서 인간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설사 장원재가 끝까지 반항을 한다 해도 내 손으로 죽이는 게 나을 듯했다. 적들 역시 몬스터한테 잡아먹히는 것보다 그편을 원할 것이다.
“오키도키 님, 저들을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우웅!
부우웅!
내 지시를 받은 오키도키와 수백의 오크들이 활을 집어넣고 도끼를 꺼내 크게 원을 그리며 팔을 움직였다.
모두 드레이크를 사냥했던 정예 오크들이었다.
끼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악!
우당당탕탕.
우당당탕탕.
“아, 저런 방법이 있었네요.”
“도끼 쓰는 실력이 장난 아니네요. 우리도 배워야겠어요.”
마치 돌팔매를 질을 하듯 원을 그리며 탄력을 받은 오크들은 도끼를 그리폰에게 던져 명중시켰고 하늘로 올라가려 하던 그리폰들을 도끼에 달린 줄을 잡아당겨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왜 우리를 돕는 거지?}
“당신들을 돕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사냥하는 겁니다. 같은 인간이 눈앞에서 몬스터한테 잡아먹히는데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장원재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아니 우리의 도움을 받는 게 치욕스러운지 불쾌한 기색이 여력 했다.
“항복하세요. 항복만 하면 당신들은 물론이고 부하들 모두 살 수 있습니다.”
{닥쳐라! 우린…… 컥! 네놈이…… 컥!}
{죄송합니다. 부마스터. 전 제 부하들을 살려야겠습니다.}
{컥!}
“…….”
“…….”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는데 청방 길드 헌터들이 장원재를 공격했다.
중국의 S급 헌터이자 적의 총사령관이 아군의 검에 목숨을 잃는 순간이었다.
{부마스터는 죽었다. 모두 목숨을 아껴라. 무기를 내려놔!}
장원재의 몸에 깊게 검을 넣은 헌터 한 명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동료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