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그리폰 (4)
“……사일, 거리에 스카이 캐슬 하늘 다리와 흡사한 지형이 있습니다.”
“하늘 다리요?”
“퍼거슨 님이 말한 그리폰 지역인 듯한데…… 저희처럼 다리를 만들어 길을 뚫어 놓았는데 많이 빈약해 보였습니다.”
“다른 길은 없나요?”
“아직 확인된 다른 길은 없습니다.”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도를 쳐다봤다.
바닷길.
헌터들의 이동 속도를 미루어 봤을 때 북쪽으로 사흘 거리면 서울을 가로지르고 있는 한강처럼 대륙 중간에 크고 길게 물길이 들어와 있었다.
“경비 병력은 얼마나 되나요?”
“천여 명 정도 있긴 한데 방어 시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초라한 초소 수십여 개와 숙박 시설이 전부였습니다. B급 이상의 상위 헌터도 몇 명 보이지 않았고요.”
“흠…….”
“최은빈 대장과 저희 부대 참모들의 판단으론 다리를 폭파하고 그곳을 선점하면 청방의 보급로를 끊을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네?”
“제 눈으로 확인을 해야겠어요.”
네 번째 전령의 설명을 들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켄트성에 머무는 인원만 무려 이십만 명에 육박한다고 했다.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보급로가 끊기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지.
그런데도 너무 허술한 보급로 상황에 오히려 더 의심이 가게 했다.
아무래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할 듯했다.
“채비하세요.”
“네. 알겠어요.”
난 산악 지형에서 더 빛을 발하는 이능을 가진 발키리 길드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 * *
[정찰을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늑대들을 데리고 가시죠.]
“늑대들을요?”
비밀 통로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키도키가 수백 마리의 늑대들을 데리고 왔다.
[저희가 길들인 만여 마리의 늑대들 중에서 가장 체력이 좋고 똑똑한 놈들을 추렸습니다. 데리고 가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오키도키 님…….”
난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오키도키를 쳐다봤다.
사실 나도 늑대들이 탐이 나긴 했다.
나야 야생마 대장 루카스가 있어 늑대가 필요 없긴 하지만 태백산맥 길드나 발키리 길드 헌터들에 게 배급해 주고 싶었다.
허나 장지원 마스터를 통해 오크들도 늑대들에 대한 소유욕을 어필했고 왠지 뺏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애써 외면을 하고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 역시 오크들에게 사백 마리만 달라고 했던 장지원 마스터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성주님이 저희한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고 배려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나마 조금이라도 성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늑대들을 이렇게 나누어 주시면 고맙긴 한데 장지원 마스터한테 듣기론…….”
[그땐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좋게 달라고 했으면 사백 마리가 아니라 사천 마리라도 줬을 텐데 저와 하프 오크들을 다 소집해서 핀잔을 주더군요. 양심이 있고 은혜를 아는 놈들이면 자신이 이렇게 찾아오기 전에 알아서 상납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볼 때마다 매번 저희를 구박하고 마치 파렴치한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붙이니 저도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성주님께 허락을 받고 오라고 했던 겁니다.]
“아…….”
난 오키도키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가만히 있으면 이렇게 알아서 늑대들을 나누어 줬을 텐데 장지원 마스터가 말을 밉게 한 모양이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속마음은 안 그런데 가끔 그렇게…….”
[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태백산맥 길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저희한테 주는 식량을 선별해 나누어 주는데 그들이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키도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말로는 태백산맥 길드 사람들이 착하다곤 하는데 뭔가 잘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시 카프리가 아직도?”
[……네.]
카프리라는 말에 오키도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크들에게 포로로 잡혀 고문을 받고 학대를 받았던 카프리는 아직도 여전히 오크들을 보면 소리를 지르고 핏대를 세웠다.
그리고 카프리와 각별한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마저 오크들을 보며 계속 구박을 한 듯했다.
“쯧쯧. 돌아가면 제가 단단히 혼을 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혼은 내지 마시고 저희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스카이 캐슬 연합의 인간들과 어울리고 화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어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오키도키의 등을 토닥이고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탈 수 있겠어요?”
“네. 그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하늘 목장에 가서 꾸준히 승마 연습을 했습니다.”
지윤미 마스터와 발키리 헌터들이 빙그레 웃으며 늑대들을 건네받았다.
늑대만큼 개체 수가 많지만, 하늘 목장을 관리하는 변지섭 헬퍼가 지금도 부지런히 야생마의 개체 수의 늘리고 있고 그걸 분배받기 위해 부지런히 훈련한 모양이었다.
[체력도 좋고, 똑똑하기도 하지만 늑대치곤 꽤 순한 놈들입니다. 승마를 배우셨으면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오키도키 님. 정말 고마워요.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신세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아니에요. 보아하니 다들 하나같이 뛰어난 놈들 같네요. 혹시라도 저희한테 부탁할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얘기해 주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갈게요.”
[……감사합니다.]
늑대들이 마음에 드는지 지윤미 마스터가 마치 은인이라도 만난 것같이 오키도키한테 감사 인사를 해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오키도키도 지윤미 마스터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그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서려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이 더 가엽게 느껴졌다.
마스터를 잘 만나야 발전을 할 텐데 내가 헬퍼로 있을 때나 지금이나 장지원 마스터 때문에 다들 고생이 많았다.
사람이 좋긴 한데 한 길드를 이끌기엔 장지원 마스터는 꽝이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이부성이라도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제는 이부성마저도 길드 일보다 영지 일에 주력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해 계속 도태되고 있는 듯했다.
“죄송해요. 형.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왜 나한테 죄송해. 나도 태백산맥인데. 우리 둘 다 같이 잘못한 거지.”
“형…….”
이부성이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오키도키의 말에 그도 속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장지원 마스터 때문에 한숨을 내쉬니 그게 더 신경이 쓰였던 듯했다.
헌데, 그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태백산맥 길드 헬퍼 출신인 이부성과 나.
그리고 여전히 우린 태백산맥 길드 소속이었다.
그 누가 뭐래도 태백산맥 길드는 이부성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부성아, 형이 일전에 얘기했지. 어려울 때 같이 고생을 하고 곁을 지켜준 사람만이 성공했을 때 옆에 있을 자격이 있는 거라고.”
“네. 생각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지원이 형이 천덕꾸러기처럼 굴어도 우린 형제잖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나중에 때가 되고 기회가 되면 내가 지원이 형 멱살을 잡고 끌어 올리는 한이 있어도 올라가게 만들어 줄 거니까.”
“네, 알겠어요. 형. 히히.”
울먹거리던 것도 잠시 이부성의 얼굴에 미소가 가라앉았다.
“부성아,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 거 알지?”
“……?!”
“그냥 그렇다고…….”
내가 얘기를 해 놓고도 분위기가 너무 오글거려 농담했는데 또 너무 올드했나 보다.
이부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지윤미 마스터님. 오크로 변신해 주세요. 출발하죠!”
“네, 알겠어요.”
“에릭 님도 변신해 주세요. 길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난 이부성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부랴부랴 출정 명령을 내렸다.
* * *
“흠…… 일부러 길을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있던 길에 사람들이 오 가다 보니 자연스레 길이 넓어진 것 같네요.”
“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 오크의 숲 베이스캠프로 이동할 때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었어요.”
비밀 통로를 통해 켄트성 북쪽으로 이동한 난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폈다.
나무를 뽑고 평탄화 작업을 하고 그 위에 벽돌을 올린 것은 물론이고 경사가 심한 지역은 옆에 울타리마저 만들며 북상을 한 우리와 달리 청방 길드는 그저 시골 오솔길처럼 눈앞에 나뭇가지 정도만 쳐내고 평탄화 작업을 해 놓은 게 전부였다.
전령들의 말처럼 보급로가 허술해도 너무 허술했다.
“성주님, 1시간 거리 전방에 백여 명의 정도의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헌터들인가요?”
“헌터들도 있긴 한데 군상들 같아요.”
“군상이요?”
“네. 청방 길드 문양이 아니었어요.”
“흠…… 알았어요. 일단 위로 올라가죠.”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말에 난 일행들을 이끌고 산맥 위로 올라갔다.
“짧은 시간 만에 늑대들을 정말 잘 길들여 놓은 것 같네요.”
“네. 정말 똑똑한 늑대들만 추려서 준 것 같아요. 한 마리쯤 으르렁거리거나 말을 안 들을 법한데 다들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네요.”
산맥 위로 올라와 몸을 숨긴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늑대들을 쳐다봤다.
만 마리 중에 추리고 추려서 데리고 왔다 하더니 늑대들은 정말 오랜 시간 군마로 길들인 것처럼 눈치가 빨랐다.
산맥 위로 올라와 몸을 숨기자 늑대들 역시 숨소리마저 조심하며 몸을 낮췄다.
{빌어먹을 놈들. 도로 좀 만들어 달라니까. 언제까지 이 험한 산길로 다녀야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돈 조금 덜 받아도 되니까. 도로 좀 제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행여나 몬스터들한테 기습을 받아도 도망갈 확률이 높을 텐데. 어휴}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중국인들이 걸어오며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헬퍼들인가?’
보아하니 백여 명의 무리 중에 절반 이상이 다 일반인인 듯했다.
“인근에 다른 무리는 없는 거죠?”
“네.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초소에 있는 헌터들이 가장 가까운 곳이에요.”
오크 웨이브로 큰 고난을 겪었던 발키리 길드는 그 후에 정찰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여 만전을 다해 훈련하고 있었고 북상을 하자마자 자신들의 실력을 뽐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산악 지형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와중에 늑대까지 배급받기까지 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숲을 날아다녔다.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국인들을 쳐다봤다.
지금 내 옆엔 그런 발키리 길드 헌터 삼백여 명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C급 이상의 상위 헌터였고 소드 마스터인 에릭마저 함께 있었다.
반면에 적들은 헬퍼들을 제외하면 헌터들 오십여 명이 전부였고.
기습하면 피해 없이 모두 제압할 수 있을 듯했다.
눈으로 할 수 있는 확인은 다 한 듯했다.
아무래도 저들을 잡아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듯했다.
‘잡죠. 도망가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됩니다.’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윤미 마스터와 눈이 마주친 난 그녀와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셋, 둘, 하나. GO!’
스르륵.
스르륵.
지윤미 마스터의 지휘 아래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수백여 발의 화살을 중국 헌터들에게 쏘아 댔다.
{컥!}
{컥!}
팔과 다리.
오크들과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며 이미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가급적 목숨에 위협이 되는 부분을 피하며 중국 헌터들을 향해 일제 사격을 했고 순식간에 적을 혼란에 빠뜨렸다.
{뭐야,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모두 숨어.}
적은 화살이 날아오는데도 우리의 위치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다행히 도망은 안 가네요.’
‘네. 헌터들의 보호 없이 도망가 봤자 몬스터나 야생 동물을 만나면 더 위험해지니까요.’
적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다시 활에 화살을 메겨 어느새 다시 조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끼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악!
“뭐야! 저것들은?”
“그리폰입니다. 피 냄새를 맡고 온 것 같습니다.”
“저게 그리폰이라고요? 용이 아니라?”
수십 마리의 그리폰들이 하늘을 감쌌다.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린 몬스터.
그림으로 봤을 땐 그냥 그저 그런 공중 형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집채만 한 호랑이의 모습을 했던 차오루보다도 덩치가 훨씬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