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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76화 (176/255)

176화. 그리폰 (1)

동이 막 튼 이른 아침 오키도키가 오크들을 데리고 행군에 나섰다.

부지런히 오백 명 정원의 배를 스무 척이나 만들었지만, 오크들은 발품을 좀 팔아야 할 듯했다.

이십만이나 되는 대군이 스카이 캐슬에서 바로 늑대인간의 숲이 있는 켄트 항구로 이동하려니 소요 시간이 너무 길어 일단 게이트가 있는 오크 항까지 도보로 이동한 이후에 거기서 배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게 지휘부의 판단이었다.

“오키도키 님, 죄송합니다. 다음엔 바로 배로 이동할 수 있게 부지런히 건조 작업을 해 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배를 타는 시간이 최대한 짧은 것이 좋아요. 일전에 배를 탔던 오크한테 들어보니 뱃멀미라는 게 많이 괴롭고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땅굴과 바닷길이 열리기 전 여러 번 도보로 게이트와 오크의 숲까지 오갔던 경험이 있던 선박 팀 헬퍼들이 마중을 나와 오크들에게 사죄를 했다.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오크들이 처음부터 열두 시간이나 걸어야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세훈아.”

“응?”

“도로 좀 만들자.”

“도로? 설마 고속 도로를 말하는 건 아니지?”

“아니 맞아. 고속 도로도 만들고 고속 열차도 다닐 수 있게 해 봐. 옛 켄트 왕국의 땅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이곳 스카이 캐슬은 보급 기지 역할을 하게 될 거야. 그럼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자를 보관하고 또 이동시켜야 할 텐데 사람들 이동시키는 것조차 이리 애를 먹으면 곤란하잖아.”

“끙…… 알았다. 밖에 나가서 적당한 회사가 있는지 알아볼게.”

제대로 도로를 만들라는 말에 이세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카이 캐슬에 도시를 형성하는 것도 아직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와중에 비토섬까지 종속시켜 일이 두 배로 늘었는데 거기서 또 새로운 일이 생기니 절로 신음 소리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래. 힘든 거 아는데 더 고생 좀 해 줘라.”

난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듣자 하니 이세훈은 스카이 캐슬에 들어오고 하루에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처음에 나를 따라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수정이의 참모 서지현이 낙하산 인사라며 경계를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이 쏙 들어가는 건 물론이고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되어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영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이 그의 손을 타고 있었고 지금처럼 말만 하면 큰 사고 없이 착착 진행되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세훈이 형을 보면 군대에서 중간만 하라고 했던 선임들의 조언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부려먹지?”

“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세훈이 형 불쌍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번 원정에 내 참모로 발탁된 이부성이 가여운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의 다크서클을 쳐다봤다.

“지 복이지 뭐.”

“네?”

“나 같은 친구 만난 죄라고.”

난 이부성과 이세훈을 둘러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세훈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고 힘든지 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으로선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전쟁하기 위해선 후방을 굳건히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세훈만큼 일 잘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부성아,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된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봐. 그래서 이번 생에 저놈을 만나서 그 벌을 받는 것 같아.”

“…….”

“…….”

내가 웃는 게 얄미웠는지 이세훈이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알고 있었네. 아직 전생에 진 죄 다 갚으려면 멀었으니까 고생해라.”

“……그래.”

난 손을 흔들며 이세훈을 뒤로하고 배로 걸어갔다.

“가냐?”

“네.”

“아직 생각에 변함이 없는 거지?”

“네. 태백산맥은 남아서 영지를 지켜주세요.”

“그래. 알았다.”

배에 올라타려 하는데 태백산맥 헌터들과 함께 마중을 나온 장지원 마스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오크들을 주력으로 발키리 길드, 마녀 부대, 엘프, 켄트 왕국의 기사단과 마법사단까지 모두 이번 원정에 참여하게 돼서 불가피하게 태백산맥 길드는 영지 방어를 위해 남기로 결정됐고 그게 많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좀 기분 좋게 보내 주시면 안 돼요?”

“기분이 안 좋은데 어떻게 기분 좋게 보내 주냐?”

“어휴.”

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배에 올라탔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발키리 길드는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정령들과 계약을 하며 성장을 했다.

마녀 부대는 씨엘의 부산물과 마탑을 세우는 걸 하몽에게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고.

그레이 기사단은 원체 강하기도 했지만 이제 퍼거슨까지 합류해 더 발전할 수 있을 듯했다.

근데 태백산맥 길드는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많이 약했다.

큰 전투가 벌어지면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나. 아니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다른 길드들에 비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컸다.

난 그게 싫었다. 아니 염려됐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준비하곤 있지만 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장지원 마스터도 내 마음을 다 알 텐데 한 번씩 저렇게 계속 꼬라지를 부렸다.

“형이 이해해 주세요. 안 그래도 다들 헌터 등급도 낮고 특출 난 이능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제는 하다못해 오크들한테도 밀렸잖아요. 그래서 지원이 형이 아주 속상한가 보더라고요.”

“그래. 나도 알지.”

배에 올라탄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장지원 마스터와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을 쳐다봤다.

‘왜 저렇게 처량하게 쳐다보냐.’

그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착잡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같이 이곳에 들어온 동료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고 있는데 자신들만 계속 정체를 하고 있으니 어찌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안전하고 편안한 영지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고 살면 마음이 편할 텐데 다들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 * *

“그레이 기사단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레인보우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울프의 제자들의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플로라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화랑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조성태, 최병용, 최영식, 이아영, 이슬비, 이어진, 김종관…….

늑대인간의 숲 해변에 만든 켄트 항구에 도착하자 조성태와 헌터 협회 마스터들이 헌터들을 잔뜩 이끌고 와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새 저렇게 인원을 모은 건가?”

얼핏 봐도 족히 수만여 명은 되어 보였다.

“다들 먼저 와 계셨군요.”

“네. 배가 모자랄 것 같아서 저흰 밖으로 나가 인천에 있는 게이트를 통해서 넘어왔어요.”

“그랬군요. 근데 사람들이 제법 많이 늘어난 것 같네요?”

“스카이 연합이 이곳에 출정한다는 소문을 듣고 헌터들이 늑대를 길들이기 위해 넘어오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이아영 마스터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이제 보니 헌터 협회의 마크가 있긴 했지만, 길드 마크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No. 0001 늑대인간의 숲.

이곳의 게이트 명이 괜히 늑대인간의 숲이 아니었다.

오크의 숲에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오크가 살고 있었던 것처럼 이곳은 늑대인간과 늑대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연합에 가입되지 않은 길드의 헌터들을 쳐다봤다.

게이트 인근을 제외하곤 개척되어 있지 않아서 몬스터가 정확히 얼마나 있을지 용의 계곡에서처럼 상급 마족마저 숨어 있을 수 있어서 헌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했지만, 왠지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성주님, 잠시만.”

“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아영 마스터가 슬며시 날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따로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저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죠?”

“네.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최악의 경우 저들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늑대들을 양보할 만큼 힘이 될지는 의문이 드네요.”

“지금으로선 저들보다 늑대들을 우리가 독차지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에요.”

“근데 왜?”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아영 마스터를 쳐다봤다.

이곳을 기반으로 영토를 넓힐 계획을 하는 우리 입장에서 늑대는 사막에서의 낙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런 늑대들을 헌터들에게 양보를 하려 하는 것이었다.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 예상한 것보다 각성하고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더라고요.”

“……?”

“스카이 캐슬에서 안전망을 확보하고 나서 지난 3년 동안 협회에 등록한 각성자만큼이나 새로운 인원들이 가입했어요.”

“…….”

“그래서 데리고 온 거예요. 이곳에도 안전망이 구축되어 늑대를 길들이고 몬스터를 잡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원이 가입할 것 같아서요. 당장은 손해를 보겠지만 일단 협회에 가입해서 헌터들에게 제공되는 편의를 받게 되면 재난 관리 본부의 긴급 소집령을 따라야 하니 그리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닐 거예요.”

“아…….”

난 이아영 마스터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게다가 중국 연변에 있는 게이트로 십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갔다는 첩보도 있었고요.”

“십만 명이나요?”

“네.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으니 각성자들도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그들 전부가 다 각성자라고 할 순 없겠지만 꽤 많은 헌터들이 들어간 건 분명해요.”

“그럼 중국도…….”

“네. 성주님의 예상처럼 저들도 이곳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연변에 있는 게이트와 이곳이 가까울 가능성이 클 테고요.”

이아영 마스터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비토섬을 차지하는 동안 그녀도 대한민국의 헌터 협회장으로서 이래저래 정보를 모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름 빠른 결단을 내리고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중국보다 한발 늦은 듯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저들의 처우는 협회에 맡길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아영 마스터가 빙그레 웃으며 날 쳐다봤다.

늑대들을 독차지 못 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현명할 듯싶었다.

이종족의 도움으로 뛰어난 무구와 이능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었고 이미 용의 계곡에서 언데드 몬스터들과 싸우며 몸소 체감까지 했다.

당장은 크게 도움도 안 되고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일단은 예비 병력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럼 이곳 늑대인간의 숲은 일반 헌터들에게 맡기고 오크들이 오면 우린 북쪽으로 올라가죠.”

“네, 알겠어요.”

“하몽 님.”

[네.]

“이분들에게도 변신 반지 사용 방법을 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몽이 인자한 미소를 이아영 마스터에게 변신 반지를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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