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카시오페아 신전 (7)
난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늑대 소굴로 다가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온 피비린내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크르릉.”
“크르릉.”
가까이 다가가니 하얀색 얼룩무늬 가죽과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동물과 성체 늑대들이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게 보였다.
‘이 숲에 저렇게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다고?’
-생긴 건 호랑이와 닮았지만 단순한 포식 동물이 아니야. 저놈 코어를 품고 있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내 머리를 감싸며 운디네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주었다.
-너희 세계 기준으로 치면 7티어급 이상 몬스터 정도 될 거야. 저 정도 코어 에너지면 마법도 부릴 수 있을 거야.
‘7티어 급이라고? 그럼 데스 나이트 급이라는 거잖아.’
-어, 맞아. 조심해.
운디네가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호랑이를 쳐다봤다.
‘한 대 맞으면 훅 가겠는데?’
난 발걸음을 멈추고 호랑이와 거리를 유지했다.
코어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덩치만으로도 오우거 정도는 그냥 찜 쪄 먹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크아아아아아앙.”
휘이익.
휘이익.
“깨겡.”
“깨겡.”
덩치는 밖에서 봤던 어지간한 덤프트럭보다 더 컸는데 엄청나게 빨랐다.
호랑이가 움직이고 앞발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늑대들이 한 마리씩 나가떨어졌다.
‘저러다 늑대들 다 죽겠는데…… 제압할 수 있겠어?’
-지지는 않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헌터들 오는 걸 기다렸다가 상대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안 돼. 그럼 너무 늦어.’
터벅터벅.
숨어 있던 난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두면 헌터들이 오기 전에 늑대들이 모두 죽을 것만 같았다.
“크아아아아앙.”
“깨겡.”
“깨겡.”
호랑이는 마치 생사 대적이라도 만난 것같이 쉬지 않고 늑대들을 공격했다.
늑대들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안위도 무시한 채 호랑이를 막아 내려 하고 있었고.
‘실프!’
-응, 알았어.
“크아아아앙.”
살랑살랑.
노란색 빛을 머금은 바람이 호랑이에게 날아가 앞발에 커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노움!’
-응, 알았어.
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흙벽으로 호랑이 주위를 감싸며 더 이상 늑대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장애물을 만들었다.
“크으으으.”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쯤 해 둬.”
내 존재를 확인한 호랑이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고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타이르듯 말을 했다.
내 말을 알아들을 거라 여겨지지 않았지만 나름의 두려움 극복법이었다.
상황이 다급해 나서긴 했지만, 막상 호랑이와 눈을 마주치고 서 있으려니 절로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떨려 왔다.
“크으으으으으으으.”
호랑이 역시 내 힘을 느꼈는지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이를 드러내고 날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등을 낮추고 배를 땅에 붙인 모습이 언제든 방심을 하면 바로 달려들 듯싶었다.
‘이런 놈이 별안간 어디서 나타난 건지?’
난 경계를 하며 가만히 호랑이를 살펴봤다.
등과 허리. 그리고 뒷발까지.
실프가 발현한 바람의 칼날로 인한 상처 말고도 호랑이의 몸 곳곳엔 핏자국이 가득했다.
짐작건대 늑대들 말고도 최근에 계속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른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
킁킁!
‘뭐지?’
호랑이의 코가 살짝 씰룩거리더니 붉게 물들어 있던 눈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흠…… 이놈 기운이 왠지 친숙한데?
‘……?’
-묘족 아이들이랑 같은 기운을 갖고 있어.
“엥? 같은 기운을 갖고 있으면 이놈도 묘족이라는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아. 처음엔 너무 기세가 흉포해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묘족이 확실한 것 같아.
운디네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호랑이를 쳐다봤다.
호랑이도 고양잇과긴 한데 네로와 달리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왜 너한테서 우리 아이들 체취가 나는 거지?
‘뭐라고?’
-내가 말한 거 아니야.
‘……?’
운디네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명이 들리기에 당연히 그녀가 말을 건넨 건 줄 알았는데 앞에 있는 호랑이가 말을 건 듯했다.
‘네가 말 건 거야?’
-그렇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건가?
어느새 호랑이의 눈은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너 묘족이야?’
-묻는 말에 먼저 답해라.
‘네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묘족들을 돌봐 주고 있기는 해.’
난 호랑이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 몸에서 네로와 친구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냐아아아아앙.”
“냐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앙.”
저 멀리 스카이 캐슬 방향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호랑이가 나를 무시하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내 새끼들 살아 있었구나.
그곳에 헌터들과 함께 네로와 고양이들이 함께 달려오고 있었고,
“냐아앙.”
“냐아앙.”
핥짝핥짝.
핥짝핥짝.
네로는 호랑이를 보자마자 품에 안겨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고 혀로 몸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다.
* * *
[……묘족의 수장 차오루가 은인을 뵙습니다.]
“…….”
네로를 만난 호랑이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더니 내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 왔다.
안개 마법만 부릴 뿐 네로는 영락없는 고양이였는데 차오루는 엘프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마법마저 자연스럽게 발현했다.
“아이들을 찾으러 온 거는 알겠는데 늑대들은 왜 죽인 거죠? 보아하니 잡아먹으려고 공격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늑대 소굴에서 저희 동족들이 죽을 때 뿜는 체취가 느껴졌습니다.]
“아…….”
난 차오루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도 크게 성장을 하지 않았지만 처음 네로와 고양이들을 만났을 때 성인 남자의 주먹 정도의 크기로 작은 덩치를 갖고 있었다.
짐작건대 우리를 만나기 전에 늑대에게 걸려 죽임을 당한 모양이었다.
“냄새를 맡는데 특출한 능력을 갖추고 있나 보네요. 근데 늑대들을 살육하는 건 중단해 주셨으면 하는데 그래 줄 수 있나요? 제가 하려는 일이 있는데 늑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요.”
[아이들이 모두 죽은 줄 알고 이성을 잃어서 그런 겁니다. 저도 더 이상 의미 없는 살육을 할 마음은 없어요.]
차오루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늑대들과 전투를 할 땐 마치 한 마리 야수를 보는 것 같았는데 평정심을 되찾으니 엘프들과 같이 온화한 기운이 느껴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차오루 님은 꽤 강력한 힘을 가진 것 같은데 네로하고 친구들은…….”
[언데드 몬스터의 침공으로 젖도 떼지 못한 아이들을 급히 떠나보냈어요. 무언가를 가르치고 교육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 그럼 네로하고 친구들도 가르침을 받으면 차오루 님처럼 말도 할 수 있고 강해질 수 있겠네요?”
[그건 아이들 하기 나름이겠죠.]
차오루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건대 네로와 다른 친구들도 가르침을 받으며 성체가 되면 차오루처럼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그간 정이 들었는데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
[갈 곳이 없어요.]
“네?”
[저희가 머물고 있던 영토는 이미 언데드 몬스터가 다 차지했어요.]
차오루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날 쳐다봤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성주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지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물론이죠.”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로와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나 싶어서 아쉬웠는데 당분간 계속 함께할 수 있을 듯했다.
“물어볼 게 많지만 피곤해 보이시네요. 얘기는 차차 하고 일단 좀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 * *
“성주님, 늑대 소굴에 있던 새끼늑대 132마리 모두 하늘 목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늑대들을 키워서 우리도 오크처럼 타고 다녔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네. 교육해 보겠습니다. 성체 늑대들도 오크들에게 굴복을 해서 길들었으니 새끼 때부터 길들여서 가르치면 야생마만큼이나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 목장을 총괄하고 있는 변지섭 헬퍼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분간 오크들이 성체 늑대들을 잡아서 계속 길들일 거예요. 힘들겠지만…….”
“안 그래도 늑대들이 계속 늘어날 것을 감안해서 막사를 넓히라고 지시해 놨습니다.”
“벌써요?”
“장지원 마스터님을 보니 서둘러야 할 것 같더라고요.”
“지원이 형이 왜요?”
“오크들이 늑대들을 타고 다닌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레이를 데리고 숲으로 뛰어가더라고요.”
“아…….”
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숲을 쳐다봤다.
오크들이 성체 오크를 길들이면 새끼 늑대들을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장지원 마스터가 오크들과 경쟁하며 성체 늑대들을 사냥하기 위해 이미 출발한 모양이었다.
* * *
늑대 사냥을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고 장지원 마스터가 툴툴거리며 내 숙소를 찾아왔다.
“야, 해용아, 오키도키한테 얘기해서 늑대 좀 나눠 달라고 하면 안 되냐?”
“어떻게 그래요.”
“뭘 어떻게 그래. 그냥 가서 좀 달라고 하면 되지. 빌어먹을 것들이 다 꼬셔가서 우린 백 마리도 못 길들였다니까.”
“일단 그걸로 만족하세요. 새끼 늑대들 데리고 왔으니까 그것들 자라면 분배받으시면 되잖아요.”
“그걸 언제 기다려. 지섭이가 그러는데 그것들 탈만큼 자라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한대.”
“흠…….”
“은혜도 모르는 놈들. 일만 마리나 길들여 놓고선 사백 마리만 달라니까 그것도 안 주려고 한다. 정 갖고 싶으면 너한테 허락받고 오래. 그럼 준다고.”
장지원 마스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 목장과 오크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늑대의 효용성을 확인한 이십만 마리의 오크들이 숲을 돌아다니며 늑대의 씨를 말린 모양이었다.
“기다리세요.”
“가서 말해 줄 거야?”
“아니요. 새끼 늑대들 자랄 때까지 기다리세요. 어차피 이번 원정은 오크들이 주력해서 싸우게 될 거니까. 그리고 앞으로 늑대 사냥도 금지에요.”
“엥? 늑대 사냥 금지라고? 왜?”
“안 그래도 이제 몬스터들도 씨가 말라 가는 중인데, 늑대들마저 지금처럼 다 잡아 버리면 천적이 없어진 초식 동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럼 숲 파괴되는 건 순식간이에요.”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 멀리 숲을 쳐다봤다.
장지원 마스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늑대 사냥은 여기까지 해야 할 듯했다.
울프 라이더 일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늑대들은 야생마만큼이나 힘이 좋았기에 울프 라이더 오크들에게 보급을 맡기면 원정을 나가는 게 한결 수월해 질 듯했다.
터벅터벅.
난 궁시렁거리는 장지원 마스터를 뒤로 하고 지휘 막사로 걸어갔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조성태 마스터에게 연락해 주세요. 내일 출정할 테니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하몽 님과 은빈 씨도 준비하세요. 같이 갈 거니까.”
“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지휘부에 모여 지도를 보고 있던 인원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